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전경-제4장 둔급미륵불(遁及彌勒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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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둔급미륵불(遁及彌勒佛)제1절 등둔(登遁)제2절 미륵불(彌勒佛)
제1절 등둔(登遁)
1. 세존님께서 하루는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얼굴을 잘 익혀 두어라 후일(後日)에 내가 출세할 때에는 눈이 부시어 보기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2. 하루는 황응종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으면 너희가 나를 보고 싶어 애통하는 것이 눈에 삼삼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 등뒤에 서 있어도 모를 것이요 내가 찾아야 서로 만나게 되리라 하시니라 하시고 내가 몸을 피하면 너희들이 나를 찾을 수 있게느냐 하시니 종도들이 찾을 수 있나이다 하니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요 내가 찾어야 만나리라 하시면서 알고 보니 수원(水原)나그네라 하시고 나는 장차 열석자의 몸으로 오리라 하시니라.
3. 정읍 차경석 집에 계실새 고부인을 명하사 영변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라 하시며 선창하시되 음성을 가다듬으사 스슬 동풍(東風)에 궂은비는 오는데 울퉁불퉁 저기지 남산보아라 우리도 죽어지면 저기 저모양되리라 하시니 고부인이 따라 불은지라
4. 경석의 집에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인심이 너무 험악하여 몸둘곳이 없음으로 깊이깊이 피하고저 하노니 어데가 합당하냐 하시니 채사윤이가 내장사(內長寺)로 가사이다 하니 그래 내장사를 가자 하시고 또 신원일이가 부안 변산에 내수사(內修寺)로 가사이다 하니 그 내수사(內修寺)도 좋다하신 후 나는 금산사에 가서 불양답(佛糧畓)이나 지키리라 하시며 나를 보고 싶거든 미륵불을 보라 하시니라.
5. 또 고부인에게 내가 없으면 크나큰 살림을 어떻게 감당하리요 하시니 고부인이 어데로 가시는지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하니 너는 갈 곳이 못 되노라 하시거늘 그러면 언제오시려니까 하니 네가 꼬부랑 꼬부랑하면 오겠다 하시고 네가 나를 꼭 믿느냐 하시니 꼭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너에 마음이 변하여지리라 하시니라.
6. 둔(遁)하시기 며칠 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6월 24일 약방으로 회집(會集)하라 통지하신지라 이날 여러 종도들이 모이니 세존님께서 종도들을 앉히시고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모든 종도들이 믿습니다 하니 죽어도 믿겠느냐 하시며 응자(應者)가 한사람만 있어서도 나의 일은 성립되리라 하시니라.
7.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녀오도록 잘 믿으라 만일 나에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하시고 나는 미륵이노라 하시며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니라.
8. 세존님께서는 양미간에 불표의 큰 점이 있으시고 좌수(左手)에 임자(壬字)와 우수(右手)에 무자(戊字) 박혀있으시고 아래 입술에 적은 대추만한 붉은 점이 있으시며 수염은 아래턱에만 조금 나셨는데 용수(龍鬚)는 항상 말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으며 얼굴은 풍만(豊滿)하사 좌우상하가 빠짐없이 뚜렸하시니라.
9. 말씀하시기를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불(六丈佛)이나 나는 장차 육장반불로 오겠다고 하시니라.
10. 또 말씀하시기를 진묵대사는 삼둔(三遁)을 하고 강태공은 오십이둔을 하였으나 나는 칠십이둔을 다 쓰노라 하신지라.
