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甑山法宗敎 六十年史-제2장 교단의 창업기-3

甑山法宗敎 六十年史-제2장 교단의 창업기-3

경전 및 도서  성경신 성경신님의 글모음 쪽지 2015-02-10 15:05 7,389
(4) 옥석정(玉石鼎)과 현무경을 구하여 올리다.

 


천기 74년(4277, 1944, 甲申) 3월 3일 중궁에 조반 진지상을 올려 예를 드리던 중 성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뒤로는 쇠솥에 지은 밥은 내가 먹지 않을 것임에 옥석정을 구하여 오라.”하시고 또, “현무경을 구하여 오라.”고 명하시었다. 명을 받고 정사는 경주 건천(慶州乾川)에 사는 이준의(李準儀) 노인과 이환우(李桓雨)의 부친 종허(鍾許) 노인 두 분을 찾아가 상의하였는데, 이 두분은 나이로는 정사와 노소의 처지이나 신앙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마음을 주고 받던 동지였었다. 종허 노인으로부터는 정사의 나이 젊었을 때 등서해 놓았던 현무경을 전해 받고, 이준의 노인으로부터는 마침 8년 전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서 보관해 두었던 돌솥을 구할 수 있었는데, 명령만 순종하여 행하면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시는 성부님의 홍은에 더욱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성골에 돌아와서, 현무경(玄武經)과 돌솥을 영상 앞에 올리니 성부님께서, “현무경은 보관하고 솥은 곧 진지를 지어 올리라.”고 말씀하시어 그대로 봉행하였다.

 

정사가 현무경을 입수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정사의 나이 이십사세 때, 청도 풍각(淸道豊角)으로 가는 도중에 어느 곳을 지나자니 갑자기 뇌성이 대발하고 폭우가 쏟아지는지라, 비를 피하여 어느 집으로 찾아드니 주인은 풍병환자요, 부인은 맹인이더라. 잠시 피우를 하려던 것이 좀처럼 비가 개이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며칠을 묵게 되었다. 정사는 적적하던 차에 혹 읽을 책이라도 없나하여 사면을 살피던 중 한 책이 있어 뒤적여 보니 한자로 된 글귀와 많은 부적이 그려져 있으므로 이상하게 여겨져 주인에게 책의 내력을 물으니, 주인은 이년 전에 한 과객이 들렀다가 자기병을 보고 그 책에 있는 부적을 그려서 먹고 기도를 지성껏 올린다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맡겨놓고 간 뒤, 곧 돌아온다는 사람이 이년이 다 되었는데도 종무소식이라고 내력을 설명하면서, 그러나 자기가 무식한 사람이라 그가 시키는대로 한번도 해 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였다. 이에 정사는 주인에게 청하여 그 책을 자기에게 빌려준다면 경주에 사는 유명한 학자에게 보여 감정을 받은 뒤에 되돌려 주겠다고 하여 그 책을 가지고 가서 경주에 사는 종허 노인에게 보이니 깜짝 놀라면서, “이 책은 현무경(玄武經)이라. 평소에 한번 구하여 보고자 하던 차”라고 기뻐하면서, 등서를 하여 두고 원본을 환본하였다. 그 후로 16년간을 간신히 보관해 오던 차였다.

 


(5) 상제님(上帝任) 초혼안장(招魂安葬)

 


천기 74년(4277, 1944, 甲申) 윤 4월 5일에 옥석정으로 진지를 지어 올리던 첫날, 성부님께옵서 천명(天命)을 내리시니, “이제는 나의 체골(體骨)을 찾아와야 할 것이니라.”고 하시었다. 성부님의 체골(體骨)을 찾아 모시고자 함은 우리의 평생 소원으로서 비로소, 이와 같은 명령이 내리시니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명령대로 봉행하여 이루지 못한 일이 없음을 생각할 때, 이제는 평생 소원을 달성 할 수 있는 길이 열리어 오나보다고 선사는 하늘에 사무치는 망극하기 짝이 없는 그 심정을 통곡으로 풀으시고, 우리 또한 비상한 각오로써 그 명령을 준행키로 결심하고 서로 상의하여 일을 진행시켜나갔다.

