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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하루는 신 경원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말씀 올리기를 "순경들의 조사가 심해져서 날마다 저의 집에 와서 선생께서 계신 주소를 묻나이다." 하고 여쭈니 선생께서 그 사람에게 글을 써주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 글을 신 경원에게 전하여 한 번 보고 곧 불사르게 하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 니라."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하늘이 비와 이슬을 부족하게 내리게 하면 반드시 모든 곳에 원(怨)이 쌓이고, 땅이 만물을 기르면서 흙과 물 쓰는 것을 부족하게 하면 반드시 모든 사물들이 원(怨)을 품게 되며, 사람이 모든 일에 할 때 덕없이 행 한다면 반드시 모든 일에 원망이 쌓이느니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 고 땅이 흙과 물로 만물을 기르며 그리고 사람이 덕을 베푸는 모든 법이 모두 다 오직 마음쓰는 한가지 법에 달려 있으니, 마음(心)이란 신(神) 들이 머무르는 근원처이며 드나드는 문이며 왕래하는 길이니라. 신(神) 들이 그 마음의 문을 여닫으며 그 곳으로 들고나며 그 마음의 길로 오고 가나니 때로는 마음속에 착한 것이 들어오고 나기도 하며 때로는 마음 속에 악한 것이 들어 왔다가 나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느니라. 그러므 로 착한 마음이 들 때면 마땅히 그것을 본받아서 스승으로 삼고, 악한 마음이 들 때면 스스로 조심하여 고친다면 내 마음의 머무르는 자리와 드나드는 문 오고가는 길이 천지의 큰 마음과 크게 다를 바 없느니라.)신 경원이 받들어 읽고 난 후에 곧 불살랐더니 그 후로는 순검의 조사가 그치니라. 原文: 하로는 辛 京元이 급히 사람을 보내여 稟하되 警官의 調査가 甚하 야 날마다 와서 先生의 住所를 뭇나이다. 先生이 來人에게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을 京元 에게 傳하야 한 번 보고 곳 불살으 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80.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81. 京元이 奉讀한 後에 곳 불살넛더니 그 後로는 警官의 調査가 그치 니라.
82. 김 병욱의 집에서 일을 하는 김 윤근이 선생께로 와서 뵙고 간청 드리기 를 "요즈음 날이 가물어서 모든 농작물이 다 마르오니 선생님께서 기쁜 비를 주시어 부디 여러 백성들의 초조함을 덜어 주소서." 하니 선생께서 덕찬에게 명하시어 그가 기르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삶아 여러 종도들 과 더불어 함께 잡수시니 미처 잡수시기를 다 마치지 못하여 우뢰가 일어 나며 비가 크게 내리거늘 윤근이 힘이 솟아나서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진 실로 세상 모든 사람을 살려주시는 상제님이시라." 하니라.原文: 金 秉旭의 差人 金允根이 先生? 와 뵈입고 稟하되 近日에 날이 가 물어서 作物이 다 말으오니 先生은 喜雨를 주사 萬民의 焦燥를 눅 키소서. 先生이 德贊을 命하사 그 길으는 家猪一首를 잡어서 烹宰 하야 여러 從徒들로 더부러 함? 잡수실 새 밋처 맛치지 못하야 雷 雨가 大作하거늘 允根이 ?躍하야 가로대 先生은 진실로 萬民을 求 活하는 上帝시라 하니라.
83. (원본에 누락)
84. 태인 백암리에 사는 종도 김 명칠이 산 속에 있는 비탈을 새로 개간하여 담배를 심었는데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우고 난 후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 지니 명칠이 가슴을 치며 울며 말하기를 "내 농사라고는 이 담배농사 뿐 인데 거름을 주고 흙을 돋우고 난 뒤에 이렇게 갑작스런 비가 내리면 산 비탈 흙이 다 떠밀려 내려가서 농사를 다 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선생께 서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말씀하시기를 "그 재해를 면하게 하여 주리니 근심을 풀어라." 하시더니 비 개인 후에 명칠이 가보니 자신의 밭에는 조 금도 피해가 없고 다른 사람들의 경작지는 전부 사태를 만나 이 해에는 담배농사가 크게 흉작이 되니라. 原文: 泰仁 白巖里 金 明七이 山中 傾斜地를 新墾하야 煙草를 심엇는대 肥料를 施하야 붓을 하엿더니 문듯 急雨가 나림으로 明七이 가삼을 치며 울어 가로대 내 農事는 煙草栽培 ?인대 施肥培土한 後에 이 럿케 急雨가 나리니 沙汰가 미러 내려서 다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불상히 녁여 가라사대 근심을 풀어라 그 災害를 免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비개인 後에 明七이 가보니 조금도 被 害가 업고 他人의 耕作은 全部 沙汰의 害를 닙어서 이 해에 煙農이 大凶하니라.
85. 하루는 정 괴산의 주막집 앞을 지나가실 때 마침 고부환란때 얼굴을 익힌 정 순검이 이르거늘 선생께서 술을 사서 접대하셨더니 떠날 때에 돈 열 냥을 달라고 하며 선생의 쪼끼속에 손을 넣어 돈 열 냥을 훔쳐가니 선생 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을 의롭게 해야 하거늘 어찌 이렇게 예 의 없이 행동하느냐." 하시더라. 정 순검이 전주에 가서 다시 편지로 돈 사십 원을 청구하니 선생께서 형렬로 하여금 약간의 돈을 구하여 보내시 며 말씀하시기를 "의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몇 일 후에 정 순검 이 고부로 돌아가다가 정읍에 있는 한 다리에서 도둑 떼들에게 피살당하 게 되는지라. 이 일을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순검이란 도둑을 잡아서 다스리는 직책을 가졌거늘 오히려 의롭지 않은 재물을 훔치는 것 을 즐기니 도둑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천지신명들의 행하는 바이니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丁 槐山의 酒店을 지나실 새 마참 古阜禍亂에 知面된 鄭 巡 檢이 이르거늘 先生이 술을 사서 待接하섯더니 ?날 ?에 돈 十圓 을 請求하며 족기속에 손을 너어 돈 十兩을 훔처 가거늘 先生이 일 너 가라사대 모든 일을 의롭게 할지어늘 엇지 이럿케 無禮를 行하 나냐 하시더라. 鄭 巡檢이 全州에 가서 다시 書信으로 돈 四十圓을 請求하거늘 先生이 亨烈로 하여금 若干의 돈을 求하여 보내시며 가 라사대 義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몃 칠 後에 鄭 巡檢이 古阜 로 도라 가다가 井邑 한 다리에서 群盜에게 被殺된지라. 先生이 들 으시고 가라사대 巡檢은 盜賊을 懲治하는 職責을 가젓거늘 도 로혀 非義의 物을 즐기니 盜賊에게 죽음이 當然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神明의 行하는 바니라 하시니라.
86. 하루는 김 영서와 정 남기가 선생께 와서 뵙고 난 후에 두 사람이 서로 오가는 말로 그냥 잡담으로 말하기를 남기는 일본어를 배운 사람을 부러 워하여 말하기를 "요즘에는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출세도 쉽고 돈벌 이도 잘하더라." 하고 영서는 배우를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근래에는 연 극공연을 잘하여도 돈벌이가 잘 되더라." 하며 서로 그런 일을 등한시하 여 왔음을 후회하더니 문득 남기는 손을 흔들며 유창한 말소리로 일본말 을 하기 시작하고 영서는 상(喪)당한 사람이 되어 머리수건을 흔들며 일 어나서 상복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땀이 배 어서 등을 적시니 그곳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지라. 선생 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아주 빨리 소원을 이루었다." 하시 니 두 사람이 비로소 정신을 차려 부끄러워하는지라. 선생께서 두 사람에 게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큰 사람 되는 일을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 음을 크고 바르게 하여 그칠 곳을 알아야 할 것이오, 한 가지라도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실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안되느니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金 永西와 鄭 南基가 와 뵈인 後에 兩人이 서로 私語로 酬 酌하되 南基는 日本語學을 배운 사람을 불어워 하야 가로대 近來에 는 日本語를 通한 사람은 顯達도 쉽고 돈버리도 容易하더라 하며 永西는 俳優를 불어위 하야 가로대 近來에는 劇戱를 잘하여도 돈버 리가 잘되더라 하야 서로 그런 일을 等閑視하엿슴을 後悔하더니 문 듯 南基는 손을 흔들며 流暢한 口調로 日本語를 말하고 永西는 喪 人이라. 喪巾을 흔들며 일어나서 喪服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 이면서 歌舞를 演奏하야 汗出沾背하거늘 一座가 大笑하는지라. 先 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너히는 早速히 所願을 成就하엿다 하시니 兩人이 비로소 精神을 차려 붓그러워하는지라. 다시 일너 가라사대 大人을 배우는 者 맛당히 마음을 正大히 하야 그칠 곳을 알어야 할 것이오, 한가지라도 分外의 생각을 가지며 실업슨 말을 함이 不可 하다 하시니라.
