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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인 신정기-3

고부인 신정기-3

경전 및 도서  화송 화송님의 글모음 쪽지 2015-06-03 22:05 7,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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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삼월(三月) 스무엿샛날 익산군(益山郡) 왕궁면(王宮面) 오룡동(五龍洞) 김도봉(金道奉)의 모친이 와 뵈오니 천후(天后) 명(命)하사 옷을 벗기시고 가슴을 누르며 검은 점(點)이 있음을 보시고 가라사대 '잘 닦으라.' 하시거늘 집에 돌아가서 일심(一心)으로 수련(修鍊)을 행(行)하니 얼마 아니하여 여러해 된 가슴아리가 완치(完治) 되니라.
 

62. 박정옥(朴正玉)의 처(妻)가 와서 뵈오니 천후(天后) 남편(男便)의 성명(姓名)과 몇 형제(兄弟)임을 물으신 대 대(對)하여 가로대 '삼대독신(三代獨身) 이로소이다.' 천후(天后) 가라사대 '그럴 수 있느냐? 너는 자식(子息)을 많이 낳으라.' 하시더니 이 뒤에 정옥(正玉)이 연(連)하여 아들 사형제(四兄弟)와 딸 하나를 낳으니라.

63. 익산군(益山郡) 용안면(龍安面) 행정리(杏亭里) 김원명(金元明)이 두풍(頭風)으로 인(因)하여 한편 눈은 감기고 한편 눈은 씰룩거리더니 유월(六月) 초닷샛날 와 뵈오니 천후(天后) 물어 가라사대 '어찌하여 한 눈은 감았느냐?' 대(對)하여 가로대 '두풍(頭風)으로 인(因)하여 감겨졌나이다.' 천후(天后) 눈을 떠 보라고 명(命)하시니 원명(元明)이 손으로 눈을 벌려 겨우 뜨는지라. 천후(天后) 가라사대 '한눈으로 보는것과 두눈으로 보는것과 어떠하냐?' 하시니, 원명(元明)이 손을 뗌에 다시 감겨지거늘 천후(天后)께 그대로 아뢰니, 가라사대 '내가 이르는 말을 잊지말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원명(元明)의 눈이 완치(完治)되니라.

64. 기사년(己巳年) 삼월(三月) 열엿새날에 이상호(李祥昊)가 대순전경(大巡典經)을 편찬(編纂) 하거늘, 칠월(七月)에 고찬홍(高贊弘)이 대순전경(大巡典經)을 가져다 천후(天后)께 올리니, 천후(天后) 받아서 영정(影幀) 앞에 올려놓고 탄식(歎息)하여 가라사대 '이제 천사(天師)의 성적(聖蹟)은 편찬(編纂)되어 이로부터 참된 교리(敎理)가 드러날 기초(基礎)가 정(定)하여 졌으니 다행(多幸)한 일이로다. 그러나 나의 일을 기록(記錄)할 자(者)는 누가 있으리오.' 하시니라.

65. 서화임(徐化任)이 와 뵈옵고 여쭈어 가로대 '제 손자(孫子) 여섯 살 먹은 아해(兒孩)가 다리가 부러져서 심(甚)히 고통(苦痛)하나이다.' 천후(天后) 박종오(朴鍾五)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가보고 오라.' 종오(鍾五) 대(對)하여 가로대 '제가 의술(醫術)을 알지 못하오니 가 보아도 무익(無益)할까 하나이다.' 가라사대 '염려(念慮)말고 다녀오라.' 종오(鍾五) 이에 화임(化任)을 따라가서 그 아해(兒孩)를 보고 손으로 그 다리를 어루만지니 이로부터 그 아해(兒孩)가 곧 낳으니라.

