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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인 신정기-2

고부인 신정기-2

경전 및 도서  화송 화송님의 글모음 쪽지 2015-06-03 22:04 8,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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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스무닷새날 온 세계인류(世界人類)의 죄업(罪業)을 풀고 새로운 행복(幸福)을 빌기 위(爲)하여 천지(天地)에 크게 기도(祈禱)하실 때, 동서남북(東西南北) 마당에 각기 단(壇)을 쌓고 푸른 기(旗)와 흰 기(旗)와 붉은 기(旗)와 검은 기(旗)를 각기 제 방위(方位)대로 세우고, 한가운데에는 삼층단(三層壇)을 쌓고 푸른 용(龍)과 누런 용(龍)을 그린 큰 누런 기(旗)를 세운 뒤에, 동방(東方) 청기(靑旗)는 전준엽(田畯燁)을 비롯하여 양문경(梁文敬), 김재윤(金在允), 김봉우(金奉佑), 백용기(白龍起), 천종서(千鍾瑞), 박종화(朴鍾華), 서화임(徐化任), 유일태(劉一太), 남상돈(南相敦), 김형대(金亨大), 이용기(李用己), 이용운(李龍雲), 박준달(朴準達), 강봉삼(姜鳳三) 등 열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시고, 남방(南方) 적기(赤旗)는 이근목(李根睦)을 비롯하여 강성중(姜成中), 임성범(任成範), 김영두(金永斗), 유경천(柳敬天), 김원명(金元明), 손경환(孫敬煥), 김공오(金公五), 김동식(金東植), 김동근(金東根), 이정훈(李正勳), 유내옥(柳乃玉), 유병을(柳丙乙), 이상식(李尙植), 김원백(金元伯) 등 열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시고, 서방(西方) 백기(白旗)는 강원섭(姜元燮)을 비롯하여 서인권(徐仁權), 이중진(李重鎭), 이진목(李眞睦), 김원숙(金元淑), 백창섭(白昌燮), 이근우(李根佑), 이석봉(李石峯), 채유중(蔡有中), 이재현(李在賢), 한재천(韓在千), 한응석(韓應錫), 김내원(金乃元), 심정순(沈貞淳), 전상모(田相模) 등 열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시고, 북방(北方) 흑기(黑旗)는 고찬홍(高贊弘)을 비롯하여 김태호(金泰浩), 이공열(李公烈), 김상윤(金相允), 김종일(金鍾一), 박종민(朴鍾旻), 강재숙(姜在淑), 두운철(杜雲喆), 두재천(杜在千), 문영희(文英熙), 문희원(文熙元), 고권필(高權必), 문종택(文鍾澤), 박종운(朴鍾運), 이명전(李明全) 등 열다섯 사람으로 지키게 하시고, 고영(高英)을 비롯하여 강응칠(姜應七), 강사성(姜士成), 강운서(姜雲瑞), 박종오(朴鍾五), 김수열(金壽烈), 전영춘(田永春), 전태풍(田泰豊), 김수택(金壽澤), 김원방(金元邦), 김영록(金永祿), 김수암(金壽岩), 김수봉(金壽鳳), 김준길(金準吉), 김억록(金億祿), 김영한(金永翰), 이시우(李時雨), 전창준(田昌準), 김판목(金判睦), 전장필(田章必), 전원석(田元錫), 전기찬(田基贊), 전선필(田先必), 전승철(田承喆), 전여옥(田汝玉), 전두영(田斗榮), 전덕빈(田德彬), 전형명(田亨明), 김희숙(金熙淑), 두치운(杜致雲), 강기업(姜基業), 두판열(杜判烈), 박치서(朴致西), 송병룡(宋丙龍), 이보일(李普一), 강기상(姜基祥), 전갑석(田甲錫), 전태숙(田泰淑), 강봉택(姜鳳澤), 강삼만(姜三萬), 이관숙(李官叔), 유운직(柳雲直), 이명좌(李明左), 윤치오(尹致五), 박노일(朴魯一), 강상숙(姜相淑), 최동환(崔東煥), 이명언(李明彦), 김윤명(金允明), 김일수(金一洙), 전평수(田平洙) 등 쉰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중앙(中央) 황기(黃旗)를 지키게 하시고, 단(壇) 위에 한 큰 등(燈)과 작은 등(燈) 열네 개를 달고, 네 방위(方位)에는 각기 작은 등(燈) 열다섯 개씩을 달고, 중앙(中央)과 네 방위(方位)에 각기 제물(祭物)을 진설(陣設)한 뒤에, 천후(天后) 여러사람을 지휘(指揮)하여 중앙(中央)과 사방(四方)에 돌려 절하게 하시고, 인(因)하여 시천주(侍天呪)를 크게 읽히시고, 일심(一心)으로 만민(萬民)의 죄업(罪業)을 풀어주실 것과 온 세계(世界)에 새로운 행복(幸福)을 내려주실 것을 천사(天師)께 기도(祈禱)하니, 이때에 바람이 한점도 없어 네 방위기(方位旗)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으되 오직 중앙(中央) 황기(黃旗)는 사방(四方)으로 나부끼며, 그 기(旗)에서 누런 물이 비오는 것과 같이 사방(四方)으로 뿌려져서 여러사람의 옷이 모두 누렇게 젖었더라.