87. 하루는 손 병욱의 집에 가시니 종도 들이 많이 모였음으로 병욱이 그 아 내를 시켜서 점심밥을 짓게 하더니 날씨가 매우 더워서 그녀가 괴롭게 여 기고 부엌에서 홀로 불평을 하였더니 문득 눈과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와사증이 생기거늘 황 응종이 보고 놀래서 선생께 말씀드리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불평한 말을 하다가 부엌을 주재하는 조왕신에게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음이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시며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이 글을 부엌에서 불사르며 잘못을 빌게 하라." 하시니 병욱의 아 내가 그대로 하여 곧 나으니라.原文: 하로는 孫 秉旭의 집에 가시니 從徒들이 만히 모엿슴으로 秉旭이 그 妻를 식혀서 午飯을 지을 새 日氣가 甚히 더움으로 그 妻가 괴 롭게 녁여 부억에서 홀로 不平한 말을 하엿더니 문듯 와사症이 發 하거늘 黃 應種이 보고 놀내여 先生? 告한대 가라사대 이는 不平 한 말을 하다가 ?王에게 罰을 바듬이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秉旭 의 妻로 하여금 부억에 불사르며 謝過하라 하시니 秉旭의 妻가 그 대로 하야 곳 나으니라.
88.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에게 물어 보시기를 "네가 남들과 싸움을 많이 하 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리 하였나이다." 하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표범의 단(丹)이 들어서 싸움을 잘하니 이제 그 기운을 빼어내고 사람의 기운을 넣으리라." 하시더니 이 후로는 공우 의 성질이 온화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혹시라도 싸움하는 사 람들이 있으면 공포심이 생겨서 곧 멀리 피하니라.原文: 大興里에 계실 새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남과 싸홈을 만히 하엿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리하엿나이다 다시 일너 가라사대 네게 豹丹이 들어서 싸홈을 잘하니 이졔 豹丹을 ?어내고 人丹을 너흐리 라 하시더니 이 後로는 公又의 性質이 溫和하게 되야 싸홈을 즐기 지 아니하고 或 싸홈하는 사람이 잇스면 恐怖心이 생겨서 곳 멀니 避하니라.
89. 무신(1908)년 8월 어느 날 김 덕찬이 선생께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오늘 저희 누이동생 집에서 잔치가 있으니 소풍 겸하여 나가사이다." 하니 말 씀하시기를 "내 술을 먼저 마시라." 하시므로 덕찬이 "무슨 술이 있나이 까." 하고 다시 물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박 공우가 술과 삶은 닭을 가져와서 선생께 올리니라. 原文: 八月 어느 날 金 德贊이 先生? 엿주어 가로대 오늘 내 妹家에 잔 채가 잇스니 소풍 겸하야 나어가사이다. 가라사대 내술을 몬저 마 시라. 德贊이 가로대 무슨 술이니잇가. 가라사대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朴公又가 술과 熟鷄를 가저와서 先生? 올니니라. (김 덕찬의 누이동생 집 墓祭가 있던 날이라 한 기록도 있다.)
90. 무신(1908)년 겨울 어느 날 아침에 대흥리로 부터 태인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실 때 박 공우는 해가 뜨면 길이 질어질까하여 미리 젖은 신발 을 하였더니 선생께서 보시고 "젖은 신발을 하였느냐." 하시며 손으로 동 쪽 산마루에 솟아오르는 해를 향하여 세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라오지 못 하다가 살포정 주막에 들어 쉬시니 그제서야 해가 문득 높이 솟아 오르더 라.原文: 이해 겨울 어느 날 아참에 大興里로 부터 泰仁 새올 崔 昌祚의 집 으로 가실 새 朴 公又는 해가 올으면 길이 즐가하여 즌 신발을 하 엿더니 先生이 보시고 진 신발을 하엿나냐하시며 손으로 東嶺에 솟 아 올으는 해를 向하야 셰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으지 못하다가 살 포정 旅舍에 들어 쉬시니 그졔야 해가 문듯 놉히 솟아 올으더라.
91. 최 창조의 집에 이르시어 벽력표를 묻으시니 즉시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 나며 천지가 진동하거늘 곧 거두시고 다음날 동곡약방에 이르시니 신 원 일이 여쭈어 묻기를 "진묵대사는 북두칠성을 칠일 동안 가두었다 전해 오 는데 옳은 말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 고 이날부터 석 달동안 칠성을 가두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현 세상에 천 문학자가 많다하나 북두칠성이 나타나지 아니한 일을 발표한 자가 없구 나." 하시니라. 原文: 崔 昌祚의 집에 일으사 霹靂表를 무드시니 즉시 雷聲이 大發하야 天地가 震動하거늘 곳 거드시고 翌日에 銅谷藥房에 이르시니 辛元 一이 엿주어 가로대 震默大師는 七星을 七日동안 가두엇다하니 올 흐니잇가 가라사대 이졔 試驗하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三個月동안 七星을 가두신 後에 가라사대 現世에 天文學者가 만타하되 七星이 나터나지 아니한 일을 發表한 者가 업다 하시니라.
92. 최 창조의 집에서 공우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눈을 많이 흘겨 보 았느냐." 하시므로 공우가 대답하여 "그러하였나이다." 하고 말씀드리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거늘 공우가 선생께 하 직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르러 눈병이 크 게 일어나 한 달 동안을 고통받다가 하루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 나았는지라. 곧 선생께 와 뵈이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눈병으로 매우 고생하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러하였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더라. 원래 공우는 성질이 매우 급하여 싸움을 즐기고 눈 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는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눈짓이 고와지니라.原文: 崔 昌祚의 집에서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눈을 만히 흘겨 보 앗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집으 로 도라가라 하시거늘 公又가 先生? 하직하고 집으로 도라올 새 길에서 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름에 眼疾이 大發하야 한 달 동안을 苦痛하다가 하로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이 나 엇는지라. 곳 先生? 와 뵈이니 가라사대 眼疾로 辛苦하엿나냐. 對 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先生이 웃으시더라. 元來 公又는 性 質이 慓悍하야 싸홈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일로부터는 性 質이 부드럽고 눈짓이 고아지니라.
93. 공우가 술이 과하여 술로 실수를 하는 일이 많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가 술을 즐기니 너의 주량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많이 주 시거늘 공우가 계속 받아 마시고 취하였는지라. 선생께서 다시 말씀하시 기를 "너는 한 잔 술밖에 못된다." 하시더니 이 뒤로부터는 술 한 두잔만 마셔도 곧 취하여 더 마시지 못하니라.原文: 公又가 술이 過하야 酒失이 만터니 하로는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술을 즐기니 酒量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만히 주시거늘 公又가 連 하여 바더 마시고 醉한지라. 다시 가라사대 한잔 술밧게 못된다 하 시더니 이 後로는 一二杯만 마서도 곳 醉하야 더 마시지 못하니라.
94. 무신(1908)년 겨울에 김 덕찬이 그 자녀의 혼사를 시키려 하니 모든 사람 이 물품과 금전으로 부조를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조 할 것이 없으니 날씨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더니 이 해는 매우 춥고 날씨가 여러 날동안 아주 고르지 않아 매우 염려하였으나 선생께서 약속하신 그 날에 이르러서는 예외로 따뜻하고 날씨가 고르니라. 原文: 金 德贊이 그 子婚을 지내려할새 모든 사람이 物品과 金錢으로 扶 助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는 扶助할 것이 업스니 日氣로나 扶助 하리라 하시더니 이?에 天候가 連日 險惡하여 甚히 憂慮하든 中인 대 그 期日에 이르러서는 例外로 溫和하니라.
95. 무신(1908)년 11월에 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 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한 걸음이라. 이 뒤에 일을 네게 알리리라." 하 시더니 이 날에 차 윤경이 선생께 와서 뵙고 고 부인이 눈병으로 고통받 고 있음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돌아갔다가 다음날 태인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러 오라." 하시므로 윤경이 곧 돌아갔다가 다음날에 살포정에 도착해보니 선생께서 아직 오시지 아니하였으므로 곧 소루원 주 점에 이르니 주막집 주인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 시면서 차 경석이 와서 묻거든 그 곳으로 보내라 하셨다 하거늘 윤경이 새올로 갈 때 일본군 수백명이 길가에 진을 치고 사는 곳과 길을 가는 이 유를 묻더라. 새올에 이르러 선생께 뵈이니 날이 이미 저물더라. 이 날밤 에 윤경에게 명하시어 "밤새도록 자지 말고 밖에 머물면서 집 주위를 돌 아라." 하시고 닭소리가 난 후에 윤경을 데리고 백암리로 향하여 떠나시 더라.原文: 十一月에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井邑으로 가리니 이 길이 吉行이라. 이 後에 일을 네게 알니리라 하시더니 이날에 車 輪京이 와 뵈입고 高夫人이 眼疾로 苦痛함을 알외니 가라사대 이졔 도라갓 다가 明日에 泰仁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輪京이 곳 도라갓다가 翌日에 살포정으로 오니 先生이 아즉 오시지 아니하엿거늘 곳 소루 원 酒店에 이르니 店主가 말하되 先生?서 새올 崔 昌祚의 집으로 가시면서 車輪京이 와 뭇거든 그곳으로 보내라 하셧다하거늘 輪京 이 새올로 갈 새 日本兵 數百人이 道中에 留陣하야 居住와 出行理 由를 뭇더라. 새올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날이 임의 저물더라. 이 날밤에 輪京을 命하사 밤이 맛도록 자지 말고 밧게 잇어 돌라 하시고 닭의 소리가 난 後에 輪京을 다리고 白巖里로 向하야 ?나 시니라.
