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신앙이란?
제가 아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하남시에 한 분, 용인시에 한 분, 천안시에 한 사람..
그 중에서 하남시와 용인에 사는 분과 친하게 지냅니다. 저보다 나이도 많구요. 천안의 젊은이는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잘 만나지는 않습니다.
먼저 하남에 살고 있는 분을 소개하자면 식당에 가서 절대 반찬을 더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이 혹 어떤 특정한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곧 바로 나무랍니다. 왜 돈에 맞추어 나온 차림상 외에 더 달라고 하냐고..
즉, 돈 낸 만큼만 먹으라는 것이지요.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란 벌처럼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8:62)
그리고는 반찬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웁니다. 밥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습니다. 저도 수 백명을 만나서 밥을 먹어봤지만 도통하지 않아도 상대방 밥 먹는 것만 보면 성격과 행동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공기를 쳐다보면 밥알이 더덕더덕 말라 붙어있습니다. 상제님 말씀에 밥 한 톨도 귀하다는 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피곤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九天)에 사무치리라. (道典 5:411)
용인에 사시는 분은 제가 네잎클로버 찾는다고 풀밭에 들어갔더니 버럭 화를 냅니다. 왜 한 개의 네잎을 찾기 위해 수천 개의 세잎클로버를 발로 짓밟느냐는 것이지요. 저는 곧 바로 사과드렸습니다.
OO~ 죄송합니다!!
*상제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공사를 행하시는데 식사 때가 되어 진지를 따로 차려서 올리니 말씀하시기를 “쇠스랑은 세 가랑이일지라도 입은 한가지니 함께 차려라. 음식으로 사람을 층하(層下) 두는 것처럼 얄미운 것이 없나니 어른이라고 해서 잘 주고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덜 주고 하지 말라.” 하시며 커다란 상에 밥과 반찬을 모두 차려 놓고 한자리에서 들도록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항상 소탈하게 상을 차리게 하시고 무슨 음식이든지 남기지 않으시거늘 하루는 성도들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밥 한 톨이라도 버리지 말라. 밥알 하나라도 새 짐승이 먹기까지 신명이 지켜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144)
위의 두 사람은 상제님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저만 상제님 도를 닦는다고 알 뿐이죠.
천안에 사는 젊은이는 상제님을 구도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상제님 말씀에서 조금만 빗나가는 행위를 하면 그 자리에서 상대방이 나이가 많던 적던 대놓고 심하게 나무랍니다. 한마디로 상제님 말씀을 닦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상제님을 능멸한다는 뜻이지요. 차라리 상제님 도를 닦는다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제 스스로 할 것 다 하고 못 할 것 다하고 언제 이루냐 이거지요.
이 친구는 목욕탕에 가서도 물을 절대로 헤프게 쓰지 않습니다. 철저히 집에서처럼 절약히 사용합니다.
이 젊은이 앞에서 담배피고 술 먹고 어영부영 하다가는 코 깨집니다~ㅋ 어쩔 땐 꼭 개벽신장이 심판하는 분위기이며 개인적으로는 꼭 관운장 같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은 안 좋지만 상제님 말씀으로 훈계하는데 들어보면 단 한 마디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눈동자를 보면 무서워요)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道典4:15)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이 3인(三人)을 까다롭고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 닦으며 깨우치는 과정이라고요.
사실 생활에서 핑계대고 미루고 자축하고 두리 뭉실 넘어가고 좋은게 좋다고 지체하고.. 끝이 없지요. 경제도 그럽니다. 어렵지 않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항상 어렵습니다. 년초는 설날 끼어서, 입학식 끼어서, 등록금 내야해서..여름휴가 끼어서..추석 끼어서..연말이라서..등등
*상제님께서 옛사람을 평론하실 때는 매양 강태공, 석가모니, 관운장, 이마두를 칭찬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된 자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이라도 기울지 아니하여야 할지니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의로움(義)이 있는 곳에 도(道)가 머물고, 도가 머무는 곳에 덕(德)이 생기느니라.” (道典 8:62)
하남시 이 분은 하루도 안 빼고 정확히 오후 4시 되면 휴대폰 꺼놓고 불교식 수행을 합니다. 지금 5년째(2015년기준)인데 웬만한 사람과 선문답하면 지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듯 하더군요.
용인시 이 분은 걸어가다가도 산이 보이면 시원한 곳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습니다. 어떤 일 처리를 위해서는 꼭 30~1시간 다리를 꼬고 해답을 얻은 후에 일어납니다.
