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니 치사하고
그냥 있자니 열받고 . . . ~~ㅋㅋ
먹는 것은 차별하지 말고 고르게
시속에 먹는 것 가지고 차별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식당에 들어갔는데 밑반찬으로 시금치 무침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옆 테이블 손님이 저희 식탁을 쳐다보면서 서빙 아주머니를 불러서는 따집니다.
저기 테이블에는 시금치 나물이 있는데 우리는 왜 안 주느냐고...
그러자 서빙 아주머니가 설명합니다.
네~ 시금치가 다 떨어졌네요.
그래서 오이무침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식탁에는 오이무침이 없습니다.
저는 상제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후천에는 계급이 많지 아니하나 두 계급이 있으리라 그러나 식록은 고르리니 만일 급이 낮고 먹기까지 고르지 못하면 원통치 아니하랴. (대순전경 86:1-24)
그 때 같이 밥 먹던 분도 알아보니 평소에 먹는 것은 철저히 고르게 나누는 철학을 지니고 살고 있더군요.
그래서 문득 상제님 도를 닦는 자로서 저 사람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여 저도 그 뒤로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지켜가기로 다짐하여 10년전부터 실천하고 있습니다.
*후천에는 공덕(功德)에 따라 사는 집도 등급을 둘 것이니 공덕이 아래 등급인 자가 제 등급보다 상급의 집에 살면 신명이 쇠채찍으로 쳐서 쫓아내고 아래 등급인 자가 윗사람을 헐뜯으면 그 자리에서 입이 비뚤어지느니라. 그러나 식록(食祿)은 고르게 하리니 만일 급이 낮고 먹기까지 고르지 못하면 원통(寃痛)치 않겠느냐! (道典 7:21)
언젠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지인의 사무실에 갔는데 직원이 6명 있더군요.
아이스크림은 5개 사가지고 갔었는데...
이럴땐 참 서로 어색하죠.
저야 사오면서 먹은 것으로 치고 다시 1개를 사러 나가려고 해도 분위기가 또 그렇게 만만치는 않지요.
그래서 요즘은 꼭 뭐를 사주고 싶으면 미리 전화로 물어봅니다.
현재 사람이 몇 명이 있습니까?
이런 것도 세심하게 챙기지 않으면 지켜가기가 쉽지는 않아요.
여러모로 상제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듯이...
어제 그런 일을 체험했습니다.
저와 맞교대 하는 O조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갑측 직원과 해병대 선후배 사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몰랐지만 한국적 대화법에서 선후배란 것을 찾아낸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 갑측 직원이 O조 해병대 후배와 저녁을 시켜 먹었나 봅니다.
그 후배란 사람과 같이 근무하는 파트너 분이 어제 불만 아닌 서운함을 토로 하더군요.
먹는 것으로 소외감을 느껴보긴 처음이라고...
*사람 괄시하는 것이 제일 밉고, 음식 하시하는 것이 제일 못쓰느니라. (道典 3:275)
자세히 얘기를 들어보니 은연중에 가슴에 맺힌 것 같습니다.
꼭 저녁을 못 얻어 먹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기분 있잖습니까...
그 후배도 말이라도 옆의 분과 같이 먹으면 어떨까요...하고 한 마디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나 보군요.
눈 앞에서 자신을 빼놓고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은...(안 보이는데서 먹던지 ㅠ)
*하루는 구릿골에 계시더니 형렬에게 가르침을 내리시니, 무릇 군사를 쓰는 요령은 예의를 숭상하고 녹을 무겁게 함에 있나니, 예를 숭상하면 옳은 선비가 이르고, 녹을 무거이하면 뜻있는 선비가 목숨을 가벼이 여기므로, 어진 사람에게 재물을 아끼지 말고 녹을 두터이하고, 공있는 사람을 상줌에 때를 어기지 않으면 장수와 군졸이 힘을 모아 적국을 치느니라.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오는 시절의 형세가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우고, 도(종교)와 도가 서로 싸우리니 이것이 천하의 법도가 어지러울 운수니라. 이 때를 만나 천하의 장수가 되려면, 이 가르침이 큰 거울이 되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81:36)
22년전 J교단 동료 6명과 잘 아는 단양에 있는 오O사라는 사찰에 2박 3일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밤 저는 피곤해서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는데 군것질 거리를 듬뿍 사와서는 먹더라구요.
