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 성자(聖者) 심판과 이치복
우리가 하는 말들이 있지요.
유교가 세상을 점령하면 여자는 남자와 동등해질 수 없으며 기독교가 세상을 점령하면 인간은 영원히 원죄론을 못 벗어나고 여자는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으며 불교가 세상을 점령하면 지구상에 인간은 사라져 버린다고...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이요, 일월무지인허령(日月無知人虛靈)이니라. (대순전경 3:51p)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이요,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至人虛影)이니라.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 (道典 6:9)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공각(空殼)이요, 일월도 무용(無用)이라. (道典 11:388)
천지에 사람이 없으면 어떤 상황일까요?
동물이나 곤충은 많아지겠지만 정신적으로 썰렁한 허무함이 다가오네요.
*유월 스무 이튿날 약방마당에 자리를 깔고 천사 그 위에 누우사 치복을 명하여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더니 문득 공자(孔子)를 부르시며 가라사대 소정묘(小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성인(聖人)이 되며 삼대(三代) 출처(出妻)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齊家)하였다 하리요. 그대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갈지어다.
또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부르사 가라사대 수음(樹陰)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誘引)하야 부모의 윤기(倫氣)와 음양(陰陽)을 끊게 하여 인종(人種)을 절멸(絶滅)시키려 하니 그대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先靈)을 아느냐 창생(蒼生)을 아느냐 그대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나갈지어다.
또 노자(老子)를 부르사 가라사대 세속에 산모(産母)가 열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 한해를 어미 뱃속에 있었하 하니 그런 불효가 어디 있으며 그대가 이단(異端) 팔십권(八十卷)을 지었다하나 세상에서도 본자가 없고 나도 못 보았노라 그대로 이 세상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나갈지어다 하시니라. (대순전경 5:173-185)
그런데 야소(예수)와 맹자를 부르는 장면은 대순전경에 안 나오네요.
일단 도전(道典)에 있는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이 날 오후에 약방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제님께서 그 위에 반듯이 누우시어 치복에게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거늘 치복이 명하신 대로 멍석을 가져다 펴니 상제님께서 허공을 향해 준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꼼짝 마라. 오늘은 참 성인을 판단하리라.” 하시고 문 앞에 세워 두었던 기(旗)를 가져다 불사르게 하시니 뜻밖에 벽력이 일어 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명하시기를 “공자(孔子) 부르라.” 하시니 성도들이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거늘 다시 “어서 공자를 부르지 못할까!” 하고 호통을 치시매 성도들이 놀라서 엉겁결에 “공자 잡아 왔습니다.” 하는지라.
그런데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치복 성도를 골라 명하시어 새자리를 펴라 하심은 2가지 뜻이 있어 보입니다.
첫째 : 선천의 묵은 기운(역사)을 마무리 짓고 후천의 새자리(法)을 펴신다는 뜻인 것 같고요,
둘째 : 이치복 성도를 콕 찍어 명하심은 이치복 성도를 통해 도가 전해질 교단의 역사(연원)를 살피신 것 같습니다.
범증산교사 [증산도史]
창교주(創敎主)-운산(雲山) 안세찬(安世燦)의 교력(敎歷)
운산(雲山)은 임술(壬戌 1922)년 7월 15일 충남(忠南) 서산군(瑞山郡) 대산면(大山面) 운산리(雲山里)에서 안병욱(安柄彧)의 큰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원명(原名)은 세찬(世燦)이요 한 때 흥찬(興燦)이라 한 적이 있고 후일 호(號)를 운산(雲山)이라 하였다. 안병욱(安柄彧)은 본시 보천교(普天敎)교인으로 보천교주(普天敎主) 차경석(車京石)이 서거하였을 때 복(服)까지 입은 열성교인 이었다. 안병욱(安柄彧)은 종도(從徒) 이치복(李致福)에게서 도(道)들 받았다고 했고, 운산(雲山)은 부친에게서 도를 받은 것으로 말했다.