29. 스무이렛날 천후(天后) 고찬홍(高贊弘), 고영(高英), 박종오(朴鍾五), 강사성(姜士成) 등 열다섯 사람을 데리고 금산사(金山寺)에 가시어 미륵전(彌勒殿)에 치성(致誠) 하시고, 인(因)하여 대적광전(大寂光殿)에 재(齋)를 올릴 때 천후(天后) 담뱃대를 들어 천정(天井)을 가리켜 가라사대 '이 집은 중수(重修)하여야 하리라' 하시고, 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가리켜 가라사대 '이 부처(佛陀)는 혼(魂)이 나갔으니 밥을 주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앞에 차려놓은 제물(祭物)을 걷은 뒤에 행례(行禮) 하시고, 돌아오실 때 종도(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뒤로 내가 금산(金山)에 두 번 더 와야 하리라' 하시더니, 이 뒤 사흘만에 대적광전(大寂光殿) 대들보가 부러져서 무너지고, 인(因)하여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부서지니라. 이듬해에 고적보존회(古蹟保存會)에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수(重修) 하니라.

30. 유월(六月) 초열흘날 천후(天后) 문밖에 나가사 종도(從徒)들을 불러내어, 동북(東北) 쪽을 가리키며 보라 하시거늘, 모두 보니 두어 마장을 격(隔)한 앞에 계룡산(鷄龍山)과 미륵산(彌勒山)과 고달산(高達山)이 서있는데, 산(山) 모양(模樣)과 골짜기 모양(模樣)과 바위와 푸른 나무가 낱낱이 헤일수 있는지라. 모두 이상(異常)히 여겨 서로 바라보며 구경(求景)하더니, 두어 시간(時間)을 지난 뒤에 세 산(山)이 점점(漸漸) 멀어지다가 필경(畢竟) 보이지 아니하니라.

31. 열이렛날 천후(天后) 고영(高英)에게물어 가라사대 '너희 집 근처(近處)에 오성산(五聖山)이 있느냐?' 대(對)하여 가로대 '있나이다.' 가라사대 '그 산(山) 속에 수백(數百) 간(間) 집을 지을만한 터가 있느냐?' 대(對)하여 가로대 '수천(數千) 간(間)이라도 지을만 하나이다.' 가라사대 '거미가 집을 지을 때에 이십사방(二十四方)으로 줄을 늘여서, 집을 다 지은 뒤에는 거미는 남이 알지 못하게 한편 구석에 숨어있으니, 너는 그곳을 떠나지 말라' 하시고, 그 이튿날 종도(從徒)들을 데리고 오성산(五聖山)에가실 새, 종도(從徒)들이 하늘을 보니 흰 구름가닥이 본소(本所) 상공(上空)으로부터 오성산(五聖山)을 향(向)하여 길 모양(模樣)으로 뻗쳐있고, 그 위에 구름 무더기가 사인교(四人轎) 모양(模樣)을 이루어 천후(天后)의 길을 따르며, 돌아오실 대에도 또한 교자(轎子) 모양(模樣)을 이룬 구름이 공중(空中)에 떠서 따르니라.