66. 칠석(七夕)날 천후(天后) 이근목(李根睦), 강사성(姜士成), 전준엽(田畯燁), 강원섭(姜元燮), 김내원(金乃元), 고찬홍등(高贊弘等)을 데리고 임피(臨陂) 오성산(五聖山) 성덕리(聖德里) 고영(高英)의 집에 가서 마당 가운데 동서남북(東西南北) 중앙(中央) 다섯 군데 자리를 정(定)하여 촛(燭)불 다섯 개(個)를 각기(各己) 밝히시고 각위(各位)에 술상(床)울 차려 놓고 종도(從徒)들로 하여금 오성산(五聖山) 산신(山神)을 부르며 진액주(津液呪)를 읽게 하시고 천후(天后) 술을 부어 산신(山神)께 권(勸)하시며 후천(後天) 대도(大道) 창건역사(創建役事)에 참가협력(參加協力) 함을 치사(致謝)하시고 두어 시간(時間) 후(後)에 전송(餞送)하는 예(禮)를 행(行)하시니라. 이 때에 그 마을 사람 강만덕(姜萬德)이 와서 구경(求景)하였는데 만덕(萬德)이 수년전(數年前)에 큰 돌을 만지다가 왼 다리를 다쳐서 저리는 지라. 천후 만덕을 부르사 앞에 세우시고 가라사대 '내가 이곳에 와 있든 표적(標的)을 남겨두고 가리라.' 하시며 그 다리를 어루만지신 뒤에 가라사대 [자연(自然)히 낳으리라.] 하시고 돌아오셨더니 수일후(數日後)에 만덕(萬德)의 다리가 완치(完治)되니라.
 
 

67. 팔월(八月) 추분치성(秋分致誠) 끝에 천후(天后) 바둑판을 방(房) 한 가운데 놓으시고 중앙(中央) 장점(將點)을 놓으신 뒤에, 감, 매실(梅實), 삼씨, 밤, 대추를 마당 가운데 청수(淸水)동이 앞에 벌려 놓으시고, 큰 소리로 [지동천동(地動天動) 천리진동(千里震動)이라] 부르짖으시며, 종도(從徒) 십여인(十餘人)으로 하여금 [지동천동(地動天動) 만물합동(萬物合同) 소원성취(所願成就)]라 읽게 하시고, 달을 향(向)하여 담뱃대를 좌우(左右)로 두르시니 달머리가 담뱃대를 따라서 도는지라. 종도(從徒)들에게 춘분(春分) 추분(秋分) 하지(夏至) 동지(冬至)라 읽히시니, 문득 지동(地動)과 천동(天動)이 크게 일어나거늘, 종도(從徒)들로 하여금 [도통천지(道通天地) 해원상생(解寃相生)]이라 읽게 하시니라.

68. 경오년(庚午年) 정월(正月) 초사흗날 고사치성(告祀致誠) 끝에 천후(天后) 유일태(劉一太), 이근목(李根睦), 이진묵(李眞默), 문명수(文明洙), 채유중(蔡有中), 이중진(李重鎭) 등 십여인(十餘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참사람이 어데 있느냐? 참사람을 만나야 하리니,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四時節)에 일시(一時)라도 변(變)치말고 성경신(誠敬信) 삼자(三字)로 닦으면서, 진심(眞心)으로 고대(苦待)하면 참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하시니라.

69. 이달에 박종오(朴鍾五)가 열병(熱病)을 앓아서 위독(危篤)하거늘, 천후(天后) 그의 방문(房門) 열어보시고 종오(鍾五)에게 일러 가라사대 '그만 앓고 일어나라' 하시니, 종오(鍾五)의 병(病)이 곧 나으니라.

