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 입니다.
그리고 천지공사에서 사용하신 교운, 세운 이라는 단어를 잘 살펴 볼 필요도 있는것 같습니다.
미트라와 증산미륵존불의 연결성이 가지는 의미
과도기 도판은 상제님을 신앙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종통을 신앙하던 곳이었습니다. 상제님이 누구시냐가 아니라 상제님이 누구에게 종통을 물려줬냐에 더 의식이 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상제님 당신께서 일부러 이런 구도를 만드셨지요. 다들 익히 아시다시피 역신해원판이 열리게 하는 떡밥이랄까요.
그러다보니 과도기 교단의 모든 공사해석 도수풀이는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들이 믿는 종통의 근거 합리화에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습니다. 과도기 교단 출신 혹은 현도생님들 잘 돌이켜 보십시오. 그 교단에서 배운 공사해석 혹은 도수풀이 중에 종통논리와 무관한, 오로지 상제님의 신원 내지는 메세지만을 밝히는 가르침이 얼마나 되었는지요.
상제님께서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고 하셨는데 사실상 우리 도생들이 상제님의 신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뭘까요? 과도기 교단은 상제님에 대해서 '종통에게 대권을 물려주신 분'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인 겁니다.
제가 법종교에 와서 우연한 계기에 의해 미트라 신앙의 원 주인이 증산미륵존불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저 역시 증산상제님의 신원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간 도판의 가르침 역시 그러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증산의 도가 진정으로 범세계적인 원신반본의 도이자 미래비젼으로 진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트라는 미륵의 어원이자 현 기독교 신앙의 원 뿌리입니다. 서양사람들이 미륵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미트라에 대해선 압니다. 미트라(태양신) 신앙은 그 원류가 바빌로니아 시대로까지 올라가는 시원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양사람에겐 말이지요.
상제님의 신원이 미륵존불이었다는 개념은 동양권에서는 공감을 주고 증산의 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서양인들에게는 다소 와닿지 않은 개념일 수 있습니다. 이때 미트라 신앙과 증산상제님의 연결성이 제시가 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예수 석가 공자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는 말씀이 훨씬 더 입체성, 구체성을 띠게 되는 개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과도기 교단은 결국 역신해원판이었기 때문에 상제님의 온전한 신원을 드러낼 수도 드러내서도 안되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상제님이 직접 기획하시고 창교하신 교단의 몫인 겁니다.
과도기 교단의 창교주는 상제님을 자신에게 종통대권을 내려주신 분으로만 인식했기에 모든 공사해석과 도수풀이는 오직 그 근거를 입증하는 수단으로서만 존재가치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증산상제님의 연결성부터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모든 도정은 그기에만 집중되고 소비되었습니다.
반면 증산법종교의 창교주는 상제님의 친혈육이셨기에 상제님과의 연결성에 대해 애써 집착 내지는 피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상제님이기 이전에 아버지였기 때문에 당신께서 남기신 천지사의 마무리를 순전한 마음으로 받들 수 있었던 겁니다. 아울러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거라고도 봅니다.
상제님께서는 그러한 이유로 친따님에게 증산법종교를 창교하게 하시고 당신의 진정한 신원과 가르침을 알 수 있는 메세지를 각 전각과 그 속에 담긴 많은 상징과 기호를 통해 남기셨다고 봅니다.
상제님께서는 재세시 공사에 쓰셨던 문헌을 모두 불태우셨습니다. 종도들에게도 모든 가르침을 글로써 전하지 않으시고 구전심수하라고 하셨고 나아가서 붓대가진 놈이 도둑놈이라고 아예 못을 박으셨습니다.
물론 과도기 교단의 경전들 역시 상제님의 천지공사 도수에 의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실제 상제님의 법이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체계화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부작용과 폐단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필요악적 수단이었다고도 봅니다. 문자란 것은 기록하는 자의 자의식에 따라 필연적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징과 기호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면 조작이 불가능하며 조작의 필요성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법종교의 많은 전각들과 그에 담긴 상징과 기호, 배치, 구조 등은 그 자체로 상제님께서 후학 도생들에게 남겨주신 순수 메세지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먼 훗날 후학 도생들의 지식수준이 확장이 되고 또한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인프라가 갖추어지게 되면 이에 담긴 메세지를 익히 알 수 있게 해놓으셨지 않나 하는 겁니다.
삼청전 미륵불 아래 있는 도형이 과연 미트라(태양신)를 상징하는 솔라크로스인지 아닌지는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개념이 증산상제님의 도가 세계화하는데 일말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과도기 교단의 모든 공사해석 도수풀이는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들이 믿는 종통의 근거 합리화에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습니다. 과도기 교단 출신 혹은 현도생님들 잘 돌이켜 보십시오. 그 교단에서 배운 공사해석 혹은 도수풀이 중에 종통논리와 무관한, 오로지 상제님의 신원 내지는 메세지만을 밝히는 가르침이 얼마나 되었는지요.
