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대는 보여줄수 없다고 하여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번에 책쓴다고 돌아다녀 보니, 각 교단의 신물을 그냥 초면에 보여주는 교단은 없습니다. 믿음이 쌓여야 겠지요. 인연과 믿음을 쌓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씨대모(鄭氏大母)님에 관하여
정씨대모(鄭氏大母)님에 관하여 1
지난 화천절(서기 2018년 10월 27일) 치성을 마치고 용화전경(龍華典經)을 작성한 김낙원 선생님의 오정동 교단 후계자이신 김상용(金相龍) 선생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김낙원(金洛元)의 선생님은 정씨대모(鄭氏大母)님을 삼년간 시봉(侍奉) 하였으며, 용화전경(龍華典經)에는기존 경전중 유일하게 정씨대모(鄭氏大母)님에 관한 기록이있습니다. 기록된 것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상용(金相龍) 선생님은 김낙원(金洛元) 선생님의 손자로 김낙원(金洛元) 선생님께서 전하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김낙원의 꿈에 증산대성께서 현몽하시어 시간과 장소(정읍)를알려 주시며 만나자고 하셨고, 그날 가보니 증산대성께서 “언제네 어머니(정씨대모)님이 찾아 갈 테니 잘 모셔라” 하시었다. 증산대성께서 알려주신 그 날에 정씨대모님께서 김낙원을찾아 가시었다. 정씨대모(鄭氏大母)는 김낙원에게 광주 무등산(無等山)에서100일 공부를 하라고 명(命)했고, 낙원은 무등산 규봉암에서 100일공부를 했다. (김낙원의 손자 김상용의 증언)
정씨대모님은 김낙원이 잘못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담뱃대로 때리면서 가르치셨다. 이 담뱃대는 지금도 김상용이 보관중이다. – 김상용 증언
김낙원이 만주(滿洲)로 간 것은 정씨대모님이 만주에 가서 기운을 받아오라고 명(命)하시기에 간 것이고– (김낙원은 인도교의 창교주 채경대와 같이 만주에 갔다)
김낙원은 의통(醫統)의 열리어 많은 병자(病者)를 치료해 주었으며, 정씨대모님께서 “남의 것을 받지 말고, 네것을 남에게 주어라”
가르쳤는데 그 가르침을 받들어 제자들이 모아서 올린 돈도 받지 않고 다 돌려 주었다. (김삼용 증언)
- 사모님이 항상 공부를 하실세 바가지만한 불덩이를 두 손으로 공덩이처럼 공 놀리듯 하시면서이불이 부딪히게 되면 천지가 박산 부서지듯 하리라 하시며 네 애비는 수화를 겸용하나 나는 화력만 쓰노라 하시니라.
- 또 밤에 출행하실새 나의 발자국을 꼭 찾았더라 만일 허방(虛方)치면 죽으리라 경계하시는데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사모님의 발자국만이는 밝은지라
- 하루는 금산사를 중심으로 장광팔십리가 평사낙안이라 하신지라
- 하루는 한탄강을 중심으로 남북이 갈리리라 하시고 우리나라가 세계통일하리라 하시니라
- 항상 세 뼘의 담뱃대를 입에 무시고 신장로에 나가 계시거늘 남이 꼭 한다고만 유(留)하니 남장부 여장부인데 나에 일에 간섭하지 말라 하시니라
김상용(金相龍) 선생님은 김낙원(金洛元) 선생님의 손자로 김낙원(金洛元) 선생님께서 전하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김낙원의 꿈에 증산대성께서 현몽하시어 시간과 장소(정읍)를알려 주시며 만나자고 하셨고, 그날 가보니 증산대성께서 “언제네 어머니(정씨대모)님이 찾아 갈 테니 잘 모셔라” 하시었다. 증산대성께서 알려주신 그 날에 정씨대모님께서 김낙원을찾아 가시었다. 정씨대모(鄭氏大母)는 김낙원에게 광주 무등산(無等山)에서100일 공부를 하라고 명(命)했고, 낙원은 무등산 규봉암에서 100일공부를 했다. (김낙원의 손자 김상용의 증언)
정씨대모님은 김낙원이 잘못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담뱃대로 때리면서 가르치셨다. 이 담뱃대는 지금도 김상용이 보관중이다. – 김상용 증언
김낙원이 만주(滿洲)로 간 것은 정씨대모님이 만주에 가서 기운을 받아오라고 명(命)하시기에 간 것이고– (김낙원은 인도교의 창교주 채경대와 같이 만주에 갔다)
김낙원은 의통(醫統)의 열리어 많은 병자(病者)를 치료해 주었으며, 정씨대모님께서 “남의 것을 받지 말고, 네것을 남에게 주어라”
가르쳤는데 그 가르침을 받들어 제자들이 모아서 올린 돈도 받지 않고 다 돌려 주었다. (김삼용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