11. 6월 24일 종도들이 모인 약방에서 누우셨다가 다시 토방에 나가 누으시고 또다시 문턱에 누으시고 하더니 형렬에게 업혀 약방에 들어가시고 또 다른 종도들에게도 업혀서 여러 번 문밖과 집주변을 다녀 방에 들어가신 후에 종도들로 하여금 사*와 머리를 들게 하시고 차경석을 명하사 전북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OO 서신사명이라 써서 불사르라 하신 다음 종도들에게 내가 둔(遁)한 후에 관(棺)의 천개(天蓋)를 덮지 말고 그대로 묻으라 하시면서 이날 사시(四時)에 관속에 들어가 누으시면서 뚜껑을 덮으라 하시고 39세이신 기유년 6월 24일 사시에 둔(遁)하시니 이때 뇌성벽력이 대발(大發)한지라. 불의에 천문지탁(天聞地坼)을 당한 종도들은 골수에 사무치고 오장에 흐느끼는 앙천무지(仰天撫地) 비애(悲哀)중에 절차를 수모(首謀)하여 약방 후면의 장태곡에 관을 안치후 침묵에 흐르는 심고만 거듭하다가 그의 일행은 원평으로 떠나서 가는 도중 원평으로부터 오는 동곡사람을 만나 세존님 둔(遁)하신 말을 하니 그 사람 답(答)하되 증산선생께서 금방 백이에서 술 잡수시는 것을 보고 왔노라 하는지라 종도들이 아연히 생각하는 중 한 종도는 감동되며 타인의 이목을 피하여 가서 안치된 관을 파고보니 빈관만 있는지라 또 그 한종도가 전주에 가서 자기의 친우(親友)를 상봉하여 세존님이 둔(遁)하였다는 말을 하니 자네 선생님이 지금 용머리고개에서 술을 잡수시고 계시는 것을 보고 왔노라 하더라 또 그 후 수년후에도 각지에서 세존님 재세시 지면있는 분들이 직접 세존님을 상봉한 사실이 있고 또 정읍 살포정 주점에서 같이 술까지 대접한 사실이 있는지라.
제2절 미륵불(彌勒佛)
12. 세존님께서 화천 후 십팔년만인 병자년 이월초 오일 자시 금산사 미륵전 봉안된 삼위불상중 중앙에 위치하신 육장 미륵주불만이 소실됨으로 화광이 충천(沖天)하고 불빛이 모악산 넘어까지 비쳤으나 좌우불상과 사찰건물은 아무 피해없이 주불만 소실된지라 당시 47세의 금산사주지 황성렬이가 조선총독으로부터 일만원의 기증금을 받고 또 각개의 기증을 받어 재건하게 된 이때 금산사 남쪽에 위치한 청계암 앞에 근 행자목(杏子木) 일주(一株)가 있은지라 이 나무는 세존님이 공사시 항상 어루만져 안아보시고 참 장하다 하시며 사랑하신 바 있었거늘 그 후 그절 주지가 이 나무를 목수에게 매도(賣渡)한지라 목수가 이를 벌목하려고 거도를 대니 청천백일에 뇌성이 대발하며 번개가 그 주위를 목수가 대경(大驚)하여 벌목치 못하였음으로 여전히 자라던 그 행자목과 또한 금산사 서전앞에서 자란행자목으로서 당년 24세의 청년조각자 김복동에게 의하면 착공된지 삼년만에 완성되고 소실된 주불속에 나온 불경서적 수백권을 다시 넣어 무인년 칠월에 지(至)하여 세존님 예언하신 대로 육장반불로 완공되어 봉안한바 현재에 지(至)한지라.
13. 금산사의 위치는 모악산이 기봉(起峯)하여 24절로 원맥(原脈)이 되여 있은지라 황금대맥우에 삼층미륵전과 오중석탑이 건립된지라 그런데 그 후 왜정(倭政)시에 일본인 광업자(鑛業者) 죽전(竹田)이가 비장골에서 금맥을 발견하고 철근(鐵根)으로 광업소(鑛業所)를 설치할 대맥을 접근하자 청천백일에 뇌성도 없이 모악산중곡으로 불어 내려오는 번개칼이 광업소 철근공장을 치니 이 공장 철근건물이 재가 된지라 그도 불구하고 수월(數月)후에 공장을 재건립하고 작업을 계속하니 역시 또 불칼을 맞아 완폐됨으로써 그후로는 감히 범하는 자 없는지라.
14. 세존님재세시에 금산사 오중석탑이 즉천계탑이라 하시며 종도들에게 탑에 접근치 말라 경계하시고 또 금산사 황금대맥은 천지의 대용맥(大龍脈)줄이니 누구든지 가(可)히 범접(犯接)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요(要) 세존님을 신앙하는 신도는 이 천계탑(天階塔) 주변에 접근을 삼갈지어다.
