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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거꾸로 신던 시절

고무신 거꾸로 신던 시절 4

열린마당  솔방울 솔방울님의 글모음 쪽지 2015-08-25 16:00 4,969
옛말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요.
오늘 눌치님 댓글을 보니 춘향사 때 모습이 약간 희미해지네요.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야 잊혀지지 않고 정(情)도 드는게 맞나 봅니다.

정도 고운정 미운정이 있는데 미운정이 들어야 진정한 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미운정이 들려면 질리도록 만나야겠지요.

그러다 보니 남자가 군대 가면 여성들 고무신 거꾸로 신는 일이 잦았습니다.
저는 군대는 못 가보고 동원예비군 훈련은 대신 가본적이 있지만 시대가 그런 시대였습니다.

군대는 그야말로 천리만리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휴대폰으로 영상통화도 가능한 시대이니 그리움이 덜 하지만 교통이 발달되기 전 60~70년대만 해도 살던 곳을 떠나 100~300km만 옮겨 살아도 천리만리 느껴져 향수병이란 것이 생겼습니다.

가까이 있던 님이 보이질 않으니 세월 지나면서 점점 고무신이 방향을 틀기 시작합니다.
옛날 짚신 신을 때는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니 군대를 가면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여자들은 울고 불고 남자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서운함에 며칠 전부터 우울병에 걸려 난리가 아니지요.

심지어 여자가 고무신 거꾸로 신고 시집간다거나 맞선 봤다는 소문을 들으면 탈영을 하거나 그리움이 사무치면 탈영을 해서 사회문제가 되곤 했었지요.

겨우 여자가 면회 와서 하는 말이 “나! 곧 결혼해!” “미안해” 이렇게 염장지르는 말을 하곤 가버리지요.


 


제가 1994년 동대문쪽 살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밤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골목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젊은 놈이 담벼락을 주먹으로 치고 머리로 박고 울며 불며 소리를 꽥꽥 지르고 난리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야 할 길이라서 옆으로 지나가며 눈이 마주쳤는데 저보고 그럽니다.

아저씨!!! 하고 부릅니다.
시비에 걸리지 않으려고 말없이 스쳤습니다.

그랬더니 이놈이 또 그럽니다.
아저씨!! 왜 대답이 없어요! 그럽니다.

그래서 이놈이 시비거는구나.
대응할 수 밖에 없네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그럽니다.

아저씨!!
인생이 뭐예요?

예?

인생이 뭐냐고요!
도대체 인생이 뭐냐고요!

이렇게 시끄럽게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지요.

저도 모릅니다...
하고 가던 길을 가는데 뒤에다 대고 그럽니다.

“왜 모르는데요!”
네?

인생이 뭐냐고요!
엉엉! 야!~ 우아~ 악을 쓰더라구요.

대충 짐작해보니
기쁜 마음으로 휴가 나왔다가 여자 친구가 떠난 것을 안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그때 멋진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지금 그 젊은이 어디서 잘 살고 있으려나...

또 하나 몇십년이 흘렀지만 마음속에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1983년 금호동에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데 어떤 꽤재재한 동갑내기 젊은 여성이 제게 다가와 다급한 듯이 묻습니다.

혼자 오셨어요?
저랑 같이 들어가실래요?

순간, 아! 시골서 서울 올라와서 일자리도 못 잡고 하루 이틀 굶었나보다!
불쌍하네..

여자 분이라 대놓고 돈 달라 하기도 뭐하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가보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도움을 줘야 하는데 주머니에 1,500원(영화 500원)인가 있었지만 여자가 씻지도 않아 거지꼴이라 주위 사람들 창피하기도 하고 해서 순간 얼떨결에 무시하고 그냥 들어가버렸지요.

지금 같으면 자세히 사정을 묻고 목욕탕도 보내고 밥도 사주고 했을터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부침성도 없었고 숫기가 적었던터라~ㅠ

그 뒤에 생각하니 배고파 절실히 도움을 요청한 눈빛이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지금 몇십년 전 일이지만 이제 글로 나마 용서를 구합니다.

그때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람이 남을 돕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약 33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여자분의 한(恨)이었던 모양입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눌치 쪽지 2015-08-25 17:18
^^
솔방울 쪽지 2015-08-25 17:33
눌치 눌치형님 만나뵐 때까지 건강 잘 챙기소서~ㅎㅎ
화송 쪽지 2015-08-25 22:15
인생(人生)이 인생(忍生)입니다. ㅋㅋㅋ
솔방울 쪽지 2015-08-25 23:51
화송 오! 멋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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