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정리 했네요
화은당실기는 여러번 볼때마다 새롭습니다.
오늘 서울대 국사학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간략하게 만들었던 자료입니다. 간략하지만 꽤 쓸만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도생광장에도 공유하겠습니다. ^^
- 날짜는 모두 음력 기준
증산법종교 간략 연혁
1기초 : 1937년 9월 17일 창교 - 전주 노송동
2기초 : 1942년 - 경북 의성 금성산 금성곡
3기초 : 1945년 - 경북 의성 장대곡
--- 8월 15일(양) 해방 ---
4기초 : 1946년 - 김제 금산면 구미란
5기초 : 1947년 - 동곡마을 (저수지 수몰 전)
6기초 : 1949년 1월 20일 - 오리알터 (현 수양산 기슭)
- 각 전각 설립 연혁
1949년
3월 15일 - 증산상제님과 정씨대모님의 천지장사예식 거행, 오리알터 기지 안장
4월 9일 - 2차 장사예식
12월 26일 - 삼청전 - 미륵불상 봉안
1950년 2월 - 서별당 - 후일(1985년) 화은당 선사님의 영정을 모시면서 화은당으로 개축
--- 6월 25일(양) 한국동란 발발 ---
1952년 10월 10일 - 영대 - 양위분 체백 봉안
1953년 4월 15일 - 태평전 - 단군성조의 체상과 역대왕조 창업주 위패 봉안
1954년
구룡사 - 최수운 선생 체상
호국사 - 순국충의열사, 전몰군경영령, 무명투사영령 위패 봉안
1956년
- 경춘대 - 천지인신(天地人神)의 출입문
12월 26일 - 숭도묘 - 각성(各姓) 도선령 위패 봉안
1957년 7월 15일 - 대령전 - 천지대신명
1958년 10월 10일 - 천하전 - 증산상제님 목조영상과 보처영상 - 구궁팔괘(九宮八卦)
1959년 4월 1일 - 화은당 선사님 선화
1969년 10월 7일 - 구암 정사님 선화
1974년 9월 19일 - 성신사 - 증산법종교 선배도현 위패 봉안
1982년 3월 19일 - 만고종 주조, 종각 건립
*
막상 학생들이 왔을 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료를 배포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내용에 오류가 있어서 배포가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더군요. ^^;;
1949년 증산상제님과 정씨대모님의 장례식 날짜를 어림짐작으로 6월 24일(음)로 했었는데 화은당실기를 다시 보니 3월 15일(1차), 4월 9일(2차)이었더군요. 1,2차에 걸쳐서 치루게 된 내력은 아래 링크된 화은당실기에 잘 나옵니다.
http://jsbeob.com/_study/?cId=406
3월 15일은 오리알터 인근의 각 교단 도생들 및 주민들이 조문객으로 참관하였고 4월 9일은 유동렬 장군을 비롯한 도청 및 각 기관장들이 조문객으로 참관하였더군요.
http://jsbeob.com/_study/?cId=406
- 날짜는 모두 음력 기준
증산법종교 간략 연혁
1기초 : 1937년 9월 17일 창교 - 전주 노송동
2기초 : 1942년 - 경북 의성 금성산 금성곡
3기초 : 1945년 - 경북 의성 장대곡
--- 8월 15일(양) 해방 ---
4기초 : 1946년 - 김제 금산면 구미란
5기초 : 1947년 - 동곡마을 (저수지 수몰 전)
6기초 : 1949년 1월 20일 - 오리알터 (현 수양산 기슭)
- 각 전각 설립 연혁
1949년
3월 15일 - 증산상제님과 정씨대모님의 천지장사예식 거행, 오리알터 기지 안장
4월 9일 - 2차 장사예식
12월 26일 - 삼청전 - 미륵불상 봉안
1950년 2월 - 서별당 - 후일(1985년) 화은당 선사님의 영정을 모시면서 화은당으로 개축
--- 6월 25일(양) 한국동란 발발 ---
1952년 10월 10일 - 영대 - 양위분 체백 봉안
1953년 4월 15일 - 태평전 - 단군성조의 체상과 역대왕조 창업주 위패 봉안
1954년
구룡사 - 최수운 선생 체상
호국사 - 순국충의열사, 전몰군경영령, 무명투사영령 위패 봉안
1956년
- 경춘대 - 천지인신(天地人神)의 출입문
12월 26일 - 숭도묘 - 각성(各姓) 도선령 위패 봉안
1957년 7월 15일 - 대령전 - 천지대신명
1958년 10월 10일 - 천하전 - 증산상제님 목조영상과 보처영상 - 구궁팔괘(九宮八卦)
1959년 4월 1일 - 화은당 선사님 선화
1969년 10월 7일 - 구암 정사님 선화
1974년 9월 19일 - 성신사 - 증산법종교 선배도현 위패 봉안
1982년 3월 19일 - 만고종 주조, 종각 건립
*
막상 학생들이 왔을 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료를 배포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내용에 오류가 있어서 배포가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더군요. ^^;;
1949년 증산상제님과 정씨대모님의 장례식 날짜를 어림짐작으로 6월 24일(음)로 했었는데 화은당실기를 다시 보니 3월 15일(1차), 4월 9일(2차)이었더군요. 1,2차에 걸쳐서 치루게 된 내력은 아래 링크된 화은당실기에 잘 나옵니다.
http://jsbeob.com/_study/?cId=406
“오는 삼월 십오일에 장례식을 거행하도록 하라 오리알터는 나와 너의 어머니의 영원한 안장지니라. 이날에는 장례라 하지 말고 장사라 하여라. 이날 장사는 천하장사 지하장사 인간장사 천지대장사니라” - 화은당실기 중
3월 15일은 오리알터 인근의 각 교단 도생들 및 주민들이 조문객으로 참관하였고 4월 9일은 유동렬 장군을 비롯한 도청 및 각 기관장들이 조문객으로 참관하였더군요.
