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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의 “70년만의 귀향”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의 “70년만의 귀향”

열린마당  화송 화송님의 글모음 쪽지 2015-09-17 21:37 3,931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의 “70년만의 귀향”

정병호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사)평화디딤돌 대표)

일본 홋카이도 깊숙한 곳에서 한 일본 스님을 만났습니다. 박사논문을 위한 현지조사를 진행하던 1989년 가을이었습니다. 스님은 그 곳 산중의 한 댐 공사 현장에서 일제의 강제연행으로 끌려 온 조선 사람들도 많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벌써 10년째 숲속 여기저기에 묻힌 유골을 찾아내어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모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희생된 분들의 유족을 찾아 그 유골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거듭 이야기했습니다. 하얀 자작나무 숲속 무성한 조릿대 더미 밑 어딘가에 아직도 많은 희생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비감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일본 스님과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 교수가 되면 고고학 훈련이 된 학생들과 함께 와서 땅 속에 묻혀있는 그 유골들을 발굴하고, 억울한 희생의 역사적 진실을 다음 세대와 함께 밝히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한양대학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된 것은 1994년 봄이었고, 1997년 여름, 오래전 홋카이도 산중에서 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0여명의 한일 양국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가장 추운 혹한의 땅, 슈마리나이의 댐 공사 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발굴하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한국 학생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일본, 그리고 재일동포 3세 젊은이들이 할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함께 발굴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진실을 함께 확인하고, 현재의 서로를 이해하며, 미래의 평화를 모색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공동 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유골발굴>유골발굴은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원인, 매장방식 등을 알 수 있도록 고고학 발굴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철저하게 측량과 기록을 해가며 지표면부터 삽과 손도구로 한 층씩 흙을 파들어 가는 지난한 작업이었습니다. 변색된 흙의 흔적으로 당시의 삽 자국, 발자국의 모양까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계속되는 비속에 진흙탕이 되어버린 발굴현장에서 악전고투 끝에 4구의 유골을 발굴했습니다.

참혹한 주검이었습니다. 좁고 야트막한 구덩이 속에 관도 없이 쪼그린 자세로 꺾여 들어간 주검. 두개골 파열의 흔적이 역력한 주검. 나무뿌리에 뒤엉키고, 지나간 세월 속에 삭은 뼈마디를 보며 이러한 작업이 10년 전에만 이루어졌어도 더욱 확실한 사실규명이 가능하였으리라는 아쉬움과 아픔을 느꼈습니다.


유골이 발굴되는 순간 함께 작업을 하던 가해자의 자손, 피해자의 자손, 그리고 아직도 그 차별의 역사를 현실로 안고 사는 재일한국․조선인 자손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확인한 역사적 사실 앞에 전율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골 발굴 작업의 전 과정을 동행 취재한 홋카이도 TV 기자는 이 작업을 “할아버지를 파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기록했습니다.

발굴 현장에서 간단한 추도의식을 가진 후, 마지막 날 다양한 종교의례로 위령제를 거행했습니다. 한국의 유교식 참배에 이어, 무교식 진혼굿이 있었고, 일본 불교 승려들의 독경에 이어, 강제로 끌려 온 조선인들과 함께 식민지배의 고통을 겪은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 민족의 위령의식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간단한 기독교식 추모 예배를 집전한 일본인 목사는 성서를 읽고 사죄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카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 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 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세기 4장 8절-11절)

“사람의 손으론 지울 수 없는 범죄의 흔적, 반세기전에 이 땅에 흘린 그 희생의 피가 우리를 불러 오늘 이 자리에 모이게 했습니다. 이 움직일 수 없는 범죄의 증거 앞에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빕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확인한 이 준엄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러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범죄와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새 역사가 시작되도록 해야 합니다.”
참가자 모두는 각자 자기의 언어로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부르며 위령제를 마쳤습니다.