70. 조종(祖宗)골 강재용(姜在容)의 아내 나씨(羅氏)가 결혼(結婚)하면서 부터 금슬(琴瑟)이 좋지 못하여, 십년(十年) 공방(空房)에 생산(生産)을 폐(廢)하였더니, 하루는 천후(天后) 재용(在容)의 집에 이르사 마당에 누워있는 수캐 꼬리를 밟으시니, 개가 천후(天后)의 다리를 물어 피가 흐르는지라. 천후(天后) 돌아오사 다리를 물에 담구어 독혈(毒血)을 빼시며가라사대 '독기(毒氣)를 내가 대신(代身) 빼어서 재용(在容) 부부(夫婦)의 불화(不和)를 풀어주리라' 하시고, 박서욱(朴瑞旭)을 불러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미 아들을 두었고 또 늙었으니, 아들을 그만 낳고 삼신(三神)을 재용(在容)에게 옮겨 주라.' 서욱(瑞旭)이 대(對)하여 가로대 '그러하오리다.' 이에 재용(在容)을 명(命)하여 안방에 들어가게 하시고, 강원섭(姜元燮)으로 하여금 서욱(瑞旭)을 데리고 재용(在容)의 집에 가서 서욱(瑞旭)으로 하여금 재용(在容)을 불러 이르되 '내 삼신(三神)을 그대가 받아서 귀한 아들을 낳둁라' 하였더니, 과연(果然) 이후로부터 부부화락(夫婦和樂)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71. 충청남도(忠淸南道) 서천군(舒川郡) 양화면(良化面) 황골(黃洞) 박치서(朴致西)가 와뵈옵고 여쭈어 가로대 '수년(數年) 전(前)부터 견비통(肩譬痛)을 앓아서 심(甚)히 고통(苦痛) 하나이다' 하거늘, 천후(天后) 손으로 어루만지시고 담배 연기(烟氣)를 뿜으시며 '이제는 낳으리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완치(完治) 되니라.

72. 옥구군(沃溝郡) 미면(米面) 산북리(山北里) 김상윤(金相允)의 딸이 견갑독종(肩甲毒腫)으로 신고(辛苦) 하더니, 상윤(相允)의 처(妻)가 딸을 데리고 와 뵈옵거늘, 천후(天后) 손으로 어루만지심에 곧 나으니라.

73. 조종(祖宗)골 강칠성(姜七星)이 자식(子息)이 없음을 한탄(恨歎)하거늘, 천후(天后) 일러 가라사대 '나를 믿고 정성(精誠)껏 심고(心告)하라' 하시고, 사흘 밤을 칠성(七星)의 집에 내왕(來往) 하시더니, 이 뒤로 잉태(孕胎)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74. 옥구군(沃溝郡) 미면(米面) 임사리(任士里) 이고산(李高山)의 처(妻)가 복통증(腹痛症)으로 수십년(數十年) 동안 신고(辛苦)하더니, 여교인(女敎人) 고춘자(高春子)가 일러 가로대 '본소(本所)에 가서 지성(至誠)으로 기도(祈禱)하면 나으리라' 하거늘, 고산(高山)의 처(妻)가 가로대 '집이 가난하여 이르는대로 실행(實行)치 못하겠으나, 기도(祈禱) 비용(費用)으로 이원오십전(二圓五十錢)을 드리겠으니, 나를 대신(代身)하여 기도(祈禱)하여 주기를 바라노라' 하였더니, 수일(數日) 후에 고산(高山)의 처(妻)가 꿈에 본소(本所)를 가서 천후(天后)를 뵈옴에 천후(天后) 위로(慰勞)하시며 가라사대 '네 병(病)이 나으리라' 하시더니, 그 뒤로 곧 완치(完治) 되니라.

75. 하루는 식모(食母) 최성녀(崔姓女)가 안질(眼疾)을 앓아서 심히 고통(苦痛) 하거늘, 천후(天后) 가라사대 '그대로 두면 눈을 버리리라' 하시고, 식모(食母)로 하여금 동향(東向)하여 앉게 하시고 청수(淸水)를 머금으사 두 눈에 뿜으시니 곧 나으니라.

