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합일론 第一章(제일장) 心 性 論(심성론)
삼진합일론 第一章(제일장) 心 性 論(심성론)
구암 김병철
사람이 耳(이)目(목)口(구)鼻(비) 四大六身(사대육신)의 所在處(소재처)는 各各(각각)알고 있것마는
마음의 所在(소재)가 여기라고 指摘(지적)하여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그 所在處(소재처)를 말하자면 마음이라는 것은 곧 五臟(오장)의 염통인데 四方一寸(사방일촌)이니 聖人(성인)은 其中(기중)에 有三霛(유삼용)하고 中人(중인)은 二霛(이용)하고 小人(소인)은 一霛(일용)하고 愚人(우인)은 無霛(무용)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一身(일신)을 主宰(주재)하며 萬化(만화)의 根本(근본)이 되고 形體(형체)의 君(군)이 되며 神明(신명)의 主人(주인)이 되는 것이다.
天師(천사)님 法經(법경)에 云(운)하시되 心也者(심야자) 鬼神之樞機(也(귀신지추기야) 門戶也(문호야) 道路也(도로야) 開閉樞機出入門戶(개폐추기출입문호) 往來道路神(왕래도로신) 或有善(혹유선) 或有惡(혹유악) 善者師之(선자사지지) 惡者改之(악자개지) 吾心之樞機門戶道路(오심지추기문호도로) 大於天地(대어천지)라 하시고 또 心者(심자)는 鬼神之舍所(귀신지사소)니 交於神明之本(교어신명지본)이니라 하시니 鬼神(귀신)의 舍所(사소)는 곧 마음이라.
釋尊(석존)은 이곳을 靈山(영산)이라하고 老子(노자)는 靈關(영관)이라하고 孔子(공자)는 靈坮(영대)라하고 回敎(회교)는 淸眞(청진)이라하고 其督(기독)은 靈爽(영상)이라하고 哲學(철학)은 眞我(진아)라하고 科學(과학)은 靈素(영소)라하며 其外絳宮(기외강궁) 庚辛室(경신실) 甲乙戶((갑을호) 西南鄕(서남향) 黃庭(황정) 無何鄕(무하향)이라고도 하나
天師(천사)께서는 心靈神臺(심영신대)라고 明示(명시)하셨다.
이곳은 收斂(수렴)하야 虛明(허명)한 年後(년후)이라야 神明(신명)을 사귀는바 根本(근본)이 되는 것이다.
心之體(심지체)는 虛明(허명)하야 明鏡(명경)과 如(여)하며 또한 淸淨止水(청정지수)와 같아서 毫釐(호리)의 雜亂(잡란)이 없고 非靑(비청) 非白(비백) 非黃(비황) 非黑(빕흑) 非紅(비홍)의 体(체)를 가진다.
經(경)에 曰(왈) 聖人之心(성인지심)이 未感於物也則(미감어물즉) 其体廣大虛明(기체광대명)하야 絶無毫髮偏倚(절무호발편의) 하나니 所謂(소위) 天下之大本也(천허지대본야)니라 하시니 이곳은 武夷九曲中(무이구곡중중) 四曲境地(사곡경지)의 心体(심체)이다.
金鷄叫罷無人識(금계규파무인식)하니 月滿空山水滿潭(월만공산수만담) 聖人之心(성인지심)이 未感於物也時(미감어물야시)에 廣大虛明之氣像(광대허명지기상)이오 水流無彼此(수류무피차)오 地勢有東西(지세유동서)라 이는 곧 毫髮偏倚之氣像(호발편의지기상)이니 이곳은 곧 留滯(류체)와 浮念(부념)과 攪亂(교란)이 없는 淸淨無垢(청정무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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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曰(우왈) 衆陰之中(중음지중)에 一陽(일양)이 始生(시생)하면 天地之心(천지지심)을 可見(가견)이오
衆惡之中(중악지중)에 一善(일선)이 始生(시생)하면 聖人之心(성인지심)을 可見(가견)이라 하시니
一陽一善(일양일선)이 곧 生也(생야)라 若無始生則(약무시생즉) 天地(천지)도 晦死(회사)하고
蒼生(창생)도 亦滅亡而已(역멸망이이)니라.
또한 心(심)은 誠然後(성연후)에 体立(체입)하고 心体立然後(심체입연후)에 虛靈(허령)이오 虛靈然後(허령연후)에 智覺(지각)이오 智覺然後(지각연후)에 道之行心之用(도지행심지용)이라.