상제님께서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고 하셨는데 사실상 우리 도생들이 상제님의 신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뭘까요? 과도기 교단은 상제님에 대해서 '종통에게 대권을 물려주신 분'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인 겁니다.
제가 법종교에 와서 우연한 계기에 의해 미트라 신앙의 원 주인이 증산미륵존불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저 역시 증산상제님의 신원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간 도판의 가르침 역시 그러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증산의 도가 진정으로 범세계적인 원신반본의 도이자 미래비젼으로 진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트라는 미륵의 어원이자 현 기독교 신앙의 원 뿌리입니다. 서양사람들이 미륵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미트라에 대해선 압니다. 미트라(태양신) 신앙은 그 원류가 바빌로니아 시대로까지 올라가는 시원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양사람에겐 말이지요.
상제님의 신원이 미륵존불이었다는 개념은 동양권에서는 공감을 주고 증산의 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서양인들에게는 다소 와닿지 않은 개념일 수 있습니다. 이때 미트라 신앙과 증산상제님의 연결성이 제시가 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예수 석가 공자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는 말씀이 훨씬 더 입체성, 구체성을 띠게 되는 개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과도기 교단은 결국 역신해원판이었기 때문에 상제님의 온전한 신원을 드러낼 수도 드러내서도 안되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상제님이 직접 기획하시고 창교하신 교단의 몫인 겁니다.
과도기 교단의 창교주는 상제님을 자신에게 종통대권을 내려주신 분으로만 인식했기에 모든 공사해석과 도수풀이는 오직 그 근거를 입증하는 수단으로서만 존재가치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증산상제님의 연결성부터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모든 도정은 그기에만 집중되고 소비되었습니다.
반면 증산법종교의 창교주는 상제님의 친혈육이셨기에 상제님과의 연결성에 대해 애써 집착 내지는 피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상제님이기 이전에 아버지였기 때문에 당신께서 남기신 천지사의 마무리를 순전한 마음으로 받들 수 있었던 겁니다. 아울러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거라고도 봅니다.
상제님께서는 그러한 이유로 친따님에게 증산법종교를 창교하게 하시고 당신의 진정한 신원과 가르침을 알 수 있는 메세지를 각 전각과 그 속에 담긴 많은 상징과 기호를 통해 남기셨다고 봅니다.
상제님께서는 재세시 공사에 쓰셨던 문헌을 모두 불태우셨습니다. 종도들에게도 모든 가르침을 글로써 전하지 않으시고 구전심수하라고 하셨고 나아가서 붓대가진 놈이 도둑놈이라고 아예 못을 박으셨습니다.
물론 과도기 교단의 경전들 역시 상제님의 천지공사 도수에 의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실제 상제님의 법이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체계화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부작용과 폐단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필요악적 수단이었다고도 봅니다. 문자란 것은 기록하는 자의 자의식에 따라 필연적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징과 기호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면 조작이 불가능하며 조작의 필요성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법종교의 많은 전각들과 그에 담긴 상징과 기호, 배치, 구조 등은 그 자체로 상제님께서 후학 도생들에게 남겨주신 순수 메세지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먼 훗날 후학 도생들의 지식수준이 확장이 되고 또한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인프라가 갖추어지게 되면 이에 담긴 메세지를 익히 알 수 있게 해놓으셨지 않나 하는 겁니다.
삼청전 미륵불 아래 있는 도형이 과연 미트라(태양신)를 상징하는 솔라크로스인지 아닌지는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개념이 증산상제님의 도가 세계화하는데 일말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는 거지요.
이전에도 법종교 전각의 상징들을 두고 나름의 해석을 했던 경우가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로 인해 법종교가 왜곡된 이미지로 알려진 사례가 근래도 있었고요. 아마 이후로도 유사한 폐단이 되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해석들을 접할 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각설하고 어떤 해석이 해석하는 당사자의 신원을 드러내는데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난법적 해석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반면 그 해석이 오직 상제님의 신원을 드러내는데 포인트가 있다면 일단은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나 합니다.
그간 문제가 되었던 해석들은 모두 전자의 경우였지요. 결국 상제님이 아니라 종통을 드러내고자 하는 해석이었던 거지요.
덧붙여 상제님의 진정한 신원을 알려면, 다시 말해서 상제님의 진정한 일꾼이 되려면 가장 먼저 과도기 교단에서 배운 종통논리부터 온전히 비워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러한 해석들을 접할 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각설하고 어떤 해석이 해석하는 당사자의 신원을 드러내는데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난법적 해석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반면 그 해석이 오직 상제님의 신원을 드러내는데 포인트가 있다면 일단은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나 합니다.