OO님은 지금 피곤해서 자나 봐요...하고 잠자는 사람으로 딱 정해놓고서 얌냠 쩝쩝 소리내며 먹는 모습들이란 참 그렇더군요.
그렇다보니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 있었던터라 팔이 심하게 저려오는데도 뒤척이기도 뭐하고 참다보니 팔이 마비가 되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OO님 일어나서 먹어요 라고 듣던지 말던지 빈 말이라도 하던가...
같이 먹게 깨어봐...이렇게 빈말이라도 하면 모른척 일어나련만...
같이 먹읍시다. 하고 일어나던가
뭐 먹나! 하고 일어나는 센스도 필요하겠지만 왜 그리 스스로 일어나기 어색한 분위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천에는 농민도 상등 사람이니라. 농사는 천하의 대본(大本)이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기느니라. 오랫동안 천대 받아 온 농민의 원한을 풀어야 할지니 이제 농민을 해원시켜 상등 사람으로 삼으리라. 앞으로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는 세상이 오느니라. 그 때가 오면 솥에다 불 안 때고도 방에 가만히 앉아서 밥해 먹게 되느니라.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농사지으며 소와 말이 일하던 것은 기계가 대신하도록 할 것이니라. 곡식 종자도 한 번 심어서 거두어들인 후에 해마다 그 뿌리에 움을 길러서 거두어들이는 것이 생겨 지금처럼 심고 거두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으며 또 아무리 박전(薄田)이라도 옥토가 되게 하리니, 이는 땅을 석 자 세 치로 태운 까닭이니라. (道典 7:54)
이렇게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자체가 좀스러워 보여 말하기 거북하긴 하지만...
아무튼 먹는 것 만큼은 고르게 먹도록 아량과 배려를 가져야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11월 말에 서울로부터 백남신을 불러 올리라는 공문이 전주부(全州府)에 이르니 남신이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숨기고 있는데 김병욱이 남신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 저의 화란(禍亂)을 선생님께서 끌러 주셨습니다.” 하니 남신이 병욱을 통하여 상제님께 풀어 주시기를 간청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10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곧 10만 냥의 증서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증서를 불사르시거늘 그 뒤로 남신의 관액이 풀리니라. 남신이 이 일을 겪고 난 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교자상(交子床)에다 음식을 성대히 차려 상제님을 모시니 상제님께서 “남신아, 음식은 많다만 이것보다 더 걸게 장만은 못 하겠느냐?” 하시는지라. 남신이 아뢰기를 “일등 요리사들을 모두 불러 한껏 장만하였습니다.” 하거늘 “그렇긴 하겠다만 후천 농민 음식보다 못하구나.” 하시니라.
○배려(配慮) [배ː려]
[명사]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상제님께서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드시려다 그만두기를 세 번 거듭하시더니 일어나 남신의 집을 나오시매 성도들은 영문을 몰라 아쉬워하며 뒤따르니라. 상 밑에 척신들이 가득 차 있거늘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어느 허름한 주막집에 드시어 주인에게 밥을 해 오라고 명하시니 주인이 아뢰기를 “당장 해 드릴 양식이 없고 단지 안 찧은 겉보리만 있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놈 찧어서 어서 밥을 해 오라.” 하고 재촉하시니라. 이에 성도들까지 나서서 겉보리를 찧어 서둘러 밥을 지어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밥맛 참 좋다.” 하시며 맛있게 드시니라.
이에 옆에 있던 한 성도가 “왜 진수성찬을 두고 겉보리밥을 드십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상 밑에 척신들이 가득 차서 내가 젓가락을 드니 척신들이 벌벌 떨며 ‘그걸 드시면 저희들은 어찌 됩니까?’ 하고 하소연하므로 내가 남신의 성의를 보아 젓가락만 세 번 들었다 놓았느니라.” 하시니라. 남신은 관액이 풀린 뒤 갑진년 7월에 육군 전주 진위대(鎭衛隊) 대장이 되고, 이어 10월에는 전북(全北)의 징세 독쇄관(督刷官)이 되어 큰돈을 모으니라. (道典 3:68)
서울에서 식당에 들어갔는데 밑반찬으로 시금치 무침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옆 테이블 손님이 저희 식탁을 쳐다보면서 서빙 아주머니를 불러서는 따집니다.