96.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이르시어 아침을 잡수시고 다시 정읍으로 가실 때 때로는 앞서 가시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 서시기도 하시며 너덧 걸음을 걸 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길에서 일본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하시고 정읍 노송정에 이르시어 다시 말씀하시기를 "좀 지체하 였다가 감이 좋으리라." 하시고 반시간쯤을 지내신 후에 다시 떠나시어 그 모퉁이 큰 못가에 이르시니 말탄군인들이 많이 오다가 되 돌아간 자취 가 있더라.(선생께서 그 자취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이 어찌 대인의 앞 길에 쫓아오리오 하시거늘 윤경이 그 근처 사람에게 물으니 과연 기병 수십명이 달려 오다가 그 곳에서 되돌아 갔다 하더라.)原文: 白巖里 金 京學의 집에 이르사 朝飯을 잡수시고 다시 井邑으로 가 실 새 或 압서기도 하고 或 뒤서기도 하사 四,五步를 걸으신 後에 가라사대 이 길에는 外人을 對하는 것이 不可하다 하시고 井邑 老 松亭에 이르사 가라사대 좀 遲滯함이 可하다 하시고 半時辰을 지내 신 後에 다시 ?나사 그 모통이 큰 못가에 이르니 馬兵이 만히 오 다가 되도라간 자취가 있더라.
97. 그 곳에서 대흥리로 가려면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서 한쪽 길은 정읍군을 통과하는 큰 길이요, 한쪽 길은 샛 길이라. 윤경이 어느 길로 가실 것인 지를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어찌 샛 길로 다니리오." 하시 고 큰 길을 취하여 정읍 읍내를 통과하시니 좌우 측에 즐비한 일본사람들 의 상점에서 한 사람도 밖에 나선 사람이 없더라. 대흥리에 이르시어 고 부인의 눈병을 낫게 하시고 이어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니 라. 原文: 거긔서 大興里로 가려면 兩條路가 分岐되야 한 길은 井邑郡을 通過 하는 大路오. 한 길은 狹路라. 輪京이 어느 길로 行할 것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君子 엇지 狹路로 行하리오 하시고 大路를 取하야 井邑郡을 通過하시니 左右側에 外人의 商店이 만히 잇스되 한 사람 도 밧게 나선 者가 업더라. 大興里에 니르사 高 夫人의 眼疾을 낫 게 하시고 因하야 戊申 臘月 公事를 行하시니라.
98. 하루는 경석의 검은 두루마기옷 한 벌을 가져오라하사 입으시고 속 옷를 벗으신 후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물어 말씀하시 기를 "이러 하면 일본사람과 같으냐." 하시므로 모두 대답하여 말씀드리 기를 "같으니이다." 하니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 에서 글을 배울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으로 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는 그 서당에 오지 아니하고 다른 서당 에 다니다가 얼마 후에 병들어 죽었는데 그 아이의 신명이 원한을 품었 다가 이제 와서 나에게 원을 풀어 주기를 구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하고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 옷을 싫어하는 줄을 알고 일본 옷을 입어달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京石의 黑周衣 한 벌을 가저오라하사 닙으시고 內衣를 벗으 신 後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從徒에게 무러 가라사대 이러하면 日本人과 갓흐냐. 모다 對하여 가로대 갓흐니이다. 다시 벗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幼時에 書塾에서 글 배울 ?에 한 아해로 더부러 먹희롱을 하다가 그 아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도라가서 다 시 오지 아니하고 다른 書塾에 通學하다가 그 後에 病들어 죽엇는 대 그 神明이 怨恨을 품엇다가 이졔와서 나에게 解寃을 求함으로 엇더케하면 解寃이 되겟나냐고 무르니 그 神明이 내가 日本服을 슬 혀하는 줄을 알고 日服을 닙으라 함으로 내가 이졔 그 神明을 慰勞 함이로라 하시니라.
99. 대흥리에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고 기유(1909)년 정월 초 사흣 날에 관청의 재앙를 피하사 백암리 김 경학의 집으로 가셨더니 태인 읍에서 경학의 형이 사람을 보내어 경학을 불러 가거늘 선생께서 발을 만 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속담에 발 복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다 행이요, 잘못가면 불행이라 하는 것을 일러 말하는 것이라." 하시고 곧 홀로 길을 떠나시어 최 창조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그 앞 소나무 숲을 통 하여 최 덕겸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시니 모든 사람이 계시는 곳을 알지 못하더라. 원래 경학의 형은 경학이 도술부리는 사람에게 빠져서 집안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경학을 부르고 한편으로는 그 도술하는 사람을 관청에 고발하여 벌을 받게 하려 함이라. 경학이 집을 떠나 읍으로 가다가 길 중간에서 순검에게 붙들려 같이 집으로 되돌아와 서 선생을 찾으니 선생께서 안 계심으로 최 창조의 집까지 갔다가 찾지 못하니 할 수 없이 돌아가니라. 原文: 大興里에서 戊申 臘月公事를 行하시고 己酉 正月 三日에 官災를 避 하사 白巖里 金 京學의 집으로 가셧더니 泰仁邑에서 京學의 兄이 사람을 보내여 京學을 불너 가거늘 先生이 발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俚言에 발福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幸이오, 잘못가면 不 幸이라 함을 일음이라 하시고 곧 ?나사 獨行으로 崔 昌祚의 집에 가셧다가 다시 그 압 松林을 通하야 崔 德兼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 시니 모든 사람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니라. 元來 京學의 兄은 京 學이 術客에게 迷惑하야 家産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듯고 一面 으로는 京學을 불으고 一面으로는 官府에 告하야 術客을 잡어 懲治 하려 함이라. 京學이 집을 ?나 邑으로 가다가 中路에서 巡檢에게 붓들녀 帶同되여 집으로 되도라와서 先生을 찻다가 업슴으로 崔 昌 祚의 집?지 왓다가 찻지 못하고 도라가니라.
100. 기유(1909)년 정월 초닷샛날에 동곡에 이르시어 며칠 뒤에 태인으로부터 무사히 된 전말을 들으신 후 말씀하시기를 "정읍의 일은 하루 공사인데 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아침에 풀었고 태인 일은 하루아침 공사인데 경학 에게 맡겼더니 하루 내내 걸렸으니 경석이 경학보다 낫다." 하시고 또 말 씀하시기를 "경석은 병조판서 감이요, 경학은 사람이 겨우 직장(直腸)이 나 한자리 할 위인이라. 돌리기 어려우나 돌리기만 하면 착한 사람이 되 리라." 하시니라. 原文: 五日에 銅谷에 이르시니 數日後에 泰仁으로부터 無事히 된 顚末을 報告하거늘 가라사대 "井邑일은 하로 公事인대 京石에게 맛겻더니 一朝에 ?으고 泰仁일은 하로 아참 公事인대 京學에게 맛겻더니 一日을 걸녓스니 京石이 京學보다 낫다." 하시고 ? 가라사대 京石 은 兵判감이오. 京學은 爲人이 直腸이라. 돌니기 어려우니 돌니기 만 하면 善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101. 하루는 박 공우, 황 응종을 데리시고 태인 읍에 있는 주막에 이르사 신 경원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백순검을 만나야 하겠으니 그를 데 려 오라." 하시더니 말씀이 마치자 말자 백 순검이 그 짚 앞으로 지나가 거늘 신 경원이 나가서 선생께서 계신 곳을 알려주니 백 순검이 곧 뛰어 들어와서 선생을 체포하여 묶는지라. 선생께서 공우에게 명하시어 말씀하 시기를 "네게 있는 돈 백냥을 나에게 주고 최 창조의 집에 갔다오라." 하 시니 박 공우가 명을 받들고 가거늘 또 황 응종과 신 경원을 불러 각자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백 순검에게 돈 백냥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 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래였도다. 이것을 적다고 생각하지 맣 고 그대의 생활에 보태어 써라." 하시니 백 순검이 사례한 뒤에 묶었던 것을 풀고 물러가니 이것은 백 순검이 선생을 붙들어서 돈을 빼앗으려 하 는 줄 미리 아시고 그 욕심을 채워 주심이더라.原文: 하로는 公又, 應鐘을 다리시고 泰仁邑 旅舍에 이르사 辛 京元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白 巡檢을 만나야 하겟스니 그를 다려 오라. 말삼이 맛치자 白 巡檢이 그 집 압흐로 지나거늘 京元이 나가서 先 生의 계신 곳을 알니니 白 巡檢이 곳 ?여 들어와서 先生을 捕縛하 는지라. 先生이 公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네게 잇는 돈 百兩을 내 게 傳하고 崔 昌祚의 집에 갓다오라 하시니 公又가 應命하고 가거 늘 ? 應鍾과 京元을 불너 各히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白 巡檢에게 돈 百兩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 래엿노라, 이것을 적다고 하지 말고 用에 보태여 쓰라. 白 巡檢이 致謝한 後 捕縛을 ?으고 물너가니 大抵 그가 先生을 붓드러서 돈 을 ?앗으려 하는 줄을 알으시고 그 所欲을 채워주심이러라.