물론 제가 아는 할머니는 하루도 안 빼고 30년째 태을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앉을 자리를 탐내어 당치 않는 자리에 앉으면 신명들이 등을 쳐서 물리치나니, 자리탐을 내지 말고 덕닦기를 힘쓰며 마음을 잘가지면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치느니라. (대순전경 p334)
*모든 것은 너희들 자신이 닦은 바에 따라서 되느니라. 평소에 도를 닦지 않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정작 성도(成道)의 때를 당하게 되면 뼈마디가 뒤틀리느니라. (道典8:35:1∼3)
아무튼 일반 사람들은 그냥 피곤한 삶을 산다고 세 사람에게 핀잔을 주지만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무릇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하 사람의 장점을 취하고 천하 사람의 단점을 버리라. 대인을 배우는 자는 고금의 흥망에 밝고 세상 사람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하느니라. (道典 18:4:1,3)
아하!
생활신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이쪽을 본다면 신통치 않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거창하게 천지공사와 개벽을 얘기하면서 못하는 행동과 말을 내 뱉는다면..
*살려내자, 살려내자! (道典 11;385:3)
*증산(增産)하여야 산다. 증산(甑山)이 증산(增産)이니라. 법은 서울로부터 퍼지나니 증산하여야 산다, 백대 일손(百代一孫)이 백대일순(百代一淳)이니 신농씨부터 백대일순이니라. (道典 11:259:1~5)
개인적으로 문득 먹줄이란 것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저렇게 하지 않는 입장에서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혀 사정(邪正)을 감정하여 번개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만은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대순전경 p306)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저녁시간에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막 도착하니 저녁을 먹는 중이었습니다. 그 미국인이 저녁드셨습니까? 하니까 한국식으로 네~ 먹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했더니 바로 식탁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오더라는 것이지요.
한국사람 같았으면 “이리오세요~ 같이 먹어요~” 최소한 3번 정도는 밥 먹으라고 권했을 것이고 그 3번속에서 2번 권할 때 즈음 못이기는 척 하고 밥을 먹는 것이 상례인데 눈치없는 미국 스타일로 그 말을 그대로 믿고는 배고픈 빈속에 쓰디쓴 미국식 커피를 듬뿍 담아주니 안 마실 수 없고 다 마시고 나니 속이 아플 수 밖에 없지요.
나올 때도 그럽니다.
대화가 무르 익어서 밤이 깊어갈 때 주인이 예의상 더 있다 가라고 해도 밤새워 대화해야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주인들 자도록 나와야 합니다. 약속하는 것도 그럽니다.
그 때 그 때 상황 대처에 우유부단 하는 것은 자신의 잣대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의 집 첫 방문할 때도 그렇습니다. 어디를 방문 할 때도 눈치가 필요합니다. 그 집의 주인은 여자입니다. 밖에서는 남자가 주인공이지만 일단 집에 들어오면 집에서는 여성이 왕입니다.
그래서 집사람이라고 합니다. 집의 킹(왕)님..ㅋ
*증산상제님 말씀하시기를 "후천선경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닦기가 급하느니라. 후천을 기다리는 마음이 지극하면 마음닦기에 신실하고, 후천을 기다리는 마음이 시들하면 마음닦기에 소홀하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21)
10년전 일입니다. 어떤 집을 초대 받아 찾아갔는데 문 앞에서 초대자가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를 쓱 들어가 뭐를 사서 들고 옵니다. 그러더니 제 손에 쥐어줍니다. 즉시 뭔 뜻인지 알았지요. 그리고 너무 미안하고 무안해서 반성 했습니다.
그 안주인은 무척 반겨줬습니다. 그 분 부인이 밥 먹으며 그랬다는군요. 윤선생 참 좋은 분같다~라고요. (딱 한 번 만났는데?)
*마음을 잘 닦아 세상 기운을 이겨야 대인의 반열에 오르느니라. (道典 19:208:4)
여자는 그럽니다. 어디 가서 미련하게 쑥 고개 들여 밀지 마십시오. 돈이 없으면 미리 얘기해서 쵸코파이라도 사서 하우스 여왕에게 주세요. 아마 속으로 인간이 되어 먹었구나~ 하고 다르게 볼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감춰둔 킹크랩이라도 꺼내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여주인이 꼭 뭐를 바래서 그런 것이 아니지요. 뭔 뜻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가정집 방문과 장사하는 집 방문은 또 다릅니다. 제가 무슨 교육 시켜드릴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니 너그러히 용서하십시오. 이러다 저희 집에 아무도 안 올 수 있겠네요. 사람사는 기본이 그렇다는 거지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란 귀가 밝아야 하고 눈치가 빨라야 하나니” 많은 사람 속에서도 잘되고 못됨은 내 행실에 매여 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75)
저는 일하는 곳에서 짜장면 배달원이 오면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데 옆 동료들이 왜 저런 사람까지 인사를 하냐고 그럽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차피 여기 근무하는 조건으로 급여를 받는데 이곳에 오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꼬마라 할지라도 당연히 해야지요.
