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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알터와 나

오리알터와 나 4

열린마당  선아 선아님의 글모음 쪽지 2016-05-10 12:33 4,656

오리알터와 나

 

대학교 졸업반으로 기억된다. 학교 담장을 돌아 자취방으로 향하던 길에 낯이 익었다는 생각을 하며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나의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우리 두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 하는 탄성과 함께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초등학교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와 친하게 지내다가 5학년 때 옆에 있던 학교로 전학을 갔기에 가끔씩 생각은 났지만 잊고 지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대순진리회에 몸담고 있단다. 그러면서 열변을 토했다. 종통이 어떻고 시루증()자와 솥정()이 어떻고.

 

내 마음속에서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반발은 못하고 내적 혼돈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친구를 만나고 나서 오리알터에 관심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물론 조부 때부터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지만 어린 내 마음은 할아버지가 어떤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전 재산 다 갖다 바치고 우린 이렇게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가끔 할머니께서는 어머니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쏟으셨는데 너희 집 때문에 우리 집이 망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상처 받을 것 같아서 김제에 계신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는 걸 그다지 반기진 않았다.

여기서 너희 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암 김병철 종사님으로 엄마의 큰아버지이시다. 내게는 종조부인 그 분의 영향으로 한의사였던 할아버지는 경주에서 재산 정리를 하고 김제로 이사를 하셨다. 할아버지의 묘소는 오랫동안 오리알터 안에 있었는데 내가 초등학교때 고향인 경주 단석산 자락에 이장을 하셨다.

 

집에는 숙부님(당시 오리알터에서 사무를 보셨던 이태우)께서 보내주시는 종교 관련 책이 있어서 가끔 들여다보곤 했지만 내게 어렵기도 했고 관심 밖의 세계였다. 부모님은 대화 중에 자주 구릿골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느 날 구릿골에서 손님이 한 분 오셨다. 그 분은 엄마의 사촌으로 청도대향원에 계신 분(김양호)이다. 어머니가 청수를 모시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서운해 하신 기억이 내 머릿속에 오래토록 남아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덕분에 나는 오리알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마른 장작에 불이 불 듯 증산교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고 또 탐독했다. 하지만 많이 알지는 못한다. [화은당실기]를 읽을 때는 수도 없이 울고 또 울었다.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선배도현님들의 마음이 와 닿았고 그 어려움을 내가 겪고 있는 듯하여 가슴이 아프고 저렸다.

많은 책을 읽으며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의심도 하며, 알 수 없는 부분도 더욱 많았지만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조부모님과 부모님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뿌리를 알면 알수록 믿음이 깊어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더 이상 사이비종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주변인이다. 외종조부님이나 조부님처럼 모두를 던져서 실천하는 실천인도 아니고 그저 좀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는 방관자이다.

나는 자주 오리알터에 가진 못한다. 마음은 늘 그 곳에 가 있는 나를 느끼지만. 오리알터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그 곳에 가면 마음이 즐겁고 들뜨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편안하다. 마음의 평화는 이런 것이리라.

방관자인 나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꿈은 가지고 있다. 퇴직하면 오리알터에 가서 즐겁게 봉사를 하며 지내고 싶다는 꿈! 소중한 나의 꿈을 위해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련다.


증산천하 쪽지 2016-05-10 15:07
법종교 오리알터는 선배 도현님들의 혈식으로 이루어진 곳 입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후손들이 오리알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상님들 삶의 전부 였던 오리알터..
그 시대를 함께 살아냈던 지금의 후손들..
그리고 아직 곳곳에 묻어 있는 그 분들의 숨결.

지금의 후손들이 느끼는 법종교를 향한 깊은 애심을 어떻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반의 반이라도 그 애심을 짐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맘입니다.
늦게 신앙을 했건 일찍 신앙을 했건 자신의 신앙적 뿌리를 돌아다 보게 되는 순간부터
오리알터는 후손들에겐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며 내가 돌아갈 자리라고 생각 할 것이며
그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 입니다.

후손 본인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조상들의 공력을 톡톡히 받고 있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과 입장을 나타낼 때 후손들은 법종교를 향한 깊은 애심을 깔고 있습니다.
그 생각과 입장이 다소 진부하고 고루하게 느껴진다 해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는 후손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 입니다.
천천히 조심스레 내디뎌야 하는 우리의 발걸음 속에 이해와 여유로움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선아님~
선아님의 오리알터 입성의 꿈을 응원합니다~~♥
언젠가는 선아님께서 오리알터에서 봉사 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뵐 때가 있겠지요^^
!원시반본!
해새 쪽지 2016-05-10 15:16
선아님의 이 글은 제가 법종교에 와서 참 신선하게 느꼈던 일들을 새삼 되새기게 합니다. 다른 도판은 연혁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이런 대를 이은 신앙사례를 쉽게 보기 힘들었거든요. 아마도 오리알터(육기초)라는 유형의 공간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오리알터는 법종교 사람 뿐만 아니라 상제님 도생들 모두의 고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오리알터를 일구시고 지켜오신 법종교 선배도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증산천하 쪽지 2016-05-10 19:32
해새 우리 모두의 고향임에 틀림 없습니다^^
천지부모가 계신 법종교가 있음에 감사할 뿐 이지요!
부모가 계신 곳이니 선사님께서 우리 도생들을 형제 자매 숙질로 묶어 놓으셨고 우리가 호형 호부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 합니다^^
감사하기도 감탄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선아 쪽지 2016-05-10 22:22
증산천하님, 해새님...우리 모두의 고향이 분명하지요?
오리알터에 가서 할아버지 사진이 있는 방에 가서 인사 드릴때 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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