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난법이게 할까요? 교주의 부도덕성? 종통관의 오류?
물론 이런 요소들도 난법의 한 요소임은 맞겠습니다. 하지만 난법을 난법이게 하는 핵심을 저는 한마디로 말해서 '선민의식'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속해 있는 판이 천지성공을 이루는 끝판, 즉 진법이라고 보는 의식 그것이 바로 난법의 핵심속성이라고 보는 거지요. 교주의 부도덕성이나 종통관 오류는 사실 이 속성이 낳은 부산물이고요.
모 교단이 난법 판정을 받은 것이 교주의 부도덕성 혹은 종통관의 오류 때문일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분은 앞으로도 여전히 난법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속해 있는 판이 진법이라는 의식이 곁들여지면 이건 백푸로지요.
물론 우리 법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법종교를 진법이라고 인지하고 입도를 하신 분들은 제가 볼때 옆길로 샐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합니다. 차라리 법종교를 외갓집처럼 느끼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그런대로 잘 자리잡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진법이니 난법이니 하는 것은 정형적 개념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향성이고 방향성입니다.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則近道矣)란 말이 있습니다. 먼저 할일과 나중 할일을 알면 도에 가깝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즉도의(則道矣)가 아니라 즉근도의(則近道矣)라고 한데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이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도에 가깝다'고 한 것은 도라는 것이 완성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떤 지향점을 두고 끝없이 가까와지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난법, 진법 역시 그런 개념으로 봅니다. 그래서 어디는 난법 어디는 진법, 이런 분별은 매우 성급하고 경솔한, 나아가서는 교만하기까지 한 의식인 겁니다.
그 어떤 판에 있더라도 도생의 의식이 늘 깨어 있다면 그는 이미 진법으로 가는 여정, 다시 말해서 즉근도의의 여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령신들이 알아서 올바른 길로 잘 인도하실 겁니다. 그가 지금 어느 소속이냐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거지요.
다만 그가 어떤 마음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디에 있든 선민의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여전히 난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어떤 모임에서 법종교가 사람욕심 내면서 자신들 영역에 몰래 잠입하고 있다고 보길래 쓴 글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분들이 법종교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건 법종교 입장에서나 그분들 입장에서나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종교는 그분들이 바라는 바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할 테고 그분들 역시 법종교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선민의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분들 말이지요.
물론 이런 요소들도 난법의 한 요소임은 맞겠습니다. 하지만 난법을 난법이게 하는 핵심을 저는 한마디로 말해서 '선민의식'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속해 있는 판이 천지성공을 이루는 끝판, 즉 진법이라고 보는 의식 그것이 바로 난법의 핵심속성이라고 보는 거지요. 교주의 부도덕성이나 종통관 오류는 사실 이 속성이 낳은 부산물이고요.
모 교단이 난법 판정을 받은 것이 교주의 부도덕성 혹은 종통관의 오류 때문일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분은 앞으로도 여전히 난법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속해 있는 판이 진법이라는 의식이 곁들여지면 이건 백푸로지요.
물론 우리 법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법종교를 진법이라고 인지하고 입도를 하신 분들은 제가 볼때 옆길로 샐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합니다. 차라리 법종교를 외갓집처럼 느끼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그런대로 잘 자리잡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진법이니 난법이니 하는 것은 정형적 개념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향성이고 방향성입니다.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則近道矣)란 말이 있습니다. 먼저 할일과 나중 할일을 알면 도에 가깝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즉도의(則道矣)가 아니라 즉근도의(則近道矣)라고 한데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이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도에 가깝다'고 한 것은 도라는 것이 완성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떤 지향점을 두고 끝없이 가까와지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난법, 진법 역시 그런 개념으로 봅니다. 그래서 어디는 난법 어디는 진법, 이런 분별은 매우 성급하고 경솔한, 나아가서는 교만하기까지 한 의식인 겁니다.
그 어떤 판에 있더라도 도생의 의식이 늘 깨어 있다면 그는 이미 진법으로 가는 여정, 다시 말해서 즉근도의의 여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령신들이 알아서 올바른 길로 잘 인도하실 겁니다. 그가 지금 어느 소속이냐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거지요.
다만 그가 어떤 마음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디에 있든 선민의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여전히 난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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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임에서 법종교가 사람욕심 내면서 자신들 영역에 몰래 잠입하고 있다고 보길래 쓴 글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분들이 법종교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건 법종교 입장에서나 그분들 입장에서나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종교는 그분들이 바라는 바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할 테고 그분들 역시 법종교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선민의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분들 말이지요.
얼마전 라면 끓이다가
파리 한마리가 풍덩하고 입수~~
젖가락으로 잘 잡아 버리긴 했어도
다 먹고나니 라면을 먹었는지
파리국을 먹었는지 찝찝~~^^
(다리나 날개 한두개는 있었겠죠) ㅋㅋ
파리 한마리가 풍덩하고 입수~~
젖가락으로 잘 잡아 버리긴 했어도
다 먹고나니 라면을 먹었는지
파리국을 먹었는지 찝찝~~^^
(다리나 날개 한두개는 있었겠죠) ㅋㅋ
진법.. 난법.. 정형성이 아니라. 하나의 경향성이며,
방향성이다. 즉도의가 아니라 즉근도의다.
공감입니다.
선민의식은 독선과 아집을낮고, 끝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되돌아 보아야하는 신앙의 길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조미료같은게 법종교에는 없으니, 입에맞지 않은
사람들은 들어 오지도 않을것이고요. 들어와도 못버티고 나가니... ㅎ ㅎ
방향성이다. 즉도의가 아니라 즉근도의다.
공감입니다.
선민의식은 독선과 아집을낮고, 끝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되돌아 보아야하는 신앙의 길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조미료같은게 법종교에는 없으니, 입에맞지 않은
사람들은 들어 오지도 않을것이고요. 들어와도 못버티고 나가니...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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