옆의 동료가 속으로 분명히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내 할 도리만 하면 되지요. 남의 눈치만 보다가는 외꾸눈 원숭이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때는 천지성공 시대라. 서신(西神)이 명(命)을 맡아 만유를 지배하여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 말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혹 성숙하기도 함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어 그 수(壽)가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 그러므로 혹 신위(神威)를 떨쳐 불의를 숙청(肅淸)하고 혹 인애(仁愛)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삶을 구하는 자와 복을 구하는 자는 크게 힘쓸지어다." (道典4:21)
한 번은 용돈이 귀해서 막노동(노가다)을 갔습니다. 6만원 받기로 하고 갔는데 4층으로 시멘트 비벼서 지게(짐통)로 퍼서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계단으로 딱 2번 올라갔다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너희들이 신(信)을 주어야 나의 신을 받으리라. (대순전경 6:123)
정말 피똥싸는 힘으로 일을 끝나고 용역사무실에 갔더니 왜 돈을 더 받기로 하고 하지 그냥 시키는데로 했냐고 경험자들이 안타까워하더군요. 원래 그 정도면 9만~10만원을 받는다네요.
옆에서 용역사장이 막걸리 마시며 바둑 두다가 힐끗 저를 보더니 호주머니에서 6만원을 챙겨 주더군요. 집에 와서 봤더니 6만 5천원이더군요. 술 취해서 잘못 준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5천원 갖다 줬습니다. 그랬더니 용역사장이 한 참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밥 먹었냐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 안 먹었다고 했더니 한우식당으로 데려가서 1등급 시켜놓고선 한 마디 합니다.
자기가 용역 20년을 하면서 별 놈을 다 만나봤지만 윤씨 처럼 돈 더 줬는데도 되돌려주는 사람 처음이라고..너무 감동이라고..
*일꾼은 뒷구멍이 넓어야 한다. (道典8:91:8)
*일하지 않고 품삯을 말하지 못하며, 하루 품에 이틀 삯을 받지 못하느니라. (道典8:91:8)
*선천은 남에게 의지하는 바람에 기대고 망하나니, 너희들은 하다못해 방벽이라도 기대지 말라."하시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50)
그 다음날 나오라 해서 갔더니 누구를 부르더니 같이 가랍니다. 따라 갔더니 통나무 정리된 것 소각하고 가랍니다. 그래도 일당은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한 사람과 똑 같이 받는답니다.
그래서 놀다시피 불놀이 하다가 오후 2시경 끝내고 왔더니 일당을 7만원 줍니다. 이렇게 약 1주일 편하게 일했습니다. 돈 맛에 더 가려다 그만 뒀습니다.
다 같은 막노동인줄 알았더니 땜빵 하는 것들이 있더군요. 즉, 고급 노가다이지요. 바퀴달린 기계 5대를 밀어 사무실에 들여놨더니 또 일당 6만원 줍니다. 용역사장의 재량입니다. 그런 일거리들이 있는데 아무나 안 시킨다는군요.
즉, 적어도 10년정도는 같이 고생한 싸가지 있는 놈에게만 챙겨주는 꺼리라는 거지요. 근데 제가 단돈 5천원으로 신임을 얻어 혜택을 입은 것입니다.
*선천으로부터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으로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마음 닦는 공부이니 심통공부(心通工夫) 어서 하소. 제가 저의 심통도 못하고서 무엇을 한다는가. (선도신정경 pp215-216)
위의 얘기는 제 자랑 하려고 쓴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다보니 제 얘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보다 더 많은 경험과 올바른 처세를 하신 분들이 많다는 전제하에 글을 쓰는 것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상제님께서는 성도들이 간혹 부친의 빈궁함을 보고 돈이나 곡식을 드리는 자가 있으면 크게 꾸짖으시고 도로 거두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거늘 성도들이 그 연고를 여쭈니 말씀하시기를“하늘의 복(福)이 다시 시작되는 그 처음의 때를 당하여 내가 모범을 보이나니 나는 대효(大孝)를 행하고 있느니라.”하시니라. 하루는 문공신(文公信)에게 말씀하시기를“나의 부친도 나중에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하시니라. (道典9:121:1∼8)
최근 음식물 재활용이 심각하다고 뉴스에서 떠들 때가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손가락질하며 더럽다고 욕하지요. 하지만 식당에 가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요식업 협회에서 mbc와 손잡고 손님이 직접 먹고 남은 반찬 한 곳에 모아놓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이해하지 행동은 하지 않고 또 다시 재활용 반찬에 대해 손톱이 나왔느니 깍두기 이빨자국 있다느니 하면 욕만 합니다.