제4장 둔급미륵불(遁及彌勒佛)제1절 등둔(登遁)제2절 미륵불(彌勒佛)
제1절 등둔(登遁)
1. 세존님께서 하루는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얼굴을 잘 익혀 두어라 후일(後日)에 내가 출세할 때에는 눈이 부시어 보기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2. 하루는 황응종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으면 너희가 나를 보고 싶어 애통하는 것이 눈에 삼삼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 등뒤에 서 있어도 모를 것이요 내가 찾아야 서로 만나게 되리라 하시니라 하시고 내가 몸을 피하면 너희들이 나를 찾을 수 있게느냐 하시니 종도들이 찾을 수 있나이다 하니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요 내가 찾어야 만나리라 하시면서 알고 보니 수원(水原)나그네라 하시고 나는 장차 열석자의 몸으로 오리라 하시니라.
3. 정읍 차경석 집에 계실새 고부인을 명하사 영변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라 하시며 선창하시되 음성을 가다듬으사 스슬 동풍(東風)에 궂은비는 오는데 울퉁불퉁 저기지 남산보아라 우리도 죽어지면 저기 저모양되리라 하시니 고부인이 따라 불은지라
4. 경석의 집에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인심이 너무 험악하여 몸둘곳이 없음으로 깊이깊이 피하고저 하노니 어데가 합당하냐 하시니 채사윤이가 내장사(內長寺)로 가사이다 하니 그래 내장사를 가자 하시고 또 신원일이가 부안 변산에 내수사(內修寺)로 가사이다 하니 그 내수사(內修寺)도 좋다하신 후 나는 금산사에 가서 불양답(佛糧畓)이나 지키리라 하시며 나를 보고 싶거든 미륵불을 보라 하시니라.
5. 또 고부인에게 내가 없으면 크나큰 살림을 어떻게 감당하리요 하시니 고부인이 어데로 가시는지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하니 너는 갈 곳이 못 되노라 하시거늘 그러면 언제오시려니까 하니 네가 꼬부랑 꼬부랑하면 오겠다 하시고 네가 나를 꼭 믿느냐 하시니 꼭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너에 마음이 변하여지리라 하시니라.
6. 둔(遁)하시기 며칠 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6월 24일 약방으로 회집(會集)하라 통지하신지라 이날 여러 종도들이 모이니 세존님께서 종도들을 앉히시고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모든 종도들이 믿습니다 하니 죽어도 믿겠느냐 하시며 응자(應者)가 한사람만 있어서도 나의 일은 성립되리라 하시니라.
7.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녀오도록 잘 믿으라 만일 나에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하시고 나는 미륵이노라 하시며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니라.
8. 세존님께서는 양미간에 불표의 큰 점이 있으시고 좌수(左手)에 임자(壬字)와 우수(右手)에 무자(戊字) 박혀있으시고 아래 입술에 적은 대추만한 붉은 점이 있으시며 수염은 아래턱에만 조금 나셨는데 용수(龍鬚)는 항상 말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으며 얼굴은 풍만(豊滿)하사 좌우상하가 빠짐없이 뚜렸하시니라.
9. 말씀하시기를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불(六丈佛)이나 나는 장차 육장반불로 오겠다고 하시니라.
10. 또 말씀하시기를 진묵대사는 삼둔(三遁)을 하고 강태공은 오십이둔을 하였으나 나는 칠십이둔을 다 쓰노라 하신지라.
