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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증산 도생방(네이버 밴드)에 올린 글

범증산 도생방(네이버 밴드)에 올린 글 1

도생광장  해새 해새님의 글모음 쪽지 2018-02-25 10:16 3,421
https://band.us/band/67556765/post/1178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과거 증산도를 10년 이상 몸담은 후 수년간 교판에서 떠나 있다가 현재 증산법종교에 입교한지 5년차인 도생입니다. 다름 아니라 님의 글에서 증산법종교를 언급한 부분 중 사실과 다른 점과 아울러 다소 불미스런 표현이 있기에 글을 올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증산상제님의 딸 강순임이가 증산법종교를 창설하였으나 후에 청도대향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님께서 쓰신 글인데 여기서 사실과 다른 대목은 증산법종교가 후에 청도대향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청도대향원은 화은당(강순임)께서 선화하신 후 1대 회장을 역임하신 구암 정사님의 아들 김 모씨가 증산법종교의 교인들을 대거 이끌고 분파해나가 차린 교단(1965년)입니다. 설립당시는 교세가 상당했지만 오늘날은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즉 증산법종교와 청도대향원은 명칭만 바뀐 동일 교단이 아니라 카톨릭과 개신교의 관계처럼 전혀 별개의 교단입니다.

아울러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강순임이가.."라는 표현입니다. 저 또한 증산법종교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2013년도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되고 화은당실기 등을 통해 화은당의 행적과 증산법종교의 도사를 접해 본 바, 이 역시 증산상제님의 심모원려한 천지공사의 일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증산법종교가 진법이라든가 종통이라든가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서두에 말했듯이 10년 이상 몸담았던 증산도를 2005년도에 나오면서 특정 교단이 종통 혹은 진법이란 생각은 진작 접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8년의 공백 끝에 증산법종교에 입교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유치한 생각 때문이 아니고 그냥 오리알터가 외갓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컸고 또 이곳에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오리알터에 자리를 잡은 이후로 여러 일을 겪으면서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대해서도 나름 더 폭넓은 이해를 하게 되었고 아울러 과도기 교단들의 역할과 존재의의에 대해서도 한결 여유롭고 친근하게 바라보게 되더군요.

님께서 쓰신 "강순임이가.."라는 표현에서 제가 모 교단 시절 가졌던 타 교단 내지는 창교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적대감을 느꼈기에 장황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저의 오판이었다면 미리 사과 말씀 드립니다.


*
아시다시피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 중 핵심이랄 수 있는 해원공사의 첫 머리가 단주의 해원입니다. 그 단주의 원한 중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불초한 단주"라는 오명이 후세 수천년을 내려간 것입니다. 즉 편견에 의한 적대감의 가장 큰 희생양이 단주였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원한 쌓기(= 척 짓기)'의 폐단이 지금 이 순간도 교판 내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교운의 인물 뿐만 아니라 세운의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도생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참으로 신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바깥 지식과 정보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눌치 쪽지 2018-03-01 12:51
한세월 지나고나면 아집에의한 그런 행동들을 참회하고
부끄러워 해야할 날이 오겠죠
잘 읽었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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