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 간다'고 하는 말과 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용화도장은 장광이 팔십 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
증산법종교 오리알터 뒷산이 수양산 이랍니다.
???
노아의 방주와 혈식천추 남조선 배
[노아의 방주]
『구약성서』의 『창세기』 6~8장에 의하면, 최초의 인류를 타락으로 내려진 대홍수의 난에서 노아 일가를 도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은 방주의 제작을 노아에게 명령했는데 이를 <노아의 방주>라고 한다. 영어로는 Noah's Ark. 그것은 목조, 방형의 배로, 길이는 약 135m, 폭은 약 23m 높이 약 14m의 삼층구조로, 옆에 문, 위에서 약 50cm 밑에 창문 하나가 있으며, 외측은 아스팔트로 방수되었다. 신은 이 방주에 식료 외에 조수 등의 생물을 자웅 각 2마리(또는 순결한 동물 각 7마리에 부정한 동물 각 2마리)를 넣도록 명령했다. 호우는 150일(또는 40일)간 계속되고, 방주는 흘러가 아라라트(아르메니아 방면의 북방 지역을 막연히 가리킨다) 산에 도착했다. 창문이 높아서 밖이 보이지 않아, 노아는 까마귀에 이어 비둘기를 놓아주어서, 비둘기가 올리브의 어린 잎을 입에 물고 돌아왔으므로 물이 빠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기원전 2천년기 이후의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의 영향하에서 기록되었으며, 방주의 방수방법이나 새를 놓아서 외계를 확인하는 것 등 서술의 유사성이 눈에 띤다. -노아의 방주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인디언의 노아홍수 이야기
[남조선배]
*하루는 양지에 이십사 방위자(二十四方位字)를 둘러쓰시고 중앙에 혈식춘추도덕군자(血食春秋道德君者)라 쓰신 뒤에 가라사대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이십사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졌느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여 만인에게 앙모를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끊임없이 받아오게 된 까닭을 물은즉 모두 일심(一心)에 있다고 대답하니,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법을 행하신 뒤에 불사르시니라. (대순전경 P266-267)
*하루는 경석의 집 서쪽 벽에 이십사장과 이십팔장을 써 붙이시고, 공우의 왼팔을 잡으시며 소리를 높여 "만국대장(萬國大將) 박공우!"라고 부르시니라. 이 뒤로 공우 어디를 심부름가든지 문밖에 나서면 어디선가 방포성(放砲聲)이 나더라.(대순전경 p249)
*무신년(1908)년 여름에 증산상제님께서 대흥리에 계시더니, 칙령을 "이십사장(二十四將), 이십팔장(二十八將)"이라 쓰시고, 공우의 팔을 들어 올리시고 흥겨워 마당을 거닐으시며, 큰 소리로 "만국대장(萬國大將)에 박공우!"라고 명하시니라. 공우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평생 소원을 이루었다 생각하여 부지불식간에 어깨가 으쓱해지거늘, 경석은 옆에 있다가 안색이 변하니라. 조금 있다가 증산상제님께서 "신대장(神大將)에 박공우!"라고 말씀하시니, 공우가 생각하되 혹시 죽어서 장수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심 불안하였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442-443)
*증산상제님께서 일진회가 일어난 뒤로 삿갓을 쓰시다가 이날부터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집을 떠나 정읍으로 가실 때 원평에 이르사 군중을 향하여 가라사대, "이 길은 '남조선배 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술을 나누어주시며 또 가라사대 "이 길은 성인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다시 떠나시며 가라사대 "대진(大陣)은 하루 삼십 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노정을 헤아려서 고부 솔안에 이르러 친구 박공우의 집으로 뫼시니, 공우도 또한 동학신도로서 마침 사십구 일동안 기도하는 때더라. (대순전경 pp110-111)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 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의 철기신장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 말에 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 간다'고 하는 말과 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용화도장은 장광이 팔십 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일후에 광제하러 나갈 때에는 용봉기(龍鳳旗)와 장군기(將軍旗)를 원평에 꽂아라. 원평이 이제 장상기지(將相基址)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는 광제표(廣濟票)와 천표(天票)를 들고 나가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여쭙기를 "광제표를 들고 나가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신명을 위로하기 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 뒤에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다 죽어나갈 그 때 광고판을 길거리에 붙여 광제 나가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기를 "앞으로 때가 되면 나의 대행자가 나와서 광제를 나가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pp852-853)
*하루는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일은, 나를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남조선배를 타고 파도가 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 또 이르시기를 "세상사람들이 '남조선 남조선'이라 하나니,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어, 살아남은 조선사람이 내 사람이니라.