32. 그믐날 박종오(朴鍾五), 고찬홍(高贊弘), 이근목(李根睦), 전준엽(田畯燁), 강응칠(姜應七), 강사성(姜士成), 강운서(姜雲瑞), 강원섭(姜元燮), 이석봉(李石峯) 등을 벌려앉히신 뒤에, 고영(高英)을 앞에 앉히고 천후(天后) 남자(男子) 의관(衣冠)으로 단(壇)에 올라 앉으사, 찬홍(贊弘)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강증산(姜甑山)이요, 고영(高英)은 천후(天后)니라' 하시니, 찬홍(贊弘)이 대(對)하여 가로대 '저는 천사(天師)께서 육신(肉身)으로 출세(出世)하시기를 원(願)할 뿐이요, 성령(聖靈)으로 출세(出世)하기를 바라지 아니하는 바로소이다.' 천후(天后) 여러 번 동의(同意) 하기를 명(命)하시되 찬홍(贊弘)이 불복(不服)하거늘, 천후(天后) 크게 노(怒)하사 담뱃대와 지팡이로 찬홍(贊弘)을 무수(無數)히 때려 온 몸에 매 흔적(痕跡)이 낭자하여 몸을 수습(收拾)할 수 없이 되었으되, 찬홍(贊弘)이 고집(固執)하여 종시(終是) 불복(不服) 하는지라. 천후(天后) 이에 노(怒)를 그치시고 찬홍(贊弘)과 여러 종도(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들의 믿음이 이러하여야 천사(天師)께서 출세(出世) 하시리라' 하시고, 찬홍(贊弘)을 처소(處所)로 본어 조리(調理)하게 하신 뒤에 박종오(朴鍾五)에게 밖에 나가 하늘을 보라 하시니, 종오(鍾五) 나가보고 여쭈어 가로대 '구름이 꿇어앉아 사죄하는 사람 모양을 이루어 있나이다.' 천후(天后) 가라사대 '그것이 곧 찬홍(贊弘)이니, 미구(未久)에 변(變)하리라.' 조금 있다가 종오(鍾五) 다시 여쭈어 가로대 '소모양으로 변하엿나이다.' 가라사대 '다시 변하리니 자세히 보라' 하시거늘 종오(鍾五) 다시 보니 개 모양(模樣)으로 변하더라.

33. 하루는 강효백(姜孝伯)을 명(命)하사 명주(明紬) 실꾸리와 낚싯대를 구(求)하여 오라 하사, 명주(明紬) 실로 온 방(房) 안과 천정(天井)에 얽어 걸게 하시고, 고영(高英)으로 하여금 바둑판을 방(房) 한가운데에 놓고 그 위에 올라 앉아서 낚싯대를 들라 하시고, 또 전내언(田乃彦)과 김원명(金元明)으로 하여금 뱃노래를 불러라 하시고, 가라사대 '이는 남조선(南朝鮮) 배질이니 성주(聖主)와 현인군자(賢人君子)를 모셔오는 일이로다' 하시니라.

34. 칠월(七月) 스무닷새날 고찬홍(高贊弘), 박종오(朴鍾五), 강원섭(姜元燮), 강사성(姜士成), 전준엽(田畯燁), 이근목(李根睦), 서인권(徐仁權), 고권필(高權必), 김재윤(金在允) 등을 데리고 자동차(自動車)로 대흥리(大興里)에 가사, 신대원(申大元)의 집에 유(留)하시며 날마다 종도(從徒)들로 하여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외우게 하시더니, 스무여드렛날 저녁에 강원섭(姜元燮)과 더불어 누런 수건(手巾) 한끝씩 잡으시고 하늘을 향(向)하여 영세불망(永世不忘)을 외우신 뒤에, 여러 종도(從徒)들로 하여금 영세불망(永世不忘)을 외우면서 뒤를 따르게 하시고, 걸어서 천사(天師)의 묘각(墓閣)에 이르사 큰소리로 천사(天師)를 세 번 부르시며 가라사대 '왜 이렇듯 깊이 주무시나이까?' 하시고, 인(因)하여 묘각(墓閣) 문(門) 앞에서 통곡(痛哭)하시니 문득 비가 내리는지라. 이에 대원(大元)의 집으로 돌아와 유(留)하시고 그 이튿날 자동차(自動車)로 돌아오실 새, 차(車) 안에서 사성(士成)을 명(命)하여 천사(天師)의 명정(銘旌)을 읽게 하신 뒤에, 천후(天后) 만수(萬修)를 크게 부르시니라. 삼월(三月)부터 칠월(七月)까지 다섯달 동안 행(行)하신 신정(神政)은 이로써 마치시니라.