저기 테이블에는 시금치 나물이 있는데 우리는 왜 안 주느냐고...
그러자 서빙 아주머니가 설명합니다.
네~ 시금치가 다 떨어졌네요.
그래서 오이무침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식탁에는 오이무침이 없습니다.
저는 상제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후천에는 계급이 많지 아니하나 두 계급이 있으리라 그러나 식록은 고르리니 만일 급이 낮고 먹기까지 고르지 못하면 원통치 아니하랴. (대순전경 86:1-24)
그 때 같이 밥 먹던 분도 알아보니 평소에 먹는 것은 철저히 고르게 나누는 철학을 지니고 살고 있더군요.
그래서 문득 상제님 도를 닦는 자로서 저 사람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여 저도 그 뒤로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지켜가기로 다짐하여 10년전부터 실천하고 있습니다.
*후천에는 공덕(功德)에 따라 사는 집도 등급을 둘 것이니 공덕이 아래 등급인 자가 제 등급보다 상급의 집에 살면 신명이 쇠채찍으로 쳐서 쫓아내고 아래 등급인 자가 윗사람을 헐뜯으면 그 자리에서 입이 비뚤어지느니라. 그러나 식록(食祿)은 고르게 하리니 만일 급이 낮고 먹기까지 고르지 못하면 원통(寃痛)치 않겠느냐! (道典 7:21)
언젠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지인의 사무실에 갔는데 직원이 6명 있더군요.
아이스크림은 5개 사가지고 갔었는데...
이럴땐 참 서로 어색하죠.
저야 사오면서 먹은 것으로 치고 다시 1개를 사러 나가려고 해도 분위기가 또 그렇게 만만치는 않지요.
그래서 요즘은 꼭 뭐를 사주고 싶으면 미리 전화로 물어봅니다.
현재 사람이 몇 명이 있습니까?
이런 것도 세심하게 챙기지 않으면 지켜가기가 쉽지는 않아요.
여러모로 상제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듯이...
어제 그런 일을 체험했습니다.
저와 맞교대 하는 O조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갑측 직원과 해병대 선후배 사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몰랐지만 한국적 대화법에서 선후배란 것을 찾아낸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 갑측 직원이 O조 해병대 후배와 저녁을 시켜 먹었나 봅니다.
그 후배란 사람과 같이 근무하는 파트너 분이 어제 불만 아닌 서운함을 토로 하더군요.
먹는 것으로 소외감을 느껴보긴 처음이라고...
*사람 괄시하는 것이 제일 밉고, 음식 하시하는 것이 제일 못쓰느니라. (道典 3:275)
자세히 얘기를 들어보니 은연중에 가슴에 맺힌 것 같습니다.
꼭 저녁을 못 얻어 먹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기분 있잖습니까...
그 후배도 말이라도 옆의 분과 같이 먹으면 어떨까요...하고 한 마디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나 보군요.
눈 앞에서 자신을 빼놓고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은...(안 보이는데서 먹던지 ㅠ)
*하루는 구릿골에 계시더니 형렬에게 가르침을 내리시니, 무릇 군사를 쓰는 요령은 예의를 숭상하고 녹을 무겁게 함에 있나니, 예를 숭상하면 옳은 선비가 이르고, 녹을 무거이하면 뜻있는 선비가 목숨을 가벼이 여기므로, 어진 사람에게 재물을 아끼지 말고 녹을 두터이하고, 공있는 사람을 상줌에 때를 어기지 않으면 장수와 군졸이 힘을 모아 적국을 치느니라.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오는 시절의 형세가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우고, 도(종교)와 도가 서로 싸우리니 이것이 천하의 법도가 어지러울 운수니라. 이 때를 만나 천하의 장수가 되려면, 이 가르침이 큰 거울이 되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81:36)
22년전 J교단 동료 6명과 잘 아는 단양에 있는 오O사라는 사찰에 2박 3일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밤 저는 피곤해서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는데 군것질 거리를 듬뿍 사와서는 먹더라구요.
