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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 후신 편을 읽고서 : 1편 - 강아지님 과연 그럴까요?

단주 후신 편을 읽고서 : 1편 - 강아지님 과연 그럴까요? 2

열린마당  지구별여행자 지구별여행자님의 글모음 쪽지 2015-09-24 19:55 6,293

강아지님의 글을 읽고 많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점 먼저 감사드리립니다. 짧다면 짧을수도 있는 일주일 동안 정말 오랜만에 ‘원과 한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깊이 몰입하여 고민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하나 깨칠수가 있었습니다. 그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강아지님의 글은 참으로 큰 정성이 들어가 있어서 언제 읽어도 한겨울에 뜨겁지만 끌리는 호빵을 먹는 듯한 포만감이 있어서 좋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 정성에 제가 평가하거나 토를 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주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진리 도담에 재미와 다양한 관점을 확보하는 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서 입니다. 또 사적으로도 강아지님을 알고 있으며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나누는 대화 시간이 저에겐 언제나 즐겁습니다. 오직 대화 나눌 여유로운 시간이 많지 않음이 항상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가 쓰는 이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을 나눌 대면 시간이 거의 없어서 이 게시판을 통하여 진리 탐구의 장으로 서로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싸움 구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싸움을 걸어보겠습니다. 그래서 1편 제목을 굉장히 도발적으로 지어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싸움의 의미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의 인격을 헐뜯거나 없는 말을 지어내서 모함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그 어떠한 면에서 누르겠다는 호승심의 싸움이 아니라 상제님 진리의 진면목을 알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적 치열함 혹은 간절함을 상대라는 반사경을 통하여 스스로 점검해서 더 나아가기 위한 동력 마련을 위한 자기 싸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진리 공부에 대한 다양한 자신의 민낯을 부분적으로 토로하고 교류함으로써 서로간의 정화와 상승 작용을 얻기 위한 싸움을 할 것입니다. 즐겁게 관전해 주시고 보기 흉한 부분이 나온다면 영웅의 도심을 내어 날카롭게 지적해 주신다면 더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제가 많이 부족하고 글을 제대로 다듬지 못한 상태에서 때론 배설하듯이 쏟아낼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간혹 문장의 모호함이나 문맥의 일관성에서 부족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오류를 제대로 바로잡아 올려야 하는 것이 도리이나 부족한대로 그 부족함은 글을 읽는 분들의 진리 도심으로 잘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때론 제가 못본 길을 제시해 주시면 저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하기에 글을 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와 같은 부족함이 유발할 오해 혹은 혼선을 조금이라도 상쇄시키기 위하여 이 글이 전개되는 기본 전제적 방향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글을 읽는 입장이 상제님 진리의 직접적인 권역 안에 있는 분들의 입장뿐 아니라 세운의 관찰자 입장에서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관점들을 제대로 분류해서 유기적 흐름을 끌어내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첫 느낌에 의존해 전개하겠습니다.
둘째는 강아지님 글의 전제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보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던 진리의 개념까지 ‘꼭 그 길만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고 살펴보았습니다. 게다가 경전 말씀들도 분명히 듣고 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가공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에 좀 더 가산점을 두고서 얽매이지 않고 발상해 보겠습니다.
셋째는 제가 최근에 진리 공부한 지가 꽤 오래된 연유로 인용어구의 출처를 명확히 찾아서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 의견과 인용출처의 혼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문헌에서 읽은 글의 관점에서 제가 깊이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 의견인양 기술한 부분이 있다면 그 점은 지적하여 주시면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할 생각은 전혀 없음을 밝혀 드립니다.
 
강아지님 글의 핵심 주제는 ‘단주 해원을 시작으로 하여 선천의 원과 한을 씻어내기 시작하는데 그 시발점인 단주의 후신이 화은당 선사님이다!’라고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논증과 그 논증을 바탕으로 신앙의 심법 및 세운과 교운의 전개 방향에 대한 방향성도 제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문제 인식을 가졌습니다.
‘원과 한’이란 무엇일까? 특히 ‘단주의 원과 한의 실체는 무엇일까?’였습니다. 즉 원과 한의 실체를 좀 더 정확히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알아야만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제대로 해원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편부터 전개할 내용은 단주의 원과 한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한번 고찰해보고 다른 방식의 해원의 방법론과 또 강아지님의 글을 그대로 인정하였을 때 해원의 의미를 새로이 조명해 보았습니다. 길지는 않게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바로가기 쪽지 2015-09-24 23:45
처마밑 고드름
다가올 춘풍을 모르고

활짝핀 봄꽃은
때이른 소나기에 놀라고

풀어헤친 옷고름
늦은 서리에 여미니

본색 드러난 가을산
울긋불긋단풍이
북풍한설이 무서워 하얗게 질리는구나. . .~~^^
화송 쪽지 2015-09-27 03:34
바로가기 ㅎㅎㅎㅎㅎ
시에 많은걸 담고있네요.
바로가기 아우님 반갑습니다.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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