안병욱은 보천교에 다니던 일제(日帝)시대에 천안경찰서에 유치(留置)된 일이 있었다. 이 때 안병욱은 같은 유치장에서 보천교 교인으로충남(忠南) 아산군(牙山郡) 온양읍(溫陽色) 초사리(草沙里)사람 원웅섭(元應動 이웅상(李應祚)을 만났는데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사식(私食)을 들고 다니던 운산(雲山)이 여기서 원응섭, 이응상을 본 것이 훗날 함께 봉교(奉敎)할 인연을 만들었다.
범증산교사 [태극도史]
창교주(創敎主)-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의 생장(生長)과 수학(修學)
정산(鼎山)은 을미(乙未 1895)년 음력 12월 4일(양력 丙申 1월 19일)미시(未時)에 조선왕조(朝熊王朝) 경상도(慶尙道) 칠원군(淡原都) 서면(西面) 회문리(會文里)에서 출생하니 성(姓)은 조(趙), 본관은 함안(威安), 이름은 철제(哲濟)요, 자(字)는 정보(定普), 정산(鼎山)은 그의 호(號)이다. (眞經全書 229쪽)
조정산은 189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만주 유하현에 이주하여 증산상제님을 생전에 만나본 적이 없고 다만 보천교 신도 김혁으로부터 진리를 듣고 신앙을 하기 시작하였고 1916년 귀국하여 충남 안면도에 거주하다가, 마침 그 지방을 순회하던 이치복 성도를 만나 상제님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1917년에는 상제닝의 누이동생인 20여 년 연상의 선돌부인을 유혹하여 천생연분이라고 속여 동거를 시작하고 1918년에는 김형렬 성도 교단에 가입하여 김형렬성도를 모시다가 1919년에는 약장과 괘를 도둑질하고 1921년 도통과 도판을 석권할 욕심으로 증산 상제님의 성골을 파헤쳐 도굴까지 하게 된다. 이는 만인이 공노할 사건으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불의한 사건이었다. 태극도에서 발행한 ‘조정산 전기’에 보면 1921년 그의 나이 27에 정산이라는 호를 쓰기 시작하였다고 하니 성골을 도굴한 그 즈음이었다. 그 후 1924년 4월에 전북 구태인에 무극대도교를 차린다. 이후 부산으로 옮기며 태극도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참고 언론 자료]
○ 한국일보 1965.3.2일자 ‘폭력판치는 태극도촌’
○ 한국일보 1965.3.4일자 ‘태극도 박교주 연행문초’
○ 한국일보 1965.3.5~10일 ‘태극도촌 실태’
○ 부산일보 1968.8.3일자 ‘태극도촌에 주도권 암투’
○ 부산일보 1968.8.6일자 ‘생신은 왜 잠적했나’
범증산교사 - [대순진리회史]
우당(牛堂)은 정사(丁巳 1917)년 11월 30일 충북(忠北) 괴산군(塊山郡)상모면(上毛面) 문강리(文江里) 207번지에서 출생했다. 원명(原名)은 경호(景浩) 후일 이름을 한경(漢慶) 호(號)를 우당(牛堂)이라 하였다. 그는 수안보보통학교(水安保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다가 27세되던 계미(癸未 1943)년 10월에 일본(日本)에 건너가 청삼(育森)에 있는 일본해군기지에서 일하였다. 8·15해방후 귀국하여 농사를 짓다가 30세 되던 병술(丙戌 1946)년 4월에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가 세운 태극도(太極道)에 입도(入道)하였다.
*이 때 상제님께서 방 안에서 내다보시며 “오랜만에 큰 일꾼 하나 들어오는구나.” 하시고 치화가 인사를 여쭙자 마루로 올라오게 하신 뒤에 “이럴 때는 나이 적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받느니라. 사배를 하라.” 하시니라. 치화가 공손히 사배를 올리니 이번에는 치화를 앉혀 놓고 친히 단배(單拜)로 답하시고 거주성명을 물으시거늘 치화가 아뢰기를 “시생은 부안 사람으로 성은 이가(李哥)요, 이름은 영로(榮魯), 자(字)는 치화(致和)입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화(和)는 화(禍)와 같은 음이라. 사람은 복이 있어야 하나니 치화(致和)를 치복(致福)으로 하라.” 하시며 친히 이름을 고쳐 주시니라.