102. 하루는 전주 불가지에 있는 김 성국의 집에 계실 때 김 덕찬이 선생을 곁 에 모시고 있다가 선생께서 하시는 어떤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는 말씀 으로 알면서 거짓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더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 용소리에 있는 김 의관의 집으로 가서 자고 오라." 하시므로 덕찬 이 명을 받들고 용소리에 갔다가 김 의관의 집 문 앞에서 술 취한 사람을 만나 심한 욕을 당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되돌아오거늘 선생께서 문 밖에 나와서 바라보시며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왜 자고 오지 않고 벌써 돌아오느냐." 하시더니 술을 주시며 마음을 풀게 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사귈 때에는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거늘 어찌 마음을 스스로 속 이느냐." 하시니 덕찬이 처음에는 선생께서 이유없이 용소리에 자신을 보 내어 술 취한 사람에게 행패를 당하게 하신 것을 불평히 여겼다가 이 말 씀을 듣고 나서 비로소 자신이 선생의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이 알면서 거짓으로 그러하겠다고 한 것을 선생께서 아시고 실없는 취한 사람을 만 나도록 하여 그 마음을 다스리신 줄을 깨닫고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여 비록 한 마음 한 생각이라도 삼가니라.原文: 하로는 全州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계실 새 金 德贊이 侍側하다가 先生의 무슨 말삼 ?헤 속으로는 실업게 알면서 거즛 應諾하엿더니 다시 일너 가라사대 이졔 龍巢里 金 議官의 집에 가서 자고오라 하심으로 德贊이 應命하고 龍巢里에 갓다가 金 議官집 門압헤서 醉 한 사람을 만나 悖辱을 만히 當하고 憤을 이긔지 못하야 되도라 오 거늘 先生이 門밧게 나서 바라보시고 웃어 가라사대 웨 자지 아니 하고 도라오나냐 하시며 술을 주어 가라사대 사람을 사굄에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어늘 엇지 마음을 스사로 속이나냐 하시니 德贊이 처음에는 先生이 無故히 龍巢里에 보내여 悖辱을 當하게 하신 것을 不平히 녁엿다가 이 말삼을 듯고 비로소 先生의 말삼 ?헤 속으로 는 실업시 알면서 거짓 應諾한 것을 洞燭하사 실업슨 醉한 사람을 만나도록 懲治하신 줄을 ?닷고 일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야 비록 一思一念 이라도 삼가니라.
103. 기유(1909)년 6월에 구릿골에 계실 때 종도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 을 걱정하거늘 선생께서 김 갑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청수(淸水) 한 동이를 길어다 놓고 옷을 모두 벗은 후에 그 물동이 앞에 합장하고 서 있 어라. 이제 너에게 장군의 영(令)을 붙여서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불러 넘겨와 모든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주리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하 신대로 하여 물동이 앞에 서 있으니 문득 서쪽 하늘로부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내리거늘 이에 다시 명하사 "그 물을 쏟아버리고 옷을 입으라." 하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도 잘 수련 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原文: 六月에 銅谷에 계실 새 從徒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을 걱정하 거늘 先生이 甲七다려 일너 가라사대 淸水一 盆을 길어다 놋코 上 下衣를 벗고 淸水압헤 合掌하고 서 잇스라. 이졔 네게 將令을 붓처 서 西洋으로부터 雨師를 불너 넘겨 萬民의 渴仰을 풀어주리라. 甲 七이 命하신 대로하야 水盆압헤 섯스니 문듯 西天으로부터 黑雲 이 이러나며 大雨滂?하거늘 이에 命하사 淸水를 쏘다버리고 옷을 닙으라하시며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희들도 잘 修鍊하면 모든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104. 이때에 청주에서 괴질이 크게 일어나고 나주에서도 크게 퍼지니 인심이 흉흉한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북으로 마주 터지니 장차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 없어지게 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말 씀하시기를 (勅令 怪疾神將 胡不犯 帝王將相之家 犯此 無辜蒼生之家乎: 괴질신장에게 명령을 내리노니 어찌 제왕이나 장군 재상의 집은 범치 못 하면서 이렇게 무고한 백성들의 집들만 침범하느냐) "내가 이것을 대신해 서 받으리라." 하시고 김 형렬에게 명하시어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서 가져오게 하여 한 벌씩 갈아 입으시고 그 병을 앓으신 후에 설사하여 옷을 버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약한 사람들이 걸리면 다 죽겠도다." 하시 더니 그 후로 괴질이 곧 가라앉느니라.原文: 이?에 淸州에서 怪疾이 猖獗하고 羅州에도 熾盛하야 人心이 洶洶 한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南北으로 마조 터지니 장차 無數한 生命 이 殄滅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代贖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新衣五件을 急히 지어서 한 벌씩 갈어 닙으시고 泄瀉하여 버리신 後에 가라사대 弱者가 걸 니면 다 죽겟도다하시더니 그 後로 怪疾이 곳 寢息되니라.
105. 언제나 달밤에 길을 가실 때에는 구름이 달을 가렸으면 손으로 달을 향하 여 오른쪽으로 저어 구름을 둥그렇게 열어 젖히시어 달빛을 내 비치게 하 시며 목적지에 도착 하신 뒤에는 다시 손으로 달을 향하여 왼쪽으로 젖히 시기만 하시면 구름이 다시 합해져서 원래 모양대로 회복 되니라. 原文: 매양 月夜에 길을 가실 ?에 구름이 달을 가렷스면 손으로 달을 向 하여 右旋하야 구름을 둥그럿케 열어 헛치사 달빗을 내빗최이며 目 的地에 達하신 後에 다시 손으로 달을 向하야 左旋하시면 구름이 다시 合하야 原狀대로 回復되니라.
106. 원평시장에 있는 김 경집의 주점 객사을 단골집으로 정하시고 오랬동안 머무르고 계실 때 누구든지 선생의 말씀이라 말하고 술과 음식을 청하면 돈이 있던지 없던지 모두 허락하고 음식을 주었는데 태인 청석골에 사는 강 팔문이 술과 음식을 많이 먹은 후에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주인이 보 았으나 선생의 말씀이 있었다 거짓 핑계를 대고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더 니 이로부터 급체를 당하고 그 후 여러 가지 병을 얻어 죽을 지경에 이르 거늘 신 경수가 그 사유를 말씀드려도 선생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더니 그 후에 또 위급함을 와서 고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몹쓸 일을 해서 신명에게 죄를 얻어 그릇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 할 수없다." 하시 더니 그 후에 곧 죽으니라. 原文: 院坪市場 金 京執의 酒店에 단골 主人을 定하시고 오랫동안 逗留하 실 새 누구든지 先生의 말삼을 憑托하야 酒食을 請하면 代金 有無를 不許 하고 다 許諾하더니 泰仁 靑石골 姜 八文이 酒食을 만히 먹은 後에 돈을 携帶한 것을 主人에게 發見되엿스나 先生의 말삼이 잇다고 거즛 憑托하야 돈을 支拂치 안코 갓더니 일로부터 挾滯하야 ?症을 일우어 死境에 이르 거늘 申 京守가 그 事由를 알왼대 先生이 對答지 아니하시더니 그 後에 ? 危急함을 來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못슬 일을 行하야 神明에게 罪 를 어더 그릇 죽엄을 하게 되엿스니 할 일업다 하시더니 그 後에 곳 死亡 하니라.
107. 종도들이 언제나 근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사유를 선생께 여쭈어 고하기만 해도 선생께서 들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신 중에 저절로 풀리게 되는데 만일 여쭈어 고한 뒤에도 근심을 놓지 아니하면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알았으니 근심치 말라." 하시니라.原文: 從徒들이 매양 근심된 일이 잇슬?에 그 事由를 先生? 稟告하면 無爲中에 自然히 풀니게 되는대 만일 稟告한 後에도 오히려 근심을 놋치 아니하면 慰勞하야 가라사대 내가 임의 알엇스니 근심하지 말 라 하시니라.
108. 언제나 종도들에게 일을 명하실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날을 주시어 어 기지 않게 하시고 만일 명을 받은 종도가 간혹 그 날짜 내에 날씨가 순조 롭지 못하여 어김이 있을까 우려하면 선생께서 일깨워 말씀하시기를 "내 가 너희에게 어찌 고르지 못한 날을 일러 주겠느냐." 하셨나니 늘 그렇지 만 선생께서 정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순조롭지 못한 때가 없었느니라.原文: 매양 從徒들에게 일을 命하심에 반다시 期日을 定하여 주사 어긔지 안케 하시며 만일 命을 바든 者가 或 그 期日에 日氣의 不調로 因 하야 어김이 잇슬가 憂慮하면 先生이 일?워 가라사대 내가 너희 에게 엇지 不調한 날을 일너주겟나냐 하셧나니 大抵 先生의 定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不調한 ?가 업섯나니라.
109. 언제나 종도들을 어느 곳에 보내시되 해야 할 일을 미리 말씀하시지 아니 하신 때가 많이 있었으나 종도들은 항상 그렇게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다시 묻지 아니하고 명 하신 곳에 가보면 반드시 무슨 일인지 알게 되더라.原文: 매양 從徒를 어느 곳에 보내시되 使命을 말삼치 아니하신 ?가 만 히 잇셧스나 從徒들은 恒常 그럿케 經驗하엿슴으로 다시 뭇지 안코 命하신 곳에 가면 반다시 무슨 일이 잇더라.
110. 날이 가물어 심할 때에는 비를 주시고 비를 주시면서 맑은 물동이에 소변 을 좀 타시면 그 비로 인하여 곡식들이 더욱 풍성해지고 해충들의 재해가 있을 때에는 맑은 물동이에 고추가루를 좀 풀어 넣으면 곧 해충들의 재해 가 그치니라. 原文: 가물 ?에 비를 주실 새 淸水동우에 小便을 좀 타면 그 비로 因하 여 穀類가 豊穰하고 蟲災가 잇슬 ?에는 苦草가루를 풀어 너으면 곳 蟲災가 것치더라.
111. 선생께서 더울 때에 길을 나서시면 구름이 해를 가리는 양산과 같이 되어 햇빛을 가려서 볕이 쪼이지 아니하니라.原文: 더울 ?에 出行하시면 구름이 日傘과 갓치 太陽을 가리워 볏이 ? 이지 아니하니라.