經(경)에 曰(왈) 土居中央(토거중앙)하고 心亦虛中而居中央(심역허중이거중앙)하니
天地之中央(천지지중앙)은 心也(심야)라 故(고)로 東西南北(동서남북)에 身依於心(심의어심)하니라 하시니
心(심)은 곧 一身(일신)을 主宰(주재)하는것만 아니라 天地(천지)의 中央(중앙)이 되는 것이다.
放之則彌六合(방지즉미육합)하고 卷之則退藏於密(권지즉퇴장어밀)하니
나의 心箴(심잠)에는 茫茫(망망)한 天地(천지)가 限(한)이 없는데 사람이 其間(기간)에 渺然(묘연)하게 이 몸을 두니 이 몸의 微少(미소)함이 譬(비)컨데 太倉中(태창중)에 一介(제?)米(일개제미)와도 같아야 實(실)로 恒河一沙(항하일사)에 지나지 못하나 能(능)히 天地(천지)에 入參(입참)하야 三才(삼재)가 됨은 오직 心(심)인 緣故(연고)라.
이 몸이 그 廣大虛明(광대허면명)한 心(심)에 依持(의지)하여 있으니 往古來今(왕고래금)에 그 누가 그 心(심)이 없었으리오 만은 이 몸이 다만 心(심)의 形役(형역)이 되어서 禽獸(금수)를 不免(불면)하였던 것이다.
心(심)은 또 地球(지구)의 七周半(칠주반)을 霎時間(삽시간)에 巡環(순환)하는 電光線(전광선)보다도 더 빠른 것이니 不疾而速(불질이속)하며 不行而至(불행이지)하야 方寸之鑑(방촌지감)이 可以天地 無形之外(가이천지 무형지외)하니 天下古今(천하고금)과 四方八荒(사방팔황)이 皆由於心(개유어심)이라. 心(심)은 곳 이와 같으니 그 心(심)은 廣大無邊(광대무변변)함을 可以(가이)알지라.
그러나 人間(인간)이 모두 이러한 廣大虛明之心(광대허면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心(심)을 至靜至虛(지정지허)하게 維持(유지)하기가 가장 어려우니 枯木灰死(고목회사)와 같이한 然後(연후)에 至靜至虛(지정허)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明鑑止水(명감지수)와 如(여)히 物質(물질)을 미치지 않을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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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虛明(허명)한 本然(본연)이 完然自若(오나연자약)하야 能(능)히 物質(물질)을 受照(수조)할 明体(명체)를 維持(유지)하는 것이니 經(경)에 曰(왈) 寶鑑(보감)은 照與不照(조여불조)나 明未嘗息(명미상식)하고 洪鍾(홍종)은 叩與不叩(고여불고)나 鳴未嘗已(명미상이)이니라고 하심이라.
사람 마음이 物情(물정)에 感動(감동)되었다가 지난 後(후)면 마치 蒼天(창천)에 浮雲(부운)이 지나간 것과 같고
明鑑(명감)에 物体(물체)가 照過(조과)함과 같이 心中(심중)에 아무리 喜怒哀樂之情(희노애락지정)이 事物(사물)에 따라 感動(감동)되어도 이것을 細審省察(세심성찰)하여 正理的(정리적)으로만 處理(처리)하고난 然後(연후)면 또다시 虛明(허명)한 靈坮(영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萬若(만약) 正心(정심)하지 못하고 物情(물정)에만 偏倚(편의)한다면 이는 곧 寶鑑(보감)의 塵垢(진구)와 洪鍾(홍종)의 破裂(파열)과 蒼天(창천)의 蔽雲(폐운)과 같이 心(심)도 또한 그러하야 人間(인간) 本然(본연)의 淸淨心(청정심)을 喪失(상실)하고 五慾(오욕)에 사로잡혀 그 五慾(오욕)의 主宰(주재)를 몸이 받게되여 方寸之鑑(방촌지감)을 未分(미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君(천군)이 泰然(태연)에 百體從令(백체종영)이니라.또 貌言視聽思(모언시청사)가 心之用(심지용)이니
動靜語默(동정어묵)과 出入起居(출입기거)가 모두 心之發露(심지발노)인 故(고)로 言者(언자)는 心之聲(심지성)이오 行者(행자)는 心之跡(심지적)이라.