음식점 주인을 아는 곳에서는 민망하니 그리 할 수는 없겠지만 모르는 식당에 가서는 떳떳히 다 드시고 반찬 남은 것들 한 곳에 다 쏟아버리십시오. 오히려 식당 주인이 일손을 거든다고 좋아하는데도 많습니다.
소비자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 말은 일꾼들이 세상을 만듭니다! 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이 세계를 악(惡)한 세계라 하지 말라. 너희가 선(善)한즉 선(善)한 세계요. 너희가 악(惡)한즉 악(惡)한 세계이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2)
생활신앙이란 단순히 교단에, 단체에 가입 안 하고 신앙하는 것?? 맞는 말씀일 수 있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서있는 곳, 지금 일하는 곳, 지금 사는 곳이 바로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시간과 장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고 내가 좋아 한다고 남에게 권하지 말라~ 이 말씀은 내가 내 할 도리를 하는 것이 일꾼된 도리라고 생각해봅니다. 일꾼은 본인이 지참해서 가지고 다니는 먹줄(기준:잣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잣대로 말과 행동을 하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운 이익이 보이리라 믿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부친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 항상 자력을 쓰도록 하시고 “평소에 허물 지은 것을 생각하여 허물 닦기에 힘쓰소서.”하시니라. 또 성도들이 부친께 물품이나 금품을 드리는 것을 엄금하시니라. 하루는 어떤 성도가 집이 너무 좁고 초라함을 민망히 여겨 그보다 큰 집을 사 드린 일이 있더니 상제님께서 꾸짖으시며“네가 어찌 나의 부친을 도적으로 만들려 하느냐.” 하시고 다시 이르시기를 “속 모르는 사람은 나에게 불효라 할지나 나는 부친의 앞길을 닦아드리려 함이로다. 내가 항상 가늠을 놓고 보는데 만일 그 가늠에 어그러지면 허사가 되나니 너희들이 부친의 빈궁하심을 민망히 여겨 도와드리고 싶거든 먼저 나에게 말하라. 그 가늠을 변경하리라.”하시니라. (道典9:121:1∼8)
*하루는 태인으로 부터 손바래기에 이르시어 부친께 여쭈기를 “나의 일은 추호도 사정(私情)이 없으니 부디 죄를 짓지 마소서.”하시니라. (道典2:105:1∼9)
*상제님께서 채사용(蔡士用)과 성도 여러 명을 데리고 천원리에 이르시어 한 집으로 들어가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따라 들어가 보니 한 노인이 신을 삼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삿갓을 들고 그 옆에서 한참을 바라보시다가 나오시거늘 성도들이“그 노인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나의 부친이니라.”하시니라. 사용이 황송한 마음에 즉시 백미 한 말을 져다 드리고 오니 상제님께서 이미 아시고“나의 부친이 죄가 많으므로 신틀로써 그 죄를 감하게 하였거늘 너로 인하여 나의 부친은 3년을 더 신을 삼아야 하리라.”하시니라. (道典9:121:1∼8)
이 글이 조금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양해해 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농부가 이른 봄 농한기에 그 버는 논에 똘을 깊이 파서 수원지에 이르게 하니, 여러 사람이 부질없이 힘들이는 것을 비웃어 가로대 ‘이 논은 예로부터 천수(天水)만 받아도 흉작이 없어 왔는데 쓸데없는 힘을 이렇게 들이느뇨’ 하더니, 이 해에 크게 가물어서 온 들이 적지가 되었으나 그 농부는 파 놓았던 똘로 물을 끌어대어 가뭄을 면하여 잘 지었나니, 이 일을 알아두라 하시니라. (대순전경 P142)
그 중에서 하남시와 용인에 사는 분과 친하게 지냅니다. 저보다 나이도 많구요. 천안의 젊은이는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잘 만나지는 않습니다.
먼저 하남에 살고 있는 분을 소개하자면 식당에 가서 절대 반찬을 더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이 혹 어떤 특정한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곧 바로 나무랍니다. 왜 돈에 맞추어 나온 차림상 외에 더 달라고 하냐고..