OO님은 지금 피곤해서 자나 봐요...하고 잠자는 사람으로 딱 정해놓고서 얌냠 쩝쩝 소리내며 먹는 모습들이란 참 그렇더군요.
그렇다보니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 있었던터라 팔이 심하게 저려오는데도 뒤척이기도 뭐하고 참다보니 팔이 마비가 되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OO님 일어나서 먹어요 라고 듣던지 말던지 빈 말이라도 하던가...
같이 먹게 깨어봐...이렇게 빈말이라도 하면 모른척 일어나련만...
같이 먹읍시다. 하고 일어나던가
뭐 먹나! 하고 일어나는 센스도 필요하겠지만 왜 그리 스스로 일어나기 어색한 분위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천에는 농민도 상등 사람이니라. 농사는 천하의 대본(大本)이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기느니라. 오랫동안 천대 받아 온 농민의 원한을 풀어야 할지니 이제 농민을 해원시켜 상등 사람으로 삼으리라. 앞으로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는 세상이 오느니라. 그 때가 오면 솥에다 불 안 때고도 방에 가만히 앉아서 밥해 먹게 되느니라.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농사지으며 소와 말이 일하던 것은 기계가 대신하도록 할 것이니라. 곡식 종자도 한 번 심어서 거두어들인 후에 해마다 그 뿌리에 움을 길러서 거두어들이는 것이 생겨 지금처럼 심고 거두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으며 또 아무리 박전(薄田)이라도 옥토가 되게 하리니, 이는 땅을 석 자 세 치로 태운 까닭이니라. (道典 7:54)
이렇게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자체가 좀스러워 보여 말하기 거북하긴 하지만...
아무튼 먹는 것 만큼은 고르게 먹도록 아량과 배려를 가져야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11월 말에 서울로부터 백남신을 불러 올리라는 공문이 전주부(全州府)에 이르니 남신이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숨기고 있는데 김병욱이 남신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 저의 화란(禍亂)을 선생님께서 끌러 주셨습니다.” 하니 남신이 병욱을 통하여 상제님께 풀어 주시기를 간청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10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곧 10만 냥의 증서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증서를 불사르시거늘 그 뒤로 남신의 관액이 풀리니라. 남신이 이 일을 겪고 난 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교자상(交子床)에다 음식을 성대히 차려 상제님을 모시니 상제님께서 “남신아, 음식은 많다만 이것보다 더 걸게 장만은 못 하겠느냐?” 하시는지라. 남신이 아뢰기를 “일등 요리사들을 모두 불러 한껏 장만하였습니다.” 하거늘 “그렇긴 하겠다만 후천 농민 음식보다 못하구나.” 하시니라.
○배려(配慮) [배ː려]
[명사]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상제님께서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드시려다 그만두기를 세 번 거듭하시더니 일어나 남신의 집을 나오시매 성도들은 영문을 몰라 아쉬워하며 뒤따르니라. 상 밑에 척신들이 가득 차 있거늘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어느 허름한 주막집에 드시어 주인에게 밥을 해 오라고 명하시니 주인이 아뢰기를 “당장 해 드릴 양식이 없고 단지 안 찧은 겉보리만 있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놈 찧어서 어서 밥을 해 오라.” 하고 재촉하시니라. 이에 성도들까지 나서서 겉보리를 찧어 서둘러 밥을 지어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밥맛 참 좋다.” 하시며 맛있게 드시니라.
이에 옆에 있던 한 성도가 “왜 진수성찬을 두고 겉보리밥을 드십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상 밑에 척신들이 가득 차서 내가 젓가락을 드니 척신들이 벌벌 떨며 ‘그걸 드시면 저희들은 어찌 됩니까?’ 하고 하소연하므로 내가 남신의 성의를 보아 젓가락만 세 번 들었다 놓았느니라.” 하시니라. 남신은 관액이 풀린 뒤 갑진년 7월에 육군 전주 진위대(鎭衛隊) 대장이 되고, 이어 10월에는 전북(全北)의 징세 독쇄관(督刷官)이 되어 큰돈을 모으니라. (道典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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