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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지가 주신 선물

(수필) 아버지가 주신 선물 9

열린마당  선아 선아님의 글모음 쪽지 2016-05-18 17:17 5,028

아버지가 주신 선물  / 이정선

 

고요한 새벽의 공기 속으로 가만히 들어와 앉는다. 창밖은 어둠이 거리의 가로등 불빛아래 잠잔다. 동쪽 베란다 넓은 창에는 장식품처럼 조각배 닮은 그믐날과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은은하게 빛을 낸다. 새벽이다. 하루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벽이다.

힘껏 기지개를 편다. 손바닥을 비비고 손날도 비비며 손등끼리도 비비다가 손깍지를 끼고도 비빈다. 손에 온기가 퍼져 이내 머리가 맑아지고 유쾌하고 상쾌한 나만의 시공간 속으로 동그마니 앉아서 하루의 문을 연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시간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또한 이 시간은 일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의 음성이 그리운 시간이다.


나의 아버지!

우리 5남매에게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멋진 선물을 하나 주셨다. 군인이셨던 멋진 아버지는 제대하신 후에는 예비군 중대장을 하셨다.

우리는 자랄 때,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까지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며 늦잠 한번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소원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오랜 습관, 몸에 베인 습관이 우리들을 새벽 6시이면 어김없이 “자~! 기상! 기상!” 힘차고 우렁찬 목소리로 기상을 외치신다.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찬 기운을 넣으시며 이불을 걷어버리기 때문에 달콤한 잠을 더 이상 잘 수가 없다. 떨어지지도 않은 눈을 부비며 바로 집 앞에 있는 개울가에 나가서 정신이 번쩍 들게끔 찬물에 세수를 해야만 했다.

반쯤 감긴 눈으로 각자가 맡은 역할분담을 수행했는데 그건 나이와 성별에 따라서 방 청소, 토끼나 염소 먹이주기, 소의 죽 끓이기, 마당 쓸기 등 조금씩 달라지곤 했다. 맡은 일을 하다보면 어느 새 잠이 활짝 깨어 맑아지곤 했다. 역할활동을 하고 남은 시간은 무엇을 해도 간섭은 하지 않으셨지만 책읽기를 좋아한 나는 늘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주신 선물은 바로 새벽시간이다. 어릴 때는 너무나 일어나기 싫어했던 그 시간이 이제는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상쾌한 하루를 여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5남매가 모두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새벽에 한결 같이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늦게 잠을 자도 저절로 몸이 새벽을 알고 일어들 난다. 자명종 같은 건 필요도 없다. 자명종에 의지해 일어난 적이 없지만 아예 필요하지도 않다.


얼마 전 까지 5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는데 이제 나이가 들수록 그 시간이 점점 빨라져서 지금은 보통 4시면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서 좋아하는 음악 틀어두고 독서를 하며 지금처럼 글을 쓸 때가 많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화시키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해 나간다. 또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처리하는 시간도 새벽에 하는 일 중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한 학기 남은 사이버 대학의 학과공부를 하는 시간도 주로 새벽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할 때면 시간이 참으로 알차다.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이며 오롯이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이 시간은 서 너 배의 효과를 안겨준다. 새벽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며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시간이다.

 

'세살 적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 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참 좋은 선물을 주셨음을 돌아가시고 나니 새록새록 와 닿는다. 그 때는 일찍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었는데 새벽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요즘에서야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 눈물나도록 고맙다.

 

새벽마다 그리워질 아버지의 기상 목소리가 그리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 된다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믿어온 나에게  은은하게 빛을 내며 자꾸만 나를 이끈다. 저 새벽별은 유난히 아버지를 닮았다.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아버지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은 "안녕~" 이었다. 기상이라고 힘차게 울리던 소리와  힘겹게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말한 아버지의 음성은 묘하게 내 귓가에 합성을 일으키며 윙윙 거린다.


맑은 새벽에 아버지가 주신 선물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은 서서히 밝은 빛으로 채워져 간다. 오늘도 나는 일찌감치 출근하여 누구보다 먼저 창을 열 것이다. 신선한 공기가 밤새 갇힌 공기를 몰아내고 교실을 가득 채우는 이 시간을 즐기며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웃음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수첩에 적어나갈 것이다. 아버지가 주신 소중한 선물에 감사하면서 새벽에 이은 아침 시간의 여유와 상쾌함을 즐길 것이다.


 

호롱불 쪽지 2016-05-18 22:04
저의 작은형 이름이 기상이었습니다. 많이 놀려먹었지요. 젊은 나이에 가셨지만 기상! 기상! 생각나네요.
선아 쪽지 2016-05-19 07:04
호롱불 그렇군요. 젊은 나이에 가셨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좋은 분들이 아직도 젊은데 바삐 가신 분들을 보면 더 좋은 세상에 오시려고...
더 좋은 곳에 오시려고 하늘이 필요했던가 보다하고요.
또 그렇게 기원드리고 나면 마음도 훨씬 편해지더군요.
분명 그렇다고 믿고 싶어요.
화송 쪽지 2016-05-19 22:13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기둥이신것 같습니다.
이불속이 그리운데....기~상~! ㅋㅋ
증산천하 쪽지 2016-05-21 14:14
!새벽형 인간!을 만들어 주신 선아님의 아버님은 자녀들에게 정말 값진 선물을 해 주신 분 같습니다~

저희 집도 아침 일찍(새벽은 아님)
현관문과 창문을 종종 활짝 열어 젖히시는 아버지가 계셨는데 다른 형제들을 다 깨우시는 중에 저는 늘 열외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위 언니들과 연연생이어서 다 고만고만 했는데 저만 유독 혜택을 받았네요ㅎ^^
다들 기상 하는데 아버지께서 제 이불을 덮어 주실 때
그 이불속의 따뜻하고 편안함이란~

언니들 미안해~~ㅎ
사실은 나도 그때 깨 있었어^^

잘 읽었습니다~
아버님의 '안녕'이라 하신 마지막 말씀에 함께 울컥 했습니다. 늘 쓰는 말인 안녕이란 말인데 그 단어 한 마디가
읽는내내 여운이 되었습니다..
선아 쪽지 2016-05-22 07:50
화송 아버지는 가정의 기둥이지요.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선아 쪽지 2016-05-22 07:51
증산천하 증산천하님은 막내? 막내사랑이었나봐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증산천하 쪽지 2016-05-23 14:36
선아 막내사랑ㅎ~
선아님 수필은 잔잔하고 편안함을 주어 넘 좋습니다~

수필사랑^!^
혜정 쪽지 2016-05-31 07:38
어찌 !
글을 잘 쓰세요?
지나번 글은 콧물 눈물다 흘리게하고
이번엔 글 잘 보았다고 인사하게 만드네요
고맙습니다
꾸벅^^-♡
선아 쪽지 2017-06-26 10:27
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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