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때 적군 포로수용소에 잡혀있던 미군 포로들은 세가지 부류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1. 속히 수용소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던 사람들 (지나친 낙관주의자)
2. 절대로 수용소를 벗어날 수 없다고 믿던 사람들 (지나친 비관주의자)
3. 언젠가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겠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는 사람들 (현실적 낙관주의자)
이들은 하나둘씩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저 순서대로 오래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저 이야기에서 낙관주의가 옳으냐 비관주의가 옳으냐 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라는 심리 상태입니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냉철한 자아인식입니다. 이게 전제가 되어야 주변 환경과 여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시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법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수용소 생활도 인생의 한 여정으로 인식하며 긴 호흡으로 적응해 나가게 됩니다.
이는 개벽을 대하는 도생의 자세로도 시사점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시점에 민감하고 종통에 촉각을 세우는 심리상태는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다"에 다다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 봅니다. 1번에 해당되는 심리상태인데 한순간에 2번으로 바뀌기도 쉬운 유형입니다.
어제 본 동영상에서 들은 얘기에서 느껴진 바가 있어 올려 봅니다.
1. 속히 수용소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던 사람들 (지나친 낙관주의자)
2. 절대로 수용소를 벗어날 수 없다고 믿던 사람들 (지나친 비관주의자)
3. 언젠가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겠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는 사람들 (현실적 낙관주의자)
이들은 하나둘씩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저 순서대로 오래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저 이야기에서 낙관주의가 옳으냐 비관주의가 옳으냐 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라는 심리 상태입니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냉철한 자아인식입니다. 이게 전제가 되어야 주변 환경과 여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시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법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수용소 생활도 인생의 한 여정으로 인식하며 긴 호흡으로 적응해 나가게 됩니다.
이는 개벽을 대하는 도생의 자세로도 시사점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시점에 민감하고 종통에 촉각을 세우는 심리상태는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다"에 다다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 봅니다. 1번에 해당되는 심리상태인데 한순간에 2번으로 바뀌기도 쉬운 유형입니다.
어제 본 동영상에서 들은 얘기에서 느껴진 바가 있어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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