經(경) 曰(왈) 天用 地用 人用(천용 지용 인용)이 統在於心(통재어심)이니라 하시니 하늘과 땅과 사람의 쓰심이 도무지 마음에 있으니 사람 마음으로 能(능)히 天地人 三界(천지인 삼계)를 쓰게 되는 것이다.
先天(선천)에는 天地雨露(천지우로)와 地之水土(지지수토)와 人之德化(인지덕화)를 薄(박)하게 쓴 故(고)로 人間(인간)이 必有含怨之心(필유함원심)이나 後天(후천)은 心神統一時代(심신통일시대)에 惡物(악물)이 自死(자사)하고 任於心神用之(임어심용지)리니 唯心者 永得快樂(유심자 영득쾌락)하리라.
이러한 法文(법문)은 前聖(전성)의 말씀 못하신 句節(구절)이시라
또 人間(인간)의 마음은 口膓(구장)의 甘味(감미)를 탐하고 手足(수족)의 安佚(안일)을 즐기며 其他(기타) 耳目口鼻 手足臟腑(이목구비 수족장부)의 衆欲(중욕)이 時時(시시)로 攻害(공해)함으로 病的心理(병적심리)를 가지기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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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塵欲苦海(진욕고해)에서 能(능)히 六塵(육진)을 蟬脫(선탈)하고 마음을 保存(보존)하는 者(자)는 마땅히 三淸仙界(삼청선계)에 遊遊自在(유유자재)함을 得(득)할 것이다.
人間(인간)의 마음에는 聖人之心(성인지심) 大人之心(대인지심) 小人之心(소인지심) 道心(도심) 良心(양심) 赤子之心(적자지심) 衆人之心(중인지심) 等(등)으로 大別(대별)할 수 있다.
經(경)에 曰(왈) 마음은 聖人(성인)의 바탕을 닦고 일은 英雄(영웅)의韜略(도약)을 取(취)할지라 하시니天(천)은 無心而與之(무심이여지)하고 聖人(성인)은 有心而敎之(유심이교지)하니 聖人(성인)의 마음은 곳 廣大虛明(광대허명)하야 不失其本心(불실기본심)하시니 立於仁義(입어인의)하며 處事於智勇(처사어지용)하라 하심이라.
또 모든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하심은 人間本然(인간본연)의 마음을 가르치심이오 ,
일에 處(처)하여 안된다고 하지말고 一心(일심) 못가짐을 恨(한)하라 一心(일심)만 가지면 못되는 일이 없으리라.
千古以上(천고이상)과 萬里之外(만리지외) 一心所通焉(일심소통언)이라 하시니 一心(일심)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自强立志(자강입지)하야 正心立体(정심입체)하고 一念在玆(일념재자)에 至誠無息(지성무식)하야 天師(천사)께서 주신 心法(심법)을 修行 戒行 信行(수행 계행 신행)하여 眞心(진심)으로 들어간 境地(경지)가 곧 一心(일심)의 發露点(발노점)이다.
그러하다면 天師(천사)께서 주시고 받은心法(심법)은 어떠한가?
經頭(겅두)에 曰(왈) 相授心法(상수심법)은 允執厥中(윤집궐중)이니라 하시니 君臣(신신) 父子(부자) 夫婦(부부) 師第之間(사제지간)이 心不相授(심불상수)하야 各二其心則(각이기심즉) 此(차)는 君臣(군신) 一家(일가) 師第之不法(사제지불법)이니 其國(기국)이不治(불치)하고 其家 不睦(기가 불목)하고 其學(기학)이 不成(불성)하리니 그러므로 相授心法(상수심법)은 곳 中(중)이라 하심이라.
그러면 그 中(중)과 和(화)는 무엇인가?
心之未發(심지미발)을 謂之中(위지중)이라하니 人間七情(인간칠정)이 未發(미발)할 時(시)는 不偏不倚(불편불의)하는 것이니 이것이 至靜(지정)하야 無不該(무불해)한 것이며, 至虛(지허)하야 寂然不動(적연불동)한 것이며, 過不及(괴불급)의 差異(차이)가 없고 非東(비동) 非西(비서) 非南(비남) 非北(비북) 非上(비상) 非下(비하)의 位(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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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비)컨데 七情(칠정)이 未發(미발)에는 房中(방중)에 處(처)한과 如(여)하야 東西南北(동서남북) 上下(상하)에 定局(정국)하야一方(방일)에 偏倚(편의)한 것이 아니라 다만 正中点卽(정중점즉) 矢至的要處(시지적요처)에 있음을 名稱(명칭)하여 中(중)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곳은 어느 곳일가?