76. 옥구군(沃溝郡) 옥구면(沃溝面) 수산리(壽山里) 전기찬(田基贊)이 큰 나무를 운반(運搬)하다가 허리를 다쳐 수년(數年) 동안 앓아서 사경(死境)에 이르렀더니, 전선필(田先必)과 전준엽(田畯燁)이 와 뵈오니 천후(天后) 선필(先必)에게 기찬(基贊)의 소식(消息)을 물으시거늘, 선필(先必)이 그 사실(事實)을 아뢰인대, 천후(天后) 일찍 기별(寄別)하지 않았음을 꾸짖으시고 가라사대 '죽은 자식(子息)을 살리겠노라' 하시며, 선필(先必)로 하여금 흰 바둑 세 개를 손에 쥐고 또 세 개를 입에 머금고 영정(影幀) 앞에 엎드려 심고(心告)하게 하신 뒤에, 가라사대 '네가 이길로 곧 돌아가서 손으로 기찬(基贊)의 허리를 어루만지면서 해원주(解寃呪)를 읽은 뒤에, 나무 운반(運搬)하던 곳으로 가서 기도(祈禱)하라' 하시더니, 선필(先必)이 돌아가서 그대로 행(行)함에 기찬(基贊)의 병(病)이 곧 나으니라.

77.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 채사흥(蔡士興)의 손자(孫子)가 만경으로 십여일(十餘日)을 앓다가 마침내 사망(死亡)한지라. 여교인(女敎人) 고춘자(高春子)가 와뵈옵고 이 사실(事實)을 아뢴대, 천후(天后) 가라사대 '네가 돌아가서 그 아해(兒孩) 시체(屍體) 옆에 앉아서 개벽주(開闢呪) 세 번과, 칠성경(七星經) 일곱 번과, 갱생주(更生呪) 스물한 번을 읽으면 다시 살아나리라.' 춘자(春子)가 돌아가서 그대로 행(行)함에 그 아해(兒孩)가 곧 회생(回生) 하니라.

78. 동짓(冬至)달에 천후(天后) 고찬홍(高贊弘)을 용화동(龍華洞) 동화교(東華敎) 본부(本部)에 보내사, 명년(明年) 대순절(大巡節) 회갑(回甲) 치성(致誠)을 용화동(龍華洞)에서 조종(祖宗)골 교단(敎團)과 동화교(東華敎)가 합동봉행(合同奉行)할 일을 의논(議論)케 하니라.

79. 신미년(辛未年) 사월(四月) 초여드렛날 치성(致誠) 끝에 천후 노자(老子)를 부르시며 '복중팔십년(腹中八十年) 동안에 부모(父母)의 공덕(功德)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시고 종도(從徒)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거늘 모두 보니 무지개가 십자형(十字形)으로 서 있더라. 천후(天后) 또 여동빈(呂洞賓)을 부르시니 공중(空中)에서 구름 무더기가 사람의 형상(形相)을 이루어 서 있는지라. 천후(天后) 바라 보시고 가라사대 '세계중생(世界衆生)으로 하여금 모두 갱소년(更少年) 되게 하라.' 하시니라.

80. 이 때에 박상철(朴相哲)이 아들 형제(兄弟)를 데리고 와서 뵈오니 두 아해(兒孩)가 모두 안질(眼疾)을 앓는지라. 천후(天后) 보시고 엿을 사 먹이시고 청수(淸水)로 눈을 씻기신 뒤에 햇빛을 바라보게 하시니 두 아해(兒孩)의 병(病)이 곧 낳으니라.

