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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참회

진정한 참회 10

도생광장  해새 해새님의 글모음 쪽지 2014-03-03 15:32 5,133
이 글은 수년 전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진정한 참회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 참고 삼아 올려봅니다. 글내용이 현재 시점에서 제가 얘기하려는 논점과 다소 헛도는 점도 있지만 감안해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azgian.blog.me/30018929832?Redirect=Log&from=postView

밀양, 참을 수 없는 ○○교의 얄팍함





전문을 옮기기에는 법종교 사이트와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보아 링크를 겁니다. 아래 문단은 링크한 내용 중에 제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와 맥이 닿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면회를 갔다온 신애를 휘감고 있던 분노가 원수를 용서하지 못한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용서의 기회를 박탈해버린 그들의 교리 때문이었다는 것을 죽었다 깨어나도 깨우치지 못할 것이다.


○○교의 교리는 다들 아시다시피 용서의 의미를 참으로 왜곡시켜 놓았지요. 극중 살인범처럼 자신의 범죄로 인해 통한과 절망의 세월을 보낸 유가족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이 '하나님'이란 이름의 절대자에게 회개했다고 죄책감을 다 털어버리고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그 사고체계를 보면 정말 끔찍할 정도입니다.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피해자에게서 용서의 기회조차 박탈해버린 회개. 그리고 죄사함 받음. 그건 피해자의 입장에선 차라리 여전히 뉘우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보다 더 가증스런 일일 겁니다. 그 살인범은 면회 온 신애(전도연)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며 수혜자 행세를 하지요.



살인범은 옥중 예배를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소위 '간증'이란 걸 했을 테고 그걸 지겨보는 교인들은 참으로 은혜충만한 감동을 또 느꼈을 겁니다. 역시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 자비로우심.. 이러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 순간 외동딸을 잃은 엄마는 여전히 절망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며 자신의 분노를 용서로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살인범의 참회는 누구를 향한 참회였나요? 살인범은 참회를 하고 마음의 평안까지 찾았는데 왜 피해자는 여전히 힘들어 하고 오히려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처절하게 자책해야 하나요?



진정한 참회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치유받아야 합니다. 얼마전에 제가 올린 에니멀커뮤니케이터 하이디 동영상이 참으로 감동을 주는 이유가 바로 진정한 참회의 본보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참회는 피해자와 가해자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치유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정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영화 밀양에 등장하는 참회는 거짓 참회였지요. 그 참회는 가해자와 주위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주었을런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한 존재인 피해자는 완전히 소외시켜버린 가증스런 참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참회를 '공인'된 참회로 규정지으면서 피해자의 치유받지 못한 상처를 이젠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공소시효 만료된 분노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참회라는 행위가 정말로 진정성을 가질려면 철저하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대일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양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열기 위해 소년이 가장 먼저 한 일도 고양이와 단둘이 마주 앉은 겁니다. 그리고 오직 고양이에게만 집중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게 참회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참회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타인들에게 혹은 저 위의 절대자에게 공인받고 죄사함받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 과정없이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진 참회라고 해도 진정성을 가지려면 피해자의 피드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 행위 자체로 용서받았다는 말을 누구도 해서는 안 되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건 영화 밀양에서 교인들이 저지른 똑같은 실수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인증' 자체가 피해자의 마음에 재차 상처를 주는 행위라는 걸 똑똑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참회는 애초에 피해자와 가해자간에 일대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참회는 순수한 참회라기 보다는 정략적 참회일 가능성이 높은 거지요. 정략적 참회건 순수한 참회건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마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공개참회는 어리석은 참회입니다. 그로 인해 피해자의 마음이 풀리고 상처가 치유되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더 다치게 될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참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이미 거짓 참회입니다. 그 참회는 결코 천지인신을 감동하게 하지 못합니다. 설령 그 목적이 아무리 장대하고 원대하다 할지라도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그 목적이 장대하고 원대할수록 피해자에겐 더더욱 소외감과 박탈감만 안겨주는 모래위에 쌓은 헛된 명분이고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업장짓기 밖에 안 되는 겁니다.
눌치 쪽지 2014-03-03 16:26
난 밀양이란 영화를 본적이 없읍니다만,
(내고향이 밀양이고, 영화촬영지마다 안내판도 서있지만~~ ^^)
예전에 어떤사람이 했던, 신앙과정에서의 자기행위에 대한 공개참회가 다시한번 생각나는군요...
얘기하면 다 아는 사람이죠..
하지만, 재삼 거론할 가치도 없는일 같고...

