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되지 않은 자기만의 색깔을 강하게 내뿜을때마다,
오리알터는 항상 분란이 일었고, 결국에 그 당사자는 견뎌내지
못하고 떠나고 말더군요. 이 법칙(?)에는 누구에게도 예외는 아니겠죠.
태풍덕(?)에 간만에 컴퓨터구경~~ ^^
증산법종교는 신도로서 다스려지는 곳
증산법종교는 신도로서 다스려지는 곳
밀양지부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밀양지부장이 이 이야기를 하더군요.
증산법종교는 신도로서 다스려지는 곳이라구요.
저도 적극 공감하는 얘기였습니다.
이 부분을 잘 읽어 보시면 증산법종교가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甑山法宗敎 六十年史-제3장 교단의 위기극복
2. 교단의 위기극복
...
2) 김양호 사건(金良皓 事件)
선사님이 선화하신 이후, 기강이 느슨해진 틈을 타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본교를 이탈하여 정도를 망각하고 사도로 빠져드니, 그 대표적 인물이 김양호이다. 그는 경북 청송 사람으로서 본교 초창기부터 교단의 기초를 세우는데 공이 있어 추종하는 자가 다수 있었다. 선사님이 선화하신 이후 사회사업을 경영하다 실패하자 실의에 빠져있던 중, 천하전에서 혼자 수련하게 되었는데, 3일째 되던 날 허령이 들어 제정신을 잃고 공허한 망상에 사로잡혀 횡설수설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그릇된 사의를 품고 천기92년(4295, 1962, 壬寅), 평소 그를 따르던 박순봉, 신현국, 신도균, 이화학, 김기환, 전재택, 김응환, 김재숙, 최병희 등의 무리와 공모하여 영남, 서산, 부산, 강릉, 원주, 삼천, 예천지부의 도생 다수를 유인하여 본교를 이탈하였다. 그는 천기 95년(4298, 1965, 己巳)에 자칭 청도대향원(淸道大享院)을 설립하여 원장이 되더니 경오년(4323,1990) 겨울에 별세하였다.
김양호는 구안정사님의 장남입니다.
화은당선사님께서 6기초 공사까지 많은 일을 하기도 했구요.
이 분이 화은당 선사님과 구암정사님께서 선화 하시고 나면 차기 아니 차차기에 회장이(볍종사) 분명히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증산법종교는 사유화가 이루어졌을 겁니다.
구암정사님의 장남이고 말씀도 잘하시고 배운 것도 많고 생긴 것도 키가 크고 잘생겼답니다.
누구도 법종사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분명 장기집권 했을 겁니다.
그리고 일부 00형제 교단들처럼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을 겁니다.
물론 형제 교단의 일은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겠구요.
김삼일씨는 천하전 사건 이후로 동곡 약방 앞에 청도 대향원이라는 집을 짓고 교주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둘째 아들인 성갑씨가 교주가 되어 있구요.
증산법종교가 사유화가 되었다면 장기 집권에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에 김삼일씨를 사업에 망하게 하고 천하전에 올라가서 공부한지 3일 만에 잠깐 통을 열어 주신거지요.
비정하리만치 정리정돈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간 무리들도 모두 정리해 버린거구요.(법종교 교인 반 이상이 김삼일씨를 따라감)
증산법종교에는 법종교를 잘 지킬 수 있는 씨앗들만 남겨 놓은 거라 생각 됩니다.
이런 일 말고도 증산법종교에서 조금의 사심이 보이면 바로 아웃 된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증산법종교는 신도로서 다스려지는 무서운 곳임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대순전경6-13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복이 이르나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들어 복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대순전경6-88 앉을 자리를 탐내어 당치않은 자리에 앉으면 신명들이 등을 쳐서 물리치나니 자리탐을 내지 말고 덕 닦기를 힘쓰며 마음을 잘 가지면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느니라.
대순전경6-109 일꾼 된 자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이라도 기울지 아니 하여야 할지니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느니라.