玄妙(현묘)한곳이오 寂滅(적멸)한곳이오 虛無(허무)한곳이오 色相(색상)이 없는 곳이오 聲嗅(성후)가 없는 곳 이다.
老子(노자)는 이곳을 指(지)하야 空無所空(공무소공)하면 見本心(견본심)한다 하였으며,
釋尊(석존)은 不生不滅(불생불멸)하며 不垢不淨(불구불정)하며 不增不減(불증불감)일새 空中無色之處(공중무색지처)라하셨다.
이곳은 必人自自得焉(필인자득언)이니라.
和也者(화야자)는 心(심)이 已發(이발)하야 七情(칠정)의 節準(절준)에 適中(적중)하며 天理儀則(천리의즉)에 悖(戾(패려)치 않으며 違反(위반)치 않으며 貪厭(탐염)치 않으며 欺忘(기망)치 않으며 汚慾(오욕)치 않으야 藏則氤氳(장즉인온)하고 放則融化(방즉융화)하니 不可形言(불가형언)이며 不可模畵(불가모화)며 不可思量(불가사량)이라 然則 此處(연즉 차처)는 人自得中然後(인자득중후)에 自得焉(자득언)이라.譬(비)컨데 七情(칠정)이 已發(이발)함에 房中(방중)에는 門外(문외)에 出(출)할 때 東(동)으로 가자면 西(서)으로가지 않고 南(남)으로 가자면 다시 北(북)으로 가지 않아야 各各(각각) 그當然(당연)한 곳을 向(향)하여 一毫(일호)의 差異(차이)와 偏倚(편의)한바가 없음을 和(화)라고 한다. 이러한境地(지)가 곧 一心(일심)이다.
그러므로 中然後(중연후)에 可以存其心(가이존기심)하고 存其心然後(존기심연후)에 可以養其性(가이양기성)하고 養其性然後(양기성연후)에 可以見其性(가이견기성)하고 見其性然後(견기성연후)에 可以体其性(가이체기성)하고 体其性然後(체기성연후)에萬事(만사)를 任意(임의)로 하나니, 孔子(공자)는 存心養性(존심양성)하시고 老子(노자)는 守心練性(수심련성)하시고釋尊(석존)은 明心見性(명심견성)하시고 其督(기독)은 洗心移性(세심이성)하셨으나天師(천사)께서는 中和体性(중화체성성) 或(혹)은 一心体性(일심체성성)이라고 하셨다. 人間(인간) 本然(본연)의 心燈(심등)에다가 無窮한点燈(무궁한점등)을 빛추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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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師(천사)님의 그 崇高(숭고)한 聖人之心(성인지심)을 본받아서 一心力行則(일심역행즉) 至氣隨我(지기수아)하야 一早豁然貫通而大覺(일조활연관통이대각)하야 成仙作佛(성선작불)하리니 可謂有体神人(가위유체신인)이니라.
三一神(신)誥(삼일신고)에 曰(왈) 心(심)은 依性(의성)하야 有善惡(유선악)하니 善福惡禍(선복악화)라 하시니
心(심)은 氣(기)이니 天(천)의 上帝(상제)오 性(성)은 理(리)니 天(천)의 太極(태극)이라
上帝(상제)는 太極(태극)을 運轉(운전)하여도 太極태(극)은 上帝(상제)를 運轉(운전)하지 못한다.
心(심)에는 虛靈(령)智覺(허령지각)이 있어 有爲(유위) 有力(유력) 有運(유운) 有覺(유각)하며,
性(성)은 仁義禮智(인의예지)하야 無爲(무위) 無朕(무짐) 無惡(무악) 無力(무력)하고 다만 所以然(소이연)의 標準(표준)이다.
그러므로 心(심)은 性(성)을 通(통)하여 運轉(우전)하니 心善則(심선즉) 福(복)하고 心惡則(심악즉) 禍(화)라 하심이라.經(경)에 曰(왈) 一心篤行則(일심독행즉) 日用之間(일용지간)에 由念慮之微(유념여지미)하야 以達于事乃著(이달우사내저)하나니必能去私取義(필능거사의)하며, 從是使非(종시사비)하야 不使一毫人欲之私則(불사일호인욕지사즉) 天理光明正大矣(천리광면정대의)리라 하시니一心所到處(일심소도처)에 何事不成(하사불성)가 一心所到(일심소도)에 金石(금석)을 可透(가투)하나니 可以格物(가이격물)이며 可以格神(가이격신)이니라.
