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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 산양을 만나다 - 끝

어린양 산양을 만나다 - 끝 12

열린마당  해새 해새님의 글모음 쪽지 2015-05-21 23:55 8,571



잠에서 깬 어린양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졌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의 모습들을 더 이상 예전처럼 바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온 몸을 짓누르는 감정이었다.

그는 돌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상의 강을 건넜다. 그가 새로이 본 세상은 너무나 생생하고 강렬했기 때문에 도저히 망각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것은 그동안 몸담아왔던 세상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이기도 했다.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그는 누군가에게 이 급작스럽고 생소한 고뇌를 털어놓으려 했지만 그 누구도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아는 양들의 무리에서는 아무도 이 고뇌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의 내면에서는 간밤의 꿈을 망각해 버리려는 본능과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본능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는 한낮의 태양 아래서 여전히 행복한 얼굴의 양들이 한가로이 목장을 거닐고 있는 현실을 빌미로 지난밤에 일어난 사상의 대격변을 희석시켜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이런 내면의 격동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어쩐지 달라져 보이고 달뜬 행동을 하는 어린양이 가벼운 감기에 걸렸다고 판단한 양들은 더욱 그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었다. 이런 모습들은 어린 양에게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눈물겨운 애잔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속한 이 세상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머물러도 되는 핑계가 되었다.




그는 저녁무렵에야 겨우 여느때와 다름없는 일상의 궤도에 복귀할 수 있었다. 또래의 어린양들끼리 하게 마련인 가벼운 놀이들은 전에 없이 소중한 일상이었고 이전보다 더 몰입했다. 잠들 무렵이 되어서 어린양은 이전의 의식과 세계로 완전히 돌아왔다. '산양을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무의식에 뿌리내린 금기 외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어린양이 꿈에서 보았던 세계는 그의 의식속에서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건 마치 한 때 심하게 앓고 지나간 열병과 같았다. 어쩌면 모든 양들은 자기와 똑같은 고뇌를 거쳐서 어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목장의 양들이 이전보다 훨씬 존경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그는 이 세계에 머무르기로 했던 결정에 아주 만족하며 현명한 선택을 한 자기자신과 그걸 이끌어준 그들의 사회체제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저 밖의 세상은 역시 거칠고 위태로운 세상이었다.

- 끝


*
맺음말에 앞서서.

사상 혹은 가치관을 바꾼다는 건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 개인에게는 우주가 붕괴되는 사건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신앙에 기반된 것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지요. 이 이야기가 저의 체험에 기반한 것이지만 어린양의 선택은 저와 다르게 설정한 이유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어린양과 유사한 고뇌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그 고뇌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것은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 맺음말

이 우화는 익숙한 주제다. 이것을 전문적으로 뭐라고 부르는 장르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려진 작품 중에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 등이 있겠다.





어린양은 '싱클레어'일테고 산양은 '데미안'일 것이다. 한 미숙한 영혼이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를 알아감으로써 겪게되는 내적인 갈등, 희열, 자아붕괴감.. 뭐 이런 것. 짐작하겠지만 이 우화는 기독교를 의식하고 쓰여진 것이다. 아, 물론 '기독교에서 더 큰 세계로' 깨어나는 이야기다. (내가 볼 땐 '데미안', '갈매기 조나단' 등도 그러했다)

이 우화는 뒷얘기가 더 있다. 그기서 말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있긴 한데 어떻게 풀어내질 못하였다. 아무튼 어린양은 산양과 다시 만나야 했다. 바위산에 사는 그 자연의 교감자들에게 '목장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열의에 찬 사명자와 함께. 그를 어린양의 삼촌으로 설정해 볼까? 누가 됐든 그는 산양의 보다 큰 지혜의 말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이윽고 산양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대들은 이 산에다가 아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목장을 만들려고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산에 있는 수많은 풀들을 가려내서 뽑아내야겠죠? 그대들이 잡초라고 부르는 그들 말이죠.
그러고 나면 그대들이 목초라고 부르는 서너가지의 식물들이 이 산등성이를 뒤덮겠군요. 그 식물들은 이미 대자연의 활력을 잃은지가 오래된 것들이라 해마다 새로운 종자를 심어줘야 한다죠?
얼마 안 있어서 이 계곡과 산등성이에는 단 몇 종류의 생명체들만 살게 되겠군요. 더구나 그 생명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이 아닌 주인이라는 존재들이 늘 지켜줘야만 하고요?
그대들은 다양성의 소중함을 너무나 깨닫지 못하고 있군요. 그다지도 주위의 모든 존재를 같은 색으로 물들여 버려야 후련하신가요? 아니, 같은 색들만 남겨 버리는 거죠.
당신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우리 주위에서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작고 소중한 생명체들이 얼마나 될 것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단지 몇 가지의 식물들만 남아 있는 세상이란 것이 그토록 이상향이던가요?
당신들이 말하는 '목장'이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세상인지 이제 좀 아시겠어요?"

산양의 말은 상당한 시간동안 계속 되었고 목장의 두 양은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얼얼한 채로 듣고만 있었다. 그들의 불타오르던 사명감은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날아가 버렸다.