35. 정묘년(丁卯年) 정월(正月)에 보천교(普天敎)에 혁신운동(革新運動)이 일어나서, 운동자(運動者) 임경호(林敬鎬), 이달호(李達濠), 임치삼(林致三) 등 수십명(數十名)이 서울로부터 대흥리(大興里)에 이르니, 차경석(車京石)이 부하(部下) 교도(敎徒) 수백명(數百名)으로 하여금 경호(敬鎬) 일행(一行)을 두들겨서 중상(重傷)을 입힌지라. 천후(天后) 이 소식(消息)을 들으시고 고영(高英), 고찬홍(高贊弘), 전준엽(田畯燁), 강사성(姜士成), 문영희(文英熙), 김수응(金壽應), 이근목(李根睦) 등을 데리고 정읍(井邑)에 가서 경호(敬鎬) 일행(一行)을 위문(慰問) 하시고, 치료비(治療費)를 나누어 주시니라. 이때에 천후(天后) 손으로 경호(敬鎬)의 상처(傷處)를 어루만지시더니, 이 뒤에 경호(敬鎬)가 신속(迅速)히 회복(回復) 되니라.

36. 삼월(三月) 스무여드렛날 익산군(益山郡) 장연리(長淵里) 김봉우(金奉佑)가 와 뵈오니, 천후(天后) 봉우(奉佑)의 생계(生計)를 물으신대 봉우(奉佑) 심(甚)히 곤란(困難)하다고 대답(對答) 하거늘, 천후(天后) 봉우(奉佑)의 손을 잡으시고 물어 가라사대 '내 손이 다숩느냐?' 봉우(奉佑) 다숩다고 대답(對答)하거늘 가라사대 '너는 이길로 돌아가서 치병(治病)이나 하라' 하신지라. 봉우(奉佑) 집에 돌아오니 마침 이웃마을 박서옥(朴瑞玉)의 아내가 급병(急病)이 들어서 사경(死境)에이르렀거늘, 봉우(奉佑)가 달려가서 일심(一心)으로 심고(心告)하고 주문(呪文)을 외우니 그 병(病)이 곧 나으니라.

37. 사월(四月) 초여드렛날 치성(致誠)에 참배(參拜)한 교도(敎徒) 중에 전태풍(田泰豊)이란 자는 나면서부터 왼 눈이붉고 눈꺼풀이 부어서 심(甚)히 보기 싫은지라. 천후(天后) 손으로 그 눈을 치시며 보기 싫다고 꾸짖으시니 태풍(泰豊)이 심(甚)히 불평히 여기더니, 수일(數日)을 지남에 그 눈이 저절로 나으니라.

38. 고영(高英)의 둘째아들 재우(在宇)가 습종(濕腫)을 앓아 두 다리가 만창(滿瘡)이 된지라. 고영(高英)이 데리고 와서 천후(天后)께 뵈이니, 천후(天后) 앞에 앉히시고 손으로 어루만지신 뒤에 청수(淸水)로 씻기시니 이틀만에 완쾌(完快) 되니라.

39. 강원섭(姜元燮)이 늙도록 자식두지 못함을 한하거늘, 천후(天后) 가라사대 '네 아내를 나에게로 보내라' 하시니 원섭(元燮)이 곧 돌아가서 아내를 보낸지라. 천후(天后) 사흘동안 함께 주무신 뒤에 돌려 보내시더니, 그 뒤 석달만에 잉태(孕胎)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40. 유월(六月) 초닷새날 완주군(完州郡) 조촌면(助村面) 곡천리(曲川里) 소은섭(蘇殷燮)이 입교(入敎)한 뒤에 처음으로 천후(天后)께 와서 뵈이니, 천후(天后) 물어 가라사대 '네가 평생(平生)을 수도(修道) 하겠느냐?' 은섭(殷燮)이 대(對)하여 가로대 '평생(平生)을 수도(修道)하기로 결심(決心) 하였사오나, 여러해 된 적체(積滯)로 고통(苦痛)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이미 아노니, 잘 닦아보라' 하시더니, 은섭(殷燮)이 집에 돌아가서 수일(數日)을 지남에 그 적체(積滯)가 자연(自然)히 완쾌(完快) 되니라.