구암 김병철
사람이 耳(이)目(목)口(구)鼻(비) 四大六身(사대육신)의 所在處(소재처)는 各各(각각)알고 있것마는
마음의 所在(소재)가 여기라고 指摘(지적)하여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그 所在處(소재처)를 말하자면 마음이라는 것은 곧 五臟(오장)의 염통인데 四方一寸(사방일촌)이니 聖人(성인)은 其中(기중)에 有三霛(유삼용)하고 中人(중인)은 二霛(이용)하고 小人(소인)은 一霛(일용)하고 愚人(우인)은 無霛(무용)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一身(일신)을 主宰(주재)하며 萬化(만화)의 根本(근본)이 되고 形體(형체)의 君(군)이 되며 神明(신명)의 主人(주인)이 되는 것이다.
天師(천사)님 法經(법경)에 云(운)하시되 心也者(심야자) 鬼神之樞機(也(귀신지추기야) 門戶也(문호야) 道路也(도로야) 開閉樞機出入門戶(개폐추기출입문호) 往來道路神(왕래도로신) 或有善(혹유선) 或有惡(혹유악) 善者師之(선자사지지) 惡者改之(악자개지) 吾心之樞機門戶道路(오심지추기문호도로) 大於天地(대어천지)라 하시고 또 心者(심자)는 鬼神之舍所(귀신지사소)니 交於神明之本(교어신명지본)이니라 하시니 鬼神(귀신)의 舍所(사소)는 곧 마음이라.
釋尊(석존)은 이곳을 靈山(영산)이라하고 老子(노자)는 靈關(영관)이라하고 孔子(공자)는 靈坮(영대)라하고 回敎(회교)는 淸眞(청진)이라하고 其督(기독)은 靈爽(영상)이라하고 哲學(철학)은 眞我(진아)라하고 科學(과학)은 靈素(영소)라하며 其外絳宮(기외강궁) 庚辛室(경신실) 甲乙戶((갑을호) 西南鄕(서남향) 黃庭(황정) 無何鄕(무하향)이라고도 하나
天師(천사)께서는 心靈神臺(심영신대)라고 明示(명시)하셨다.
이곳은 收斂(수렴)하야 虛明(허명)한 年後(년후)이라야 神明(신명)을 사귀는바 根本(근본)이 되는 것이다.
心之體(심지체)는 虛明(허명)하야 明鏡(명경)과 如(여)하며 또한 淸淨止水(청정지수)와 같아서 毫釐(호리)의 雜亂(잡란)이 없고 非靑(비청) 非白(비백) 非黃(비황) 非黑(빕흑) 非紅(비홍)의 体(체)를 가진다.
經(경)에 曰(왈) 聖人之心(성인지심)이 未感於物也則(미감어물즉) 其体廣大虛明(기체광대명)하야 絶無毫髮偏倚(절무호발편의) 하나니 所謂(소위) 天下之大本也(천허지대본야)니라 하시니 이곳은 武夷九曲中(무이구곡중중) 四曲境地(사곡경지)의 心体(심체)이다.
金鷄叫罷無人識(금계규파무인식)하니 月滿空山水滿潭(월만공산수만담) 聖人之心(성인지심)이 未感於物也時(미감어물야시)에 廣大虛明之氣像(광대허명지기상)이오 水流無彼此(수류무피차)오 地勢有東西(지세유동서)라 이는 곧 毫髮偏倚之氣像(호발편의지기상)이니 이곳은 곧 留滯(류체)와 浮念(부념)과 攪亂(교란)이 없는 淸淨無垢(청정무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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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曰(우왈) 衆陰之中(중음지중)에 一陽(일양)이 始生(시생)하면 天地之心(천지지심)을 可見(가견)이오
衆惡之中(중악지중)에 一善(일선)이 始生(시생)하면 聖人之心(성인지심)을 可見(가견)이라 하시니
一陽一善(일양일선)이 곧 生也(생야)라 若無始生則(약무시생즉) 天地(천지)도 晦死(회사)하고
蒼生(창생)도 亦滅亡而已(역멸망이이)니라.
또한 心(심)은 誠然後(성연후)에 体立(체입)하고 心体立然後(심체입연후)에 虛靈(허령)이오 虛靈然後(허령연후)에 智覺(지각)이오 智覺然後(지각연후)에 道之行心之用(도지행심지용)이라.