그간 문제가 되었던 해석들은 모두 전자의 경우였지요. 결국 상제님이 아니라 종통을 드러내고자 하는 해석이었던 거지요.
덧붙여 상제님의 진정한 신원을 알려면, 다시 말해서 상제님의 진정한 일꾼이 되려면 가장 먼저 과도기 교단에서 배운 종통논리부터 온전히 비워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증산도 道典 2:40)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증산도 道典 2:40)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큰 운수를 받으려는 자는 서전서문(書傳序文)을 많이 읽으라.” 하시고
“서전서문 가운데 이 구절은 천지에 청수를 떠 놓고 읽을 만한 글이니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且生於數千載之下하여
차생어수천재지하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하니 亦已難矣라
이욕강명어수천재지전 역이난의
더구나 수천 년 뒤에 태어나
수천 년 전의 것을 밝히려 하니
또한 심히 어려운 일이로다.
(증산도 道典 8:111)
“서전서문 가운데 이 구절은 천지에 청수를 떠 놓고 읽을 만한 글이니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且生於數千載之下하여
차생어수천재지하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하니 亦已難矣라
이욕강명어수천재지전 역이난의
더구나 수천 년 뒤에 태어나
수천 년 전의 것을 밝히려 하니
또한 심히 어려운 일이로다.
(증산도 道典 8:111)
'종통논리부터 온전히 비워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해세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와 동행하시는 천지일월이신 것을
증산이라는 인신으로 잠시 나투신 것에 한정지어 상제님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은 그림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작은 부분에만 집착하게되는 편협된 관념에 갇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 터서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가는 시점이니...
세계인이 모두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트여서 종교도 통일?ㅋ되는 문화가 열리게 될 날이 멀지않으리라봅니다.^^
해세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와 동행하시는 천지일월이신 것을
증산이라는 인신으로 잠시 나투신 것에 한정지어 상제님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은 그림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작은 부분에만 집착하게되는 편협된 관념에 갇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 터서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가는 시점이니...
세계인이 모두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트여서 종교도 통일?ㅋ되는 문화가 열리게 될 날이 멀지않으리라봅니다.^^
이윤도수, 문왕도수, 대두목 등등... 도판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핫키워드들이지요. 전부 종통이 누구냐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게 그간의 도판 현실인 거지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각 교단의 도생들이 정말 한마음으로 화합이 되려면 종통관부터 하루빨리 철폐해야 합니다. 과도기 교단에서 배운 종통논리를 다 비워내야 합니다.
법종교 영대에 상제님과 정씨대모님이 계신 걸로 상제님은 이미 기존 종통관의 허구를 직설적으로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명명백백한 불립문자의 메세지입니다. 그렇다고 정씨대모님이 수부란 얘기가 아닙니다. 수부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는 거지요.
혹자는 구암 정사님을 성골도굴범이라 간주합니다. 상제님께서 당신의 성골을 훔친 자에게 유일한 혈식을 짝지워서 천지사를 마무리했다는 논리입니다. 상제님과 대모님의 성골이 안장된 자리라면 천지의 가장 크신 신장들이 호위하는 곳일텐데 감히 상제님의 성골을 훼손한 자가 수십년을 기거하고 교단의 대표까지 역임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한 발상이 얼마나 참람되고 상제님마저 능멸하는 발상인지 언제쯤 깨달을런지요. 이야말로 상제님이 아니라 종통을 믿어 온 적폐라고 봅니다. 그러니 수십년을 혈성으로 성묘를 지켜오신 선배 도현님들을 묘지기라고 서슴없이 폄하할 수 있는 거지요.
구암 정사님을 성골도굴범으로 모는 논리는 모 교단의 교주가 화은당 선사님을 불륜의 씨라고 폄하한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망발입니다. 상제님과 잠깐 인연을 맺은 김수부도 시집간 첫날밤에 천지신장들이 불칼로 내리쳤는데 상제님의 정실부인이 외간남자와 놀아났지 않았겠나 하는 발상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망발인 거지요.
결국 이 모든 것이 종통논리의 극심한 폐해이고 그 적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자들이 구암 정사님을 성골도굴범 운운하고 있는 겁니다.
연원을 잘 바루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이에 있지 않을까 깊이 새겨봅니다.
각 교단의 도생들이 정말 한마음으로 화합이 되려면 종통관부터 하루빨리 철폐해야 합니다. 과도기 교단에서 배운 종통논리를 다 비워내야 합니다.