이어 곁에 서 있던 치복의 아들 중학이 상제님께 인사를 올리려 하니 느닷없이 “이런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라고! 당장에 이놈을 잡아 내려라.” 하고 소리를 지르시는지라. 주위 사람들 모두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 있는데 상제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냉큼 이놈을 잡아내려 작두로 목을 끊어 버려라. 애비를 모르는 놈은 죽어야 하느니라.” 하시고는 그 후에 다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없으시니라.
이 때 새울 사는 이공삼(李公三)이 상제님을 찾아와 따르니라. 이 날 상제님께서 치복에게 명하시어 “빨리 돌아가라.” 하시되 치복이 종일토록 가지 아니하거늘 다시 기일을 정하여 주시며 “속히 돌아가서 돈 일흔 냥을 가지고 기일 내에 돌아오라.” 하시니라. 이에 치복이 돌아갔다가 기일 내에 돈 일흔 냥을 허리에 차고 구릿골 약방으로 와서 상제님께 올리매 성도들에게 명하시어 그 돈을 방 안에 두었다가, 문 밖에 두었다가, 다시 사립문 밖에 두어 밤낮을 지내게 한 뒤에 들여다가 간직해 두시더니 그 후 공삼을 시켜 그 돈을 차경석에게 보내시니라. (道典 3:294)
*사월에 전주 용머리 고개 김주보의 집에 계실새 이치복이 이르거늘 가라사대 이런 때에 나이 적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절을 받느니라. 하시고 치복에게 사배(四拜)를 받으시니라. (대순전경 3:81p)
다른 내용들은 도생님들이 워낙 밝으시니 맡기기로 하고 저는 선천 성자들의 광경을 이어가겠습니다.
*상제님께서 “불러 오라 하였지 잡아 오라 안 했는데 너무했다.” 하시고 “너희들은 눈을 감고 보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눈을 감고 보니 뜻밖에 펼쳐 놓은 자리에 공자가 무릎을 꿇고 “공자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더라.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공자야, 네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인(仁)을 행하였다 하며, 삼대(三代) 출처(黜妻)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齊家)하였다 하리오.
또한 내 도(道)를 펴라고 내려 보냈거늘 어찌 제자들을 도적질 해먹게 가르쳤느냐. 그 중생의 원억(寃抑)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너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고 큰 소리로 “저리 물리쳐라.” 하시니라.
이어 “석가(釋迦)를 부르라.” 하고 명하시니 즉시 석가모니가 “대령했습니다.” 하고 꿇어앉아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석가야, 너는 수음(樹陰) 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하여 부모의 윤기(倫氣)와 음양을 끊게 하니 너의 도가 천하에 퍼진다면 사람의 종자나 남겠느냐. 종자 없애는 성인이냐?
네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을 아느냐, 중생을 아느냐. 이런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도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고 “이 자도 물리쳐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명하시기를 “야소(耶蘇) 부르라.” 하시니 즉시 예수가 꿇어앉아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야소야, 너를 천상에서 내려 보낼 적에 내 도를 펴라 하였거늘 선령을 박대하는 도를 폈으니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천륜을 아느냐 인륜을 아느냐. 너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고 큰 소리로 “이 자를 물리쳐라.” 하시니라.
이어서 “노자(老子)를 부르라.” 하시니 즉시 노자가 “대령했습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노자야, 세속에 산모가 열 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 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한 해를 어미 뱃속에 머리가 희도록 들어앉아 있었다.’ 하니 그 어미가 어찌 될 것이냐.
그런 불효가 없나니 너는 천하에 다시없는 죄인이니라. 또한 네가 ‘이단(異端) 팔십 권을 지었다.’ 하나 세상에서 본 자가 없고, 나 또한 못 보았노라. 그래도 네가 신선(神仙)이냐! 너도 이 세상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며 큰 소리로 “당장 물리쳐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상제님께서 또 명하시기를 “공자, 석가, 야소, 노자를 다시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모두 대령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들어라. 너희들이 인간으로서는 상 대우를 받을 만하나 너희들의 도덕만 가지고는 천하사를 할 수가 없느니라. 너희들의 도덕이 전혀 못쓴다는 말은 아니니 앞으로 나의 도덕이 세상에 나오거든 너희들 모두 그 안에서 잘 살도록 하라. 나의 말이 옳으냐? 옳으면 옳다고 대답하라.” 하시며 소리치시니 천지가 진동하여 문지방이 덜덜 떨리더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수천 년 밀려오던 공사를 금일에야 판결하니 일체의 원억이 오늘로부터 고가 풀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0:40)
그동안 선천종교로 인한 피의 역사가 있었고 이로 인한 원한이 파도를 타고 있었을터이니 여러가지를 묶어 한꺼번에 정리하신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제님께서 성자들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물밥은 내려주리라" 하시어 체결하셨네요.