11. 6월 24일 종도들이 모인 약방에서 누우셨다가 다시 토방에 나가 누으시고 또다시 문턱에 누으시고 하더니 형렬에게 업혀 약방에 들어가시고 또 다른 종도들에게도 업혀서 여러 번 문밖과 집주변을 다녀 방에 들어가신 후에 종도들로 하여금 사*와 머리를 들게 하시고 차경석을 명하사 전북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OO 서신사명이라 써서 불사르라 하신 다음 종도들에게 내가 둔(遁)한 후에 관(棺)의 천개(天蓋)를 덮지 말고 그대로 묻으라 하시면서 이날 사시(四時)에 관속에 들어가 누으시면서 뚜껑을 덮으라 하시고 39세이신 기유년 6월 24일 사시에 둔(遁)하시니 이때 뇌성벽력이 대발(大發)한지라. 불의에 천문지탁(天聞地坼)을 당한 종도들은 골수에 사무치고 오장에 흐느끼는 앙천무지(仰天撫地) 비애(悲哀)중에 절차를 수모(首謀)하여 약방 후면의 장태곡에 관을 안치후 침묵에 흐르는 심고만 거듭하다가 그의 일행은 원평으로 떠나서 가는 도중 원평으로부터 오는 동곡사람을 만나 세존님 둔(遁)하신 말을 하니 그 사람 답(答)하되 증산선생께서 금방 백이에서 술 잡수시는 것을 보고 왔노라 하는지라 종도들이 아연히 생각하는 중 한 종도는 감동되며 타인의 이목을 피하여 가서 안치된 관을 파고보니 빈관만 있는지라 또 그 한종도가 전주에 가서 자기의 친우(親友)를 상봉하여 세존님이 둔(遁)하였다는 말을 하니 자네 선생님이 지금 용머리고개에서 술을 잡수시고 계시는 것을 보고 왔노라 하더라 또 그 후 수년후에도 각지에서 세존님 재세시 지면있는 분들이 직접 세존님을 상봉한 사실이 있고 또 정읍 살포정 주점에서 같이 술까지 대접한 사실이 있는지라.
제2절 미륵불(彌勒佛)
12. 세존님께서 화천 후 십팔년만인 병자년 이월초 오일 자시 금산사 미륵전 봉안된 삼위불상중 중앙에 위치하신 육장 미륵주불만이 소실됨으로 화광이 충천(沖天)하고 불빛이 모악산 넘어까지 비쳤으나 좌우불상과 사찰건물은 아무 피해없이 주불만 소실된지라 당시 47세의 금산사주지 황성렬이가 조선총독으로부터 일만원의 기증금을 받고 또 각개의 기증을 받어 재건하게 된 이때 금산사 남쪽에 위치한 청계암 앞에 근 행자목(杏子木) 일주(一株)가 있은지라 이 나무는 세존님이 공사시 항상 어루만져 안아보시고 참 장하다 하시며 사랑하신 바 있었거늘 그 후 그절 주지가 이 나무를 목수에게 매도(賣渡)한지라 목수가 이를 벌목하려고 거도를 대니 청천백일에 뇌성이 대발하며 번개가 그 주위를 목수가 대경(大驚)하여 벌목치 못하였음으로 여전히 자라던 그 행자목과 또한 금산사 서전앞에서 자란행자목으로서 당년 24세의 청년조각자 김복동에게 의하면 착공된지 삼년만에 완성되고 소실된 주불속에 나온 불경서적 수백권을 다시 넣어 무인년 칠월에 지(至)하여 세존님 예언하신 대로 육장반불로 완공되어 봉안한바 현재에 지(至)한지라.
13. 금산사의 위치는 모악산이 기봉(起峯)하여 24절로 원맥(原脈)이 되여 있은지라 황금대맥우에 삼층미륵전과 오중석탑이 건립된지라 그런데 그 후 왜정(倭政)시에 일본인 광업자(鑛業者) 죽전(竹田)이가 비장골에서 금맥을 발견하고 철근(鐵根)으로 광업소(鑛業所)를 설치할 대맥을 접근하자 청천백일에 뇌성도 없이 모악산중곡으로 불어 내려오는 번개칼이 광업소 철근공장을 치니 이 공장 철근건물이 재가 된지라 그도 불구하고 수월(數月)후에 공장을 재건립하고 작업을 계속하니 역시 또 불칼을 맞아 완폐됨으로써 그후로는 감히 범하는 자 없는지라.
14. 세존님재세시에 금산사 오중석탑이 즉천계탑이라 하시며 종도들에게 탑에 접근치 말라 경계하시고 또 금산사 황금대맥은 천지의 대용맥(大龍脈)줄이니 누구든지 가(可)히 범접(犯接)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요(要) 세존님을 신앙하는 신도는 이 천계탑(天階塔) 주변에 접근을 삼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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