법종교 영대에 상제님과 정씨대모님이 계신 걸로 상제님은 이미 기존 종통관의 허구를 직설적으로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명명백백한 불립문자의 메세지입니다. 그렇다고 정씨대모님이 수부란 얘기가 아닙니다. 수부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는 거지요.
혹자는 구암 정사님을 성골도굴범이라 간주합니다. 상제님께서 당신의 성골을 훔친 자에게 유일한 혈식을 짝지워서 천지사를 마무리했다는 논리입니다. 상제님과 대모님의 성골이 안장된 자리라면 천지의 가장 크신 신장들이 호위하는 곳일텐데 감히 상제님의 성골을 훼손한 자가 수십년을 기거하고 교단의 대표까지 역임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한 발상이 얼마나 참람되고 상제님마저 능멸하는 발상인지 언제쯤 깨달을런지요. 이야말로 상제님이 아니라 종통을 믿어 온 적폐라고 봅니다. 그러니 수십년을 혈성으로 성묘를 지켜오신 선배 도현님들을 묘지기라고 서슴없이 폄하할 수 있는 거지요.
구암 정사님을 성골도굴범으로 모는 논리는 모 교단의 교주가 화은당 선사님을 불륜의 씨라고 폄하한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망발입니다. 상제님과 잠깐 인연을 맺은 김수부도 시집간 첫날밤에 천지신장들이 불칼로 내리쳤는데 상제님의 정실부인이 외간남자와 놀아났지 않았겠나 하는 발상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망발인 거지요.
결국 이 모든 것이 종통논리의 극심한 폐해이고 그 적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자들이 구암 정사님을 성골도굴범 운운하고 있는 겁니다.
연원을 잘 바루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이에 있지 않을까 깊이 새겨봅니다.
종통성, 법통성... 그런면에서 법종교가 여타 교단에 밀려서가 아니라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 아닌것이라, 선배님들께서도 그기에대해서
별로 연연해 하지도 않았고, 크게 들어내려 하지도 않았으나,
그런면에서 구태여 언급을 필요로하고 따져보고자 하는사람이 있으면
그때가서 한번 따져 보기로 하죠!!
원래, 옛날부터 자기 근본이 하챦은 사람이 근본얘기를 먼저 꺼내는 법입니다
그리고, 흔히 대두목, 대두목 하는데 법종교에서 대두목이란 단어는
상제님의 수많은 聖言聖句중의 한구절일뿐, 그 한단어에 무차별적으로
목메는 단어가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먼저가신 선배님들께서 늘 하시던 말씀...
잘믿고, 잘닦아서 살아서 좋은세상보면 좋고, 때가 일러 못보면
다음세상에 새몸받아나서 일만이천 도통군자날때
그한몸 받아나기를 소원했을뿐...
어디서 대두목이니.. 뭐니.. 하면 그냥 웃어넘겨 버렸었거든요.
하지만.
그런것은 다 그냥두고라도, 상제님을 齊家도 못하신 팔불출로
만들어 놓고서도 상제님을 신앙한다는 말은 도대체가 어불성설이며,
자기가 지금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진짜 미치광이요.
그속에 앉아 눈만 멀뚱거리는 사람들도 딱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언제일지는 사람이 알수없지만, 때가되면
그말에 책임져야할 때가 오겠죠.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 아닌것이라, 선배님들께서도 그기에대해서
별로 연연해 하지도 않았고, 크게 들어내려 하지도 않았으나,
그런면에서 구태여 언급을 필요로하고 따져보고자 하는사람이 있으면
그때가서 한번 따져 보기로 하죠!!
원래, 옛날부터 자기 근본이 하챦은 사람이 근본얘기를 먼저 꺼내는 법입니다
그리고, 흔히 대두목, 대두목 하는데 법종교에서 대두목이란 단어는
상제님의 수많은 聖言聖句중의 한구절일뿐, 그 한단어에 무차별적으로
목메는 단어가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먼저가신 선배님들께서 늘 하시던 말씀...
잘믿고, 잘닦아서 살아서 좋은세상보면 좋고, 때가 일러 못보면
다음세상에 새몸받아나서 일만이천 도통군자날때
그한몸 받아나기를 소원했을뿐...
어디서 대두목이니.. 뭐니.. 하면 그냥 웃어넘겨 버렸었거든요.
하지만.
그런것은 다 그냥두고라도, 상제님을 齊家도 못하신 팔불출로
만들어 놓고서도 상제님을 신앙한다는 말은 도대체가 어불성설이며,
자기가 지금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진짜 미치광이요.
그속에 앉아 눈만 멀뚱거리는 사람들도 딱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언제일지는 사람이 알수없지만, 때가되면
그말에 책임져야할 때가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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