이에 우경주, 김성도, 오갑출(吳甲出)을 파견하여 정읍 대흥리 차경석(車京石)의 집에 가서 몇 달을 한정하고 일꾼 노릇을 하며 제반 동정을 살피고 의심나는 곳은 두루 수색해 보았으나, 이렇다 할 증거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니 모두들 정신이 암암하고 맥이 빠져 넋을 잃은 채 중궁(中宮)에 들어가 엎드리니, 성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아비 뼈골을 찾지 못하였으니 중궁 동편에 빈소(殯所)를 차리되, 옻나무 칠성판(七星板)에 글을 쓰고 의복 일습(衣服一襲)을 올려놓고 너희들은 복을 입어 상주 노릇을 하되 빠짐없이 진지상을 올리고 애곡하라.”고 하시더라. 이에 하명하신 바를 준비하던 중, 또 하명하시기를, “금성산에 묘소(墓所)를 정하라.”하시는지라, 종허 노인과 정사는 답산을 하여 용가마골 절벽암상 뒤에 묘지를 정하게 되자 또 명령하시되, “종이 상여를 만들어서 이틀 동안을 중궁에서 애곡(哀哭)하여 상여놀음을 하고 15일 밤에 장례를 지내도록하라.”고 하시므로 이틀 동안 상여놀음을 하고 윤 4월 15일 밤에 상여를 메고 산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상여 전후에는 도령영상을 세우고 운상하였는데, 운상 소리를 하라는 호령이 내리어 종허노인이 앞소리를 메기고 일동이 받으면서 용가마 밑에 도착하였는데, 그 앞으로는 절벽이라 도저히 운상을 할 수 없는 지형이었다. 이에 짐을 부리고 상여를 내려 놓은 채 등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계속해서 운상하라고 하명하시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운상하였는데, 혼자서도 올라가기 힘든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평지와 다름없이 운상 할 수 있었으니, 실로 기이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하여 장지에 다달았으니 금성산 용가마골 절벽상 괘등형(掛燈形)에 평장으로 장례(葬禮)하였다.

 


(6) 중궁(中宮)에서 생수(生水)가 나오다.

 


천기 74년(4277, 1944, 甲申) 6월 그믐날에 난데없이 중궁에 생수가 터져나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솟아오르는지라, 식구들이 잠시도 쉬지 못하고 주야로 물을 퍼내다가 샘구멍을 조사해 보니 석벽 사이로 엄지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한데 어찌할 방법이 없어 심고하니, 성부께옵서 말씀하시기를, “그 물줄기에 정성을 다하여라. 앞으로 운수가 닥쳐올 때에는 이 생수 나오듯 하리라.” 고 하시었다. 그 뒤로 이틀 동안 물을 퍼고나니 약간 덜 나오는데, 천상으로부터 다시 하명이 계시되, “영상 앞에 우물을 파되, 넉자 깊이로 하고 그 위에 뚜껑을 만들어 덮도록 하라.”고 하시었다. 말씀대로 우물을 파니 물이 우물 안에 가득하여 넘치지도 줄지도 아니하였으며, 그 물로 청수도 모시고 식수로도 사용하였다. 나중에 우물을 파게 될지도 모르니 한가운데의 한칸을 비워 두자고 했던 지난 일이 회상되어 신명공사의 현묘한 이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7) 최초로 미륵불(彌勒佛)의 명령(命令)을 받고 천지신명을 위해 대치성을 봉행하다.

 


천기 74년(4277, 1944, 甲申) 7월 칠석에 진지상을 올리니 큰 금부처(金佛)가 들어오시더니, “나는 미륵불(彌勒佛)이라, 앞으로 내가 출세하여 해원(解寃), 상생(相生), 보은(報恩)의 법도(法度)로 중생을 제도(濟度)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세워 선경세계(仙境世界)를 건설하리라.”고 하시면서, “금성산에 천신과 지신을 위하여 큰 치성을 올리도록하라.”고 하시므로 천명대로 봉행하니, 치성때마다 천신이 한분씩 하강하시는데, 한번은 관운장의 영신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중국 사람이나 이 나라를 세 번 도와 줄 운장인데 강부인은 나를 이길려고 하지 마오.”하시는지라. 선사께서 대하여 말씀하시되, “이 자식아, 낯짝은 대추빛 같은 자식이 무슨 잔소리냐! 일본 사람들이 네 나라를 쳐들어 가니 너의 집이나 가서 돌보아라.”하시니 운장은 허허 웃으면서, “작은 체구로도 상제님의 딸은 다르다.”하시며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8) 성모님 체백(體魄)을 이장(移葬)하다.

 


천기 74년(4277, 1944, 甲申) 9월 19일, 성부님 탄강 기념 행사를 거행하던 중 운장께서, “성모님 체백을 모셔다가 금성산 대관령에 모시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시므로 정사는 성도와 동규를 대동하고 정읍 태인 공동묘지로부터 체백을 모시고 와서 9월 29일에 대관령에 터를 잡아 이장(移葬)하였다. 얼마 뒤에 성모님 묘소에 가서 공사를 보게 하시더니 정사로 하여금 다음날부터 100일 동안 매일 정오에 산소에 가서 사방배를 올리고 기도하라고 명하시니 그대로 봉행하였다.


 

3) 삼기초공사(三基礎公事) : 장대골(長大谷)

 


(1) 장대골(長大谷)로 이사

 

천기 74년(4277, 1944, 甲申) 12월 26일 치성을 올리니 성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으로부터 자리를 옮기도록 하라. 옮아갈 기지는 성도에게 책임을 주었으니 그에게 가서 상의라하.”고 명령하셨다.