** 개인사와 형제교단을 험하고자하는 얘기는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사심을 가진 사람이 우리 증산법종교에 있다면 교훈삼아 마음을 비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사심 없는 마음이 일심으로 가는 첫 단추입니다.
오늘도 증산상제님 품 안에서 행복하세요.
밀양지부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밀양지부장이 이 이야기를 하더군요.
증산법종교는 신도로서 다스려지는 곳이라구요.
저도 적극 공감하는 얘기였습니다.
이 부분을 잘 읽어 보시면 증산법종교가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甑山法宗敎 六十年史-제3장 교단의 위기극복
2. 교단의 위기극복
...
2) 김양호 사건(金良皓 事件)
선사님이 선화하신 이후, 기강이 느슨해진 틈을 타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본교를 이탈하여 정도를 망각하고 사도로 빠져드니, 그 대표적 인물이 김양호이다. 그는 경북 청송 사람으로서 본교 초창기부터 교단의 기초를 세우는데 공이 있어 추종하는 자가 다수 있었다. 선사님이 선화하신 이후 사회사업을 경영하다 실패하자 실의에 빠져있던 중, 천하전에서 혼자 수련하게 되었는데, 3일째 되던 날 허령이 들어 제정신을 잃고 공허한 망상에 사로잡혀 횡설수설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그릇된 사의를 품고 천기92년(4295, 1962, 壬寅), 평소 그를 따르던 박순봉, 신현국, 신도균, 이화학, 김기환, 전재택, 김응환, 김재숙, 최병희 등의 무리와 공모하여 영남, 서산, 부산, 강릉, 원주, 삼천, 예천지부의 도생 다수를 유인하여 본교를 이탈하였다. 그는 천기 95년(4298, 1965, 己巳)에 자칭 청도대향원(淸道大享院)을 설립하여 원장이 되더니 경오년(4323,1990) 겨울에 별세하였다.
김양호는 구안정사님의 장남입니다.
화은당선사님께서 6기초 공사까지 많은 일을 하기도 했구요.
이 분이 화은당 선사님과 구암정사님께서 선화 하시고 나면 차기 아니 차차기에 회장이(볍종사) 분명히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증산법종교는 사유화가 이루어졌을 겁니다.
구암정사님의 장남이고 말씀도 잘하시고 배운 것도 많고 생긴 것도 키가 크고 잘생겼답니다.
누구도 법종사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분명 장기집권 했을 겁니다.
그리고 일부 00형제 교단들처럼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을 겁니다.
물론 형제 교단의 일은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겠구요.
김삼일씨는 천하전 사건 이후로 동곡 약방 앞에 청도 대향원이라는 집을 짓고 교주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둘째 아들인 성갑씨가 교주가 되어 있구요.
증산법종교가 사유화가 되었다면 장기 집권에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에 김삼일씨를 사업에 망하게 하고 천하전에 올라가서 공부한지 3일 만에 잠깐 통을 열어 주신거지요.
비정하리만치 정리정돈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간 무리들도 모두 정리해 버린거구요.(법종교 교인 반 이상이 김삼일씨를 따라감)
증산법종교에는 법종교를 잘 지킬 수 있는 씨앗들만 남겨 놓은 거라 생각 됩니다.
이런 일 말고도 증산법종교에서 조금의 사심이 보이면 바로 아웃 된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증산법종교는 신도로서 다스려지는 무서운 곳임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대순전경6-13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복이 이르나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들어 복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대순전경6-88 앉을 자리를 탐내어 당치않은 자리에 앉으면 신명들이 등을 쳐서 물리치나니 자리탐을 내지 말고 덕 닦기를 힘쓰며 마음을 잘 가지면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느니라.
대순전경6-109 일꾼 된 자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이라도 기울지 아니 하여야 할지니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느니라.
** 개인사와 형제교단을 험하고자하는 얘기는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사심을 가진 사람이 우리 증산법종교에 있다면 교훈삼아 마음을 비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사심 없는 마음이 일심으로 가는 첫 단추입니다.
오늘도 증산상제님 품 안에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