經(경)에 曰(왈) 土居中央(토거중앙)하고 心亦虛中而居中央(심역허중이거중앙)하니
天地之中央(천지지중앙)은 心也(심야)라 故(고)로 東西南北(동서남북)에 身依於心(심의어심)하니라 하시니
心(심)은 곧 一身(일신)을 主宰(주재)하는것만 아니라 天地(천지)의 中央(중앙)이 되는 것이다.
放之則彌六合(방지즉미육합)하고 卷之則退藏於密(권지즉퇴장어밀)하니
나의 心箴(심잠)에는 茫茫(망망)한 天地(천지)가 限(한)이 없는데 사람이 其間(기간)에 渺然(묘연)하게 이 몸을 두니 이 몸의 微少(미소)함이 譬(비)컨데 太倉中(태창중)에 一介(제?)米(일개제미)와도 같아야 實(실)로 恒河一沙(항하일사)에 지나지 못하나 能(능)히 天地(천지)에 入參(입참)하야 三才(삼재)가 됨은 오직 心(심)인 緣故(연고)라.
이 몸이 그 廣大虛明(광대허면명)한 心(심)에 依持(의지)하여 있으니 往古來今(왕고래금)에 그 누가 그 心(심)이 없었으리오 만은 이 몸이 다만 心(심)의 形役(형역)이 되어서 禽獸(금수)를 不免(불면)하였던 것이다.
心(심)은 또 地球(지구)의 七周半(칠주반)을 霎時間(삽시간)에 巡環(순환)하는 電光線(전광선)보다도 더 빠른 것이니 不疾而速(불질이속)하며 不行而至(불행이지)하야 方寸之鑑(방촌지감)이 可以天地 無形之外(가이천지 무형지외)하니 天下古今(천하고금)과 四方八荒(사방팔황)이 皆由於心(개유어심)이라. 心(심)은 곳 이와 같으니 그 心(심)은 廣大無邊(광대무변변)함을 可以(가이)알지라.
그러나 人間(인간)이 모두 이러한 廣大虛明之心(광대허면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心(심)을 至靜至虛(지정지허)하게 維持(유지)하기가 가장 어려우니 枯木灰死(고목회사)와 같이한 然後(연후)에 至靜至虛(지정허)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明鑑止水(명감지수)와 如(여)히 物質(물질)을 미치지 않을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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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虛明(허명)한 本然(본연)이 完然自若(오나연자약)하야 能(능)히 物質(물질)을 受照(수조)할 明体(명체)를 維持(유지)하는 것이니 經(경)에 曰(왈) 寶鑑(보감)은 照與不照(조여불조)나 明未嘗息(명미상식)하고 洪鍾(홍종)은 叩與不叩(고여불고)나 鳴未嘗已(명미상이)이니라고 하심이라.
사람 마음이 物情(물정)에 感動(감동)되었다가 지난 後(후)면 마치 蒼天(창천)에 浮雲(부운)이 지나간 것과 같고
明鑑(명감)에 物体(물체)가 照過(조과)함과 같이 心中(심중)에 아무리 喜怒哀樂之情(희노애락지정)이 事物(사물)에 따라 感動(감동)되어도 이것을 細審省察(세심성찰)하여 正理的(정리적)으로만 處理(처리)하고난 然後(연후)면 또다시 虛明(허명)한 靈坮(영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萬若(만약) 正心(정심)하지 못하고 物情(물정)에만 偏倚(편의)한다면 이는 곧 寶鑑(보감)의 塵垢(진구)와 洪鍾(홍종)의 破裂(파열)과 蒼天(창천)의 蔽雲(폐운)과 같이 心(심)도 또한 그러하야 人間(인간) 本然(본연)의 淸淨心(청정심)을 喪失(상실)하고 五慾(오욕)에 사로잡혀 그 五慾(오욕)의 主宰(주재)를 몸이 받게되여 方寸之鑑(방촌지감)을 未分(미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君(천군)이 泰然(태연)에 百體從令(백체종영)이니라.또 貌言視聽思(모언시청사)가 心之用(심지용)이니
動靜語默(동정어묵)과 出入起居(출입기거)가 모두 心之發露(심지발노)인 故(고)로 言者(언자)는 心之聲(심지성)이오 行者(행자)는 心之跡(심지적)이라.
經(경) 曰(왈) 天用 地用 人用(천용 지용 인용)이 統在於心(통재어심)이니라 하시니 하늘과 땅과 사람의 쓰심이 도무지 마음에 있으니 사람 마음으로 能(능)히 天地人 三界(천지인 삼계)를 쓰게 되는 것이다.
