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후는 에너지가 흐르는 흐름일것입니다.
이마두가 중국에와서 일력으로 만들어 놓은것인데 농경사회에서는
이마두에게 많은 은혜를 입고 왔다.
깊게 들여다보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24절후를 잘 활용해야 할 것같다.
시세를 따르라는 증산상제님의 말씀처럼 법종교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할것이다.
종교단체는 서비스마인드!
큰틀 안에서 응용해서 쉽게 호흡하고 편하게 따라가는 종교 생활이 필요 할것 같습니다.
언제나 행복을 느낄 수있는 지혜와 고기 잡는 방법을 쉽게 전달하고 알려주는 종교 단체가 되어야 할것으로 생각 됩니다.
모든것의 시작과 끝은 자기자신.
내가 웃어야 세상이 웃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세상도 평화로워집니다.
하늘에 계신 그 어른도 그걸 바라실겁니다.
내가 불행하고
악쓰고
험한 얼굴을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시기하고
질투하며
남을 헐하는 그런 일은
그 분은 분명 싫어 하실겁니다.
우린 항상 증산상제님 품안에서 행복합시다.
절후에 성두를보는것에대해
지금부터는 제 개인적이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24절후에 성두를 보기 시작한것은 김대수 전법종사님때부터 입니다.
확인을 위해 몇 분 어른들께 다시 여쭈어 보았습니다.
화은당선사님꼐실때는 언제 성두를 보았어요?
음~초사을과 열이레지~~
결국 음력 매월3일과 17일에 성두를 보았다고 하신다.
성두는 처음에 좀두리쌀과함께 진지상을 크게 올렸지~
네?
좀두리요?
좀두리라고 한 줌 쌀을 좀두리라고 하지~ 그 땐 정말 먹고살기 힘들었어~~
삼청전에서 초사흘 열이레에 성두를 볼때 각자 집에서 밥할때
조금씩 항아리에 모아서 그렇게 모으면 약 한 되박이나 두 되박은 되었지~~
성두에 올때마다 각자 가지고 왔지~
그렇게 모은쌀을 큰 항아리에 담아서 삼청전에 올리고 성두가 끝나면
원평장에 내다 팔아서 법종교 유지하는데 썼어~
네~~
어르신들 고생 많으신거 알아요!
그러다가 쌀이 잘 안팔리자 돈으로 내자는 제안이 있어서 평균 한 되박씩 내니까
한 되박에 그때돈으로 300원이었을꺼야~~
그렇게 성두때 냈어~~
신도로서 법종교를 이끌었던 화은당선사님께서 선화 하시고 구암 김병철 회장님께서
증산법종교 1대 회장직을 맡으셨다.
화은당선사님게서 선화하시자 전국 지부와 신도들은 어수선 했다.
구암정사님도 선화 하시고 이환우 2대 회장님께서 오르셨고
이어서 대구지부 김대수 법종사님께서 3대회장에 오르셨다.
그 당시 흔들리는 법종교였고 신도 수도 많이 감소 하였다.
이 때 밖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대 ㅅ , 증ㅅㄷ, ㅌㄱㄷ등에서 몰래 사람들을 입도 시키기 시작했다.
이유는 법종교를 장악하기 위해서 일것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30~60명씩 자꾸 들어온 것이다.
이를 김대수 법종사가 알아 차리고 쇄국정책 비슷한걸 편다.
치성도 줄이고 평도생들은 치성에 참가 하지도 못하게 하신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이 되었고.....
그 동안 법종교의 회장은 종신제였다.
기억나지 않지만 1975~1976년도로 기억되는데 젊은 ㅇㅇ분이 법종교에 왔다.
그리고 김대수 전 법종사님은 그 분을 종무원장 자리를 맡게 했다.
김대수 법종사를 떠 받들며 개혁을 부르짓었고 법종교에서 하던 많은 절차와 행사
단어 호칭들을 바꾸었다.
대표적으로 회장을 법종사로
회장 임기를 4년에서 5년으로
반천무지사배를 반천무지법사배로
청수를 법수로
성두(3,17일)를 24절후로
등등...
종헌 종법도 바꾸었다.
결국 그 분은 개인적인 불미스러운 일로 약 4년정도 법종교의 종무원장으로 있다가 출교조치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 분이 하신 좋은일도 많았다.
참고로 김대수전법종사님은 법종사를 27년간 하시다가 선화 하셨다.
그 후로 법종사는 임기가 끝나면 바뀌어지고 있다.
여기서 24절후에 보는 성두는 화은당선사님때부터 하던것이 아니었음을 밝힘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부산? 진주? 밀양등은 매월 1주 3주 낮12시에 성두를 보고
다른 지부는 김대수전법종사님때정했던 24절후에 성두를 보고 있다.
지금부터는 제 개인적이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24절후에 성두를 보기 시작한것은 김대수 전법종사님때부터 입니다.
확인을 위해 몇 분 어른들께 다시 여쭈어 보았습니다.
화은당선사님꼐실때는 언제 성두를 보았어요?
음~초사을과 열이레지~~
결국 음력 매월3일과 17일에 성두를 보았다고 하신다.
성두는 처음에 좀두리쌀과함께 진지상을 크게 올렸지~
네?
좀두리요?