*하루는 큰 소리로 외쳐 말씀하시기를, 공자야. 그대는 서양으로 가라. 그대가 천추에 홀로 제사를 받아먹었으므로 나의 세상에서는 그 녹을 떼려 하였더니, 그대가 간절히 애걸하여 물밥은 내리노라 하시니라. 또 큰 소리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맹자야. 그대는 역적 놈이로다 하시니라.
제자가 여쭈기를, 공자를 서양으로 보내시니 어째서 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은 건운(乾運)의 신이 동쪽에 있고 곤운(坤運)의 신이 후천에 있으며, 후천에는 곤운의 신이 동쪽에 있고 건운의 신이 서쪽에 있나니, 때는 서신사명의 세상이므로 그 신이 천하에 머물 수 있는 땅이 없느니라.
제자가 여쭈기를, 맹자를 역적이라 꾸짖으시니 어째서 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군신의 의리가 있으면 임금에 대한 태도가 그렇겠느냐. 신하가 임금을 원수 보듯 하니, 해쳐도 되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3:30p)
다행입니다.
그래도 선천 성자들의 공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신 것이지요.
*제자가 여쭈기를, 서교를 숭상함이 옳으나이까? 말씀하시기를, 동도(東道)를 헐뜯는 자는 동쪽으로 갈 길이 없고, 서도를 헐뜯는 자는 서쪽으로 갈 길이 없느니라.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은 구천에 사무치느니,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부절과 같이 합하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6:31p)
안그랬으면 사(私)가 없으신 분이 물밥을 내려주실리 없습니다.
유교가 세상을 점령하면 여자는 남자와 동등해질 수 없으며 기독교가 세상을 점령하면 인간은 영원히 원죄론을 못 벗어나고 여자는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으며 불교가 세상을 점령하면 지구상에 인간은 사라져 버린다고...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이요, 일월무지인허령(日月無知人虛靈)이니라. (대순전경 3:51p)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이요,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至人虛影)이니라.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 (道典 6:9)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공각(空殼)이요, 일월도 무용(無用)이라. (道典 11:388)
천지에 사람이 없으면 어떤 상황일까요?
동물이나 곤충은 많아지겠지만 정신적으로 썰렁한 허무함이 다가오네요.
*유월 스무 이튿날 약방마당에 자리를 깔고 천사 그 위에 누우사 치복을 명하여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더니 문득 공자(孔子)를 부르시며 가라사대 소정묘(小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성인(聖人)이 되며 삼대(三代) 출처(出妻)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齊家)하였다 하리요. 그대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갈지어다.
또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부르사 가라사대 수음(樹陰)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誘引)하야 부모의 윤기(倫氣)와 음양(陰陽)을 끊게 하여 인종(人種)을 절멸(絶滅)시키려 하니 그대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先靈)을 아느냐 창생(蒼生)을 아느냐 그대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나갈지어다.
또 노자(老子)를 부르사 가라사대 세속에 산모(産母)가 열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 한해를 어미 뱃속에 있었하 하니 그런 불효가 어디 있으며 그대가 이단(異端) 팔십권(八十卷)을 지었다하나 세상에서도 본자가 없고 나도 못 보았노라 그대로 이 세상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나갈지어다 하시니라. (대순전경 5:173-185)
그런데 야소(예수)와 맹자를 부르는 장면은 대순전경에 안 나오네요.