즉, 돈 낸 만큼만 먹으라는 것이지요.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란 벌처럼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8:62)
그리고는 반찬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웁니다. 밥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습니다. 저도 수 백명을 만나서 밥을 먹어봤지만 도통하지 않아도 상대방 밥 먹는 것만 보면 성격과 행동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공기를 쳐다보면 밥알이 더덕더덕 말라 붙어있습니다. 상제님 말씀에 밥 한 톨도 귀하다는 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피곤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九天)에 사무치리라. (道典 5:411)
용인에 사시는 분은 제가 네잎클로버 찾는다고 풀밭에 들어갔더니 버럭 화를 냅니다. 왜 한 개의 네잎을 찾기 위해 수천 개의 세잎클로버를 발로 짓밟느냐는 것이지요. 저는 곧 바로 사과드렸습니다.
OO~ 죄송합니다!!
*상제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공사를 행하시는데 식사 때가 되어 진지를 따로 차려서 올리니 말씀하시기를 “쇠스랑은 세 가랑이일지라도 입은 한가지니 함께 차려라. 음식으로 사람을 층하(層下) 두는 것처럼 얄미운 것이 없나니 어른이라고 해서 잘 주고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덜 주고 하지 말라.” 하시며 커다란 상에 밥과 반찬을 모두 차려 놓고 한자리에서 들도록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항상 소탈하게 상을 차리게 하시고 무슨 음식이든지 남기지 않으시거늘 하루는 성도들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밥 한 톨이라도 버리지 말라. 밥알 하나라도 새 짐승이 먹기까지 신명이 지켜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144)
위의 두 사람은 상제님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저만 상제님 도를 닦는다고 알 뿐이죠.
천안에 사는 젊은이는 상제님을 구도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상제님 말씀에서 조금만 빗나가는 행위를 하면 그 자리에서 상대방이 나이가 많던 적던 대놓고 심하게 나무랍니다. 한마디로 상제님 말씀을 닦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상제님을 능멸한다는 뜻이지요. 차라리 상제님 도를 닦는다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제 스스로 할 것 다 하고 못 할 것 다하고 언제 이루냐 이거지요.
이 친구는 목욕탕에 가서도 물을 절대로 헤프게 쓰지 않습니다. 철저히 집에서처럼 절약히 사용합니다.
이 젊은이 앞에서 담배피고 술 먹고 어영부영 하다가는 코 깨집니다~ㅋ 어쩔 땐 꼭 개벽신장이 심판하는 분위기이며 개인적으로는 꼭 관운장 같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은 안 좋지만 상제님 말씀으로 훈계하는데 들어보면 단 한 마디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눈동자를 보면 무서워요)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道典4:15)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이 3인(三人)을 까다롭고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 닦으며 깨우치는 과정이라고요.
사실 생활에서 핑계대고 미루고 자축하고 두리 뭉실 넘어가고 좋은게 좋다고 지체하고.. 끝이 없지요. 경제도 그럽니다. 어렵지 않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항상 어렵습니다. 년초는 설날 끼어서, 입학식 끼어서, 등록금 내야해서..여름휴가 끼어서..추석 끼어서..연말이라서..등등
*상제님께서 옛사람을 평론하실 때는 매양 강태공, 석가모니, 관운장, 이마두를 칭찬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된 자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이라도 기울지 아니하여야 할지니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의로움(義)이 있는 곳에 도(道)가 머물고, 도가 머무는 곳에 덕(德)이 생기느니라.” (道典 8:62)
하남시 이 분은 하루도 안 빼고 정확히 오후 4시 되면 휴대폰 꺼놓고 불교식 수행을 합니다. 지금 5년째(2015년기준)인데 웬만한 사람과 선문답하면 지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듯 하더군요.
용인시 이 분은 걸어가다가도 산이 보이면 시원한 곳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습니다. 어떤 일 처리를 위해서는 꼭 30~1시간 다리를 꼬고 해답을 얻은 후에 일어납니다.
물론 제가 아는 할머니는 하루도 안 빼고 30년째 태을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앉을 자리를 탐내어 당치 않는 자리에 앉으면 신명들이 등을 쳐서 물리치나니, 자리탐을 내지 말고 덕닦기를 힘쓰며 마음을 잘가지면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치느니라. (대순전경 p334)
*모든 것은 너희들 자신이 닦은 바에 따라서 되느니라. 평소에 도를 닦지 않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정작 성도(成道)의 때를 당하게 되면 뼈마디가 뒤틀리느니라. (道典8:35:1∼3)
아무튼 일반 사람들은 그냥 피곤한 삶을 산다고 세 사람에게 핀잔을 주지만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무릇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하 사람의 장점을 취하고 천하 사람의 단점을 버리라. 대인을 배우는 자는 고금의 흥망에 밝고 세상 사람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하느니라. (道典 18:4:1,3)
아하!