41. 팔월(八月)에 천후(天后) 고찬홍(高贊弘)을 원평에 보내어 미륵불교(彌勒佛敎)에서 발기(發起)한 팔파연합회(八派聯合會)에 참가(參加)하게 하시니라.

42. 구월(九月) 초닷새날 전영춘(田永春)이 와 뵈일 새, 영춘(永春)이 나면서부터 이마에 밤과 같은 붉은 혹이 있더니, 천후(天后) 물어 가라사대 '네 이마에 있는 거시 무엇이냐?' 영춘(永春)이 대(對)하여 가로대 '혹이로소이다.' 가라사대 '그것이 혹이 아니요, 솔버섯이니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그 혹이 말라붙어 없어지니라.

43. 스무하룻날 천후(天后)께서 고찬홍(高贊弘), 전준엽(田畯燁), 이근목(李根睦) 등 십여명(十餘名)을 데리고 금산사(金山寺)에 가서 미륵전(彌勒殿)에 치성(致誠)을 올린 뒤에, 천사(天師)의 성령(聖靈)이 이제 미륵전(彌勒殿)을 떠나셨음을 선언(宣言)하시고, 종도(從徒)들에게 미륵전(彌勒殿) 청(廳)마루 바닥에 요강을 쏟으라고 명(命)하시니라.

44. 시월(十月) 스무날 여교인(女敎人) 김덕화(金德化)가 와 뵈일 새, 덕화(德化)가 나면서부터 오른 귀 밑에 주먹만한 붉은 혹이 있는지라. 천후(天后) 손으로 어루만지시니 이로부터 그 혹이 곧 나으니라.

45. 무진년(戊辰年) 정월(正月) 초사흗날 치성(致誠) 끝에 천후(天后)께서 혼도(昏倒) 하셨다가, 서너 시간(時間) 후(後)에 일어나서 아무 말씀도 없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키며 휘두르시거늘, 고영(高英)과 박종오(朴鍾五) 등은 뜻을 알지 못하여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문득 여쭈어 가로대 '천사(天師)의 영정(影幀)을 그리라 하시나이까?' 천후(天后) 머리를 끄덕이시며 성화(星火)같이 재촉(催促)하시는지라. 이에 김제군(金堤郡) 백구면(白鷗面) 가전리(佳田里) 김옥현(金玉鉉)을 불러 영정(影幀)을 그리니, 옥현(玉鉉)이 필법(筆法)이 졸열(拙劣)하여 잘 그리지 못한지라. 천후(天后) 가라사대 '아직 그대로 봉안(奉安)하고 이 뒤에 다시 그리는 것이 무방(無妨)하리라.' 하시므로 그대로 봉안(奉安)하였다가, 삼월(三月) 초하룻날 정읍군(井邑郡) 용북면(龍北面) 장군리(將軍里) 화사(華奢) 채용신(蔡龍臣)을 청(請)하여 다시 그릴새, 스무나흗날까지 감정하시다가 세 번 만에야 천후(天后) 방불(彷佛)하다고 인가(認可)하시는지라. 스무 엿샛날 천후(天后)의 생신치성(生辰致誠)에 봉안식(奉安式)을 거행(擧行)하시니라.

46. 삼월(三月) 스무날 유일태(劉一太)가 와 뵈옵고 여쭈어 가로대 '김제군(金堤郡) 금산면(金山面) 용반리(龍返里) 홍종백(洪鍾伯)이 일심(一心)으로 봉도(奉道)하나 대풍창(大風瘡)으로 십여년(十餘年)을 앓으며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하오니, 천후(天后)께서 불쌍히 보시어 고쳐주시옵소서.' 천후(天后) 가라사대 '천지(天地)에 대치성(大致誠)을 올리고 성심(誠心)으로 기도(祈禱)하라.' 하시거늘 일태(一太)가 돌아가서 그대로 행(行)하니 곧 완쾌(完快)되니라.

47. 이용기(李用己)가 천후(天后)를 모시고 있더니, 사월(四月) 초이튿날 천후(天后) 용기에게 '집에 다녀오라.' 하시므로, 용기(用己)가 집에 돌아오니 숙부(叔父)가 우연(偶然)히 중병(重病)에 걸려서 사경(死境)에 임(臨)하였거늘, 용기(用己)가 사성음(四聖飮) 두 첩(貼)을 달여서 입에 흘려 넣으며 천후(天后)께 심고(心告)하고, 오주(五呪)를 일곱 번 읽으니 곧 회생(回生)하여 완쾌되니라.