일단 도전(道典)에 있는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이 날 오후에 약방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제님께서 그 위에 반듯이 누우시어 치복에게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거늘 치복이 명하신 대로 멍석을 가져다 펴니 상제님께서 허공을 향해 준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꼼짝 마라. 오늘은 참 성인을 판단하리라.” 하시고 문 앞에 세워 두었던 기(旗)를 가져다 불사르게 하시니 뜻밖에 벽력이 일어 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명하시기를 “공자(孔子) 부르라.” 하시니 성도들이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거늘 다시 “어서 공자를 부르지 못할까!” 하고 호통을 치시매 성도들이 놀라서 엉겁결에 “공자 잡아 왔습니다.” 하는지라.
그런데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치복 성도를 골라 명하시어 새자리를 펴라 하심은 2가지 뜻이 있어 보입니다.
첫째 : 선천의 묵은 기운(역사)을 마무리 짓고 후천의 새자리(法)을 펴신다는 뜻인 것 같고요,
둘째 : 이치복 성도를 콕 찍어 명하심은 이치복 성도를 통해 도가 전해질 교단의 역사(연원)를 살피신 것 같습니다.
범증산교사 [증산도史]
창교주(創敎主)-운산(雲山) 안세찬(安世燦)의 교력(敎歷)
운산(雲山)은 임술(壬戌 1922)년 7월 15일 충남(忠南) 서산군(瑞山郡) 대산면(大山面) 운산리(雲山里)에서 안병욱(安柄彧)의 큰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원명(原名)은 세찬(世燦)이요 한 때 흥찬(興燦)이라 한 적이 있고 후일 호(號)를 운산(雲山)이라 하였다. 안병욱(安柄彧)은 본시 보천교(普天敎)교인으로 보천교주(普天敎主) 차경석(車京石)이 서거하였을 때 복(服)까지 입은 열성교인 이었다. 안병욱(安柄彧)은 종도(從徒) 이치복(李致福)에게서 도(道)들 받았다고 했고, 운산(雲山)은 부친에게서 도를 받은 것으로 말했다.
안병욱은 보천교에 다니던 일제(日帝)시대에 천안경찰서에 유치(留置)된 일이 있었다. 이 때 안병욱은 같은 유치장에서 보천교 교인으로충남(忠南) 아산군(牙山郡) 온양읍(溫陽色) 초사리(草沙里)사람 원웅섭(元應動 이웅상(李應祚)을 만났는데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사식(私食)을 들고 다니던 운산(雲山)이 여기서 원응섭, 이응상을 본 것이 훗날 함께 봉교(奉敎)할 인연을 만들었다.
범증산교사 [태극도史]
창교주(創敎主)-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의 생장(生長)과 수학(修學)
정산(鼎山)은 을미(乙未 1895)년 음력 12월 4일(양력 丙申 1월 19일)미시(未時)에 조선왕조(朝熊王朝) 경상도(慶尙道) 칠원군(淡原都) 서면(西面) 회문리(會文里)에서 출생하니 성(姓)은 조(趙), 본관은 함안(威安), 이름은 철제(哲濟)요, 자(字)는 정보(定普), 정산(鼎山)은 그의 호(號)이다. (眞經全書 229쪽)
조정산은 189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만주 유하현에 이주하여 증산상제님을 생전에 만나본 적이 없고 다만 보천교 신도 김혁으로부터 진리를 듣고 신앙을 하기 시작하였고 1916년 귀국하여 충남 안면도에 거주하다가, 마침 그 지방을 순회하던 이치복 성도를 만나 상제님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1917년에는 상제닝의 누이동생인 20여 년 연상의 선돌부인을 유혹하여 천생연분이라고 속여 동거를 시작하고 1918년에는 김형렬 성도 교단에 가입하여 김형렬성도를 모시다가 1919년에는 약장과 괘를 도둑질하고 1921년 도통과 도판을 석권할 욕심으로 증산 상제님의 성골을 파헤쳐 도굴까지 하게 된다. 이는 만인이 공노할 사건으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불의한 사건이었다. 태극도에서 발행한 ‘조정산 전기’에 보면 1921년 그의 나이 27에 정산이라는 호를 쓰기 시작하였다고 하니 성골을 도굴한 그 즈음이었다. 그 후 1924년 4월에 전북 구태인에 무극대도교를 차린다. 이후 부산으로 옮기며 태극도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참고 언론 자료]
○ 한국일보 1965.3.2일자 ‘폭력판치는 태극도촌’
○ 한국일보 1965.3.4일자 ‘태극도 박교주 연행문초’
○ 한국일보 1965.3.5~10일 ‘태극도촌 실태’
○ 부산일보 1968.8.3일자 ‘태극도촌에 주도권 암투’
○ 부산일보 1968.8.6일자 ‘생신은 왜 잠적했나’
범증산교사 - [대순진리회史]
우당(牛堂)은 정사(丁巳 1917)년 11월 30일 충북(忠北) 괴산군(塊山郡)상모면(上毛面) 문강리(文江里) 207번지에서 출생했다. 원명(原名)은 경호(景浩) 후일 이름을 한경(漢慶) 호(號)를 우당(牛堂)이라 하였다. 그는 수안보보통학교(水安保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다가 27세되던 계미(癸未 1943)년 10월에 일본(日本)에 건너가 청삼(育森)에 있는 일본해군기지에서 일하였다. 8·15해방후 귀국하여 농사를 짓다가 30세 되던 병술(丙戌 1946)년 4월에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가 세운 태극도(太極道)에 입도(入道)하였다.