79. 하루는 신 경원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말씀 올리기를 "순경들의 조사가 심해져서 날마다 저의 집에 와서 선생께서 계신 주소를 묻나이다." 하고 여쭈니 선생께서 그 사람에게 글을 써주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 글을 신 경원에게 전하여 한 번 보고 곧 불사르게 하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 니라."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하늘이 비와 이슬을 부족하게 내리게 하면 반드시 모든 곳에 원(怨)이 쌓이고, 땅이 만물을 기르면서 흙과 물 쓰는 것을 부족하게 하면 반드시 모든 사물들이 원(怨)을 품게 되며, 사람이 모든 일에 할 때 덕없이 행 한다면 반드시 모든 일에 원망이 쌓이느니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 고 땅이 흙과 물로 만물을 기르며 그리고 사람이 덕을 베푸는 모든 법이 모두 다 오직 마음쓰는 한가지 법에 달려 있으니, 마음(心)이란 신(神) 들이 머무르는 근원처이며 드나드는 문이며 왕래하는 길이니라. 신(神) 들이 그 마음의 문을 여닫으며 그 곳으로 들고나며 그 마음의 길로 오고 가나니 때로는 마음속에 착한 것이 들어오고 나기도 하며 때로는 마음 속에 악한 것이 들어 왔다가 나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느니라. 그러므 로 착한 마음이 들 때면 마땅히 그것을 본받아서 스승으로 삼고, 악한 마음이 들 때면 스스로 조심하여 고친다면 내 마음의 머무르는 자리와 드나드는 문 오고가는 길이 천지의 큰 마음과 크게 다를 바 없느니라.)신 경원이 받들어 읽고 난 후에 곧 불살랐더니 그 후로는 순검의 조사가 그치니라. 原文: 하로는 辛 京元이 급히 사람을 보내여 稟하되 警官의 調査가 甚하 야 날마다 와서 先生의 住所를 뭇나이다. 先生이 來人에게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을 京元 에게 傳하야 한 번 보고 곳 불살으 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80.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81. 京元이 奉讀한 後에 곳 불살넛더니 그 後로는 警官의 調査가 그치 니라.
82. 김 병욱의 집에서 일을 하는 김 윤근이 선생께로 와서 뵙고 간청 드리기 를 "요즈음 날이 가물어서 모든 농작물이 다 마르오니 선생님께서 기쁜 비를 주시어 부디 여러 백성들의 초조함을 덜어 주소서." 하니 선생께서 덕찬에게 명하시어 그가 기르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삶아 여러 종도들 과 더불어 함께 잡수시니 미처 잡수시기를 다 마치지 못하여 우뢰가 일어 나며 비가 크게 내리거늘 윤근이 힘이 솟아나서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진 실로 세상 모든 사람을 살려주시는 상제님이시라." 하니라.原文: 金 秉旭의 差人 金允根이 先生? 와 뵈입고 稟하되 近日에 날이 가 물어서 作物이 다 말으오니 先生은 喜雨를 주사 萬民의 焦燥를 눅 키소서. 先生이 德贊을 命하사 그 길으는 家猪一首를 잡어서 烹宰 하야 여러 從徒들로 더부러 함? 잡수실 새 밋처 맛치지 못하야 雷 雨가 大作하거늘 允根이 ?躍하야 가로대 先生은 진실로 萬民을 求 活하는 上帝시라 하니라.
83. (원본에 누락)
84. 태인 백암리에 사는 종도 김 명칠이 산 속에 있는 비탈을 새로 개간하여 담배를 심었는데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우고 난 후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 지니 명칠이 가슴을 치며 울며 말하기를 "내 농사라고는 이 담배농사 뿐 인데 거름을 주고 흙을 돋우고 난 뒤에 이렇게 갑작스런 비가 내리면 산 비탈 흙이 다 떠밀려 내려가서 농사를 다 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선생께 서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말씀하시기를 "그 재해를 면하게 하여 주리니 근심을 풀어라." 하시더니 비 개인 후에 명칠이 가보니 자신의 밭에는 조 금도 피해가 없고 다른 사람들의 경작지는 전부 사태를 만나 이 해에는 담배농사가 크게 흉작이 되니라. 原文: 泰仁 白巖里 金 明七이 山中 傾斜地를 新墾하야 煙草를 심엇는대 肥料를 施하야 붓을 하엿더니 문듯 急雨가 나림으로 明七이 가삼을 치며 울어 가로대 내 農事는 煙草栽培 ?인대 施肥培土한 後에 이 럿케 急雨가 나리니 沙汰가 미러 내려서 다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불상히 녁여 가라사대 근심을 풀어라 그 災害를 免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비개인 後에 明七이 가보니 조금도 被 害가 업고 他人의 耕作은 全部 沙汰의 害를 닙어서 이 해에 煙農이 大凶하니라.
85. 하루는 정 괴산의 주막집 앞을 지나가실 때 마침 고부환란때 얼굴을 익힌 정 순검이 이르거늘 선생께서 술을 사서 접대하셨더니 떠날 때에 돈 열 냥을 달라고 하며 선생의 쪼끼속에 손을 넣어 돈 열 냥을 훔쳐가니 선생 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을 의롭게 해야 하거늘 어찌 이렇게 예 의 없이 행동하느냐." 하시더라. 정 순검이 전주에 가서 다시 편지로 돈 사십 원을 청구하니 선생께서 형렬로 하여금 약간의 돈을 구하여 보내시 며 말씀하시기를 "의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몇 일 후에 정 순검 이 고부로 돌아가다가 정읍에 있는 한 다리에서 도둑 떼들에게 피살당하 게 되는지라. 이 일을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순검이란 도둑을 잡아서 다스리는 직책을 가졌거늘 오히려 의롭지 않은 재물을 훔치는 것 을 즐기니 도둑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천지신명들의 행하는 바이니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丁 槐山의 酒店을 지나실 새 마참 古阜禍亂에 知面된 鄭 巡 檢이 이르거늘 先生이 술을 사서 待接하섯더니 ?날 ?에 돈 十圓 을 請求하며 족기속에 손을 너어 돈 十兩을 훔처 가거늘 先生이 일 너 가라사대 모든 일을 의롭게 할지어늘 엇지 이럿케 無禮를 行하 나냐 하시더라. 鄭 巡檢이 全州에 가서 다시 書信으로 돈 四十圓을 請求하거늘 先生이 亨烈로 하여금 若干의 돈을 求하여 보내시며 가 라사대 義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몃 칠 後에 鄭 巡檢이 古阜 로 도라 가다가 井邑 한 다리에서 群盜에게 被殺된지라. 先生이 들 으시고 가라사대 巡檢은 盜賊을 懲治하는 職責을 가젓거늘 도 로혀 非義의 物을 즐기니 盜賊에게 죽음이 當然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神明의 行하는 바니라 하시니라.
86. 하루는 김 영서와 정 남기가 선생께 와서 뵙고 난 후에 두 사람이 서로 오가는 말로 그냥 잡담으로 말하기를 남기는 일본어를 배운 사람을 부러 워하여 말하기를 "요즘에는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출세도 쉽고 돈벌 이도 잘하더라." 하고 영서는 배우를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근래에는 연 극공연을 잘하여도 돈벌이가 잘 되더라." 하며 서로 그런 일을 등한시하 여 왔음을 후회하더니 문득 남기는 손을 흔들며 유창한 말소리로 일본말 을 하기 시작하고 영서는 상(喪)당한 사람이 되어 머리수건을 흔들며 일 어나서 상복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땀이 배 어서 등을 적시니 그곳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지라. 선생 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아주 빨리 소원을 이루었다." 하시 니 두 사람이 비로소 정신을 차려 부끄러워하는지라. 선생께서 두 사람에 게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큰 사람 되는 일을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 음을 크고 바르게 하여 그칠 곳을 알아야 할 것이오, 한 가지라도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실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안되느니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金 永西와 鄭 南基가 와 뵈인 後에 兩人이 서로 私語로 酬 酌하되 南基는 日本語學을 배운 사람을 불어워 하야 가로대 近來에 는 日本語를 通한 사람은 顯達도 쉽고 돈버리도 容易하더라 하며 永西는 俳優를 불어위 하야 가로대 近來에는 劇戱를 잘하여도 돈버 리가 잘되더라 하야 서로 그런 일을 等閑視하엿슴을 後悔하더니 문 듯 南基는 손을 흔들며 流暢한 口調로 日本語를 말하고 永西는 喪 人이라. 喪巾을 흔들며 일어나서 喪服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 이면서 歌舞를 演奏하야 汗出沾背하거늘 一座가 大笑하는지라. 先 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너히는 早速히 所願을 成就하엿다 하시니 兩人이 비로소 精神을 차려 붓그러워하는지라. 다시 일너 가라사대 大人을 배우는 者 맛당히 마음을 正大히 하야 그칠 곳을 알어야 할 것이오, 한가지라도 分外의 생각을 가지며 실업슨 말을 함이 不可 하다 하시니라.
