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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전경-제1장 원시(原始)와 인세(人世)

용화전경-제1장 원시(原始)와 인세(人世)

경전 및 도서  화송 화송님의 글모음 쪽지 2015-06-13 23:17 8,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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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원시(原始)와 인세(人世)
제1절 미륵불(彌勒佛)유래(由來)
제2절 인둔(人遁)
제3절 삼계(三界)주권(主權)
제1절(一節) 미륵불(彌勒佛)유래(由來)
1항 미륵세존(彌勒世尊)의 유래(由來)
1. 미륵세존님께서는 호천금궐 상제님이시며 또한 사천황(司天皇)으로서 서양대법국(로마) 천계탑(天階塔)에 강림(降臨)하사 주세불(主世佛)로서 수천 년간 천하(天下)를 대순하셨다.
2항 금산사(金山寺) 창건(創建)과 미륵불(彌勒佛)
2. 거금(距今) 일천삼백여년전에 전북 김제군 만경면 대정리에 출생한 진표율사가 당연(?年) 30세에 천일기도로 천안(天眼)이 열리고 미륵세존님을 견안(見眼)케 되여 신라 35년 경덕왕 31년 임인(壬寅) 사월 국가(國家)보조(補助)에 의(依)하여 금산사(金山寺)를 창건(創建)하게 되였다. 이때 현 미륵전(彌勒殿)자리에는 큰 못(용추(龍湫))이 있은지라 진표율사는 세존님의 천명(天命)을 받아 이 못을 일만이천명의 힘으로 숯(목탄)을 가지고 매인 후 불상의 좌대(座臺)를 철수미(?首尾)로 하라는 천명이 계셨으나 사정(事情)에 의하여 석수미(石首尾)로 석조(石造) 연화대(蓮花臺)를 대용(代用)하였더니 중간부분이 파손되는지라. 고로 원천명(原天命)대로 시행(施行)하되 철수미(?首尾)로서 대형(大形)외무쇠 솥을 만들어 제일하단에 놓고 대형(大形)의 무쇠 시루를 만들어 중단(中段)에 놓고 불상(佛像)을 그 상단(上段)에 봉안(奉安)하게 된지라 착공한지 삼년만인 동왕(同王) 23년 갑진(甲辰)년부터 철주(鐵柱)하기 시작하여 신라 36 혜공왕 2년 병오(丙午) 5월 1일에 육장미륵금불을 봉시안함과 동시 금산사가 준공되였은즉 이때부터 미륵세존님께서 주세불로서 아동방에 오시게 된지라.
3. 그 후 이조 선조대왕 31년 정유(丁酉)에 지(至)하여 임진왜란당시 항일투쟁 승려단체의 근거지라 하여 왜적의 방화에 의하여 미륵전이 소실된바 36년후 이조 인조대왕 13년에 수문대사가 수십년간의 노고로서 재건되었다 하니라.
4. 거금(距今) 일백수십년전에 경주용담에서 출생한 최제우씨(호 수운)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함으로서 미륵세존님께서는 서기 1875년 경신(庚申) 음4월 초5일에 최수운에게 후천선경사를 천강서로서 동학을 하교하사 선경건설과 광제창생을 일임(一任)하시니 수운이 득도하게 된지라 연이나 수운은 선천의 유교판에 관습화되여 후천오만년 선경사를 감히 행치 못함으로서 득도 5년만에 그 기운을 거두시니 갑자(甲子) 3월 15일에 수운은 드디어 졸(卒)하신지라
제2절 인둔(人遁)
1항 탄생(誕生)
5. 미륵세존님께서는 최수운의 기운을 갑자로이 거두시고 팔년후 서기 1871년 신미(辛未) 음9월 19일에 전북 정읍군 이평면 두지리(당시 고부군 답내면 서산리) 강씨문에 탄생하시니 명은 일(一)자 순(淳)자요 자(字)는 사(士)자 옥(玉)자요 호는 증산(甑山)이시다
6. 곤륜산(崑崙山)이 원래에 수미산(首尾山)이니 산자(山字)라 고로 호가 증산이신바 미륵(彌勒)이 증산이시고 증산이 인천주(人天主)이시니 후천용화선경에 하날임이신지라.
7. 세존님께서는 생이지지(生以之知)의 대성인으로서 성장하심에 일문천오(一聞千悟)하사 모든 세사(世事)를 생후(生後)부터 통달하신지라.
2항 성장(成長)
8. 유소시(幼少時) 수학(修學)하실 천자(千字)와 지자(地字)를 읽으사 천문(天門)과 지리(地理)를 통달하시고 모든 인간사물을 눈으로 보시고 귀로 듣지 않으서도 무불통지(無不通知)하신지라.
9. 24세시 갑오(甲午)년 지(至)하사 당시(?時) 고부 전봉준 상경시에 동학혁명에 불리한 것을 예측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동절(冬節)에 지(至)하면 대화(大禍)를 당하리라 하신바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망동(妄動)치 않었음으로 화란(禍亂)을 피한지라.
10. 그후 전국 각도의 주류(週流)의 길 떠나실세 당시 20세가량된 안필성이가 논산 강경까지 수행하고 그곳서부터는 단신으로서 각도 각읍을 촌촌전지하사 민심과 풍속을 살피시고 각명산대천의 지운을 관찰하신 다음 30세 되는 경자(庚子)년에 본가(本家)에 돌아오시니라.