명령이 내리신 날로부터 동리 인심이 돌변하고 관청 사람들이 찾아와서 공출 관계라 하며 별별 수색을 다하니 마음 놓고 공사를 받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사는 성도와 상의하여 장대골(長大谷) 은벽한 곳에 빈집을 사서 그날로부터 일꾼을 모아 작업을 착수하여 천기 75년(4278, 1945, 乙酉) 2월 3일 지하성전(地下聖殿)을 신축하여 영상을 이안(移安)하였다.

금성골에 공사를 봉행할 무렵에는 금성산에서는 밤마다 무슨 주문 읽는 소리가 그칠 새가 없었으며, 어느 때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부르는 만세 소리가 스무나흘 동안 좌우 산천에 드높이 울려퍼지기도 하였으므로 도,군청에서 만세성의 원인을 찾고자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산속을 샅샅이 뒤지기도 하였으나, 아무 흔적도 찾지 못하였는데, 공중에서는 여전히 만세성이 진동해 오므로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장대골로 이사한 뒤로는 일체 그러한 소리가 나지 않으니, 동리 사람들은 구암이 천지신명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니 다시 고요해졌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새로 정한 장대골에서 계속 내리시는 현묘한 명령 계시를 준행(遵行)하여 제반 공사를 진행해 나가던 중 명령이 계시기를, “거처가 좁다. 밭전(田)자 형의 집을 불일 내로 성축토록 하라.”고 하시므로 즉시 봉행하여 한달 남짓 동안 모든 식구들이 합심하여 밭전(田)자 집을 완공하였다.

 


(2) 도수가(度數歌)를 지어서 가무하다.

 


천기 75년(4278, 1945, 乙酉) 3월 2일 중궁에 진지상을 올리고 예를 드리니 성모님께서 하강하시어 명령하시되, “너희들이 백일을 울고 나니 사방에서 군인으로 보내고 보국대로 뽑혀 떠난다고 역마다 고을마다 울음소리 드높더니, 이제 너희들은 눈물을 거두고 가무(歌舞)를 하게 되었으니, 너희들이 서로 만난 이후 오늘까지의 자초지정을 노래 부르며 가락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라. 세상 형편도 너희 따라 변하리라.”하시었다. 이에 정사는 명령을 받들어 그날 밤 즉시 도수가를 지어 3월 3일 치성에 명령과 같이 행사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도수가(度數歌)

 

유세 을유 삼월 초삼일 계축 도자 병철 소고우(維歲 乙酉 三月 初三日 癸丑 道子 炳澈 昭告于)