그런데
우리가 가끔씩 올리게 되는 해원치성도 이 참회기도와 한번쯤 연관시켜서
생각해 봐야할 필요가 있을것 같읍니다.
언젠가 꼭 한번은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오늘, 해새님이 참회란 것에대해 글을 올려 주시니 문득 생각이 나네요....

참회를 주제로한 해새님의 이야기는
정말로 중요하고,시의적절하고 좋은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준 쪽지 2014-03-04 00:25
오래전에 '밀양; 영화를 관람하고 씁쓸하게 느낀 바 있지요.
진정한 참회란 罪性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것이라합니다.

상대는 잘 못이 없는데, 내가 잘 못해서 뉘우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事懺이라함],
상대가 분명히 잘못했고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백번을 생각해도 내가 잘 못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뉘우칠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참회가 잘 안되고 괴롭기만 하답니다.

그러나, 진정한 참회란 본래 잘하고 잘못함이 없다는 空性을 께달을 때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空性이란 본래 어떤 일에 잘, 잘못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네가 잘못했고 내가 잘했다는 이 생각[분별심]이 잘못됐음을 진정으로 뉘우치는 것이 진참회라합니다.
이를 理懺이라 하지요.

다음 게송을 잘 음미해봅시다요.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謂眞懺悔]
해새 쪽지 2014-03-04 01:17
눌치 해원치성과도 연관이 되신다는 그 이야기가 매우 궁금합니다. 꼭 한번 들려주십시오^^
해새 쪽지 2014-03-04 01:18
대준 대준님의 참회론은 제가 말한 참회를 한참 뛰어넘는 참회군요. 늘 좋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활연관통 쪽지 2014-03-04 19:18
해새님의 진정한 참회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당시 영화를 봤을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통찰력있게 글을 써주셨네요.

해새님 말씀처럼 참회는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게
계속 노력하며 이루어져야 진정한 참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울러 눌치님 말씀을 보며 생각이 난건데

오래전에 제가 어떤 사람들로 인해 많이 힘들때 마음속에 어두운 응어리가 생겨
한동안 상실감, 패배감, 우울감 속에서 지낸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후 뜻하지않게 거짓말같이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순간 마음속의 응어리가 사라지고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해원의 시간을 보내는동안
어둠의 응어리들이 저절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비록 저에게 마음의 병이 생기게 한 사람들로부터 사과를 듣진 못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행복한 시간들이 저를 해원하게 해 준 것 같거든요.
아울러 그 사람들을 붙잡고 있던 마음에서 그 사람들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되면 세상이 훨씬 밝아지겠구나 하는..


눌치님이 말씀하신 해원치성과 참회기도와의 관계와는 다른 얘기인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눌치님 글을 보고 예전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화송 쪽지 2014-03-05 02:17
해새님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블러그에 들어가서
노래도 잘듣고 나왔습니다.

잘 만드신것 같습니다.
정성백 쪽지 2014-03-05 11:07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로인해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을것이고.. 타인으로 인하여 내가 고통받았던 시간들도

많이 있지요.. 진정한 참회가 무엇인지.. 뉘우침이 무언인지.. 자기를 기만하지 않고 진정 뉘우침과 참회가 무언가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해새 쪽지 2014-03-05 15:42
활연관통 그러고 보니 굳이 가해자의 사죄를 받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마음이 치유되는 경우도 있군요. 하긴 가해자로부터 받은 고통 역시 결국 나의 업장으로 인함이었다는 걸 자각하게 되면 그러한 분노도 사라지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
해새 쪽지 2014-03-05 15:46
화송 그 노래가 익스플로러에서만 들리지요. 수년전에 선물받은 곡이라 그냥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는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냅니다^^; 사실 컴퓨터 하면서 배경음악 까는 걸 거의 하지 않는 터라..
그리고 노래 중에 '도도새'란 곡은 제가 아는 사람이 피쳐링한 노래입니다. 한때 가수지망생이었지요.^^
해새 쪽지 2014-03-05 15:47
정성백 저도 정성백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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