3항 성도(成道)
11. 공부(工夫)31세 되시던 신축년 6월초에 시루봉(선인독서(仙人讀書))에서 14일간 수련공부를 하실세 정씨사모님의 시봉(侍奉)으로 공부를 마치시고 그날로 대원사에 가신지라.
3절 삼계주권(三界主權)
12. 세존님께서는 신축년 6월 16일에 대원사에 이르사 칠성각에서 삼계대도주권공부를 하실세 시봉(侍奉)은 대원사 주지 박금곡이 한지라 금곡은 원래 강원도 금강산 속이사에 있다가 13세시에 대원사에 와서 성장하여 주지가 된 사람인즉 그때에 나이가 50세정도였다.
13. 공부하시는 중 일야(一夜)는 풍우대작(風雨大作)하며 공중(空中)에 광선(光線)이 명휘(明輝)한 중 세존님께서 호령하시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지라. 금곡이 이튿날 아침에 나가보니 칠성각에 봉안된 진묵대사의 영정이 마당에 떨어져 있는지라 그리고 칠성각을 보니 건물의 방향이 틀어져 있는지라. 세존님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 그러냐고 답하시는 순간 건물의 방향이 원위치로 회복된지라.
14. 또 공부하시는 중 담을 많이 토하신 바하로는 두루마기와 바지저고리에 토하신 담이 꽉 차는지라. 세존님께서는 그 옷을 벗으시고 알몸으로 앉어 공부하시면서 금곡에게 세탁하여 오라하시니 금곡이 그 옷을 본즉 손을 대지 못할 정도임으로 막대기로 끌어내어서 냇물에 담궈놓고 무심하게 있다 보니 일모(一暮)한지라 밤에 불의(不意)에 폭우가 내려 돌이 뒹굴며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함으로 잠을 자던 금곡이 황급히 나가보니 그 옷이 정결하게 세탁되어 넓은 바위에 놓여 있거늘 금곡이 크게 감명한지라 이때 세존님께서는 토하시는 담을 감당하실 수 없음으로 방짱을 떼 놓으시고 그 자리에 담을 토하시며 공부하신지라
15. 공부하시는 중 한번에 십전식을 금곡에게 주시사 술을 사오라 하시거늘 금곡으 ㄴ오리(五里)가 넘은 길을 하루에서도 수삼차식(數三次式) 왕래하게 되니 내심으로 불평을 하게 된지라 그러자 하루는 사십전을 주시면서 술을 사오라 하시거늘 내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면서 술을 사가지고 대원사에 거의 이르자 술병을 다 깨뜨린거라 할수 없이 죄송한 표정으로 가서 고하니 그제는 십전만 주시는지라 그 후부터는 매일 수차식의 술 심부름을 하여도 아무 불평없이 한지라.
16. 하루는 아침식 전에 금곡을 부르사 지금 떠나서 객망리에 가서 무엇을 가지고 오되 도중에서 떼어보지 말고 당일로 돌아오라 명하시는지라 금곡이가 식전(食前)에 출발함에 여비를 일분도 주지 않으시니 또한 심중에 불평을 가지고 약십리쯤 와서 황수리 부락에 이르니 김대연이가 환영하면서 그의 집으로 인도하는지라 들어가니 자기의 친기를 모셨다 하면서 주반을 갖추어 오거늘 그곳에서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객망리에 가서 정씨사모님으로부터 봉해진 문서를 받아다가 드린 지라.
17. 공부하시는 중 금곡이가 고하기를 제가 평생 이 절에 주지로 있게 해주옵소서 하니 승낙하시는지라 금곡이 거듭하여 90세까지만 살게 해 주옵소서 하니 이도 승낙하시면서 네가 죽을 때에는 본병(本病)이 도져서 죽으리라 하신지라 그 후 금곡은 일평생을 대원사주지로 있다가 90세 되는 해에 이르러 다친 허리가 재발되어 졸(卒)한지라.
18. 금곡이가 또 고하기를 대원사에 감나무가 많으나 감이 하나도 열리 않으니 감이 열게 해주옵소서 하니 이는 진묵이가 원한을 품은 연고라 하시며 명년부터 감이 잘 열리리라. 하시더니 그 후로부터 감이 풍실(豊實)된지라.
19. 세존님께서는 대원사에서 6월 16일부터 21일간 공부로서 신축년 음 7월 7일에 삼계의 대도 주권을 장악하심으로서 우주에 권능을 임의용지(任意用之)하신지라.
20. 대원사는 6.25사변 당시 전화(戰火)를 입어 전부 소각되였으나 세존님께서 득도하신 칠성각은 아무 피해가 없이 현존한지라.
21. 세존님께서 대원사로 공부하러 가실 때에 공중에서 동서양 각국 제국신과 24장들이 강천자라고 외쳤으나 청이불문하시고 공부를 마치신 후에 그 신명들을 부르사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건립된 중국 신종황제의 사당인 만동묘에다 응집해 놓으시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금후 이 자리가 쑥대밭이 되면 이 제왕신과 이십사장 전부가 금산사에 와서 옹위하리니 이 신명들을 잘 대접하라 하신바 일제당시 만동묘가 신사(辛巳)년 음4월 일본사람에게 의하여 소각되여 그 자리가 과연 쑥대밭이 된지라. 이로 볼진대 그 제왕신들이 금산사에 와서 금불을 호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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