48. 초여드렛날 치성(致誠) 끝에 고영(高英), 박종오(朴鍾五), 강원섭(姜元燮) 등 수십명(數十名)을 벌려 앉히시고 가라사대 '선경세계(仙境世界)를 구경(求景)하라' 하시며 '동북(東北)쪽 하늘을 바라보라' 하시며 담배 연기(烟氣)를 품으시니, 별안간(瞥眼間)에 구름 무더기가 화분모양(花盆模樣)으로 떠올라서 오색(五色) 기화이초(奇花異草)가 만발(滿發)한 모양(模樣)을 이룬지라. 천후(天后) 가라사대 '후천(後天) 선경세계(仙境世界)가 저와같이 화려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49. 완주군(完州郡) 삼례면(參禮面) 해전리(海田里) 황공선(黃公善)의 처(妻)가 적병(積病)으로 여러해 동안 고통(苦痛)하더니, 초여드렛날 치성(致誠)에 와 뵈이니 천후(天后) 물어 가라사대 '네 배가 왜 그렇게 부르냐?' 대(對)하여 가로대 '적병(積病)으로 그러하나이다.' 가라사대 '약(藥) 먹을 돈이 넉넉히 있느냐?' 가로대 '가세(家勢)가 빈한(貧寒)하여 약(藥) 먹을 도리(道理)가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러면 시천주(侍天呪)나 많이 읽으라' 하시거늘, 공선(公善)의 처가 돌아가서 일심으로 시천주(侍天呪)를 많이 읽으니, 얼마 아니가서 그 병(病)이 완치(完治)되니라.

50. 오월(五月)에 간부(幹部)들을 불러 모은 뒤에, 천후(天后) 일곱 항목(項目)의 계잠(戒箴)을 반포하시니 이러하니라.

(1) 남에게 척 짓지 말라.

(2) 거짓말을 하지 말라.

(3) 자존심(自尊心)을 갖지 말라.

(4) 도적(盜賊)질 말라.

(5) 간음(姦淫)하지 말라.

(6) 무고(無故)히 살생(殺生)하지 말라.

(7)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고, 자기(自己)의 허물을 생각(生覺)하여 천지(天地)에 사죄(謝罪)하라.

51. 간부조직(幹部組織)을 변경(變更)할새 고영(高英)을 내무(內務)로, 고찬홍(高贊弘)을 외무(外務)로, 전준엽(田畯燁)을 동방(東方)으로, 이근목(李根睦)을 남방(南方)으로, 강원섭을 서방(西方)으로, 강운서(姜雲瑞)를 북방(北方)으로 임명(任命)하시니, 강응칠(姜應七)과 강사성(姜士成) 등이 크게 불평(不平)을 품고, 이로부터 본소(本所)에 발을 끊고 천후(天后)를 비방(誹謗)하기 시작(始作)하니라.

52. 용안읍(龍安邑) 김순화(金順華)의 처(妻)가 중풍증(中風症)으로 구년(九年)동안 드러누워 앓으며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하니, 고찬홍(高贊弘)이 천후께 와 뵈옵고 이 일을 아뢰며 고쳐주시기를 청(請)한대, 가라사대 '네가 가서 크게 치성(致誠)을 올리고 일심(一心)으로 기도(祈禱)하게 하라.' 찬홍(贊弘)이 가서 그대로 함에 그 병이 곧 나으니라.

53. 고권필(高權必)이 사십(四十)이 넘도록 자식(子息)을 두지 못한지라. 천후(天后) 권필(權必)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총각(總角)이니 이로부터 총각(總角)을 면(免)하라' 하시니, 이날부터 입태(立胎)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54. 유월(六月) 스무날 익산군(益山郡) 용안면(龍安面) 당와리(唐瓦里) 조상화(趙相化)가 와 뵈오니, 천후(天后) 물어 가라사대 '너의 형편(形便)이 어떠하냐?' 대(對)하여 가로대 '자식(子息)도 없고, 재산(財産)도 없고, 아내마저 병(病)들어 죽게 되었나이다.' 가라사대 '자식(子息)은 지금(只今)만 낳아야 되는 것이냐? 네 아내는 무슨 병이냐?' 가로대 '삼십년(三十年) 적체(積滯)로 이제 죽게 되었나이다.' 가라사대 '돌아가서 일심(一心)으로 아흐렛동안 기도(祈禱)하라.' 상화(相化)가 집에 돌아와서 아흐렛동안 기도(祈禱) 하였더니 그 아내의 병(病)이 완쾌(完快) 되니라.