*증상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이한 꽃이 별스런 향기를 내며 길가에 피어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를 꺾나니, 너희들은 몸을 숨기고 은밀히 일을 도모하라." 또 이르시기를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때가 이르지 않거든, 마지막 기와 한 장을 담장 수리한 뒤에 올려놓지 말라. 항상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 힘쓰는 자는 안이 부실하고, 내실에 힘쓰는 자는 늘상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법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312)
*하루는 양지에 이십사 방위자(二十四方位字)를 둘러쓰시고 중앙에 혈식춘추도덕군자(血食春秋道德君者)라 쓰신 뒤에 가라사대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이십사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졌느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여 만인에게 앙모를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끊임없이 받아오게 된 까닭을 물은 즉 모두 일심(一心)에 있다고 대답하니,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법을 행하신 뒤에 불사르시니라. (대순전경 P266-267)
*하루는 강효백을 명하사 명주실꾸리와 낚싯대를 구하여오라 하사 명주실로 온 방안과 천정에 얽어 걸게 하시고, 고영(고민환)으로 하여금 바둑판을 방 한가운데 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 낚싯대를 들라 하시고, 또 전내언과 김원명으로 하여금 뱃노래를 불러라 하시고 가라사대 "이는 남조선 배질이니 성주(聖主)와 현인군자(賢人君子)를 모셔오는 일이로다." 하시니라. (천후신정기 p51)
세상에는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상제님 말씀에 나온 단어들을 그대로 따다가 태을도인이라고 나오면 태을O라고 이름 짓고 태전이라고 나오면 태전에 목숨 받치고 용화동이라고 나오면 OO동이라고 하고 두 사람이 없어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면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일을 만들어 제가 이해를 못하는 바보인지 누가 바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문하에 혈심자 한 사람만 있으면 내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증산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세상사람들이 나의 도문하에 '태을 도인들이 나왔다'고 말들을 하면, 태평천하한 세상이 되리라."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태을 도인으로 포태되는 운수이니 아동지세이니라. 그러므로 치성을 모실 때에는 관복을 벗고 헌배하라. 때가 되어 관을 쓰고 치성을 모시면 천하태평한 세상이 되리라. 나의 도문하에 태을 도인이 되는 그날이, 그 사람의 후천인생에 한 살이 되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195)
*하루는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머무르시며 갑칠에게 명하시어 “남원 김병선(金炳善)에게 가서 돈 사백 냥을 가져오라.” 하시니라. 2월에 대공사를 행하시려고 서울로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전함을 순창(淳昌)으로 돌려 대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켜 모든 일에 소홀히 임하지 말라.” 하시고 또 여러 성도들에게 명하시기를 “이 일은 천하의 대운(大運)을 정하는 일이니 깨끗한 종이에 각기 소원을 기록하라.” 하시어 그 종이로 안경을 싸 넣으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는 정남기, 정성백, 김갑칠, 김광찬, 김병선 등을 데리고 군산으로 가서 배를 타기로 하시고 신원일과 김선경, 김보경, 김봉규와 그 외 한 사람에게 “태전(太田)으로 가서 기차를 타라.” 하고 명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조선의 국운을 바로잡으려 하나니 이는 수륙병진(水陸幷進)이니라.” 하시니라.
제가 성사재인을 모르는건지 아니면 이들이 사기꾼인지 도통 알 수 가 없습니다.
