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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느 산행

(수필) 어느 산행 6

열린마당  선아 선아님의 글모음 쪽지 2016-05-05 18:49 3,352

어느 산행

                                                                                                                                            이정선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벗었다. 비옷은 제 구실을 했지만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옷은 젖어버렸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온갖 감회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가장 큰 느낌은 살았다는 안도감이다. 살았구나. 드디어 쉴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울컥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산에 오를 땐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늦은 오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날씨는 한없이 맑았고 내 몸 상태도 좋았다.

남편과 나, 나의 친구는 셋이서 사진도 찍으며 등산을 즐기고 있었다. 힘든 암벽들이 나타나도 줄을 잡고 오르내리며 호기와 모험심으로 즐겁게 산을 탔다. 적어도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그랬다. 맛있게 점심을 먹는 중에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급하게 밥을 먹고 일어섰다. 가야할 길이 왔던 길보다 서 너 배 더 멀다는 일행의 말에 막막함은 더해져만 갔다. 두렵고 무섭고 발을 디딜 바위는 내린 비로 점점 더 미끄러워지고 있었다. 발을 옮겨야 하는데 닿지 않는다. 아득하고 막막한 기분이다. 게다가 몇 주 전에 손목 인대를 다친 부위가 덜 나아서 오른 손목은 힘을 제대로 못쓰니 밧줄을 잡은 몸이 균형을 잃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쏠려 버린다.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명 공룡의 등을 닮았다고 공룡능선이라고 불리는 구간은 바위를 넘고 또 넘고 스무 고개이상을 넘어야지 평탄한 산길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상에 지쳐있던 친구는 느낀 게 많은 산행이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산행 전날에도 가볍게 부부싸움을 하고 농담처럼 내년에는 이혼하자고 했는데 이번 산행을 통해 남편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단다. 비는 내리고 바람은 거센데 짙은 안개로 바로 앞만 겨우 보이는 시야는 막막하고 두렵고 무서웠단다. 이러다가 조난사고를 당해 뉴스에 나오는 건 아닌가 싶어서 긴장하면서 산을 탔다고 했다.남편이 옆에서 지켜주고 끌어주는 너는 그 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했다. 안개에 가려서 혼자가 될 땐 정말 두려웠다며, 그 동안 자기가 너무 안일하게 산 것 같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매사에 감사하자 싶기도 했단다. 내 옆에서 남편이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고 훌륭해 보이시더라. 극적인 상황에 의지가 될 그런 사람임을 느꼈단다. 혼자였던 친구는 남편의 의미를 다시 느낀 하루였다며 어제는 누구의 탓도 아니고 신이 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감회를 진솔하게 말했다.

우리 부부가 자기에게 너무 위안이 되고 고마웠고 두 사람과 함께여서 너무 좋았고 자기 남편을 생각해보니 그처럼 했겠더라며 그게 반려자이고 배우자인 가보다라고 했다. 삶이 재미없다고 툴툴대는 자신을 되돌아오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고난이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고 강조했다.이번 산행은 나에게도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되새겨준 소중한 날이었다. 힘든 구간이 나오면 때로는 위에서 당겨주고 때로는 아래쪽에서 발을 받쳐주며 일일이 챙겨주는 든든한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땡큐를 연발하는 내게 남편은 그냥 있으면 되지 자꾸 같은 말을 한다고 핀잔을 준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상황에서 저절로 나오는 소리 일진대 그 말이 남편은 오히려 불편했던 것이다.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산에 대하여 사전정보를 미리 알려주지 않은 산 대장 탓을 했다. 또 이 산을 잘 아는 일행이 처음에 우리와 함께 가다 먼저 앞서 가버렸다고도 원망을 했다. 다음 날은 미리 산에 대한 정보를 챙겨보지 못한 나를 탓하게 되었지만, 그런 나를 보고 정보를 미리 알고 갔으면 애당초 그 산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산 산행은 우리에게 벅찬 코스였다. 어느 해 더운 여름날 두타산이 나에게 가장 힘든 산행이었는데 이젠 비오는 날 밧줄 잡고 헤맨 주작산 산행이 최고 힘든 산행으로 자리매김했다. 힘든 만큼 느낌도 강하다. 삶은 앞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도처에 고난은 도사리고 있다. 험난한 암벽을 넘고 숨도 고르기 전에 또 다른 암벽을 만났지만 하나 둘씩 암벽을 넘으며 평탄한 길에 들어섰을 때의 기쁨은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힘들었던 발걸음은 이미 지난 일이 되어 멋진 나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고난을 뚫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죽음까지도 생각했다던 친구처럼 나도 든든한 남편의 존재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친구와 산행 뒷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힘든 산행만큼 내면도 깊어지고 있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우리는 행운을 바라며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세 잎 클로버 사이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우리 주변에서 늘 찾을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어쩌다 오거나 오지도 않을 행운만 생각하고 지내진 않는지 그래서 행복을 손가락 사이로 놓치고 있지는 않는 건지 생각하다 나는 어느 새 묵은 수첩 속의 네 잎 클로버를 꺼내 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있었다. 
해새 쪽지 2016-05-05 20:07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수필이네요. 참 잘 읽었습니다. ^^

역시 듣던대로 글 내공이 대단하십니다.ㅎ

그런데 주제글 기능을 선택하셔서 그런지 분명히 글을 올라갔는데 목록에서는 보이지 않더군요. 아마 주제글 기능의 오류인 듯 하네요. 제가 부득이하게 임의로 주제글 선택해제 해드렸습니다. 안 그래도 홈페이지 사용자환경이 낯선 구석이 많으실 텐데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

주제글 혹은 연재글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글로 설명드리기가 더 어려우실듯 해서...;;;
화송 쪽지 2016-05-08 01:17
선아님 드디어 올리 셨군요.
반갑구요
잘 읽었습니다.
자주 아니 가끔 이라도 부탁드려요
선아 쪽지 2016-05-09 07:47
해새 해새님..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칭찬해 주시니 또 감사합니다.
선아 쪽지 2016-05-09 07:48
화송 넵..노력하겠습니다. ㅎㅎ
증산천하 쪽지 2016-05-09 15:48
잔잔한 호수 같은 글 입니다~
모처럼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주작산 산행 하시면서 한 치앞도 안보이는 하산길에 무척 고생이 많으셨네요..ㅜㅜ
무사귀환 하셔서 정말 다행 입니다.

주작산 산행을 통해 얻으신 것들이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
특히 친구분께서 배우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는 점은 드라마틱 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고두고 오래 기억될 산행이 되시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아 쪽지 2016-05-09 16:18
증산천하 잘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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