생활신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이쪽을 본다면 신통치 않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거창하게 천지공사와 개벽을 얘기하면서 못하는 행동과 말을 내 뱉는다면..
*살려내자, 살려내자! (道典 11;385:3)
*증산(增産)하여야 산다. 증산(甑山)이 증산(增産)이니라. 법은 서울로부터 퍼지나니 증산하여야 산다, 백대 일손(百代一孫)이 백대일순(百代一淳)이니 신농씨부터 백대일순이니라. (道典 11:259:1~5)
개인적으로 문득 먹줄이란 것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저렇게 하지 않는 입장에서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혀 사정(邪正)을 감정하여 번개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만은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대순전경 p306)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저녁시간에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막 도착하니 저녁을 먹는 중이었습니다. 그 미국인이 저녁드셨습니까? 하니까 한국식으로 네~ 먹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했더니 바로 식탁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오더라는 것이지요.
한국사람 같았으면 “이리오세요~ 같이 먹어요~” 최소한 3번 정도는 밥 먹으라고 권했을 것이고 그 3번속에서 2번 권할 때 즈음 못이기는 척 하고 밥을 먹는 것이 상례인데 눈치없는 미국 스타일로 그 말을 그대로 믿고는 배고픈 빈속에 쓰디쓴 미국식 커피를 듬뿍 담아주니 안 마실 수 없고 다 마시고 나니 속이 아플 수 밖에 없지요.
나올 때도 그럽니다.
대화가 무르 익어서 밤이 깊어갈 때 주인이 예의상 더 있다 가라고 해도 밤새워 대화해야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주인들 자도록 나와야 합니다. 약속하는 것도 그럽니다.
그 때 그 때 상황 대처에 우유부단 하는 것은 자신의 잣대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의 집 첫 방문할 때도 그렇습니다. 어디를 방문 할 때도 눈치가 필요합니다. 그 집의 주인은 여자입니다. 밖에서는 남자가 주인공이지만 일단 집에 들어오면 집에서는 여성이 왕입니다.
그래서 집사람이라고 합니다. 집의 킹(왕)님..ㅋ
*증산상제님 말씀하시기를 "후천선경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닦기가 급하느니라. 후천을 기다리는 마음이 지극하면 마음닦기에 신실하고, 후천을 기다리는 마음이 시들하면 마음닦기에 소홀하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21)
10년전 일입니다. 어떤 집을 초대 받아 찾아갔는데 문 앞에서 초대자가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를 쓱 들어가 뭐를 사서 들고 옵니다. 그러더니 제 손에 쥐어줍니다. 즉시 뭔 뜻인지 알았지요. 그리고 너무 미안하고 무안해서 반성 했습니다.
그 안주인은 무척 반겨줬습니다. 그 분 부인이 밥 먹으며 그랬다는군요. 윤선생 참 좋은 분같다~라고요. (딱 한 번 만났는데?)
*마음을 잘 닦아 세상 기운을 이겨야 대인의 반열에 오르느니라. (道典 19:208:4)
여자는 그럽니다. 어디 가서 미련하게 쑥 고개 들여 밀지 마십시오. 돈이 없으면 미리 얘기해서 쵸코파이라도 사서 하우스 여왕에게 주세요. 아마 속으로 인간이 되어 먹었구나~ 하고 다르게 볼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감춰둔 킹크랩이라도 꺼내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여주인이 꼭 뭐를 바래서 그런 것이 아니지요. 뭔 뜻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가정집 방문과 장사하는 집 방문은 또 다릅니다. 제가 무슨 교육 시켜드릴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니 너그러히 용서하십시오. 이러다 저희 집에 아무도 안 올 수 있겠네요. 사람사는 기본이 그렇다는 거지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란 귀가 밝아야 하고 눈치가 빨라야 하나니” 많은 사람 속에서도 잘되고 못됨은 내 행실에 매여 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75)
저는 일하는 곳에서 짜장면 배달원이 오면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데 옆 동료들이 왜 저런 사람까지 인사를 하냐고 그럽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차피 여기 근무하는 조건으로 급여를 받는데 이곳에 오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꼬마라 할지라도 당연히 해야지요.