다시 원일에게 명하시기를 “너는 먼저 서울에 들어가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 써서 남대문에 붙이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아 일행을 거느리고 태전으로 떠나니라. (道典5:121)
*상제님 일행이 서울에 도착하여 보니 원일이 아직 글을 붙이지 못한지라. 상제님께서 “즉시 가서 붙이라.” 하고 추상같이 명하시니 모두 크게 놀라거늘 원일이 곧 써서 붙이니 갑자기 명랑하던 날씨가 변하여 가랑비가 내리니라. 상제님께서 이를 바라보시고 “하늘이 응기(應氣) 아니 할 수 있나.” 하시니 즉시 온 장안이 소란하여지고 인심이 들끓거늘 관헌들이 집집마다 조사하며 이상한 분위기를 은밀히 탐지하니라. 이 때 관헌들이 여관에 와서 상제님과 성도들을 심문하거늘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들과 동행하여 서울 구경하러 왔노라.” 하시고 술을 불러 관헌들을 대접하시며 “그대도 조선인 나도 조선인,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시니 더 의심치 않고 돌아가니라. (道典5:124)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道典5:136:3)
과거 토큰시대에 서울에 있는 [장충다방]이란 장소에 약속이 되어서 초행길이라 버스 창밖만을 내다보고 있는데 장충다방이 딱 보입니다. 옳다 좋구나! 부랴부랴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된 사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유선전화도 귀한 시절이라 연락이 통 닿을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습니다.
훗날 우연히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배꼽을 잡고 바닥에 나뒹굽니다.
???
위험한 남조선배 주의
장충동에도 장충다방이 있고, 종로에도 장충다방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로구]에 있는 장충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구요.
그는 [장충동]의 장충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휴대폰도 없고 삐삐도 없던 때라 연락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설령 유선전화가 있다치더라도 어느 다방인지 알아야 번호를 찾아 연락하지요.
마치 꼭 이런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7월 어느 날 성도들을 거느리고 제비창골 입구를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서 사람들이 삼을 치거늘 상제님께서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잘 골라서 안아다 올리니라. 이에 삼대 석 다발을 한데 섞으신 뒤에 먼저 상(上)대를 추려 뽑아 버리시고 다시 중(中)대를 추려 버리시니 가장 가늘어 쓸모없는 하(下)대만 한 줌 남는지라. 그 하대를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재시더니 끈으로 묶고 한 발로 탁 차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동남풍이 불면 살 수 없는 병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이후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남조선(南朝鮮) 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이라. 동서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타이타닉 실제 출항 모습
『구약성서』의 『창세기』 6~8장에 의하면, 최초의 인류를 타락으로 내려진 대홍수의 난에서 노아 일가를 도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은 방주의 제작을 노아에게 명령했는데 이를 <노아의 방주>라고 한다. 영어로는 Noah's Ark. 그것은 목조, 방형의 배로, 길이는 약 135m, 폭은 약 23m 높이 약 14m의 삼층구조로, 옆에 문, 위에서 약 50cm 밑에 창문 하나가 있으며, 외측은 아스팔트로 방수되었다. 신은 이 방주에 식료 외에 조수 등의 생물을 자웅 각 2마리(또는 순결한 동물 각 7마리에 부정한 동물 각 2마리)를 넣도록 명령했다. 호우는 150일(또는 40일)간 계속되고, 방주는 흘러가 아라라트(아르메니아 방면의 북방 지역을 막연히 가리킨다) 산에 도착했다. 창문이 높아서 밖이 보이지 않아, 노아는 까마귀에 이어 비둘기를 놓아주어서, 비둘기가 올리브의 어린 잎을 입에 물고 돌아왔으므로 물이 빠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기원전 2천년기 이후의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의 영향하에서 기록되었으며, 방주의 방수방법이나 새를 놓아서 외계를 확인하는 것 등 서술의 유사성이 눈에 띤다. -노아의 방주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인디언의 노아홍수 이야기
[남조선배]
*하루는 양지에 이십사 방위자(二十四方位字)를 둘러쓰시고 중앙에 혈식춘추도덕군자(血食春秋道德君者)라 쓰신 뒤에 가라사대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이십사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졌느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여 만인에게 앙모를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끊임없이 받아오게 된 까닭을 물은즉 모두 일심(一心)에 있다고 대답하니,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법을 행하신 뒤에 불사르시니라. (대순전경 P266-267)
*하루는 경석의 집 서쪽 벽에 이십사장과 이십팔장을 써 붙이시고, 공우의 왼팔을 잡으시며 소리를 높여 "만국대장(萬國大將) 박공우!"라고 부르시니라. 이 뒤로 공우 어디를 심부름가든지 문밖에 나서면 어디선가 방포성(放砲聲)이 나더라.(대순전경 p249)
