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가장 잘 된 후손은?
해외에서 교수, 목사, 범죄인의 후손들에 대한 재미있는 가계도를 조사 했는데요.
오래된 자료라 그런지 1박 2일을 찾아봤는데도 못 찾겠네요.
제 기억으로는 후손의 상황이
교수의 후손 10명중 7명이 사회에서 잘 된 경우,
목사의 후손 10명중 8명이 사회에서 잘 된 경우,
범죄자 후손 10명중 3명만이 사회에서 잘 된 경우로 발표된 논문으로 기억됩니다.
일단 꿩 대신 닭이라고 위의 자료처럼 구체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참조할 해외 내용이 하나 있어서 링크를 걸었습니다.
왜 그녀의 후손은 범죄자가 되었나
우생학·골상학의 시대 (신동아)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3/01/21/201301210500040/201301210500040_1.html
*천사(天師)께서 전주(全州) 봉서산하(鳳捿山下)에 게실 새 제자(弟子)다려 일러 가라사대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猜忌心)이 많더니 하로는 진묵(震黙)이 봉곡(鳳谷)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어가면서 생각하되, 봉곡(鳳谷)은 시기(猜忌)가 많은 사람이니 반드시 후회(後悔)하야 곳 찾아가리라 하고 걸어가면서 한 책(冊)식 보아 노방(路傍)에 유기(遺棄)하야 사원(寺院) 동구(洞口)까지 가기에 모다 보아 버렸더라. 봉곡(鳳谷)이 서적(書籍)을 빌린 후(後) 과연(果然) 시기(猜忌)하야 가로되 진묵(震黙)은 불법(佛法)을 통효(通曉)한 자(者)라. 만일 유도(儒道)마저 통효(通曉)하면 막능적(莫能敵)이 될 것이오 또 불법(佛法)이 크게 행(行)하게 되리라 하고, 급(急)히 사람을 보내야 그 책(冊)을 도로 찾아오라 하야 그 사람이 쫓아가서 노방(路傍)에 이따금 한 책(冊)식 유기(遺棄)된 것을 수습(收拾)하야 갔더니, 그 후(後) 에 진묵(震黙)이 봉곡(鳳谷)에게 간 즉 봉곡(鳳谷)이 빌린 책(冊)을 청(請)하는지라. 진묵(震黙)이 가로되 그 글이 무용(無用)함으로 다 버렸다 하니 봉곡(鳳谷)이 노(怒)하거늘 진묵(震黙)이 가로대 내가 구송(口誦) 하리니 기록(記錄)하라 하고 연(連)하야 구송일편(口誦一遍)하니 일자(一字)의 오착(誤錯)이 업는지라. 봉곡(鳳谷)이 이 후(後)로 더욱 시기(猜忌)하더라.
그 후(後) 진묵(震黙)이 제자(弟子)를 단속(團束)하야 가로대 내가 팔일위한(八日爲限)하고 시해(尸解)로써 인도(印度)에 가서 범서(梵書)와 불법(佛法)을 다 익혀 올 것이니 방문(房門)을 개폐(開閉)치 말라 하고 입적(入寂)하였더니, 봉곡(鳳谷)이 그 일을 알고 그 절에 가서 그 방문(房門)을 열어 가로되 어찌 이러한 시체(尸體)를 두고 혹세무민(惑世誣民) 하나뇨 하고 꾸짖어 화장(火葬)케 하니라. 그 후(後) 진묵(震黙)이 돌아오니 신체(身體)가 소멸(燒滅)된지라. 공중(空中)으로부터 소리하야 가로되 봉곡(鳳谷)의 자손(子孫)은 세세(世世)로 호미를 면(免) 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東洋)의 모든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西洋)으로 옮아가니라. -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8
진묵대사의 한이 풀리어 김봉곡 후손들이 잘 되었으면 합니다.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돌려달라고 하거늘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묵이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더니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 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편 1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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