호롱불 쪽지 2015-05-22 06:55
맨위 그림이 뭔가 많은 영감을 주는듯 합니다ᆞ사진 좋아요
느낌 쪽지 2015-05-22 08:00
해새님.. 무척이나 좋은글입니다.
시사하는바가 크다생각되어집니다.
얘기가 좀 더 길지않은게 아쉽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증산천하 쪽지 2015-05-22 09:47
기독교인들이 상제님 진리를 만나게 되는 때의 심리는
마치 크나큰 쓰나미가 머리에 덮친 느낌과 비교 할 수 있을까요!
일상 생활 자체가 기독교 진리에 깊은 영향을 받고 사는
신앙인 이었다면 분명 최고의 강도 높은 정신적
소용돌이를 겪을 수 밖에 없었을 것 입니다..

해새님의 글 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마음 인 것 같습니다~
담장안에서 안주하지 않고 뛰어나오신 해새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짝!!

잘 읽었습니다~~
성경신 쪽지 2015-05-22 11:01
해세님의 심도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자질도 타고나신 듯..^^

사진도 너무 잘 어울립니다.^^ 감사합니다.
강아지 쪽지 2015-05-22 11:58
.
…이윽고 증산법종교의 해새님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대들은 우리나라에다가 아주 평화롭고 살기 좋은 증ㅅ도를 중심으로 한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나라에 있는 수많은 상제님 진리의 가르침을
이은 단체들을 가려내서 뽑아내야겠죠? 그대들이 난법이라고 부르는 그들 말이죠.
그러고 나면 그대들이 진법이라고 부르는, 온통 개와 말을 중심으로 하는 상제님의
서너가지의 천지공사 내용들만이 이 도판을 뒤덮겠군요. 그 말씀들은 이미 상제님 말씀의
원형을 잃은지가 오래된 것들이라 해마다 개와 말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성구를
만들어내야 한다죠?
얼마 안 있어서 이 나라와 도판 안에는 개와 말을 신앙하는 단 몇 종류의 좀비 신앙인
단체들만 살게 되겠군요. 더구나 그 신앙인들은 스스로 도를 깨우쳐 가는 방식이 아닌 주인,
즉 그 개와 말이라는 존재들이 늘 가르쳐 줘야만 하고요?
그대들은 상제님 진리의 광대무변함과 일꾼 개개인의 소중함을 너무나 깨닫지 못하고 있군요.
그다지도 주위의 모든 존재를 같은 색으로 물들여 버려야 후련하신가요? 아니, 같은 색들만
남겨 버리는 거죠.
당신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우리 주위에서 영원히 접하지 못하게 될 상제님의
소중한 진리 말씀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단지 개와 말이 주인공이 되는
몇 가지의 상제님 말씀들만 남아 있는 세상이란 것이 그토록 이상향이던가요?
당신들이 말하는 '증ㅅ도가 여는 후천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세상인지 이제 좀 아시겠어요?"

해새님의 말은 상당한 시간동안 계속 되었고 증ㅅ도 출신의 두 수호사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얼얼한 채로 듣고만 있었다. 그들의 불타오르던 두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과 사명감은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날아가 버렸다……

------
해새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해새님의 지난 과거의 경험이 오롯하게 녹아있는 소중한
글인데 읽다보니 기독교 뿐만 아니라 지금 상제님 신앙판 위의 상황과도 정확하게 맞물리는
것 같아서 마지막 핵심 문단에서 몇 개의 단어들만 바꿔보았습니다. 해새님이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서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그 마음가짐을 지금의 증ㅅ도 신앙인들은 깊이 공감하고 난법의
굴레에서 스스로 떨쳐 나올 수 있는 발판으로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새님 허락없이 본문 내용을 바꿔서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시겠지요? ^^)
느낌 쪽지 2015-05-22 12:09
강아지님..정말 멋지고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비유를 해 주셨네요~^^
밥무러갈려다가 촌철살인같은 비유에 밥먹기전에 벌써 소화가된듯..ㅜㅜ ㅋㅋㅋ
강아지 쪽지 2015-05-22 12:23
느낌 원판(해새님 글) 내용이 훌륭하다보니 이렇게 변형시켜도 뜻이 무리없이 연결되네요. 해새님이 24시간 내내 이곳 증산법종교 홈피에 신경을 쓰고 계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글이기도 했습니다.^^; 해새님, 감사합니다~
증산천하 쪽지 2015-05-22 13:08
강아지 한 쌍의 춤추는 나비들이 따로 없네요~~
^^나풀나풀^^
활연관통 쪽지 2015-05-22 14:21
해새님의 경험에서 나온 절절한 교훈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강아지님의 변주곡도 잘 들었습니다.^^
해새 쪽지 2015-05-22 17:02
보잘것 없는 글을 좋게 보아주셔서 모두 감사드립니다^^; 특히 강아지님의 재해석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조만간 강아지님의 원본 시리즈글을 볼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일일이 답글 달아드려야 도리인데 그럼 제 글이 또 수면에 떠올라야 해서 이걸로 답례를 대신하겠습니다. ^^;
화송 쪽지 2015-05-22 22:06
해새님처럼 격어보지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짐작은 갑니다.
몸이 다시 태어난것처럼 마음이 다시 태어나는 느낌.
잘 읽었습니다.
눌치 쪽지 2015-05-23 18:49
그림과 함께 단행본을 만들어 출간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 ^^
누구든지, 시퍼렇게 눈뜨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속에는 우리도 포함되지 말란법 없고,)
산양이, 하얀, 보기만 좋은 어린양이 되버리지 않으란 보장이 없겠죠??
해새님~~
정말 잘 읽었읍니다. 감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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