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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욕먹어도 싸다

(수필) 욕먹어도 싸다 8

열린마당  선아 선아님의 글모음 쪽지 2016-05-10 07:16 4,567

먹어도 싸다

 

열흘 만에 다시 들렀다. 그 사이에 어머님 병상이 창가로 옮겨져 있다. 옮겨진 자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싸늘해진다.

크리스마스 날이라 늦은 아침을 먹고 남편과 경주 요양원에 어머님을 뵈러 갔다. 인기척에 눈을 뜨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금세 굳었던 얼굴이 펴진다. 자주 오지 못한 죄송함에 손을 잡으려다 멈칫거리고 말았다. 두 손에는 큰 장갑이 끼워져 있고 손목에는 장갑이 벗겨지지 않도록 테이프까지 감겨 있다. 손 대신에 쳐진 볼살과 주름진 목을 만져본다. 요양보호사가 요 며칠 상태가 좋아서 식사량도 늘리고 어제는 휠체어에 태워 산책도 시켰다고 한다. 장갑에 싸인 손을 의식했는지 코에 끼운 고무호스를 자꾸 빼려 해서 어쩔 수 없다며 오신 김에 장갑을 끼워도 좋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해 주고 가란다.

 

배가 고프다는 말에 점심이 곧 나올 거라고 위로하는 남편의 말을 듣더니 다시 잠에 빠진다. 그때 중년의 일행이 병실로 들어와 커튼이 쳐진 창가 쪽으로 몰려갔다. 두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딸로 보이는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높아져 갔다. 잠시 후 흰색 시트가 깔린 이동식 침대가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눈짓으로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나오면서 돌아보니 F21××는 방금 유명을 달리하고 시트에 싸여있다. 미처 감싸지지 못한 핏기 없는 엄지발가락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몇 년째 이곳에 들렀지만, 주검을 직접 목격한 것은 처음이라 내 일처럼 두렵다.

 

때마침 어느 방에선가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섬 집 아기노래가 흘러나왔다. 예전 아이들을 재울 때 불러주던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면 엄마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곤 했다. 노랫가락에 빠져 있다가 날짜를 기억하기 좋겠다는 간호사들의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십오 년 전, 크리스마스 날은 친정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너무 슬퍼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거리에는 온통 캐럴이 넘쳐났었다

 

이 방에는 F53××까지 여섯 명이 함께 있다. 창가로 옮겨진 어머님은 F28××로 이 방의 최고령자가 되었다. 살아내는 일은 감정 소모전일까. 어머님은 우리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자꾸 묻는다. 명절이나 생신 등 특별한 날에는 우리 집이나 인천 형님네로 갔던 걸 생각하나 보다. 오늘은 어머님 손에서 자란 큰아들도 데려와서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하자 표정이 어두워진다.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의 뒤를 따라오던 어머님의 눈과 마주쳤다. 손을 흔들자 어머님의 입에서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이 내 귀를 아프게 찔렀다.

ㅆ ㅣ ㅈ ㅗ ㅅ ㅇㅣ ㄷ ㅏ.”

충격이었지만 욕먹어도 싸다. 내가 필요할 땐 아이 키워 달라 맡겨 놓고서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는 요양원이라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는 친구가 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작은 아파트를 빌리고 요양보호사 두 명을 두었다. 일요일은 친구가 직접 돌본다. 그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비용을 물어보니 한 달에 오백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다. 어머님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담장이 붙은 아랫집 아주머니와 자주 다투었다. 치매 초기 증세에 의심증이 심했다. 숨겨둔 돈이 없어졌다고, 말리고 있는 고추가 줄었다고, 장독의 된장이 적어졌다고 아랫집을 의심하곤 했다. 인생은 분명 빈손으로 떠나는 것일진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월급으로 채운 지 보름도 안 되어 금세 비워지고 있는 내 통장을 걱정하고 있다. 나는 욕 먹어도 싸다.

 


호롱불 쪽지 2016-05-10 08:36
마음고생이 심한 일이네요. 노인분들 모셔본 분들은 공감하는 글입니다. 힘내세요.
선아 쪽지 2016-05-10 12:29
호롱불 넵,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성경신 쪽지 2016-05-10 13:00
가장 어려운 길이 효의길 효도인것같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을 느끼며 제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증산천하 쪽지 2016-05-10 14:51
슬픈 공감! 슬픈 현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누구나 다가올 수 있는 일 입니다.
요양원에 라도 모실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설에 모실 수 있는 형편이 되어 그렇게 해 드릴 수 있는 자식이 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자식들의 바램일 것 입니다.
부모님을 시설이나 집에서 모시고 있는 모든 분들 힘내시기를요..!!

애잔합니다..
해새 쪽지 2016-05-10 14:58
숙연...-_-
선아 쪽지 2016-05-10 22:18
성경신 효도는 저축과 같다고 합니다.
자식이 보고 배운다는 것이죠.
살아생전에 자주 찾아뵙는 것 뿐이군요.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것이...그럼에도 자주 찾아뵙기도 힘든 현실이랍니다.
선아 쪽지 2016-05-10 22:18
선아 쪽지 2016-05-10 22:19
증산천하 감사합니다.
슬픈 공감!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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