*이 때 상제님께서 방 안에서 내다보시며 “오랜만에 큰 일꾼 하나 들어오는구나.” 하시고 치화가 인사를 여쭙자 마루로 올라오게 하신 뒤에 “이럴 때는 나이 적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받느니라. 사배를 하라.” 하시니라. 치화가 공손히 사배를 올리니 이번에는 치화를 앉혀 놓고 친히 단배(單拜)로 답하시고 거주성명을 물으시거늘 치화가 아뢰기를 “시생은 부안 사람으로 성은 이가(李哥)요, 이름은 영로(榮魯), 자(字)는 치화(致和)입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화(和)는 화(禍)와 같은 음이라. 사람은 복이 있어야 하나니 치화(致和)를 치복(致福)으로 하라.” 하시며 친히 이름을 고쳐 주시니라.
이어 곁에 서 있던 치복의 아들 중학이 상제님께 인사를 올리려 하니 느닷없이 “이런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라고! 당장에 이놈을 잡아 내려라.” 하고 소리를 지르시는지라. 주위 사람들 모두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 있는데 상제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냉큼 이놈을 잡아내려 작두로 목을 끊어 버려라. 애비를 모르는 놈은 죽어야 하느니라.” 하시고는 그 후에 다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없으시니라.
이 때 새울 사는 이공삼(李公三)이 상제님을 찾아와 따르니라. 이 날 상제님께서 치복에게 명하시어 “빨리 돌아가라.” 하시되 치복이 종일토록 가지 아니하거늘 다시 기일을 정하여 주시며 “속히 돌아가서 돈 일흔 냥을 가지고 기일 내에 돌아오라.” 하시니라. 이에 치복이 돌아갔다가 기일 내에 돈 일흔 냥을 허리에 차고 구릿골 약방으로 와서 상제님께 올리매 성도들에게 명하시어 그 돈을 방 안에 두었다가, 문 밖에 두었다가, 다시 사립문 밖에 두어 밤낮을 지내게 한 뒤에 들여다가 간직해 두시더니 그 후 공삼을 시켜 그 돈을 차경석에게 보내시니라. (道典 3:294)
*사월에 전주 용머리 고개 김주보의 집에 계실새 이치복이 이르거늘 가라사대 이런 때에 나이 적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절을 받느니라. 하시고 치복에게 사배(四拜)를 받으시니라. (대순전경 3:81p)
다른 내용들은 도생님들이 워낙 밝으시니 맡기기로 하고 저는 선천 성자들의 광경을 이어가겠습니다.
*상제님께서 “불러 오라 하였지 잡아 오라 안 했는데 너무했다.” 하시고 “너희들은 눈을 감고 보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눈을 감고 보니 뜻밖에 펼쳐 놓은 자리에 공자가 무릎을 꿇고 “공자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더라.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공자야, 네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인(仁)을 행하였다 하며, 삼대(三代) 출처(黜妻)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齊家)하였다 하리오.