先天(선천)에는 天地雨露(천지우로)와 地之水土(지지수토)와 人之德化(인지덕화)를 薄(박)하게 쓴 故(고)로 人間(인간)이 必有含怨之心(필유함원심)이나 後天(후천)은 心神統一時代(심신통일시대)에 惡物(악물)이 自死(자사)하고 任於心神用之(임어심용지)리니 唯心者 永得快樂(유심자 영득쾌락)하리라.
이러한 法文(법문)은 前聖(전성)의 말씀 못하신 句節(구절)이시라
또 人間(인간)의 마음은 口膓(구장)의 甘味(감미)를 탐하고 手足(수족)의 安佚(안일)을 즐기며 其他(기타) 耳目口鼻 手足臟腑(이목구비 수족장부)의 衆欲(중욕)이 時時(시시)로 攻害(공해)함으로 病的心理(병적심리)를 가지기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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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塵欲苦海(진욕고해)에서 能(능)히 六塵(육진)을 蟬脫(선탈)하고 마음을 保存(보존)하는 者(자)는 마땅히 三淸仙界(삼청선계)에 遊遊自在(유유자재)함을 得(득)할 것이다.
人間(인간)의 마음에는 聖人之心(성인지심) 大人之心(대인지심) 小人之心(소인지심) 道心(도심) 良心(양심) 赤子之心(적자지심) 衆人之心(중인지심) 等(등)으로 大別(대별)할 수 있다.
經(경)에 曰(왈) 마음은 聖人(성인)의 바탕을 닦고 일은 英雄(영웅)의韜略(도약)을 取(취)할지라 하시니天(천)은 無心而與之(무심이여지)하고 聖人(성인)은 有心而敎之(유심이교지)하니 聖人(성인)의 마음은 곳 廣大虛明(광대허명)하야 不失其本心(불실기본심)하시니 立於仁義(입어인의)하며 處事於智勇(처사어지용)하라 하심이라.
또 모든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하심은 人間本然(인간본연)의 마음을 가르치심이오 ,
일에 處(처)하여 안된다고 하지말고 一心(일심) 못가짐을 恨(한)하라 一心(일심)만 가지면 못되는 일이 없으리라.
千古以上(천고이상)과 萬里之外(만리지외) 一心所通焉(일심소통언)이라 하시니 一心(일심)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自强立志(자강입지)하야 正心立体(정심입체)하고 一念在玆(일념재자)에 至誠無息(지성무식)하야 天師(천사)께서 주신 心法(심법)을 修行 戒行 信行(수행 계행 신행)하여 眞心(진심)으로 들어간 境地(경지)가 곧 一心(일심)의 發露点(발노점)이다.
그러하다면 天師(천사)께서 주시고 받은心法(심법)은 어떠한가?
經頭(겅두)에 曰(왈) 相授心法(상수심법)은 允執厥中(윤집궐중)이니라 하시니 君臣(신신) 父子(부자) 夫婦(부부) 師第之間(사제지간)이 心不相授(심불상수)하야 各二其心則(각이기심즉) 此(차)는 君臣(군신) 一家(일가) 師第之不法(사제지불법)이니 其國(기국)이不治(불치)하고 其家 不睦(기가 불목)하고 其學(기학)이 不成(불성)하리니 그러므로 相授心法(상수심법)은 곳 中(중)이라 하심이라.
그러면 그 中(중)과 和(화)는 무엇인가?
心之未發(심지미발)을 謂之中(위지중)이라하니 人間七情(인간칠정)이 未發(미발)할 時(시)는 不偏不倚(불편불의)하는 것이니 이것이 至靜(지정)하야 無不該(무불해)한 것이며, 至虛(지허)하야 寂然不動(적연불동)한 것이며, 過不及(괴불급)의 差異(차이)가 없고 非東(비동) 非西(비서) 非南(비남) 非北(비북) 非上(비상) 非下(비하)의 位(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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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비)컨데 七情(칠정)이 未發(미발)에는 房中(방중)에 處(처)한과 如(여)하야 東西南北(동서남북) 上下(상하)에 定局(정국)하야一方(방일)에 偏倚(편의)한 것이 아니라 다만 正中点卽(정중점즉) 矢至的要處(시지적요처)에 있음을 名稱(명칭)하여 中(중)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곳은 어느 곳일가?