81. 유월(六月)에 충청남도(忠淸南道) 연산(連山) 이장식(李長植)이 와 뵈옵고 여쭈어 가로대 '이웃집 부녀(婦女) 배춘화(裵春花)가 적병(積病)으로 십여년(十餘年)동안 앓다가 이제 사경(死境)에 이르렀사오니 고쳐 주사이다.' 천후(天后) 그 부녀(婦女)의 나이를 물으시니 이장식(李長植)이 서른아홉 살이라고 대답(對答)하는지라. 천후(天后) 그 부녀(婦女)를 데리고 오라 명(命)하시니, 이장식(李長植)이 돌아가서 수일후(數日後)에 그 부녀(婦女)를 데리고 온지라. 천후(天后) 그 배를 만져주시며, 술상을 가져오라 하사 술을 마시시다가, 한 잔(盞)을 부어 먹이시니 그 부녀(婦女)가 크게 취(醉)하여 두어 시간(時間)을 자고 일어나서, 이로부터 적(積)이 녹아 내리고 완치(完治) 되니라.

82. 임피(臨陂) 술산(戌山) 문기수(文基洙)의 아들이 담종(痰腫)으로 수삭(數朔)을 앓아서 사경(死境)에 이르렀거늘, 기수(基洙)의 처(妻)가 와 뵈옵고 이 사실(事實)을 아뢴대, 천후(天后) 전대윤(田大潤)을 부르사 밤과 대추를 주시며 일러 가라사대 '네가 가서 이 과실(果實)을 먹이고, 병처(病處)를 만지면서 시천주(侍天呪)를 읽으라' 하시니, 대윤(大潤)이 가서 그대로 행(行)함에 그 병(病)이 곧 나으니라.

83. 술산 여교인(女敎人) 김기화(金基華)가 병(病)들어 이십여일(二十餘日)을 앓다가, 마침내 절명(絶命)된지라. 문명수(文明洙)가 달려와서 이 사실을 아뢴대, 천후(天后) 가라사대 '맑은 술을 조금씩 입에 흘려 넣으면서, 진액주(津液呪)를 읽으라' 하시거늘, 명수(明洙)가 돌아가서 명(命)하신대로 행(行)함에 기화(基華)가 곧 회생(回生) 하니라.

84. 술산 여교인(女敎人) 이순금(李順金)이 딸을 낳으면서부터 젖이 나지 아니하여 어린 아해(兒孩)가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고, 또 배에 독종(毒腫)이 나서 죽게된지라. 순금(順金)이 아해(兒孩)를 데리고 와 뵈오니, 천후(天后) 물어 가라사대 '유아(乳兒)가 왜 이렇듯 수척(?瘠)하냐?' 하시니, 대(對)하여 가로대 '젖이 없어서 그러하나이다' 하거늘, 가라사대 '곧 데리고 가라' 하시며 '매암 매암' 하시면서 유아(乳兒)를 업혀주시고, 또 가라사대 '독종(毒腫)에는 갯국을 먹이라' 하시거늘, 순금(順金)이 집으로 돌아오니 곧 젖줄이 통(通)하여 넉넉하여지고, 또 갯국을 먹임에 독종(毒腫)도 곧 나으니라.

85. 술산(戌山) 문명수(文明洙)가 사십여세(四十餘歲) 되도록 자식(子息)을 두지 못하였더니 하루는 아내를 데리고 와 뵈오니, 천후(天后) 가라사대 '자식(子息) 없음이 한(恨)이냐?' 하시고, 명수(明洙) 처(妻)에게 청주(淸酒) 한 잔(盞), 통조림 한 점(點)을 주시며 가라사대 '입태(立胎) 못한 여자(女子)가 먹나니, 돌아가서 자식(子息)을 많이 낳으라' 하시더니, 이 뒤에 명수(明洙)가 연달아 삼형제(三兄弟)를 낳으니라.