87. 하루는 손 병욱의 집에 가시니 종도 들이 많이 모였음으로 병욱이 그 아 내를 시켜서 점심밥을 짓게 하더니 날씨가 매우 더워서 그녀가 괴롭게 여 기고 부엌에서 홀로 불평을 하였더니 문득 눈과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와사증이 생기거늘 황 응종이 보고 놀래서 선생께 말씀드리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불평한 말을 하다가 부엌을 주재하는 조왕신에게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음이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시며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이 글을 부엌에서 불사르며 잘못을 빌게 하라." 하시니 병욱의 아 내가 그대로 하여 곧 나으니라.原文: 하로는 孫 秉旭의 집에 가시니 從徒들이 만히 모엿슴으로 秉旭이 그 妻를 식혀서 午飯을 지을 새 日氣가 甚히 더움으로 그 妻가 괴 롭게 녁여 부억에서 홀로 不平한 말을 하엿더니 문듯 와사症이 發 하거늘 黃 應種이 보고 놀내여 先生? 告한대 가라사대 이는 不平 한 말을 하다가 ?王에게 罰을 바듬이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秉旭 의 妻로 하여금 부억에 불사르며 謝過하라 하시니 秉旭의 妻가 그 대로 하야 곳 나으니라.
88.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에게 물어 보시기를 "네가 남들과 싸움을 많이 하 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리 하였나이다." 하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표범의 단(丹)이 들어서 싸움을 잘하니 이제 그 기운을 빼어내고 사람의 기운을 넣으리라." 하시더니 이 후로는 공우 의 성질이 온화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혹시라도 싸움하는 사 람들이 있으면 공포심이 생겨서 곧 멀리 피하니라.原文: 大興里에 계실 새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남과 싸홈을 만히 하엿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리하엿나이다 다시 일너 가라사대 네게 豹丹이 들어서 싸홈을 잘하니 이졔 豹丹을 ?어내고 人丹을 너흐리 라 하시더니 이 後로는 公又의 性質이 溫和하게 되야 싸홈을 즐기 지 아니하고 或 싸홈하는 사람이 잇스면 恐怖心이 생겨서 곳 멀니 避하니라.
89. 무신(1908)년 8월 어느 날 김 덕찬이 선생께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오늘 저희 누이동생 집에서 잔치가 있으니 소풍 겸하여 나가사이다." 하니 말 씀하시기를 "내 술을 먼저 마시라." 하시므로 덕찬이 "무슨 술이 있나이 까." 하고 다시 물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박 공우가 술과 삶은 닭을 가져와서 선생께 올리니라. 原文: 八月 어느 날 金 德贊이 先生? 엿주어 가로대 오늘 내 妹家에 잔 채가 잇스니 소풍 겸하야 나어가사이다. 가라사대 내술을 몬저 마 시라. 德贊이 가로대 무슨 술이니잇가. 가라사대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朴公又가 술과 熟鷄를 가저와서 先生? 올니니라. (김 덕찬의 누이동생 집 墓祭가 있던 날이라 한 기록도 있다.)
90. 무신(1908)년 겨울 어느 날 아침에 대흥리로 부터 태인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실 때 박 공우는 해가 뜨면 길이 질어질까하여 미리 젖은 신발 을 하였더니 선생께서 보시고 "젖은 신발을 하였느냐." 하시며 손으로 동 쪽 산마루에 솟아오르는 해를 향하여 세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라오지 못 하다가 살포정 주막에 들어 쉬시니 그제서야 해가 문득 높이 솟아 오르더 라.原文: 이해 겨울 어느 날 아참에 大興里로 부터 泰仁 새올 崔 昌祚의 집 으로 가실 새 朴 公又는 해가 올으면 길이 즐가하여 즌 신발을 하 엿더니 先生이 보시고 진 신발을 하엿나냐하시며 손으로 東嶺에 솟 아 올으는 해를 向하야 셰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으지 못하다가 살 포정 旅舍에 들어 쉬시니 그졔야 해가 문듯 놉히 솟아 올으더라.
91. 최 창조의 집에 이르시어 벽력표를 묻으시니 즉시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 나며 천지가 진동하거늘 곧 거두시고 다음날 동곡약방에 이르시니 신 원 일이 여쭈어 묻기를 "진묵대사는 북두칠성을 칠일 동안 가두었다 전해 오 는데 옳은 말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 고 이날부터 석 달동안 칠성을 가두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현 세상에 천 문학자가 많다하나 북두칠성이 나타나지 아니한 일을 발표한 자가 없구 나." 하시니라. 原文: 崔 昌祚의 집에 일으사 霹靂表를 무드시니 즉시 雷聲이 大發하야 天地가 震動하거늘 곳 거드시고 翌日에 銅谷藥房에 이르시니 辛元 一이 엿주어 가로대 震默大師는 七星을 七日동안 가두엇다하니 올 흐니잇가 가라사대 이졔 試驗하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三個月동안 七星을 가두신 後에 가라사대 現世에 天文學者가 만타하되 七星이 나터나지 아니한 일을 發表한 者가 업다 하시니라.
92. 최 창조의 집에서 공우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눈을 많이 흘겨 보 았느냐." 하시므로 공우가 대답하여 "그러하였나이다." 하고 말씀드리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거늘 공우가 선생께 하 직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르러 눈병이 크 게 일어나 한 달 동안을 고통받다가 하루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 나았는지라. 곧 선생께 와 뵈이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눈병으로 매우 고생하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러하였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더라. 원래 공우는 성질이 매우 급하여 싸움을 즐기고 눈 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는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눈짓이 고와지니라.原文: 崔 昌祚의 집에서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눈을 만히 흘겨 보 앗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집으 로 도라가라 하시거늘 公又가 先生? 하직하고 집으로 도라올 새 길에서 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름에 眼疾이 大發하야 한 달 동안을 苦痛하다가 하로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이 나 엇는지라. 곳 先生? 와 뵈이니 가라사대 眼疾로 辛苦하엿나냐. 對 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先生이 웃으시더라. 元來 公又는 性 質이 慓悍하야 싸홈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일로부터는 性 質이 부드럽고 눈짓이 고아지니라.
93. 공우가 술이 과하여 술로 실수를 하는 일이 많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가 술을 즐기니 너의 주량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많이 주 시거늘 공우가 계속 받아 마시고 취하였는지라. 선생께서 다시 말씀하시 기를 "너는 한 잔 술밖에 못된다." 하시더니 이 뒤로부터는 술 한 두잔만 마셔도 곧 취하여 더 마시지 못하니라.原文: 公又가 술이 過하야 酒失이 만터니 하로는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술을 즐기니 酒量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만히 주시거늘 公又가 連 하여 바더 마시고 醉한지라. 다시 가라사대 한잔 술밧게 못된다 하 시더니 이 後로는 一二杯만 마서도 곳 醉하야 더 마시지 못하니라.
94. 무신(1908)년 겨울에 김 덕찬이 그 자녀의 혼사를 시키려 하니 모든 사람 이 물품과 금전으로 부조를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조 할 것이 없으니 날씨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더니 이 해는 매우 춥고 날씨가 여러 날동안 아주 고르지 않아 매우 염려하였으나 선생께서 약속하신 그 날에 이르러서는 예외로 따뜻하고 날씨가 고르니라. 原文: 金 德贊이 그 子婚을 지내려할새 모든 사람이 物品과 金錢으로 扶 助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는 扶助할 것이 업스니 日氣로나 扶助 하리라 하시더니 이?에 天候가 連日 險惡하여 甚히 憂慮하든 中인 대 그 期日에 이르러서는 例外로 溫和하니라.
95. 무신(1908)년 11월에 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 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한 걸음이라. 이 뒤에 일을 네게 알리리라." 하 시더니 이 날에 차 윤경이 선생께 와서 뵙고 고 부인이 눈병으로 고통받 고 있음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돌아갔다가 다음날 태인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러 오라." 하시므로 윤경이 곧 돌아갔다가 다음날에 살포정에 도착해보니 선생께서 아직 오시지 아니하였으므로 곧 소루원 주 점에 이르니 주막집 주인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 시면서 차 경석이 와서 묻거든 그 곳으로 보내라 하셨다 하거늘 윤경이 새올로 갈 때 일본군 수백명이 길가에 진을 치고 사는 곳과 길을 가는 이 유를 묻더라. 새올에 이르러 선생께 뵈이니 날이 이미 저물더라. 이 날밤 에 윤경에게 명하시어 "밤새도록 자지 말고 밖에 머물면서 집 주위를 돌 아라." 하시고 닭소리가 난 후에 윤경을 데리고 백암리로 향하여 떠나시 더라.原文: 十一月에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井邑으로 가리니 이 길이 吉行이라. 이 後에 일을 네게 알니리라 하시더니 이날에 車 輪京이 와 뵈입고 高夫人이 眼疾로 苦痛함을 알외니 가라사대 이졔 도라갓 다가 明日에 泰仁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輪京이 곳 도라갓다가 翌日에 살포정으로 오니 先生이 아즉 오시지 아니하엿거늘 곳 소루 원 酒店에 이르니 店主가 말하되 先生?서 새올 崔 昌祚의 집으로 가시면서 車輪京이 와 뭇거든 그곳으로 보내라 하셧다하거늘 輪京 이 새올로 갈 새 日本兵 數百人이 道中에 留陣하야 居住와 出行理 由를 뭇더라. 새올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날이 임의 저물더라. 이 날밤에 輪京을 命하사 밤이 맛도록 자지 말고 밧게 잇어 돌라 하시고 닭의 소리가 난 後에 輪京을 다리고 白巖里로 向하야 ?나 시니라.
