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敎)와 도(道)에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적습니다.
교와 도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도(道)를 하는지
교(敎)를 하는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교(敎)를 하는 사람은 증산상제님의 말씀을 따르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도(道)를 하는 사람은 증산상제님 사상을 공부해서 도를 깨우쳐 도통하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증산상제님을 접근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교(교인)를 하는 사람은
이런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증산상제님께서 물샐틈없이 짜 놓으신 천지공사를 통해
천지인신의 모든 쾌도를 수정해 놓으셨으며,
알고자 해도 알 수 없고 안다면 도통의 경지에 올랐을 것인데
안다는 자는 다 죽으리라하신 무서운 말씀이 있다는 것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도(도생,도인)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공부해서 도를 알고 도통을 하려는 사람과
보인의 부족함을 알고 도움을 받아 대두목 아래 줄을 서든지
또는 종통 줄을 찾는 사람일 것이다.
도통은 증산상제님께서 일시에 내려 주신다고 했다.
대순전경3-158 공우 여쭈어 가로대 도통을 주옵소서 ......이 뒤에 일제히 그 닦은 바를 따라서 도통이 열리리라......나는 누구나 그 닦은 바에 따라서 도통을 주리니 상재(上材)는 칠일이요 중재(中材)는 십사일이요 하재(下材)는 이십일일만이면 각기 성도하게 되리라
“이 뒤에 일제히 그 닦은 바를 따라서 도통이 열리리라”하신 말씀과
“나는 누구나 그 닦은 바에 따라서 도통을 주리니”하고 말씀하신 부분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나 그 닦은 바에” 누구나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종단, 우리나라, 지구를 넘어서는 개념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할 때 그때 가되면 도통을 주실 것이다(敎)
내가 공부하여 도통하려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내가 누구다 하는 사람과
창교를 하고 본인이 높은 반열에 오른 것처럼 하는
일부 교단도 있는 것 보면 ㅉ ㅉ
도통한자는 없다(먼저 조금 깊게 공부한 정도?)
그러고 보면 교인과 도인(도생)은 다르다.
증산법종교는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교인이다.
지금은 교인(교생)이고 도통을 받은 후엔 도인(도생)이다.
큰 의미로 같은 듯 하지만 개념의 차이는 분명하다.
아울러 우리가 신앙하고 지향해 가야 하는 방향도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교(敎)를 할 것인가?
도(道)를 할 것인가?
대순전경4-14 을사년 봄에 불가지에 계실 때 유, 불, 선 석자를 써놓으시고
각기 뜻 가는 대로 한 자씩 짚으라 하시거늘
김석이 불자를 짚으려 하더니 때마침 불목간 이가 와서 무슨일을 하는지 묻거늘
종도들이 그 방자(放恣)함을 꾸짖어 쫓으니 천사 가라사대 그도 또한 인생이라 어찌 쫓느뇨 하시고
일러 가라사대 우리가 교를 세우려하여 무슨 교가 좋을지 의논중이니
너도 이 석자중에서 한자를 짚으라 그 아이가 유자를 짚거늘 가라사대
이 일로 인하여 후일에 너희들이 유로써 폐해를 당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교를 세우려하여 무슨 교가 좋을지 의논중이니 " 이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것 같습니다.
각기 뜻 가는 대로 한 자씩 짚으라 하시거늘
김석이 불자를 짚으려 하더니 때마침 불목간 이가 와서 무슨일을 하는지 묻거늘
종도들이 그 방자(放恣)함을 꾸짖어 쫓으니 천사 가라사대 그도 또한 인생이라 어찌 쫓느뇨 하시고
일러 가라사대 우리가 교를 세우려하여 무슨 교가 좋을지 의논중이니
너도 이 석자중에서 한자를 짚으라 그 아이가 유자를 짚거늘 가라사대
이 일로 인하여 후일에 너희들이 유로써 폐해를 당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교를 세우려하여 무슨 교가 좋을지 의논중이니 " 이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것 같습니다.
화송님 말씀은
도통을 위하여 자기자신의 수행만 중요시하지말고
일상속에서 가르침을 실천하는 역동적인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
당연한 말씀. 공감 합니다^^
도통을 위하여 자기자신의 수행만 중요시하지말고
일상속에서 가르침을 실천하는 역동적인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
당연한 말씀. 공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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