*무신년(1908)년 여름에 증산상제님께서 대흥리에 계시더니, 칙령을 "이십사장(二十四將), 이십팔장(二十八將)"이라 쓰시고, 공우의 팔을 들어 올리시고 흥겨워 마당을 거닐으시며, 큰 소리로 "만국대장(萬國大將)에 박공우!"라고 명하시니라. 공우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평생 소원을 이루었다 생각하여 부지불식간에 어깨가 으쓱해지거늘, 경석은 옆에 있다가 안색이 변하니라. 조금 있다가 증산상제님께서 "신대장(神大將)에 박공우!"라고 말씀하시니, 공우가 생각하되 혹시 죽어서 장수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심 불안하였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442-443)
*증산상제님께서 일진회가 일어난 뒤로 삿갓을 쓰시다가 이날부터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집을 떠나 정읍으로 가실 때 원평에 이르사 군중을 향하여 가라사대, "이 길은 '남조선배 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술을 나누어주시며 또 가라사대 "이 길은 성인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다시 떠나시며 가라사대 "대진(大陣)은 하루 삼십 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노정을 헤아려서 고부 솔안에 이르러 친구 박공우의 집으로 뫼시니, 공우도 또한 동학신도로서 마침 사십구 일동안 기도하는 때더라. (대순전경 pp110-111)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 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의 철기신장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 말에 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 간다'고 하는 말과 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용화도장은 장광이 팔십 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일후에 광제하러 나갈 때에는 용봉기(龍鳳旗)와 장군기(將軍旗)를 원평에 꽂아라. 원평이 이제 장상기지(將相基址)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는 광제표(廣濟票)와 천표(天票)를 들고 나가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여쭙기를 "광제표를 들고 나가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신명을 위로하기 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 뒤에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다 죽어나갈 그 때 광고판을 길거리에 붙여 광제 나가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기를 "앞으로 때가 되면 나의 대행자가 나와서 광제를 나가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pp852-853)
*하루는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일은, 나를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남조선배를 타고 파도가 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 또 이르시기를 "세상사람들이 '남조선 남조선'이라 하나니,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어, 살아남은 조선사람이 내 사람이니라.
*증상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이한 꽃이 별스런 향기를 내며 길가에 피어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를 꺾나니, 너희들은 몸을 숨기고 은밀히 일을 도모하라." 또 이르시기를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때가 이르지 않거든, 마지막 기와 한 장을 담장 수리한 뒤에 올려놓지 말라. 항상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 힘쓰는 자는 안이 부실하고, 내실에 힘쓰는 자는 늘상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법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312)
*하루는 양지에 이십사 방위자(二十四方位字)를 둘러쓰시고 중앙에 혈식춘추도덕군자(血食春秋道德君者)라 쓰신 뒤에 가라사대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이십사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졌느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여 만인에게 앙모를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끊임없이 받아오게 된 까닭을 물은 즉 모두 일심(一心)에 있다고 대답하니,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법을 행하신 뒤에 불사르시니라. (대순전경 P266-267)
*하루는 강효백을 명하사 명주실꾸리와 낚싯대를 구하여오라 하사 명주실로 온 방안과 천정에 얽어 걸게 하시고, 고영(고민환)으로 하여금 바둑판을 방 한가운데 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 낚싯대를 들라 하시고, 또 전내언과 김원명으로 하여금 뱃노래를 불러라 하시고 가라사대 "이는 남조선 배질이니 성주(聖主)와 현인군자(賢人君子)를 모셔오는 일이로다." 하시니라. (천후신정기 p51)