玄妙(현묘)한곳이오 寂滅(적멸)한곳이오 虛無(허무)한곳이오 色相(색상)이 없는 곳이오 聲嗅(성후)가 없는 곳 이다.
老子(노자)는 이곳을 指(지)하야 空無所空(공무소공)하면 見本心(견본심)한다 하였으며,
釋尊(석존)은 不生不滅(불생불멸)하며 不垢不淨(불구불정)하며 不增不減(불증불감)일새 空中無色之處(공중무색지처)라하셨다.
이곳은 必人自自得焉(필인자득언)이니라.
和也者(화야자)는 心(심)이 已發(이발)하야 七情(칠정)의 節準(절준)에 適中(적중)하며 天理儀則(천리의즉)에 悖(戾(패려)치 않으며 違反(위반)치 않으며 貪厭(탐염)치 않으며 欺忘(기망)치 않으며 汚慾(오욕)치 않으야 藏則氤氳(장즉인온)하고 放則融化(방즉융화)하니 不可形言(불가형언)이며 不可模畵(불가모화)며 不可思量(불가사량)이라 然則 此處(연즉 차처)는 人自得中然後(인자득중후)에 自得焉(자득언)이라.譬(비)컨데 七情(칠정)이 已發(이발)함에 房中(방중)에는 門外(문외)에 出(출)할 때 東(동)으로 가자면 西(서)으로가지 않고 南(남)으로 가자면 다시 北(북)으로 가지 않아야 各各(각각) 그當然(당연)한 곳을 向(향)하여 一毫(일호)의 差異(차이)와 偏倚(편의)한바가 없음을 和(화)라고 한다. 이러한境地(지)가 곧 一心(일심)이다.
그러므로 中然後(중연후)에 可以存其心(가이존기심)하고 存其心然後(존기심연후)에 可以養其性(가이양기성)하고 養其性然後(양기성연후)에 可以見其性(가이견기성)하고 見其性然後(견기성연후)에 可以体其性(가이체기성)하고 体其性然後(체기성연후)에萬事(만사)를 任意(임의)로 하나니, 孔子(공자)는 存心養性(존심양성)하시고 老子(노자)는 守心練性(수심련성)하시고釋尊(석존)은 明心見性(명심견성)하시고 其督(기독)은 洗心移性(세심이성)하셨으나天師(천사)께서는 中和体性(중화체성성) 或(혹)은 一心体性(일심체성성)이라고 하셨다. 人間(인간) 本然(본연)의 心燈(심등)에다가 無窮한点燈(무궁한점등)을 빛추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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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師(천사)님의 그 崇高(숭고)한 聖人之心(성인지심)을 본받아서 一心力行則(일심역행즉) 至氣隨我(지기수아)하야 一早豁然貫通而大覺(일조활연관통이대각)하야 成仙作佛(성선작불)하리니 可謂有体神人(가위유체신인)이니라.
三一神(신)誥(삼일신고)에 曰(왈) 心(심)은 依性(의성)하야 有善惡(유선악)하니 善福惡禍(선복악화)라 하시니
心(심)은 氣(기)이니 天(천)의 上帝(상제)오 性(성)은 理(리)니 天(천)의 太極(태극)이라
上帝(상제)는 太極(태극)을 運轉(운전)하여도 太極태(극)은 上帝(상제)를 運轉(운전)하지 못한다.
心(심)에는 虛靈(령)智覺(허령지각)이 있어 有爲(유위) 有力(유력) 有運(유운) 有覺(유각)하며,
性(성)은 仁義禮智(인의예지)하야 無爲(무위) 無朕(무짐) 無惡(무악) 無力(무력)하고 다만 所以然(소이연)의 標準(표준)이다.
그러므로 心(심)은 性(성)을 通(통)하여 運轉(우전)하니 心善則(심선즉) 福(복)하고 心惡則(심악즉) 禍(화)라 하심이라.經(경)에 曰(왈) 一心篤行則(일심독행즉) 日用之間(일용지간)에 由念慮之微(유념여지미)하야 以達于事乃著(이달우사내저)하나니必能去私取義(필능거사의)하며, 從是使非(종시사비)하야 不使一毫人欲之私則(불사일호인욕지사즉) 天理光明正大矣(천리광면정대의)리라 하시니一心所到處(일심소도처)에 何事不成(하사불성)가 一心所到(일심소도)에 金石(금석)을 可透(가투)하나니 可以格物(가이격물)이며 可以格神(가이격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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