매 순간 역사의 무게를 느끼며 강행된 고된 발굴 작업 속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만남의 흥분과 진지한 토론의 열기 속에서 우정을 쌓아 나갔습니다. 함께 땀 흘려 일하고, 함께 자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놀고 하는 9일간의 직접 체험을 통해 이제까지 추상적으로만 알았던 이웃나라 젊은이들의 살아있는 존재를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일본인” 이라는 서로에 대한 집단적 이미지와 고정관념을 넘어서 개개인이 고유명사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만남과 이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젊은 의욕으로 서로의 언어를 배우려는 노력을 시작하였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느낌과 감정을 일상적으로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몇몇은 연애를 했고, 물론 헤어지기도 했지만, 몇 명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상대방의 나라에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1997년 첫 발굴 이후, 지난 18년 동안 연인원 1,500여명이 참가한 총 7차례의 유골발굴, 10여 차례의 유족찾기, 다양한 주제의 현장연구(fieldwork)가 매해 여름․겨울 워크숍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과거를 마음에 새기고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자” 하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공동 워크숍'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새로운 세대 간의 진정한 만남과 상호 이해를 위한 하나의 모색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70년만의 귀향>
2015년 올해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종교인, 학자, 청년들과 함께 유골발굴을 시작한지도 벌써 18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강제노동 현장에서 희생된 분들의 유골을 유족과 고향의 품으로 모셔오고자 하는 움직임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좀처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고령의 유족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희생자 유골을 직접 발굴하고 그 유족들을 찾아 온 저희들은 올해 추석까지 한국으로 유골을 모시고 와서 정식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고 고향땅에 안치하고자 합니다.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는 "70년만의 귀향"이 마침내 실현되는 올 추석이 될 것입니다.
<70년만의 귀향> 여정은 추석을 2주 앞둔 9월 12일,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이 2005년부터 3년간 발굴한 아사지노 일본육군비행장 강제노동 희생자 34구의 유골을 임시로 안치해 둔 홋카이도 북부의 한 마을 절에서 일본 스님들의 추모법회로 시작됩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종교인과 활동가들이 만들어서 세우려 했던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비가 일본 우익들의 방해로 아직도 창고에서 햇빛을 못보고 있는 바로 그 곳입니다.
이곳을 출발한 버스는 1997년 첫 발굴이 있었던 슈마리나이 댐 공사 현장의 "조릿대묘표 (사사노보효) 강제노동 자료관"을 들러 4구의 유골을 모시고, 비바이시의 미쓰비시 탄광에서 희생된 6구의 유골과 정토진종 삿포로 별원에서 합골된 유골 중 남한출신 희생자 유골 71구를 분골하여 모시고 홋카이도를 떠날 것입니다.이렇게 모두 115구의 유골이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강제연행으로 끌려간 분들은 고향을 떠나는 순간부터 매순간 탈출을 도모했습니다. 홋카이도까지 끌려온 분들은 일본 열도를 횡단하면서 2번씩 바다를 건너는 그 기나긴 길에 깊이 절망했다고 합니다.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들이 징용, 모집, 알선 등의 명목으로 끌려갔던 길을 7일에 걸쳐 되돌아오면서 도쿄, 교토, 히로시마, 시모노세키에서 추모제를 지낼 것입니다. 그분들이 건너지 못한 그 바닷길을 다시 건너 9월 18일, 부산 항구에서 진혼노제를 지내고, 추석 전 주말인 9월 19일, 서울광장에서 장례식을 거행한 후 서울시의 추모묘역에 안장하고자 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 귀향 행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30여 년간 이 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헌신해 오신 토노히라 요시히코 스님을 비롯한 양심적인 일본 종교인과 활동가 여러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부디 9월 18일, 금요일, 부산 항구에서의 진혼노제와 9월 19일, 토요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장례식에 여러 분들이 참석하시어 돌아가신 영령들의 명복을 함께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러한 한일 양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골발굴을 비롯하여 지난 18년 동안의 모든 작업은 순수한 자원봉사와 민간차원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국가 간의 대립과 갈등이 깊어가는 오늘날 국경을 넘는 민간차원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어 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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