또한 내 도(道)를 펴라고 내려 보냈거늘 어찌 제자들을 도적질 해먹게 가르쳤느냐. 그 중생의 원억(寃抑)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너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고 큰 소리로 “저리 물리쳐라.” 하시니라.
이어 “석가(釋迦)를 부르라.” 하고 명하시니 즉시 석가모니가 “대령했습니다.” 하고 꿇어앉아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석가야, 너는 수음(樹陰) 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하여 부모의 윤기(倫氣)와 음양을 끊게 하니 너의 도가 천하에 퍼진다면 사람의 종자나 남겠느냐. 종자 없애는 성인이냐?
네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을 아느냐, 중생을 아느냐. 이런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도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고 “이 자도 물리쳐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명하시기를 “야소(耶蘇) 부르라.” 하시니 즉시 예수가 꿇어앉아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야소야, 너를 천상에서 내려 보낼 적에 내 도를 펴라 하였거늘 선령을 박대하는 도를 폈으니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천륜을 아느냐 인륜을 아느냐. 너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고 큰 소리로 “이 자를 물리쳐라.” 하시니라.
이어서 “노자(老子)를 부르라.” 하시니 즉시 노자가 “대령했습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노자야, 세속에 산모가 열 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 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한 해를 어미 뱃속에 머리가 희도록 들어앉아 있었다.’ 하니 그 어미가 어찌 될 것이냐.
그런 불효가 없나니 너는 천하에 다시없는 죄인이니라. 또한 네가 ‘이단(異端) 팔십 권을 지었다.’ 하나 세상에서 본 자가 없고, 나 또한 못 보았노라. 그래도 네가 신선(神仙)이냐! 너도 이 세상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가거라.” 하시며 큰 소리로 “당장 물리쳐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상제님께서 또 명하시기를 “공자, 석가, 야소, 노자를 다시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모두 대령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들어라. 너희들이 인간으로서는 상 대우를 받을 만하나 너희들의 도덕만 가지고는 천하사를 할 수가 없느니라. 너희들의 도덕이 전혀 못쓴다는 말은 아니니 앞으로 나의 도덕이 세상에 나오거든 너희들 모두 그 안에서 잘 살도록 하라. 나의 말이 옳으냐? 옳으면 옳다고 대답하라.” 하시며 소리치시니 천지가 진동하여 문지방이 덜덜 떨리더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수천 년 밀려오던 공사를 금일에야 판결하니 일체의 원억이 오늘로부터 고가 풀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0:40)
그동안 선천종교로 인한 피의 역사가 있었고 이로 인한 원한이 파도를 타고 있었을터이니 여러가지를 묶어 한꺼번에 정리하신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제님께서 성자들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물밥은 내려주리라" 하시어 체결하셨네요.
*하루는 큰 소리로 외쳐 말씀하시기를, 공자야. 그대는 서양으로 가라. 그대가 천추에 홀로 제사를 받아먹었으므로 나의 세상에서는 그 녹을 떼려 하였더니, 그대가 간절히 애걸하여 물밥은 내리노라 하시니라. 또 큰 소리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맹자야. 그대는 역적 놈이로다 하시니라.
제자가 여쭈기를, 공자를 서양으로 보내시니 어째서 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은 건운(乾運)의 신이 동쪽에 있고 곤운(坤運)의 신이 후천에 있으며, 후천에는 곤운의 신이 동쪽에 있고 건운의 신이 서쪽에 있나니, 때는 서신사명의 세상이므로 그 신이 천하에 머물 수 있는 땅이 없느니라.
제자가 여쭈기를, 맹자를 역적이라 꾸짖으시니 어째서 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군신의 의리가 있으면 임금에 대한 태도가 그렇겠느냐. 신하가 임금을 원수 보듯 하니, 해쳐도 되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3:30p)
다행입니다.
그래도 선천 성자들의 공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신 것이지요.
*제자가 여쭈기를, 서교를 숭상함이 옳으나이까? 말씀하시기를, 동도(東道)를 헐뜯는 자는 동쪽으로 갈 길이 없고, 서도를 헐뜯는 자는 서쪽으로 갈 길이 없느니라.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은 구천에 사무치느니,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부절과 같이 합하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6:31p)
안그랬으면 사(私)가 없으신 분이 물밥을 내려주실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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