96.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이르시어 아침을 잡수시고 다시 정읍으로 가실 때 때로는 앞서 가시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 서시기도 하시며 너덧 걸음을 걸 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길에서 일본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하시고 정읍 노송정에 이르시어 다시 말씀하시기를 "좀 지체하 였다가 감이 좋으리라." 하시고 반시간쯤을 지내신 후에 다시 떠나시어 그 모퉁이 큰 못가에 이르시니 말탄군인들이 많이 오다가 되 돌아간 자취 가 있더라.(선생께서 그 자취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이 어찌 대인의 앞 길에 쫓아오리오 하시거늘 윤경이 그 근처 사람에게 물으니 과연 기병 수십명이 달려 오다가 그 곳에서 되돌아 갔다 하더라.)原文: 白巖里 金 京學의 집에 이르사 朝飯을 잡수시고 다시 井邑으로 가 실 새 或 압서기도 하고 或 뒤서기도 하사 四,五步를 걸으신 後에 가라사대 이 길에는 外人을 對하는 것이 不可하다 하시고 井邑 老 松亭에 이르사 가라사대 좀 遲滯함이 可하다 하시고 半時辰을 지내 신 後에 다시 ?나사 그 모통이 큰 못가에 이르니 馬兵이 만히 오 다가 되도라간 자취가 있더라.
97. 그 곳에서 대흥리로 가려면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서 한쪽 길은 정읍군을 통과하는 큰 길이요, 한쪽 길은 샛 길이라. 윤경이 어느 길로 가실 것인 지를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어찌 샛 길로 다니리오." 하시 고 큰 길을 취하여 정읍 읍내를 통과하시니 좌우 측에 즐비한 일본사람들 의 상점에서 한 사람도 밖에 나선 사람이 없더라. 대흥리에 이르시어 고 부인의 눈병을 낫게 하시고 이어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니 라. 原文: 거긔서 大興里로 가려면 兩條路가 分岐되야 한 길은 井邑郡을 通過 하는 大路오. 한 길은 狹路라. 輪京이 어느 길로 行할 것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君子 엇지 狹路로 行하리오 하시고 大路를 取하야 井邑郡을 通過하시니 左右側에 外人의 商店이 만히 잇스되 한 사람 도 밧게 나선 者가 업더라. 大興里에 니르사 高 夫人의 眼疾을 낫 게 하시고 因하야 戊申 臘月 公事를 行하시니라.
98. 하루는 경석의 검은 두루마기옷 한 벌을 가져오라하사 입으시고 속 옷를 벗으신 후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물어 말씀하시 기를 "이러 하면 일본사람과 같으냐." 하시므로 모두 대답하여 말씀드리 기를 "같으니이다." 하니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 에서 글을 배울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으로 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는 그 서당에 오지 아니하고 다른 서당 에 다니다가 얼마 후에 병들어 죽었는데 그 아이의 신명이 원한을 품었 다가 이제 와서 나에게 원을 풀어 주기를 구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하고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 옷을 싫어하는 줄을 알고 일본 옷을 입어달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京石의 黑周衣 한 벌을 가저오라하사 닙으시고 內衣를 벗으 신 後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從徒에게 무러 가라사대 이러하면 日本人과 갓흐냐. 모다 對하여 가로대 갓흐니이다. 다시 벗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幼時에 書塾에서 글 배울 ?에 한 아해로 더부러 먹희롱을 하다가 그 아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도라가서 다 시 오지 아니하고 다른 書塾에 通學하다가 그 後에 病들어 죽엇는 대 그 神明이 怨恨을 품엇다가 이졔와서 나에게 解寃을 求함으로 엇더케하면 解寃이 되겟나냐고 무르니 그 神明이 내가 日本服을 슬 혀하는 줄을 알고 日服을 닙으라 함으로 내가 이졔 그 神明을 慰勞 함이로라 하시니라.
99. 대흥리에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고 기유(1909)년 정월 초 사흣 날에 관청의 재앙를 피하사 백암리 김 경학의 집으로 가셨더니 태인 읍에서 경학의 형이 사람을 보내어 경학을 불러 가거늘 선생께서 발을 만 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속담에 발 복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다 행이요, 잘못가면 불행이라 하는 것을 일러 말하는 것이라." 하시고 곧 홀로 길을 떠나시어 최 창조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그 앞 소나무 숲을 통 하여 최 덕겸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시니 모든 사람이 계시는 곳을 알지 못하더라. 원래 경학의 형은 경학이 도술부리는 사람에게 빠져서 집안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경학을 부르고 한편으로는 그 도술하는 사람을 관청에 고발하여 벌을 받게 하려 함이라. 경학이 집을 떠나 읍으로 가다가 길 중간에서 순검에게 붙들려 같이 집으로 되돌아와 서 선생을 찾으니 선생께서 안 계심으로 최 창조의 집까지 갔다가 찾지 못하니 할 수 없이 돌아가니라. 原文: 大興里에서 戊申 臘月公事를 行하시고 己酉 正月 三日에 官災를 避 하사 白巖里 金 京學의 집으로 가셧더니 泰仁邑에서 京學의 兄이 사람을 보내여 京學을 불너 가거늘 先生이 발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俚言에 발福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幸이오, 잘못가면 不 幸이라 함을 일음이라 하시고 곧 ?나사 獨行으로 崔 昌祚의 집에 가셧다가 다시 그 압 松林을 通하야 崔 德兼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 시니 모든 사람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니라. 元來 京學의 兄은 京 學이 術客에게 迷惑하야 家産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듯고 一面 으로는 京學을 불으고 一面으로는 官府에 告하야 術客을 잡어 懲治 하려 함이라. 京學이 집을 ?나 邑으로 가다가 中路에서 巡檢에게 붓들녀 帶同되여 집으로 되도라와서 先生을 찻다가 업슴으로 崔 昌 祚의 집?지 왓다가 찻지 못하고 도라가니라.
100. 기유(1909)년 정월 초닷샛날에 동곡에 이르시어 며칠 뒤에 태인으로부터 무사히 된 전말을 들으신 후 말씀하시기를 "정읍의 일은 하루 공사인데 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아침에 풀었고 태인 일은 하루아침 공사인데 경학 에게 맡겼더니 하루 내내 걸렸으니 경석이 경학보다 낫다." 하시고 또 말 씀하시기를 "경석은 병조판서 감이요, 경학은 사람이 겨우 직장(直腸)이 나 한자리 할 위인이라. 돌리기 어려우나 돌리기만 하면 착한 사람이 되 리라." 하시니라. 原文: 五日에 銅谷에 이르시니 數日後에 泰仁으로부터 無事히 된 顚末을 報告하거늘 가라사대 "井邑일은 하로 公事인대 京石에게 맛겻더니 一朝에 ?으고 泰仁일은 하로 아참 公事인대 京學에게 맛겻더니 一日을 걸녓스니 京石이 京學보다 낫다." 하시고 ? 가라사대 京石 은 兵判감이오. 京學은 爲人이 直腸이라. 돌니기 어려우니 돌니기 만 하면 善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101. 하루는 박 공우, 황 응종을 데리시고 태인 읍에 있는 주막에 이르사 신 경원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백순검을 만나야 하겠으니 그를 데 려 오라." 하시더니 말씀이 마치자 말자 백 순검이 그 짚 앞으로 지나가 거늘 신 경원이 나가서 선생께서 계신 곳을 알려주니 백 순검이 곧 뛰어 들어와서 선생을 체포하여 묶는지라. 선생께서 공우에게 명하시어 말씀하 시기를 "네게 있는 돈 백냥을 나에게 주고 최 창조의 집에 갔다오라." 하 시니 박 공우가 명을 받들고 가거늘 또 황 응종과 신 경원을 불러 각자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백 순검에게 돈 백냥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 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래였도다. 이것을 적다고 생각하지 맣 고 그대의 생활에 보태어 써라." 하시니 백 순검이 사례한 뒤에 묶었던 것을 풀고 물러가니 이것은 백 순검이 선생을 붙들어서 돈을 빼앗으려 하 는 줄 미리 아시고 그 욕심을 채워 주심이더라.原文: 하로는 公又, 應鐘을 다리시고 泰仁邑 旅舍에 이르사 辛 京元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白 巡檢을 만나야 하겟스니 그를 다려 오라. 말삼이 맛치자 白 巡檢이 그 집 압흐로 지나거늘 京元이 나가서 先 生의 계신 곳을 알니니 白 巡檢이 곳 ?여 들어와서 先生을 捕縛하 는지라. 先生이 公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네게 잇는 돈 百兩을 내 게 傳하고 崔 昌祚의 집에 갓다오라 하시니 公又가 應命하고 가거 늘 ? 應鍾과 京元을 불너 各히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白 巡檢에게 돈 百兩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 래엿노라, 이것을 적다고 하지 말고 用에 보태여 쓰라. 白 巡檢이 致謝한 後 捕縛을 ?으고 물너가니 大抵 그가 先生을 붓드러서 돈 을 ?앗으려 하는 줄을 알으시고 그 所欲을 채워주심이러라.