천지조판 상고이래 이런도수 처음일세

염제신농 피를받아 선후천이 변역일세

기만년간 내린도술 성부성모 치산일세

성부는 고부땅 강씨요 성모는 금구땅 정씨라

천성합덕 정배되니 천지도수 새살림을

화위전녀 하였나니 팔왕녀라 강부인과

부금냉금 하였나니 금사옥사 우옥사라

갑을서로 음양이요 진사또한 음양이라

음양각립 어찌하리 보보행진 찾는모양

방방곡곡 순력하여 시호시호 탄식이라

영세화장 건곤위요 대방일출 간태궁을

유언에도 있는말씀 동서간태 배궁이라

간은동방 청룡이요 태는서방 백호로다

청룡백호 정배되니 조화나기 자연이라

서방금은 전라도요 동방목은 경상도라

전서경동 결연되니 서부동서 참말일세

이운수도 멀리왔고 이연분도 멀리왔네

금수강산 전주땅에 육년동안 기초로다

그해라 정축년하니 자축에 유미정이라

삼십삼세 현녀로서 삼십이세 정배로다

임오년에 동기있어 성부강림 현몽하사

백학한쌍 나려와서 윤신포태 되었더라

고금사를 생각하니 일희일비 그지없네

이리저리 생각하니 인묘년에 사가지라

금동형제 탄강하여 옥동성자 승천이라

경진신사 탄생하니 진사에 성인출인가

부부간에 마주앉아 통정할곳 전혀없다

천상에서 내왕하며 부모위로 극진하여

밤을두고 성장하니 일취월장 자연이라

두동자가 솔병하니 천상천하 독존일세

천지도래 장중하니 오미에 낙당인가

신병훈련 도수두니 일지전이 점점이라

이런도수 생각할때 고불문지 법이로다

성부성모 조화중이 이런일이 나섰도다

경사났네 대경살세 기장하다 이내문운

임오년간 당도하니 세간살이 풍파일어

둘이서로 마주앉아 고패로다 탄식일세

생사판단 둘의몸이 기지찾아 길을뜨니

영판이라 하신말씀 금성골에 기초했네

천우신조 절로절로 무위이화 풀리더라

현현묘묘 절차중에 천신지신 강림하여

입택턴날 도령소리 금성비봉 진동하니

산색마져 융융하고 천기또한 다른징조

듣는사람 경악하고 허무지설 손상이라

몇달후에 소리끊고 도수절차 뿐일네라

인지재질 갈아보니 악마따로 있지않아

통정할곳 전혀없다 인심풍속 겁이나네

시대가 영웅낳고 영웅은 시세짓고

허면허소 거래간에 불토심정 견여의요

황화수라 깊은마음 곤륜태산 무거운입

수구여병 이라하고 방이여성 이라하니

병중에 유선주하여 가활만인 이라셨다

경각안위 조심해서 덕인태도 취할따름

금성골에 기초할때 또한장소 있다시던

그말씀이 새롭도다 새기지 정하라신다

갑신동절 당하기전 성모미리 보내셨네

장대곡에 터잡으니 천지도시 빈번이라

불의지간 몽매사로 악해또한 따르도다

도장좋은 금성골아 도령강림 탄식터라

빛내오던 금성비봉 인심돌변 겁이난다

산천마져 목메울고 초목또한 서러우네

정신방황 이부모는 불탄가슴 요란터라

성심부족 이부모는 천지공사 저해로다

부모책임 못하오니 이런악해 내한이라

답답한 가습이여 심령밝혀 기도로세

중궁철봉 영상봉안 천기또한 요란터라

운장상제 내려와서 성부전에 통곡하니

해와달이 빛을잃고 풍우또한 요란터라

경레산천 돌아서니 피맺히는 이가슴아

재세화천 남은풍파 우주강산 진동하니

성부성모 겪으시는 그고초를 누가알리

아홉사람 영상모셔 이안코져 길을뜨니

오색채운 지동소리 행차중에 천둥소리

천둥지동 교차하니 천지전송 분명터라

성부화천 하신후에 모녀고생 뉘가알리

지공무사 무욕하니 그고생은 한이없어

애지중지 불탄가슴 무남독녀 기르실때

우리성모 불탄가슴 모녀서로 갈린뒤에

이리저리 방황하며 지하도수 맞추셨네

성모화천 서러워라 하늘땅에 순임혼자

혈혈단신 현녀로서 방방곡곡 혈루로다

성부성모 조화중에 혈육불고 웬말인가

공사중에 사정없이 시호정해 두셨는가

성부체백 분산된 채 도난마저 당했으니

이일저일 생각하면 전무후무 일났도다

지하책임 도리로서 옥체찾지 못한불효

근근감내 신고하여 성모체백 모셨도다

대관령에 안장하니 천신지신 강령터라

성부옥체 찾았어야 천지도수 순조로다

옥체찾아 다니다가 허행함이 수차례라

지하도수 책임되야 체백봉안 미달이라

행장준비 다해두고 통곡이야 탄식하니

성모체백 도수절차 불탄존념 뉘가알리

도수절차 복잡중에 도장이사 수난이라

신장들이 분발하여 방해자들 타살공사

대자대비 성부성모 신장들을 만류하사

수일간에 훈시하니 척을짓지 말라시네

개명장 나는날에 일체개심 보은이라

도장저해 생각하면 천참만륙 부족하나

대인불택 선악이요 견기이작 참는도라

금성산령 바삐와서 성부말씀 전갈하니

대관련의 성모체백 단석산에 이장하라

명령대로 단석가서 터를잡고 돌아오니

천지간에 통곡소리 강산마저 진동하네

성모체백 잦은이장 지령도수 분명터라

금성산에 옮기실때 인신분발 요란하고

단석산에 터잡을때 천지간에 통곡소리

장대곡에 모셔오니 성부회포 내리신다

체백두루 만지시며 가슴깊이 묻힌불에

타고타서 검고검다 통곡으로 부탁부탁

마디마디 화를푸소 왕사일랑 잊으시고

원통한맘 풀으시기 축원축원 하옵시네

척짓지 말라신말씀 체백과도 해원이라

이런도수 불작시면 천지해원 자연일레

피맺히신 성모가슴 마디마디 풀으실세

성부축원 계속되니 출천대효 저자식들

일편단심 얽힌정성 저것들을 봐서라도

맺힌가슴 어서풀소 축원축원 하시더라

오호라 우리성모여 기록자니 한숨이라

애통무비 성모성애 신명이나 아오리다

허령지각 대풍진에 신명시대 당했도다

천상도령 비들어라 소제탁기 쓸어내라

천도천명 하온뒤에 할매포원 빛내보자

사업이라 우리고패 뉘라서 감내하리

도령이여 신명이여 이현부모 충효로다

만만세 축원하오니 청강수에 화를푸소서

시호시호 우리시호 불원불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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