(3월 15일) 그날 청년들과 풍악을 울리고 구릿골을 다녀서 지금의 금평호수 자리에서 춤도 추고 소리도 하여 종일토록 즐겨 노니라. 그러나 성부님의 옥체를 봉안한 곳에 습기가 심하니 식당의 웃방에 모셨다가 오는 사월 구일에 다시 묘소에 보안하라는 지시가 계시어 그대로 하니라. - 화은당실기 중또한 이 해 6월 24일 화천절 치성일에 천지신장으로부터 동년 12월 26일까지 삼청전을 짓고 미륵불을 봉안하라는 명을 전달받게 됩니다.
유월 이십사일 화천기념치성을 거행하니 천지신장이 강림하여 말하기를 “성부님께서 미륵불상으로 지상에 현현하시게 되니, 천상에서도 대회를 열었노라”고 하시면서 “성부님께서 천상 마리지 일월삼용(嗎哩池 日月三 龍) 에 누어 계시다가 열석자의 금불로 화현하시게 되면 그 삼용도 서게 되신다”고 하시더라. 또 “십이월 이십육일에 불상조상을 마치고 예불을 드리도록 하라” 하시더라 또 “기념치성이 끝나면 바로 불상조성을 시작하되 조각자 마음대로는 하지 못할지니 선사님께서 천상에 오르내리시면서 전반 지시를 받도록 도수를 두었는 고로 조각자는 일일히 선사님의 지도를 받아 조각을 하게 될 것인즉 그리 알고 천상에 대하여 치성을 자주 올리기 바란다”고 하시더라. - 화은당실기 중그리고 이듬해 1950년 6월 25일 한국동란이 발발하게 되는데 그 직전 삼청전 미륵불께서 화은당 선사님께 급하게 하명하시어 대구로 피신케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구에 가서는 최수운 대신사전에 치성을 올리게 되는데 그 상황이 참으로 드라마틱하군요.
불시의 명령의 내리신 뜻을 그제서야 깨달은 우리는 서울방면으로부터 물밀 듯 내려오는 피난민 틈에 끼여 겨우 기차에 올라 대구에 내리게 되니 그곳의 교중 형재 이교태(李敎台)의 장자 종회(鍾會)의 집을 찾아서 가니라. 그 집에서 저녁 진지상을 올리고 예를 드리니 성부께서 말씀하시되 “큰일 이로다 대구는 최수운(崔水雲)이 참사를 당한 자리라 수운은 대혁명 사상가로서 나라를 개명시키고자 하는 사상을 가졌음으로 이번 일도 그가 하는 일이라 하시며 내일은 수운을 위하여 치성준비를 갖추어 달성공원(達城公園)에서 치성을 드리되 창호지에다 이 난리가 대구로부터 부산까지는 범치 못하리라고 써서 설상 앞에 펴놓고 치성 예를 올린 다음 소화하라”고 명령하시니라.이후로도 다시 김제 오리알터로 돌아오기까지 천신만고의 여정이 참으로 눈물겹게 펼쳐집니다. 화은당실기를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 대목만큼이라도 꼭 읽어보시어 그동안 전혀 접해보지 못했을 증산상제님의 생생한 천지공사현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 이튿날 명령대로 준비를 갖추어 달성공원에 가보니 공원안은 피난민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치성을 올릴만한 장소가 없더라. 이리 저리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한 모둥이에서 사람이 없고 고요한 곳이 있어 이곳 나무밑에서 진설하고 예를 행하되 사람이 오면 앉아 노는 척 하며 내왕하는 사람들의 거동을 살핀 연후에 행사를 계속하고 하였나니라. 예를 마친 뒤 하명 계시대로 축문과 지도를 불사르니 수운신사께서 하강하시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신 다음 발을 굴리시면서 “이놈들아 물러가거라 대구 부산까지는 못 들어온다”하시며 너희놈들이 대구 이남을 침범하여 끝까지 난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나라가 없어진다.”고 호통을 치시더라.
http://jsbeob.com/_study/?cId=406
화송 저도 이번에 이 편을 읽으면서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도 알게 되고 감회가 무척 새롭더군요. 제가 2012년도에 대구에서 8개월 가량 생활했던 적이 있는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초면식의 은인을 만나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이 달성공원 바로 앞이었습니다. (그때 맡았던 일도 국제결혼회사 홈페이지 개편 및 관리ㅋ) 대략 3개월 가량 살면서 달성공원은 서너번인가 가본 듯 한데 그때 화은당실기를 알았더라면 좀더 자주 가서 치성장소도 짐작해보고 했을텐데 말이지요. ㅎㅎ;
오늘 원광대에서 증산법종교를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이신 교수님이 오셔서 위 자료를 참고삼아 드렸습니다. 대진대학교에서도 현재 같은 작업이 진행 중이지요.
아래 링크는 본문의 '증산법종교 간략 연혁'을 구글문서로 따로 만든 것입니다. 프린트 등으로 활용하세요~^^
https://docs.google.com/document/d/10obocKeexVxjWl94LOntDk23ZDyEGtH4yYFsWxTDh0g/edit?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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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ocs.google.com/document/d/10obocKeexVxjWl94LOntDk23ZDyEGtH4yYFsWxTDh0g/edit?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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