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6 내 블로그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증산의 말씀이다.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씀이다.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내 사람'이란 말은 또 무슨 의미인지. 문자 뜻대로만 보자면 고민하고 말고 할 게 없다. 그런데 현실상황에서 저 말씀은 혼란을 줄 때가 더 많다.
도판 식자들의 의식을 보면 '못나고 모자란 사람'을 대략 사회부적응자, 사회적약자 정도의 이미지로 상정하고 있는 듯 하다. 뭐 그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점에서 혼란을 느끼는 건 그들의 부정성 가득한 심리상태, 다시 말하면 패배의식, 노예의식, 피해망상, 박탈감, 사행심 등등 때문이다.
물론 그 상황에 처해 있어도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좌절의 시간대를 반등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성공인자가 이미 내재되어 있는 사람인 거다. 외부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그에 이르게 된 자신의 미성숙과 불찰을 먼저 돌아보고 그 여정이 자신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를 멘토링화할 수 있는 거다.
각설하고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이 어떤 의미이든 간에 증산이 말씀하신 '내 사람'의 의미가 '후천문명의 예비 주도계층'을 의미한다면 난 현재 시점에서 '일부(?)' 도판 식자들이 상정하고 있는 그 관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그런 부정성 가득한 심리상태의 사람들이 주도계층으로 등단하는 문명에는 결코 참여의지가 없다. 내가 주도계층이 되지 않아서도 아니고 설령 주도계층이 된다 해도 그들과 어떤 일이든 도모하고 추진할 자신이 전혀 없다.
의통인패 하나 들고 사람들 좀 살리면 그런 심리적 루저들에게 주도계층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 심리적 루저들이 증산의 일꾼이요, 삼천년전에 택정된 씨종자다? 이게 진정 증산 그 분의 복안이라면 난 후천 그냥 포기하고 말련다.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증산의 말씀이다.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씀이다.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내 사람'이란 말은 또 무슨 의미인지. 문자 뜻대로만 보자면 고민하고 말고 할 게 없다. 그런데 현실상황에서 저 말씀은 혼란을 줄 때가 더 많다.
도판 식자들의 의식을 보면 '못나고 모자란 사람'을 대략 사회부적응자, 사회적약자 정도의 이미지로 상정하고 있는 듯 하다. 뭐 그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점에서 혼란을 느끼는 건 그들의 부정성 가득한 심리상태, 다시 말하면 패배의식, 노예의식, 피해망상, 박탈감, 사행심 등등 때문이다.
물론 그 상황에 처해 있어도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좌절의 시간대를 반등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성공인자가 이미 내재되어 있는 사람인 거다. 외부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그에 이르게 된 자신의 미성숙과 불찰을 먼저 돌아보고 그 여정이 자신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를 멘토링화할 수 있는 거다.
각설하고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이 어떤 의미이든 간에 증산이 말씀하신 '내 사람'의 의미가 '후천문명의 예비 주도계층'을 의미한다면 난 현재 시점에서 '일부(?)' 도판 식자들이 상정하고 있는 그 관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그런 부정성 가득한 심리상태의 사람들이 주도계층으로 등단하는 문명에는 결코 참여의지가 없다. 내가 주도계층이 되지 않아서도 아니고 설령 주도계층이 된다 해도 그들과 어떤 일이든 도모하고 추진할 자신이 전혀 없다.
의통인패 하나 들고 사람들 좀 살리면 그런 심리적 루저들에게 주도계층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 심리적 루저들이 증산의 일꾼이요, 삼천년전에 택정된 씨종자다? 이게 진정 증산 그 분의 복안이라면 난 후천 그냥 포기하고 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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