옆의 동료가 속으로 분명히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내 할 도리만 하면 되지요. 남의 눈치만 보다가는 외꾸눈 원숭이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때는 천지성공 시대라. 서신(西神)이 명(命)을 맡아 만유를 지배하여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 말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혹 성숙하기도 함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어 그 수(壽)가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 그러므로 혹 신위(神威)를 떨쳐 불의를 숙청(肅淸)하고 혹 인애(仁愛)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삶을 구하는 자와 복을 구하는 자는 크게 힘쓸지어다." (道典4:21)
한 번은 용돈이 귀해서 막노동(노가다)을 갔습니다. 6만원 받기로 하고 갔는데 4층으로 시멘트 비벼서 지게(짐통)로 퍼서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계단으로 딱 2번 올라갔다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너희들이 신(信)을 주어야 나의 신을 받으리라. (대순전경 6:123)
정말 피똥싸는 힘으로 일을 끝나고 용역사무실에 갔더니 왜 돈을 더 받기로 하고 하지 그냥 시키는데로 했냐고 경험자들이 안타까워하더군요. 원래 그 정도면 9만~10만원을 받는다네요.
옆에서 용역사장이 막걸리 마시며 바둑 두다가 힐끗 저를 보더니 호주머니에서 6만원을 챙겨 주더군요. 집에 와서 봤더니 6만 5천원이더군요. 술 취해서 잘못 준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5천원 갖다 줬습니다. 그랬더니 용역사장이 한 참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밥 먹었냐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 안 먹었다고 했더니 한우식당으로 데려가서 1등급 시켜놓고선 한 마디 합니다.
자기가 용역 20년을 하면서 별 놈을 다 만나봤지만 윤씨 처럼 돈 더 줬는데도 되돌려주는 사람 처음이라고..너무 감동이라고..
*일꾼은 뒷구멍이 넓어야 한다. (道典8:91:8)
*일하지 않고 품삯을 말하지 못하며, 하루 품에 이틀 삯을 받지 못하느니라. (道典8:91:8)
*선천은 남에게 의지하는 바람에 기대고 망하나니, 너희들은 하다못해 방벽이라도 기대지 말라."하시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50)
그 다음날 나오라 해서 갔더니 누구를 부르더니 같이 가랍니다. 따라 갔더니 통나무 정리된 것 소각하고 가랍니다. 그래도 일당은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한 사람과 똑 같이 받는답니다.
그래서 놀다시피 불놀이 하다가 오후 2시경 끝내고 왔더니 일당을 7만원 줍니다. 이렇게 약 1주일 편하게 일했습니다. 돈 맛에 더 가려다 그만 뒀습니다.
다 같은 막노동인줄 알았더니 땜빵 하는 것들이 있더군요. 즉, 고급 노가다이지요. 바퀴달린 기계 5대를 밀어 사무실에 들여놨더니 또 일당 6만원 줍니다. 용역사장의 재량입니다. 그런 일거리들이 있는데 아무나 안 시킨다는군요.
즉, 적어도 10년정도는 같이 고생한 싸가지 있는 놈에게만 챙겨주는 꺼리라는 거지요. 근데 제가 단돈 5천원으로 신임을 얻어 혜택을 입은 것입니다.
*선천으로부터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으로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마음 닦는 공부이니 심통공부(心通工夫) 어서 하소. 제가 저의 심통도 못하고서 무엇을 한다는가. (선도신정경 pp215-216)
위의 얘기는 제 자랑 하려고 쓴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다보니 제 얘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보다 더 많은 경험과 올바른 처세를 하신 분들이 많다는 전제하에 글을 쓰는 것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상제님께서는 성도들이 간혹 부친의 빈궁함을 보고 돈이나 곡식을 드리는 자가 있으면 크게 꾸짖으시고 도로 거두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거늘 성도들이 그 연고를 여쭈니 말씀하시기를“하늘의 복(福)이 다시 시작되는 그 처음의 때를 당하여 내가 모범을 보이나니 나는 대효(大孝)를 행하고 있느니라.”하시니라. 하루는 문공신(文公信)에게 말씀하시기를“나의 부친도 나중에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하시니라. (道典9:121:1∼8)
최근 음식물 재활용이 심각하다고 뉴스에서 떠들 때가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손가락질하며 더럽다고 욕하지요. 하지만 식당에 가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요식업 협회에서 mbc와 손잡고 손님이 직접 먹고 남은 반찬 한 곳에 모아놓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이해하지 행동은 하지 않고 또 다시 재활용 반찬에 대해 손톱이 나왔느니 깍두기 이빨자국 있다느니 하면 욕만 합니다.
음식점 주인을 아는 곳에서는 민망하니 그리 할 수는 없겠지만 모르는 식당에 가서는 떳떳히 다 드시고 반찬 남은 것들 한 곳에 다 쏟아버리십시오. 오히려 식당 주인이 일손을 거든다고 좋아하는데도 많습니다.