55. 대순절(大巡節) 치성(致誠)에 은진(恩津) 김기성(金基成)의 처(妻) 이씨(李氏)가 어린 아해(兒孩)를 데리고 와서 여쭈어 가로대 '이 아해(兒孩)가 산증(疝症)으로 심(甚)히 고통(苦痛)하나이다.' 하거늘 천후(天后) 손으로 그 아해(兒孩)의 불알을 어루만지시니, 이로부터 그 아해(兒孩)가 곧 나으니라.

56. 구월(九月) 스무하룻날 천후(天后) 종도(從徒) 십여명(十餘名)을 데리고 대흥리(大興里)에 가시어, 보천교(普天敎) 새건물(新建物)의 주위(周圍)를 돌아다니시며 담뱃대로 건물을 겨누어 사격(射擊)하는 모양(模樣)을 행(行)하시고 돌아오시니라.

57. 대흥리(大興里)로 부터 돌아오시는 길에 부용역(芙蓉驛) 앞 여관(旅館)에서 점심(點心)을 잡수실 때, 그 여관(旅館) 접대녀(接待女)가 한편 팔이 불인(不仁)함을 보시고 불러들이사 그 까닭을 물으시니, 칠년전(七年前) 부터 우연(偶然)히 한편 팔이 불인(不仁)하여졌다 하거늘, 천후(天后) 앞에 앉히시고 그 팔을 어루만지시며 가라사대 '몸이나 성하여야 하리라' 하시니, 즉시(卽時) 그 팔이 나아서 밥상을 들고 나가게 된지라. 사흘 후에 그 여자가 술과 안주를 가지고 천후(天后)께 올리니라.

58. 하루는 정읍군(井邑郡) 정토면(淨土面) 수금리(水金里)에서 어느 여인이 여쭈어 가로대 '정토면장(淨土面長)의 아내가 문둥병(病)으로 십여년(十餘年) 동안 고통(苦痛)하오니 고쳐주시기를 바라나이다.' 하거늘, 천후(天后) 전대윤(田大潤)에게 일러 가라사대 '가서 크게 치성(致誠)을 올리게 하고, 이렛동안 수련(修鍊)을 시키고 돌아오라.' 대윤(大潤)이 명(命)을 받들고 가서 그대로 행(行)하고 이레 뒤에 돌아와서 병세(病勢)가 팔구분(八九分)이나 경감(輕減)하여졌음을 아뢴대, 천후(天后) 크게 칭찬(稱讚)하시며 가라사대 '이레 뒤에 다시가서 완쾌(完快) 되도록 치료(治療) 하여주라.' 대윤(大潤)이 이레 뒤에 다시가서 수일(數日)동안 수련(修鍊)을 시키니 그 병(病)이 완쾌(完快)된지라. 면장(面長)이 대윤(大潤)을 따라와서 천후(天后)를 뵈옵고 크게 치성(致誠)을 올리니라.

59. 시월(十月) 초이튿날 익산군(益山郡) 낭산면(朗山面) 죽산리(竹山里) 남삼동(南三同)이 와 뵈이니, 천후(天后) 가라사대 '곧 네 집으로 돌아가되 길에서 지렁이를 보거든 잡아 가지고 가라.' 하시거늘, 삼동(三冬)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지렁이 세 마리를 잡아 가지고 집에 이른즉, 아들이 급복통(急腹痛)으로 심(甚)히 고통(苦痛)하거늘 그 지렁이를 달여 먹이니 곧 낳으니라.

60. 기사년(己巳年) 정월(正月)에 모친(母親) 박부인(朴夫人)이 이질(痢疾)을 앓다가, 마침내 부종(浮腫)을 이루어 심(甚)히 위독(危篤)한지라. 천후(天后) 박종오(朴鍾五)를 명(命)하사 사물탕(四物湯) 한 첩(貼)을 지어오라 하사 모친(母親)의 머리 위에 두시니 병(病)이 곧 낳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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