좀두리라고 한 줌 쌀을 좀두리라고 하지~ 그 땐 정말 먹고살기 힘들었어~~
삼청전에서 초사흘 열이레에 성두를 볼때 각자 집에서 밥할때
조금씩 항아리에 모아서 그렇게 모으면 약 한 되박이나 두 되박은 되었지~~
성두에 올때마다 각자 가지고 왔지~
그렇게 모은쌀을 큰 항아리에 담아서 삼청전에 올리고 성두가 끝나면
원평장에 내다 팔아서 법종교 유지하는데 썼어~
네~~
어르신들 고생 많으신거 알아요!
그러다가 쌀이 잘 안팔리자 돈으로 내자는 제안이 있어서 평균 한 되박씩 내니까
한 되박에 그때돈으로 300원이었을꺼야~~
그렇게 성두때 냈어~~
신도로서 법종교를 이끌었던 화은당선사님께서 선화 하시고 구암 김병철 회장님께서
증산법종교 1대 회장직을 맡으셨다.
화은당선사님게서 선화하시자 전국 지부와 신도들은 어수선 했다.
구암정사님도 선화 하시고 이환우 2대 회장님께서 오르셨고
이어서 대구지부 김대수 법종사님께서 3대회장에 오르셨다.
그 당시 흔들리는 법종교였고 신도 수도 많이 감소 하였다.
이 때 밖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대 ㅅ , 증ㅅㄷ, ㅌㄱㄷ등에서 몰래 사람들을 입도 시키기 시작했다.
이유는 법종교를 장악하기 위해서 일것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30~60명씩 자꾸 들어온 것이다.
이를 김대수 법종사가 알아 차리고 쇄국정책 비슷한걸 편다.
치성도 줄이고 평도생들은 치성에 참가 하지도 못하게 하신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이 되었고.....
그 동안 법종교의 회장은 종신제였다.
기억나지 않지만 1975~1976년도로 기억되는데 젊은 ㅇㅇ분이 법종교에 왔다.
그리고 김대수 전 법종사님은 그 분을 종무원장 자리를 맡게 했다.
김대수 법종사를 떠 받들며 개혁을 부르짓었고 법종교에서 하던 많은 절차와 행사
단어 호칭들을 바꾸었다.
대표적으로 회장을 법종사로
회장 임기를 4년에서 5년으로
반천무지사배를 반천무지법사배로
청수를 법수로
성두(3,17일)를 24절후로
등등...
종헌 종법도 바꾸었다.
결국 그 분은 개인적인 불미스러운 일로 약 4년정도 법종교의 종무원장으로 있다가 출교조치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 분이 하신 좋은일도 많았다.
참고로 김대수전법종사님은 법종사를 27년간 하시다가 선화 하셨다.
그 후로 법종사는 임기가 끝나면 바뀌어지고 있다.
여기서 24절후에 보는 성두는 화은당선사님때부터 하던것이 아니었음을 밝힘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부산? 진주? 밀양등은 매월 1주 3주 낮12시에 성두를 보고
다른 지부는 김대수전법종사님때정했던 24절후에 성두를 보고 있다.
법종교는, 선사님과 상제님의 영적소통에 기초합니다.
선사님께서 하신 거의 모든것이 상제님의 뜻에 의한 것이란겁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야 하는것이 있다면 , 바뀔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때는 확실한 교리적근거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그동안 많은것이 변해 있읍니다.
언젠가는, 멀지않은 날에, 이 모든것을 원점에서 되돌아 보는 날이 분명
있을것입니다.
선사님께서 하신 거의 모든것이 상제님의 뜻에 의한 것이란겁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야 하는것이 있다면 , 바뀔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때는 확실한 교리적근거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그동안 많은것이 변해 있읍니다.
언젠가는, 멀지않은 날에, 이 모든것을 원점에서 되돌아 보는 날이 분명
있을것입니다.
주제 넘은 말 같기도 한데,,,
이런 한 것들을 전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어떠한지요
성두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언제 바뀌었고...
일요일날에 하는 것은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하였다 등등
법종교의 이러한 내용들이 기록으로 남아 후대에 전하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이런 한 것들을 전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어떠한지요
성두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언제 바뀌었고...
일요일날에 하는 것은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하였다 등등
법종교의 이러한 내용들이 기록으로 남아 후대에 전하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어느 분이 전화 왔네요.
참고하라고 해서 글 올립니다.
내용은 중앙지부에서는 선사님 계실때는 절후 치성만 올렸고
화은당선사님 선화 후 나중에 중앙 지부가 생겼는데(지방에 지부가 먼저생김)
1대 중앙지부장님이 정석아제(김정길) 아버님이셨다는군요.
그 때부터 음력 3일 17일날 성두를 보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절후에 성두보는것은 김대수 법종사님때 했구요.
화은당선사님께서 살아계실때 지방에서 성두를 보았을텐데
언제 성두를 보았는지 확인하고 나중에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참고하라고 해서 글 올립니다.
내용은 중앙지부에서는 선사님 계실때는 절후 치성만 올렸고
화은당선사님 선화 후 나중에 중앙 지부가 생겼는데(지방에 지부가 먼저생김)
1대 중앙지부장님이 정석아제(김정길) 아버님이셨다는군요.
그 때부터 음력 3일 17일날 성두를 보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절후에 성두보는것은 김대수 법종사님때 했구요.
화은당선사님께서 살아계실때 지방에서 성두를 보았을텐데
언제 성두를 보았는지 확인하고 나중에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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