소비자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 말은 일꾼들이 세상을 만듭니다! 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이 세계를 악(惡)한 세계라 하지 말라. 너희가 선(善)한즉 선(善)한 세계요. 너희가 악(惡)한즉 악(惡)한 세계이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2)
생활신앙이란 단순히 교단에, 단체에 가입 안 하고 신앙하는 것?? 맞는 말씀일 수 있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서있는 곳, 지금 일하는 곳, 지금 사는 곳이 바로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시간과 장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고 내가 좋아 한다고 남에게 권하지 말라~ 이 말씀은 내가 내 할 도리를 하는 것이 일꾼된 도리라고 생각해봅니다. 일꾼은 본인이 지참해서 가지고 다니는 먹줄(기준:잣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잣대로 말과 행동을 하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운 이익이 보이리라 믿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부친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 항상 자력을 쓰도록 하시고 “평소에 허물 지은 것을 생각하여 허물 닦기에 힘쓰소서.”하시니라. 또 성도들이 부친께 물품이나 금품을 드리는 것을 엄금하시니라. 하루는 어떤 성도가 집이 너무 좁고 초라함을 민망히 여겨 그보다 큰 집을 사 드린 일이 있더니 상제님께서 꾸짖으시며“네가 어찌 나의 부친을 도적으로 만들려 하느냐.” 하시고 다시 이르시기를 “속 모르는 사람은 나에게 불효라 할지나 나는 부친의 앞길을 닦아드리려 함이로다. 내가 항상 가늠을 놓고 보는데 만일 그 가늠에 어그러지면 허사가 되나니 너희들이 부친의 빈궁하심을 민망히 여겨 도와드리고 싶거든 먼저 나에게 말하라. 그 가늠을 변경하리라.”하시니라. (道典9:121:1∼8)
*하루는 태인으로 부터 손바래기에 이르시어 부친께 여쭈기를 “나의 일은 추호도 사정(私情)이 없으니 부디 죄를 짓지 마소서.”하시니라. (道典2:105:1∼9)
*상제님께서 채사용(蔡士用)과 성도 여러 명을 데리고 천원리에 이르시어 한 집으로 들어가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따라 들어가 보니 한 노인이 신을 삼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삿갓을 들고 그 옆에서 한참을 바라보시다가 나오시거늘 성도들이“그 노인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나의 부친이니라.”하시니라. 사용이 황송한 마음에 즉시 백미 한 말을 져다 드리고 오니 상제님께서 이미 아시고“나의 부친이 죄가 많으므로 신틀로써 그 죄를 감하게 하였거늘 너로 인하여 나의 부친은 3년을 더 신을 삼아야 하리라.”하시니라. (道典9:121:1∼8)
이 글이 조금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양해해 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농부가 이른 봄 농한기에 그 버는 논에 똘을 깊이 파서 수원지에 이르게 하니, 여러 사람이 부질없이 힘들이는 것을 비웃어 가로대 ‘이 논은 예로부터 천수(天水)만 받아도 흉작이 없어 왔는데 쓸데없는 힘을 이렇게 들이느뇨’ 하더니, 이 해에 크게 가물어서 온 들이 적지가 되었으나 그 농부는 파 놓았던 똘로 물을 끌어대어 가뭄을 면하여 잘 지었나니, 이 일을 알아두라 하시니라. (대순전경 P142)
신앙과 생활이 하나로 산다는 것!
척 안짓고 산다는 것!
사람이 덕을 박하게 쓴 즉 만사에 원한을 맺는다 하셨으니
날마다 더 널리 덕을 행하며, 척을 짓지 않는다는게 정말 쉬운 길이 아닌듯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척 안짓고 산다는 것!
사람이 덕을 박하게 쓴 즉 만사에 원한을 맺는다 하셨으니
날마다 더 널리 덕을 행하며, 척을 짓지 않는다는게 정말 쉬운 길이 아닌듯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성경신 정말 힘들지만 가야되나봐요. 안 그러면 일반사람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말만 상제님 도 닦는 것이지 일반인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고민 많이 되는 부분이더라구요~ㅠ
알고 실행치 않으면 바위에 물주기와 같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 나네요.
궁극적으로는 생활속에 모든 신앙의 이미가 묻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식도 높고 돈도 많고 높은 지위도 있는데 인망에 오르지 못했다면
헛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신앙인이라는것이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가 봅니다.
그런대 어찌 되었든 신앙이 없는 사람과는 다르긴 달라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생활속에 모든 신앙의 이미가 묻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식도 높고 돈도 많고 높은 지위도 있는데 인망에 오르지 못했다면
헛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신앙인이라는것이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가 봅니다.
그런대 어찌 되었든 신앙이 없는 사람과는 다르긴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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