102. 하루는 전주 불가지에 있는 김 성국의 집에 계실 때 김 덕찬이 선생을 곁 에 모시고 있다가 선생께서 하시는 어떤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는 말씀 으로 알면서 거짓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더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 용소리에 있는 김 의관의 집으로 가서 자고 오라." 하시므로 덕찬 이 명을 받들고 용소리에 갔다가 김 의관의 집 문 앞에서 술 취한 사람을 만나 심한 욕을 당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되돌아오거늘 선생께서 문 밖에 나와서 바라보시며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왜 자고 오지 않고 벌써 돌아오느냐." 하시더니 술을 주시며 마음을 풀게 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사귈 때에는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거늘 어찌 마음을 스스로 속 이느냐." 하시니 덕찬이 처음에는 선생께서 이유없이 용소리에 자신을 보 내어 술 취한 사람에게 행패를 당하게 하신 것을 불평히 여겼다가 이 말 씀을 듣고 나서 비로소 자신이 선생의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이 알면서 거짓으로 그러하겠다고 한 것을 선생께서 아시고 실없는 취한 사람을 만 나도록 하여 그 마음을 다스리신 줄을 깨닫고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여 비록 한 마음 한 생각이라도 삼가니라.原文: 하로는 全州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계실 새 金 德贊이 侍側하다가 先生의 무슨 말삼 ?헤 속으로는 실업게 알면서 거즛 應諾하엿더니 다시 일너 가라사대 이졔 龍巢里 金 議官의 집에 가서 자고오라 하심으로 德贊이 應命하고 龍巢里에 갓다가 金 議官집 門압헤서 醉 한 사람을 만나 悖辱을 만히 當하고 憤을 이긔지 못하야 되도라 오 거늘 先生이 門밧게 나서 바라보시고 웃어 가라사대 웨 자지 아니 하고 도라오나냐 하시며 술을 주어 가라사대 사람을 사굄에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어늘 엇지 마음을 스사로 속이나냐 하시니 德贊이 처음에는 先生이 無故히 龍巢里에 보내여 悖辱을 當하게 하신 것을 不平히 녁엿다가 이 말삼을 듯고 비로소 先生의 말삼 ?헤 속으로 는 실업시 알면서 거짓 應諾한 것을 洞燭하사 실업슨 醉한 사람을 만나도록 懲治하신 줄을 ?닷고 일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야 비록 一思一念 이라도 삼가니라.
103. 기유(1909)년 6월에 구릿골에 계실 때 종도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 을 걱정하거늘 선생께서 김 갑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청수(淸水) 한 동이를 길어다 놓고 옷을 모두 벗은 후에 그 물동이 앞에 합장하고 서 있 어라. 이제 너에게 장군의 영(令)을 붙여서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불러 넘겨와 모든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주리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하 신대로 하여 물동이 앞에 서 있으니 문득 서쪽 하늘로부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내리거늘 이에 다시 명하사 "그 물을 쏟아버리고 옷을 입으라." 하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도 잘 수련 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原文: 六月에 銅谷에 계실 새 從徒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을 걱정하 거늘 先生이 甲七다려 일너 가라사대 淸水一 盆을 길어다 놋코 上 下衣를 벗고 淸水압헤 合掌하고 서 잇스라. 이졔 네게 將令을 붓처 서 西洋으로부터 雨師를 불너 넘겨 萬民의 渴仰을 풀어주리라. 甲 七이 命하신 대로하야 水盆압헤 섯스니 문듯 西天으로부터 黑雲 이 이러나며 大雨滂?하거늘 이에 命하사 淸水를 쏘다버리고 옷을 닙으라하시며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희들도 잘 修鍊하면 모든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104. 이때에 청주에서 괴질이 크게 일어나고 나주에서도 크게 퍼지니 인심이 흉흉한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북으로 마주 터지니 장차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 없어지게 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말 씀하시기를 (勅令 怪疾神將 胡不犯 帝王將相之家 犯此 無辜蒼生之家乎: 괴질신장에게 명령을 내리노니 어찌 제왕이나 장군 재상의 집은 범치 못 하면서 이렇게 무고한 백성들의 집들만 침범하느냐) "내가 이것을 대신해 서 받으리라." 하시고 김 형렬에게 명하시어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서 가져오게 하여 한 벌씩 갈아 입으시고 그 병을 앓으신 후에 설사하여 옷을 버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약한 사람들이 걸리면 다 죽겠도다." 하시 더니 그 후로 괴질이 곧 가라앉느니라.原文: 이?에 淸州에서 怪疾이 猖獗하고 羅州에도 熾盛하야 人心이 洶洶 한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南北으로 마조 터지니 장차 無數한 生命 이 殄滅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代贖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新衣五件을 急히 지어서 한 벌씩 갈어 닙으시고 泄瀉하여 버리신 後에 가라사대 弱者가 걸 니면 다 죽겟도다하시더니 그 後로 怪疾이 곳 寢息되니라.
105. 언제나 달밤에 길을 가실 때에는 구름이 달을 가렸으면 손으로 달을 향하 여 오른쪽으로 저어 구름을 둥그렇게 열어 젖히시어 달빛을 내 비치게 하 시며 목적지에 도착 하신 뒤에는 다시 손으로 달을 향하여 왼쪽으로 젖히 시기만 하시면 구름이 다시 합해져서 원래 모양대로 회복 되니라. 原文: 매양 月夜에 길을 가실 ?에 구름이 달을 가렷스면 손으로 달을 向 하여 右旋하야 구름을 둥그럿케 열어 헛치사 달빗을 내빗최이며 目 的地에 達하신 後에 다시 손으로 달을 向하야 左旋하시면 구름이 다시 合하야 原狀대로 回復되니라.
106. 원평시장에 있는 김 경집의 주점 객사을 단골집으로 정하시고 오랬동안 머무르고 계실 때 누구든지 선생의 말씀이라 말하고 술과 음식을 청하면 돈이 있던지 없던지 모두 허락하고 음식을 주었는데 태인 청석골에 사는 강 팔문이 술과 음식을 많이 먹은 후에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주인이 보 았으나 선생의 말씀이 있었다 거짓 핑계를 대고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더 니 이로부터 급체를 당하고 그 후 여러 가지 병을 얻어 죽을 지경에 이르 거늘 신 경수가 그 사유를 말씀드려도 선생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더니 그 후에 또 위급함을 와서 고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몹쓸 일을 해서 신명에게 죄를 얻어 그릇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 할 수없다." 하시 더니 그 후에 곧 죽으니라. 原文: 院坪市場 金 京執의 酒店에 단골 主人을 定하시고 오랫동안 逗留하 실 새 누구든지 先生의 말삼을 憑托하야 酒食을 請하면 代金 有無를 不許 하고 다 許諾하더니 泰仁 靑石골 姜 八文이 酒食을 만히 먹은 後에 돈을 携帶한 것을 主人에게 發見되엿스나 先生의 말삼이 잇다고 거즛 憑托하야 돈을 支拂치 안코 갓더니 일로부터 挾滯하야 ?症을 일우어 死境에 이르 거늘 申 京守가 그 事由를 알왼대 先生이 對答지 아니하시더니 그 後에 ? 危急함을 來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못슬 일을 行하야 神明에게 罪 를 어더 그릇 죽엄을 하게 되엿스니 할 일업다 하시더니 그 後에 곳 死亡 하니라.
107. 종도들이 언제나 근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사유를 선생께 여쭈어 고하기만 해도 선생께서 들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신 중에 저절로 풀리게 되는데 만일 여쭈어 고한 뒤에도 근심을 놓지 아니하면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알았으니 근심치 말라." 하시니라.原文: 從徒들이 매양 근심된 일이 잇슬?에 그 事由를 先生? 稟告하면 無爲中에 自然히 풀니게 되는대 만일 稟告한 後에도 오히려 근심을 놋치 아니하면 慰勞하야 가라사대 내가 임의 알엇스니 근심하지 말 라 하시니라.
108. 언제나 종도들에게 일을 명하실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날을 주시어 어 기지 않게 하시고 만일 명을 받은 종도가 간혹 그 날짜 내에 날씨가 순조 롭지 못하여 어김이 있을까 우려하면 선생께서 일깨워 말씀하시기를 "내 가 너희에게 어찌 고르지 못한 날을 일러 주겠느냐." 하셨나니 늘 그렇지 만 선생께서 정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순조롭지 못한 때가 없었느니라.原文: 매양 從徒들에게 일을 命하심에 반다시 期日을 定하여 주사 어긔지 안케 하시며 만일 命을 바든 者가 或 그 期日에 日氣의 不調로 因 하야 어김이 잇슬가 憂慮하면 先生이 일?워 가라사대 내가 너희 에게 엇지 不調한 날을 일너주겟나냐 하셧나니 大抵 先生의 定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不調한 ?가 업섯나니라.
109. 언제나 종도들을 어느 곳에 보내시되 해야 할 일을 미리 말씀하시지 아니 하신 때가 많이 있었으나 종도들은 항상 그렇게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다시 묻지 아니하고 명 하신 곳에 가보면 반드시 무슨 일인지 알게 되더라.原文: 매양 從徒를 어느 곳에 보내시되 使命을 말삼치 아니하신 ?가 만 히 잇셧스나 從徒들은 恒常 그럿케 經驗하엿슴으로 다시 뭇지 안코 命하신 곳에 가면 반다시 무슨 일이 잇더라.
110. 날이 가물어 심할 때에는 비를 주시고 비를 주시면서 맑은 물동이에 소변 을 좀 타시면 그 비로 인하여 곡식들이 더욱 풍성해지고 해충들의 재해가 있을 때에는 맑은 물동이에 고추가루를 좀 풀어 넣으면 곧 해충들의 재해 가 그치니라. 原文: 가물 ?에 비를 주실 새 淸水동우에 小便을 좀 타면 그 비로 因하 여 穀類가 豊穰하고 蟲災가 잇슬 ?에는 苦草가루를 풀어 너으면 곳 蟲災가 것치더라.
111. 선생께서 더울 때에 길을 나서시면 구름이 해를 가리는 양산과 같이 되어 햇빛을 가려서 볕이 쪼이지 아니하니라.原文: 더울 ?에 出行하시면 구름이 日傘과 갓치 太陽을 가리워 볏이 ? 이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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