세상에는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상제님 말씀에 나온 단어들을 그대로 따다가 태을도인이라고 나오면 태을O라고 이름 짓고 태전이라고 나오면 태전에 목숨 받치고 용화동이라고 나오면 OO동이라고 하고 두 사람이 없어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면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일을 만들어 제가 이해를 못하는 바보인지 누가 바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문하에 혈심자 한 사람만 있으면 내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증산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세상사람들이 나의 도문하에 '태을 도인들이 나왔다'고 말들을 하면, 태평천하한 세상이 되리라."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태을 도인으로 포태되는 운수이니 아동지세이니라. 그러므로 치성을 모실 때에는 관복을 벗고 헌배하라. 때가 되어 관을 쓰고 치성을 모시면 천하태평한 세상이 되리라. 나의 도문하에 태을 도인이 되는 그날이, 그 사람의 후천인생에 한 살이 되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195)
*하루는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머무르시며 갑칠에게 명하시어 “남원 김병선(金炳善)에게 가서 돈 사백 냥을 가져오라.” 하시니라. 2월에 대공사를 행하시려고 서울로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전함을 순창(淳昌)으로 돌려 대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켜 모든 일에 소홀히 임하지 말라.” 하시고 또 여러 성도들에게 명하시기를 “이 일은 천하의 대운(大運)을 정하는 일이니 깨끗한 종이에 각기 소원을 기록하라.” 하시어 그 종이로 안경을 싸 넣으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는 정남기, 정성백, 김갑칠, 김광찬, 김병선 등을 데리고 군산으로 가서 배를 타기로 하시고 신원일과 김선경, 김보경, 김봉규와 그 외 한 사람에게 “태전(太田)으로 가서 기차를 타라.” 하고 명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조선의 국운을 바로잡으려 하나니 이는 수륙병진(水陸幷進)이니라.” 하시니라.
제가 성사재인을 모르는건지 아니면 이들이 사기꾼인지 도통 알 수 가 없습니다.
다시 원일에게 명하시기를 “너는 먼저 서울에 들어가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 써서 남대문에 붙이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아 일행을 거느리고 태전으로 떠나니라. (道典5:121)
*상제님 일행이 서울에 도착하여 보니 원일이 아직 글을 붙이지 못한지라. 상제님께서 “즉시 가서 붙이라.” 하고 추상같이 명하시니 모두 크게 놀라거늘 원일이 곧 써서 붙이니 갑자기 명랑하던 날씨가 변하여 가랑비가 내리니라. 상제님께서 이를 바라보시고 “하늘이 응기(應氣) 아니 할 수 있나.” 하시니 즉시 온 장안이 소란하여지고 인심이 들끓거늘 관헌들이 집집마다 조사하며 이상한 분위기를 은밀히 탐지하니라. 이 때 관헌들이 여관에 와서 상제님과 성도들을 심문하거늘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들과 동행하여 서울 구경하러 왔노라.” 하시고 술을 불러 관헌들을 대접하시며 “그대도 조선인 나도 조선인,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시니 더 의심치 않고 돌아가니라. (道典5:124)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道典5:136:3)
과거 토큰시대에 서울에 있는 [장충다방]이란 장소에 약속이 되어서 초행길이라 버스 창밖만을 내다보고 있는데 장충다방이 딱 보입니다. 옳다 좋구나! 부랴부랴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된 사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유선전화도 귀한 시절이라 연락이 통 닿을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습니다.
훗날 우연히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배꼽을 잡고 바닥에 나뒹굽니다.
???
위험한 남조선배 주의
장충동에도 장충다방이 있고, 종로에도 장충다방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로구]에 있는 장충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구요.
그는 [장충동]의 장충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휴대폰도 없고 삐삐도 없던 때라 연락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설령 유선전화가 있다치더라도 어느 다방인지 알아야 번호를 찾아 연락하지요.
마치 꼭 이런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7월 어느 날 성도들을 거느리고 제비창골 입구를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서 사람들이 삼을 치거늘 상제님께서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잘 골라서 안아다 올리니라. 이에 삼대 석 다발을 한데 섞으신 뒤에 먼저 상(上)대를 추려 뽑아 버리시고 다시 중(中)대를 추려 버리시니 가장 가늘어 쓸모없는 하(下)대만 한 줌 남는지라. 그 하대를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재시더니 끈으로 묶고 한 발로 탁 차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동남풍이 불면 살 수 없는 병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이후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남조선(南朝鮮) 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이라. 동서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타이타닉 실제 출항 모습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