86. 칠월(七月) 그믐에 동화교(東華敎) 통정(統正) 이상호(李祥昊)와 간부(幹部) 조학구(趙鶴九)가 고찬홍(高贊弘)과 함께 와 뵈옵고, 여쭈어 가로대 '듣자하오니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께 세 살림을 하라 하시고, 또 여러 종도(從徒)들에게 용화동(龍華洞)이 내 터니라 하셨다 하시므로, 제가 무진년(戊辰年) 동지(冬至)에 여러 교우(敎友)들과 함께 용화동(龍華洞)에서 동화교(東華敎)를 창건(創建)하고, 그 이듬해 기사년(己巳年) 삼월(三月) 열엿새날 대순전경(大巡典經)을 편찬(編纂)하여 진법(眞法)의 기초(基礎)를 정(定)하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더니, 이제 천사(天師)의 육순회갑(六旬回甲)을 당(當)함에 비로소 천후(天后)께서 세 살림을 차릴 도수(度數)가 된 듯 하오니, 청(請)컨대 천후(天后)께서 용화동(龍華洞)으로 법소(法所)를 옮기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천후(天后) 허락(許諾)하시고, 먼저 대순절(大巡節)에 천사(天師)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용화동(龍華洞)에 가서 회갑치성(回甲致誠)을 올리고, 그 뒤에 기회(機會)를 보아 법소(法所)를 용화동(龍華洞)으로 옮기게 하라 하시니라.

87. 구월(九月) 보름날 이상호(李祥昊)가 임경호(林敬鎬)와 이성영(李成英)㈛이정립(李正立)?을 보내 천후(天后)를 뵈옵게 하니, 열이렛날 천후(天后) 고찬홍(高贊弘), 이근목(李根睦), 박종오(朴鍾五), 강재숙(姜在淑), 서인권(徐仁權) 등 십여인(十餘人)을 데리고, 임경호(林敬鎬) 및 이성영(李成英)과 함께 천사(天師)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용화동(龍華洞)으로 가사, 열아흐렛날 새벽에 육순(六旬) 회갑치성(回甲致誠)을 올리실 새, 천후(天后) '아동방(我東方) 창생(蒼生)들아, 천지운수(天地運數) 염려(念慮)말고 마음 심자(心字) 닦아보세. 마음 심자(心字) 닦고보면 불로불사(不老不死) 아닐런가. 좋을시구 좋을시구 우리 시절(時節) 좋을시구' 라고 노래 부르시니라.

88. 스무하룻날 천후(天后) 이상호(李祥昊)와 여러 종도(從徒)들에게 '이길로 돌아가서 조종(祖宗)골 일을 정리(整理)하고 동지치성(冬至致誠)에 아주 이사하여 오리니, 그동안 준비(準備)하라'고 부탁(付託)하신 뒤에, 영정(影幀)을 모시고 돌아오시니라.

89. 시월(十月) 초이튿날 임경호(林敬鎬)와 이성영(李成英)이 와 뵈옵고 여쭈어 가로대 '천사(天師)의 법언성적(法言聖蹟)은 이미 대순전경(大巡典經)으로 간행(刊行) 되었으나, 천후(天后)의 언행(言行)은 아직까지 세상(世上)에 묻혀있어 알지 못하므로, 통정(統正) 이하(以下) 여러 간부(幹部)들이 의논(議論)하여 저희 두 사람으로 하여금 천후(天后)의 언행(言行)을 수집필기(蒐集筆記)하여 편찬(編纂)의 길을 열라 하므로, 이제 그 사명(使命)을 띠고 왔나이다.' 천후(天后) 허락(許諾) 하시고, 모든 지낸 일을 말씀하시니, 두 사람이 아흐레 동안 머무르면서 혹(或) 천후(天后)께 직접(直接) 듣기도 하며, 혹(或) 종도(從徒)들에게 듣기도 하여 모든 일을 필기(筆記) 하니라.

90. 동짓(冬至)달 초엿새날 동화교(東華敎) 본부(本部)에 천후(天后) 고찬홍(高贊弘), 이근목(李根睦), 전준엽(田畯燁), 박종오(朴鍾五) 등을 보내사, 천후(天后) 동지절(冬至節) 보름날에 천사(天師)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용화동(龍華洞)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신 뜻을 전(傳)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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